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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동식물의 문학사 & 탐험사&세계사

동식물의 세계사12, 충성스러운 개(견공)의 세계사 - 개좋음

by 코리안랍비 2022.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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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 출처 이미지 개보다 못한 사람 - 사람보다 못한 개



개(견공)의 세계사<2020년 작성글>



“순수한 사랑을 전하기에 충분할 만큼 진화한 유일한 동물은 개들과 아기들뿐이다.” - 영화배우 Johnney Depp 조니 뎁

“만일 천국에 개가 없다면 나는 천국에 가고 싶지 않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 영화배우 Will Rogers 윌 로저스


 언어의 연금술사인, 양광모 시인은,

"개만도 못한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한다.
개의 입장을 생각해본다. 개만도 못한 사람도 많은데,
개들도 사람만도 못한 개가 되지 말자" 라는 우스운 시를 썼다.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요즘 개만도 못한 사람은 많아도
사람만도 못한 개는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개에 대한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참으로 많이 들어왔고, 적어도 개 한 마리는 키워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개의 진화론이나 발달사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불필요하다. 인터넷으로 클릭해서 알아보시라. 대부분 쓰레기 데이타이다.

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충성스러운 동물이다. 개의 충성심은 정말 지극적이어서, 일편단심 주인을 찾아 수천리 길을 갔다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는 감동을 느낀다. 고전이나 역사에 남은 개의 미덕은 하나같이 충성심에 대한 것이다.

  • 구글 출처 이미지


수년전에 일본 여행을 하다가 시부야 역의 개 동상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 개가 바로 ‘하치’인데, 주인을 몇 년이나 기다린 하치는 돌아오지 않는 주인(대학강단에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을 기다리가 그만 죽고 말았다. 그 시부야 역에는 하치의 동상이 있다. 그래서 나온 책이 <하치 이야기, 신도 가네토, 책이 있는 마을>이다. 그 책을 보다가 개로 인해 눈물 흘리기는 처음이었다.(괴로운 것이 아니라 개로워다)


그래서 인류는 개를 제일 먼저 가축으로 받아들였다. 개는 인류가 최초로 가축으로 삼은 동물이다. 역사적으로는 애완견(요즘은 반려견이라고 더 부른다.), 식용견, 사냥견으로 길러져 왔으며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도 불리운다. 그렇지만 동서양에서 개는 충성스럽고 애정이 많은 동물이라고 하면서도 개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욕들이 많다. “개소리, 개판, 개놈, 개망신” 등 헤아릴 수 없다. 이제는 그런 욕설도 변해야 한다.

또한 관련 속담도 여러 가지가 있다. 한국에서는“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산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읋는다.”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기”, “죽은 정승이 산 강아지보다 못하다” “천분세락 - 개똥밭에 뒹굴어도 세상은 즐겁다”

개와 관련된 욕이나 속담은 상당부분 부정적이고 지저분하기까지 하다.
왜 그토록 충성스러운 개를 좋지 않게 미화를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외국에 잠시 살아보니 유독 한국이나 중국이 이에 대한 관념이 강하다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 언어가 저속해진 탓일 것이다. 아름다운 한글을 아름답게 써야 한국인이다. 영화 배우 조니뎁의 말대로 아기와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쓰는 언어가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개 이야기를 해보자.읽을 준비가 되었는가?



고대인의 개의 사랑

성서에 보면 '개'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있다. 바로 '갈렙'이다. 히브리음으로는 켈레브인데 그가 개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특이하다. 그의 친구는 지도자인 여호수아이다. 그런데 갈렙은 끝까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았다. 나이가 늙었어도 가나안 정복길에 오른다. 삼국지의 [조자룡] 같은 이미지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갈렙이라는 인물이 참 좋다. 한결같은 충성심이 좋고, 남자답고 영웅다은 면이 좋다.

고대 로마시대의 역사가중에 유스티누스가 있다. 그는 페르시아의 위대한 왕 다리우스(성서 이사야서에 등장하는 다리오왕)가 카르타고에 개고기와 인신공양을 금지하는 포고를 내렸다는 기록을 남겼다. 아마도 조로아스터교의 영향 때문이라고 본다.

그 종교나 기록 덕분인지 서양사회는 아마도 개고기를 먹는 것을 금기시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중동 이스라엘이나 이슬람권에서도 개고기는 절대 금지식품이다. 오늘날에도 개고기를 먹는 문제는 문화적인 논란의 대상이 된다.

2002년 월드컵 시즌에 한국의 개고기 문화가 큰 비판의 대상이 된 것도 기억이 난다. 아마 그 이후 개고기에 대한 소비가 줄었을 것이다. 개를 우리 인간문화속으로 더욱 들여 놓으면서 개에 대한 사랑이나 가치관이 크게 달라졌다. 그런데 실은 고대인들보다 우리 현대인들이 개에 대한 사랑과 가치관이 더 대단해진 것은 아니다.

대학원 시절에 프랑스에서 유학온 여학생이 있었다. 교수와 우리 대학원 남학생 동기들은 이 여학생에게 개고기를 먹이기로 작정을 하였다. 프랑스에서 개고기를 먹는 것은 절대금기사항인데 이들은 개고기와 비슷한 오리 고기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교수와 동기들은 서로 “이것은 오리 스튜(전골)이야” 라고 몇 번이고 유명한 가게에 가서 그 여학생에게 개고기를 먹였다. 그렇게 2달을 먹고 나서 이 여학생은 완전히 개고기의 팬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을 말하기로 하고, “실은 그 고기는 오리고기가 아니라 개고기였어” 라고 하자, 그 여학생은 갑자기 토악질을 하고 마구 화를 내었다. 그후 그녀가 프랑스로 돌아갔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그 개고기를 다시 먹고 싶다” 라는 전화였다. 아마도 지금도 그녀는 개고기를 집에서 해먹지 않을까 상상이 된다. 이제 한국도 서양처럼 補身湯이라는 이름으로 개고기 식사는 되도록 금지했으면 한다.


100년도 안된 반려견의 역사
유명한 심리학자 파블로프의 [조건반사라고 알려진 개실험]은 유명하다. [심리학개론의 맨 앞에 나오는 인물이 바로 파블로프이다. 그는 수많은 개들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실험을 하였다. 그가 실험한 것은 2차 대전 이전의 실험이다. 그 당시에는 그저 개도 인간의 희생물이요, 실험대상이었다. 그의 개 실험은 그 이후 동물학대라는 이유로 사라졌고 다른 생물로 대체되었다. <나는 파블로프의 개를 이용하여 심리학의 성과를 낸 것에 별 감동을 못느꼈다. 그 이유는 내가 심리학자가 될 것이 아니어서 그렇다. 그 때는 왜이리 열심히 심리학 공부를 했는지 모른다. 개에 대한 이해도 안되면서 나름 수준있는 척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같다. 알베르트 까뮈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가 말한대로 ‘개는 소멸의 대상이고, 인간은 불멸의 대상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개는 원래 인간들과 친화적인 관계를 오래전부터 맺어왔으나, 오늘날과 같이 반려견으로서 퍼지게 된 것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그전까지는 개가 집안에 들어와 사는 것이 금지되었다. 마당에 개집을 지어주고, 사람들과는 따로 지냈는데 나중에는 애완견이 반려동물역할이 더 강해져 집안에서 가족들과 같이 거주한다. 개의 호강시대가 된 것이다.


개는 개고 사람은 사람이다.
[개에 대하여] 저자 스티븐 부디안스키는 개와 인간의 공존에 대해서 말하면서,
“개는 인간의 생태적 틈새를 멋지고 파고 들어왔다. 개와 인간의 공존을 선택한 것은 우리 인간이 아니었다. 길들여지기를 선택한 것은 개였다” 동물생태학자인 [최재천 교수]도 그의 생각에 상당히 공감한다고 한다. 개가 먼저 인간에게 접근했지, 인간이 개에게 먼저 접근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개들은 자신들의 선조인 늑대가 발전시켜온 고도의 [적응행동]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인간은 시각적으로 세상을 보지만, 개들은 후각을 통해서 주변세계를 이해하고 기억한다고 한다. 개의 후각은 인간보다 1만배 이상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범인을 추적할 때 개의 타고난 후각을 동원하면 쉽게 잡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개는 한번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에게 대한 충성이 바로 그 주인의 냄새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저자는 “개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동물이다. 아주 매력적이다. 그러나 개는 개일 뿐이다. 개를 있는 그대로, 개다운 본성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자” 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바로 앞에서 양광모 시인의 자신의 시집에서 쓴 시와 비슷한 입장이라고 본다.

“개가 인간이었다면 아마도 상종 못할 망나니였으리라. 하지만 다행히 개가 된 덕분에 그토록 멋진 것이다” <스티븐 부디안스키>




반려견과 인간의 공존

KBS <개는 훌륭하다, 개훌륭>나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세나개>의 개프로그램에는 개통령이라 불리우는 ‘강형욱’ 훈련사가 등장한다. 그의 익숙한 반련견 행동교정이나 반려견 교육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 그냥 홀릭이 된다. 그가 손을 대는 개들은 정말 ‘인간과 소울메이트’가 될 정도록 교정되고 달라진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프로그램은 성공률이 낮은데, 개훌륭이나 세나개 프로그램은 거의 100% 성공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사람보다 개를 키우는 일을 더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강형욱 훈련사는 이제 ‘한국형 반려문화’라는 것을 형성시키며, ‘개와 사람이 같이 행복해지는 펫티켓’ 운동도 하고 있다.

사촌동생이 도그TV의 대표로 있는데, 개보다 좋은 동물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서는 절대 개를 키우지 않는다. 아직 자녀들이 어려서 그렇다고 한다. 개를 키운 다는게 실은 아이를 하나 키우는 것 이상으로 쉽지 않다고 한다.


<개가 남긴 한마디> 터키의 국민 작가 아지즈 네신
요즘은 개호텔도 있지만, 개묘지도 등장하고 있다. 개팔자가 상팔자가 되었다.
집에 있는 책중에 <개가 남긴 한마디>라는 책이 있다. 터키 출신이 국민작가로 추앙되는 아지즈 네신이라는 작가가 있다. 그는 원래 군사독재 시절에 정치범으로 부르사에서 유배기를 보낸 사람인데, 그는 유머로 승화시키는 글로 진한 페이소스가 느끼게 하는 글을 쓴다.

그가 쓴 소설중에 <개가 남긴 한마디>인데 소설에서는 개, 카라바쉬를 무척이나 사랑한 주인인 카슴이 나오는데, 그의 반려견이 죽자 마치 사람처럼 장례를 치르다가 개의 꼬리가 발각이 되어 재판정에 서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재판관은 “어째서 개에게 사람과 같은 대접을 해주었느냐?”라고 묻는다. 판사에 추궁에 카슴은 말한다.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어라” 라는 것이 개의 유언이라고 말한다. 이에 판사는 “말도 안되는 소리 집어 치우라” 라고 한다. 그러자 카슴은 “죽은 개가 판사님에게 황금 500냥을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라는 폭탄선언을 발표한다. 그 다음 결과는 말할 것도 없다.< 카슴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재판관은 눈물을 글썽인다. >

“신의 이름으로 고인 카라바쉬의 명복을 빌겠네. 카슴 선생 ! 좀 더 말해보시오.
고인이 무슨 말을 더 남겼나요? 제발 하나하나 읋어 주시오. 고인의 유언을 모조리 실행합시다. 그건 종교적으로 보나 뭘로 보나 선행중의 선행이지 않습니까?“

사사로운 이익(뇌물이나 후원금)을 얻으려고 하는 사법부(또는 권력인들)의 위선을 아지즈 네신은 이렇게 풍자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참고로 이 책은 50년도 더 된 책이다.(아마 구입이 가능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 정치권에 필요한 책이기에.... ) 말도 안되는 것을 말이 되게 하는 것이 풍자작가나 우화작가의 일이다.


‘개추천’ 하는 책들


[객주]의 작가 김주영의 80세 노작 [뜻밖의 생] 1

이 책은 노숙자 박호구의 삶에 대한 소설이다. 그는 부모님과의 불화를 겪고, 여러 실패후에 노숙자로 전락한다. 호구라는 이름에서 보여지는 것은 정말 ‘호구’같이 지내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가 데리고 다니던 개 칠칠이로부터 적지 않은 위로를 받는다.
개의 체온으로 심지어 추운 겨울을 버틴다. 작가 김주영은 “최악의 비속어가 쓰이는 동물인 개가 사람에게 오히려 깨달음을 주는 이갸기가 소설에 나온다” 라고 소개한다. 역시 비천한 존재가 전하는 위로다. 소설 제목 ‘뜻밖의 생’을 보면 적지 않은 위로를 얻는다. 개훌륭한 책이다.



[성깔 있는 개] - 산도르 마라이 2
가난한 한 헝가리 신사사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어떤 4주된 풀리 견인 ‘추토라’를 사들인다.추토라는 앙징맞고 귀엽지만 구두며, 신문이며, 책이며 마구 뜯는 개다. 특히 [정의론]의 저자인 H.G. 롤즈의 책은 모조리 ‘섭렵’할 정도이다. 개의 본성을 잘 다룬 소설이다.(*재미있게도 롤즈의 책만 물어 뜯는 다고 하는 대목이다. 정의는 무슨 개뿔이냐는 식으로)

개는 개차반이고 인간은 고상하다. 그러나 개는 최소한 자기 감정을 마음껏 표출하지만 신사는 그렇지 못하다. 개가 더 건강하다. 오히려 책에 나온 신사는 정열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그러다가 어느새 추토라랑 ‘혼연일체’가 되기 시작한다. 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개보다도 못한 만물의 영장? 이라는 의식이 들었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저서 [햄릿]에서“인간 얼마나 위대한 걸작인가? 생각은 신과 같과 이해는 천사와 같다. 세계의 미요 만물의 영장이로다” 라고 극찬하였다. 하지만 개보다 못한 자신의 실존을 발견한 신사에게서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다. 감정표현을 잘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이 소설은 “가증스러운 것에서 어떻게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쓰여졌다고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추토라라는 개는 잡종이 아니라 ‘철견 - 철학하는 개’처럼 보인다. 개에게서 플라톤이 보이고, 하이데거가 보인다. 개가 인간보다 낫다.


개 키울 자격 6가지
마지막으로 개를 키우는 사람이 알아야 할 몇가지를 다룬 책도 있다.
약간인지 많은지 모르겠지만 더러운? 것을 연구하는 기생충 학자[서민] 교수는 자신의 책 [서민의 개좋음]을 보면 6가지 개 키울 자격을 논한다. 개의 세계사라는 글을 쓰면서 별 걸다 소개한다.


첫째, 가족 모두가 개를 좋아하는가?
둘째,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셋째, 개를 너무 오래 혼자 내버려 두지 않을 수 있는가?
넷째, 개에게 시간을 할애해 줄 수 있는가?
다섯째, 개를 키울 경제적 능력이 있는가?
여섯째, 왜 개를 키우려고 하는지 돌아본다.
사실 개는 외로워서 키우서는 안된다. <예외로 외딴섬에 혼자 살았던 로빈슨 크루소만 빼고> 애인이나 결혼 등으로 외로움이 사라졌을 때 쉽게 개를 버리게 될 수 있다. 개 키울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위의 6가지를 잘 확인해보면 될 것이다.

한 생명을 들이는 것은 ‘끝까지 책임지겠다’ 라는 약속이다.

로저 칼로스라는 사진작가는 말한다.
“개는 우리의 삶 전체는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완전하게 한다.”

개가 주는 삶의 가치나 의미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


어려서 키운 개 [백구와 검구]가 생각난다.
하얀 개와 검은 개들 이었는데 초2부터 중1까지 키웠고, 나중에 전학오면서 이 개들은 어른들의 식사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 글을 쓰면서 그 개들이 생각나는 것은 짖궂은 어른들의 식사가 되려고 키워졌다는 것이 슬프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개를 사랑하지만 개는 키우지 않는다. 다만 나의 딸들이 개를 키운다고 한다. '자연인'처럼 정든 도시를 떠나서 전원으로 가면 개를 아마도 5마리는 키울 작정이다.
잡아먹으려고 키우지 말고, 같이 성장하려고 키워야 한다.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해 줄 사람은 늙은 아내와,
오래된 책과, 그리고 같이 늙어가는 개이다.

개의 세계사(문화사)를 논하려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인류의 역사와 오랫동안 함께 해온 개
그래서 인간을 가장 닮은 동물이 바로 개다.
아니면 개를 가장 닮은 존재가 인간일지도 모른다.

얼마전에 어떤 서울 지인분이 자신이 집이 개가 6마리 새끼를 낳았다고 하면서
페이스북으로 사진을 전송해왔다.
그래서 나는 ‘개찬사’를 보냈다.
“강아지들이 정말 개이쁩니다.”
그러자 “정말 이렇게 개좋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개축하드려요” 라고 했다.
사랑스러운 개같은 채팅이었다.

이제는 개가 욕의 대상이 아니라, 칭찬의 대상이 되었다.
집에 있는 개들에게 도리어 칭찬해주고 감사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이렇게 읽어주시니 ‘개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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