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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지혜와 지혜인들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 을 읽고, 사색하고, 정리하다.

by 코리안랍비 2023.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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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명작에게 길을 묻다 시리즈>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 WALDEN 숲속의 생활] 1부


많은 명사들이 ‘죽기 전에 꼭 한번 읽어야 할 책’이란 찬사를 바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월든」은 누구나 집에 한 권 쯤 있지만 다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는 책으로도 이름이 높다.

원래 고전이라는 것은 ‘고전’하게 되어 있다. 오백여 쪽에 달하는 두터운 블럭 책 인 데다가 잔잔한 자연예찬에 그치지 않고 물질주의를 배격하고 사회 인습에 저항하는 투사를 그려 따라가기 버겁다. 사찰이나 수도원의 수도자의 삶과는 다른 평범하지만 비범한 삶을 살아간 소로의 모범적이고 자연과 생태친화적 인생에서 자본주의의에 찌들어버린 현대인의 이상과는 정반대가 펼쳐진다.
이 책에 고전을 하더라도 헤매더라도 반드시 이 책의 강을 건너가라..

“자발적인 고독을 누리며 독립적인 자유인으로 살라”는 저자의 주장에 이르러서는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과 한참 동떨어져 반감마저 들 지경이다. 하지만, 끝까지 참을성 있게 읽은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다.

어째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톨스토이와 간디를 비롯해 후세에 큰 영향을 미친 시인이자 위대한 사상가인지 직접 발견할 수 있다. 철학의 신이라 불리운,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논리철학소고]에서 “말로 보여줄 수 없는 것은 몸으로 보여줘라” 라고 하였다. 월든 책을 읽으면 어느 순간 ‘메타인지 – 인지위에 인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연속에 자신, 자신 속에 자연을 두게 될 것이다.


첫장을 펼쳤으면 끝장까지 읽으라. 읽기 힘들면 머리 맡에 두고, 아침 마다 조금씩 조금씩 읽으라. 그것도 소리를 내어서 주저리 주저리 하다보면 소로의 높은 사상과 견조가 호수의 안개처럼 슬면시 스며드는 잔잔한 기쁨과 환희를 호수를 유유히 나는 새처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월든에는 숲만 있지 않았다. 호수도 있었다는 것을 명심하라. 인자(어진이)의 삶을 살려면 숲과 산을, 지자(지성인)의 삶을 살려면 물과 호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소로의 [월든]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나름의 평설을 하고자 한다. 함부로 이 분의 삶을 재단하고 싶지 않은 생각도 있고, 머리로만 [월든]을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내려 놓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과소유보다는 적은 소유를 통해, 조금이라도 삶을 단순화하려는 마음을 가질려고 한다.


나의 [월든]에 대한 기억은 22살로 내려간다. 나는 22살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방황하던 사람이었다. 나의 남동생도 일찍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때로는 사는 것이 너무 슬프고 우울해서, "나도 일찍 촛불처럼 살다가 산화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 꿈은 "내가 내 삶을 개척하고, 사이먼 앤 가펑클이 노래한 것처럼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는 것"이었다. 일종의 獨立宣言(독립선언) 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고독한 투쟁]을 해야 했다. 교회와 학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현실주의자라기보다는 초월주의자처럼 변모해갔다.

책 속의 이상을 보면 책 속의 인물처럼 되고 싶었다. 그러나 책 밖의 현실을 보면 그 현실에 순응하는 사람이 되고도 싶었다. 이상과 현실, 이 두 기둥을 다 양손으로 붙잡으면서 가는 것이 고독한 남자의 삶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조용필 가수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보면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수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이랑 남겨둬야지......’ 고독한 남자의 멋진 삶의 결의가 나에게는 있었다.


다시 4학년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본다.
대학교 4학년 시절, 내가 다니는 교회에는 도서관이 있었다. 섬기시는 담임 목사님이 책을 좋아하셨고(그 목사님은 그 당시에도 3만 권의 책을 소장하고 계셨다. 나는 그분의 영적 제자였다), 대학생들이 다니는 대학교회여서 [작은 도서관]이 구비되었던 것 같다. 나는 자주 그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읽기를 했다. 나의 독서 멘토는 담임목사님이시다.


오늘처럼 덥고 더운 날, 대학 4학년 여름날, 한 여학생 후배가 잠시 도서관에 들어왔다. 나보다 3살이 어린 간호학과 일학년생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나를 많이도 좋아했던 여학생으로 기억된다. 책을 읽으면서 인생의 깊이를 일찍 경험한 후배였다.


같이 독서토론도 여러번 했는데, 문학도를 꿈꾸던 문학소녀가 대학에서는 간호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현실적인 판단에서였다. 예나 지금이나 직업이 중요하던 시절이기에 간호학과를 다니면서 독서를 취미로 하는 여학생이었다. 그런데 [한권의 책이 인생을 바꾼다]라는 생각을 갖게 한 후배로 기억된다.

"선배님,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이 누구이며 뭔지 알아요?"
"글쎄?"
"전 헨리 데이빗 소로를 제일 좋아하고, 그분의 작품인 [월든]을 가장 좋아합니다."
"(짐짓 놀라며), 네가 소로와 그분의 작품 월든을 알아?
"그거 제목이나 저자만 알아도 대단한건데 "


대학 2학년 시절 잠시 읽어보았지만, 다 읽지 못하고 지루하여 덮었었다.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나중에 [죽은 시인의 사회]를 읽으면서 [월든]이라는 작품이 정말 대단한 고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배는 자신은 여고시절 2학년때 그분의 작품을 읽고, 평생을 자연주의자처럼 살고자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나는 그 풋풋했던 후배에게 "도시삶을 맛을 들이면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을 해주며, "[월든숲]은 지금처럼 도시화가 안된 1800년대 후반의 모습이니까 그런 유유자적한 도가적 삶은 지금과 어울리지 않아"라고 충고를 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여학생은 지금 그 [월든 프로젝트]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정확한지 모르지만 20여년간 간호사 생활을 하고, 속리산 자락이 있는 충북 보은에 들어가서, 보험일도 하면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며, 글을 쓰는 신출내기 작가가 되었다고 들었다. 남편은 회사생활을 그만두고 귀농하여 농사를 짓는 파머다. 그 사이에 수많은 문학책을 읽고, 그 문학책들을 카페에 전시도 하고, 사람들에게 맛있는 자연산 쥬스도 제공한다고 한다. 그 후배가 지금은 그립다. 보은에 [대추축제]가 있는데, 그때 그 후배의 북카페에 가보고 싶다. 카페이름이 [월든]인지 아닌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도 작은 책방을 만들면 [월든]이라 짓고 싶다.



서두가 길어졌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소로가 누군지, 아니면 [월든]은 어떤 작품인지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물론 읽어본 분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월든]은 호돈의 '주홍글씨', 허먼 멜빌의 '모비딕', 우리자 메이의 '작은 아씨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헤밍웨이의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처럼 미국을 만든 책중의 하나로 평가된다.


나는 루소의 말인,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자연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만,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도시삶에 익숙해지면 문제많은 도시중독자가 되어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이다. 이 순리를 거슬러서 사는 것은 인간의 자연성을 거부하는 생활방식이다. 그래서 도시인들은 늘 자연에 대한 동경 혹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혀 있다. 매주 도시인들은 시골로, 산으로, 강으로 돌아다니는 잠시의 유목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MBN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는 필자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이다. TV를 볼 시간이 없어서, 나는 나의 서재에 TV를 설치하여, 중간 중간 시청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6년간 인기 프로이다. 매주 수요일만 되면 본방 사수를 위해서 일찍 퇴근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출연자인 '자연인'은 개그맨 이승윤이나 윤택 두 사람이 나오며, 자연인과 며칠간 생활을 하면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로의 오두막집과 비슷한 곳에서 잠도 잔다. 체험 삶의 현장이다.

이 프로가 인기인 것은 지나친 경쟁이나 과도한 비교의식으로 지친 현대인들이 휴식과 힐링을 갈망한다는 방증이 된다.
나의 주변에도 의외로 [자연인]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귀농이나 귀촌, 혹은 전원생활에 대한 수요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200년전 바로 미국에서 위대한 '자연인'이 탄생했으니, 바로 헨리 데이빗 소로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 1817~1862 ) 는 미국의 수필가이자 시인이며 실천적 철학자이다.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초월주의자인 랄프 왈도 에머슨과 친교를 맺고 1845 년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교회에 있는 월든 호숫가에 집을 짓고 그곳에서 홀로 지내며 매일 관찰한 것과 사색한 것을 방대한 양의 일기로 남긴다.


<월든 또는 숲속의 생활> 은 자신이 지낸 2년 2개월간의 호숫가 생활의 삶을 기록한 것이다. 그가 살던 시대는 흑인 노예들이, 강제 노역에 시달리며 비참한 삶을 살고 있고 북부에서는 자유민들이 끊임 없는 물욕때문에 임금노동의 노역을 달게 받아들이던 때였다.


[월든]을 읽으면, 그는 숲속에서 세상과 단절하고 담을 쌓은 초월주의자의 이미지가 강하다. 책을 읽어보면 자연에 대한 예찬과 문명사회에 대한 풍자나 비판이 많이 녹아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내기가 그리 녹녹치 않다. 솔직히, 한번 읽기도 쉽지 않다.


[무소유] 로 알려진, 법정 스님도 잠자리 머리맡에 항시 두고 읽었다고 한다. 천천히 느린 독서를 통해서 소로의 정신세계와 코드를 맞추려고 노력하셨다고 한다. 법정 스님도 소로처럼 험한 산중에 2-3평짜리 집을 짓고서 살기도 하였다. 정말 방 한 칸에서 입산수도하면서 자연인으로서 살았다.

<소로우가 기거했던 집으로 알려진 오두막집>

생전에 월든을 좋아하셨던 법정 스님은,

"훌륭한 고전은 눈으로 읽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두런두런 소리를 내어 읽을 때 그 메아리가 영혼까지 울리는 법이다" 라고 했다.

그래서 필자도 소리를 내어 읽기를 시작했다. 좋은 글은 소리를 내어 읽어야 한다. 그리스어로 소리와 집중은 서로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낭독의 힘은 대단하다. 소리를 내어 읽으면 속도는 현저히 느려진다. 생각의 속도도 느려진다. 그리고 서서히 달구지를 매고 걸어가는 소와 같은 속도까지 내려간다. 걷기의 철학이 생긴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출출하여 절친한 식당에 들렸다.
그리고 소로의 [월든]을 소리내어 묵상(묵상은 조용히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내어 주절주절 읽는 법)을 하였다.

그러자 식당 아주머니는, "무슨 좋은 책이길래 소리를 내어서 읽으십니까?"
나는 "세상에서 제일 한가한 책이어서 한가로이 소리 내어 읽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정말 소리를 내어서 읽어보니, 눈으로 읽는 것과는 다른 맛이 있다. 우와, 낭독의 재발견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책은 여행이다" 라고 하였다. 어찌 보면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과 같은 것이다. 멀리 길을 떠나는 나그네는 짐이 가벼워야 한다. 다른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오로지 목적지를 향하여 느린 걸음이지만 마음을 다해서 가야 하는 것이다. 이 글의 필자는 정말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져 가는 존재라는 것을 여실히 느낀다. 그래서 수시로 ‘내려놓음’을 연습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진정한 여행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소로의 [월든]의 한 부분에서는, "진정한 삶을 시작하는 것은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일과 같다"라고 한다.

소로는 [월든]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으로 들어간 이유를, "인생의 곁가지를 버리고 삶의 정수를 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있는 것이 많으면 많을 수록 그 사람은 더 부유하다"라고 한다. "남들과 똑같은 것을 추구하지 말고 주체적인 삶을 살라"라고 조언한다.
놀라운 것은, 이 [월든]이란 책은 불과 그의 나이 30에 썼다는 것이다. 그는 천재 문필가임에 틀림없다. 원래 소로의 집안은 ‘열필공장’을 하였다고 한다. 연필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바로 ‘궁금중이나 물음표’이다. 상상력은 열필을 붙잡고 끄적거리다가 나온다고 한다. 연필을 들고 밑줄을 치면서 월든 책을 읽으라.

이 [월든]은 초판 2000부가 팔리기 까지 5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월든]을 출판할 곳을 10년 동안 찾지 못하다가 1854년에 가서야 2000부를 간행했는데, 5년 동안 고작 1300권만 팔렸다고 한다. 그후 절판도 되었다. 그러나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 그 가치가 재평가되면서 고전의 반열에 오른다.

위대한 미국인 '에머슨'의 그늘에 가려 빛을 못보았지만 그는 20세기에 들어서 가장 혁신적인 사상가요 생태론자요, 예언적인 지성으로 부활한다.

그래서 [가보지 않은 길]이라는 시로 유명한 로버트 프로스트 시인은 "이 한권의 책으로 소로는 우리가 미국에서 가졌던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라고 극찬했다.

 


필자의 생각에, 세계최고의 명문 하버드를 나온 재원이, 월든 숲으로 가서 오두막집을 짓고, 현실을 초월하여 산다는 것이 정말 기이한 삶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하버드 하면 역대 수많은 지도자들과 위대한 인물들을 배출한 학교이다. 4선 대통령인 루즈벨트도 하버드 출신이다. 최근 리더중의 리더인 오바마 전대통령도 하버드 출신이다. 부시도 하버드 출신이다. 유명한 케네디도 하버드 출신이다. 최근에 읽었던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센델도 하버드대 출신 교수이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하버드에서 수학했다. 전 국립생태원장이며, 이화여대 석좌교수인 최재천 박사도 하버드 출신이다. 웃자는 말로 나는 하버드를 나오지는 않았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에서 잠시 유유자적했다.

그런 명문대 출신이 숲으로 들어가서, 오두막집을 짓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으니 기이하기도 할 것이다. 그 당시 1800년대에는 숲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닐 것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소로는 그 당시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뉴스거리가 된 사람임에 틀림없다.

1845년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날, 신이나 돈, 혹은 국가가 아니라 완전한 내면의 소리를 듣고 따르기 위해 숲으로 간다. 28살의 초월주의자 젊은이의 독립선언!

그리고 '가장 단순한 삶'에 대한 위대한 실험이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이유는 깨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정말로 소중하다. 그리고 가능한 한 체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깊이 있는 삶을 통해 삶의 정수를 모두 빨아들이고, 굵직한 낫질로 삶이 아닌 모든 것들을 짧게 베어버리고 삶을 극한으로 몰아세워, 최소한의 조건만 갖춘 강인한 스파르타식 삶을 살고 싶었다"

소로가 생각한 이상적인 삶은 물질이 아닌 영적인 성장을 이루는 삶이었고 그런 그의 눈에 물질만능에 찌든 사람들의 모습은 인생의 본질을 외면한 "삶이 아닌 삶"으로 여겨졌다. 소로에게는 삶의 목적은 삶, 그 자체였다. ‘삶 그 자체’를 알려고 몸부림치면서 기꺼이 자신의 욕망과 야심을 내려 놓은 그의 모습은 흡사 성자를 보는 듯 하다.

소로는 자연과 교감하며 자신이 먹을 것을 직접 자신이 생산하고, 자연의 섭리나 계절의 순환에 자신을 맞춰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이 궁극의 행복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을 손수 실천해 보여주고 싶었었다.

그는 짧다면 짧은 2년 2개월의 오두막 살이를 그만두고 다시 메사추세츠로 들어간다. 그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삶의 완벽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소로가 원하는 절대적 자유이며 어떤 일체의 욕심도 비워놓고, 자연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몰아일체적 삶이었다. 소로는 집으로 돌아온다. 자기가 머무는 집이 마치 자연이 되길 바라면서이다.

"밥벌이를 그대의 직접으로 삼지 말고 도락으로 삼으라. 대지를 즐기되 소유하려 들지 말라. 진취성과 신념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이 지금 있는 곳에 머무르면서 농노처럼 인생을 보내는 것이다."

글이 길어졌다. 과감히 소로의 낫으로 길어진 글의 풀밭을 베어버리자.

'인생의 본질적인 것만을 직시하려고 했던 무소유의 삶'을 살아간 소로, 45세라는 나이에 지독한 결핵에 걸려 단명하지만 그가 보여준 삶의 자세는 사후 15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에게도 훌륭한 표본이 될 것이다. 그저 쓸데없는 일로 인생의 대부분을 허비하거나 쓸데없는 일들로 다람쥐 체바퀴처럼 도는 인생에게 소로의 [월든]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바른 길을 가르쳐 줄 것이다.

결핵이 심각해져서 45세로 숨을 거드면서 소로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제야 멋진 항해가 시작되는군"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하버드를 나와 엘리트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이를 거부하고 저항한 소로의 위대한 평범함을 나는 본다. 나는 그에게 "인생은 짧다. 그러나 예술은 길다"는 격언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람은 그 가진 소유에 의해서 평가받기 보다, 그가 가진 위대한 생각과 실천에 의해서 평가받는다. 탈무드에도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돼지는 그 몸무게로 평가받고, 인간은 그가 가진 교육의 정도로 평가받는다.”

요즘 우리는 거대하지만 혼탁한 세상의 탁류에 휩쓸려 가고 있다. 죽은 고기처럼 배를 하늘로 향하고 그냥 쓸려 내려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른다.

작금의 한국사회를 보라. 사회 경제적 양극화와 불균형으로 사회적 갈등을 더욱 증폭되고 있다.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고 선도하는 지도자는 있으나 사실상 부재중인 것 같다. 어느 누구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기대조차도 이제는 하기 힘들어졌다. 희망과 절망이 매일 매일 공존하면서 돌아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에서 ‘우울함과 무력감’을 갖기 쉽다.

모순일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대안부재의 시대] 에는 가까운 도시의 중심부로 가기보다는 도리어 숲속의 길에서 지혜를 찾아야 한다. 숲속으로 가는 길은 우리의 내면으로 향하는 길을 알려줄 것이며, 경쟁과열로 더워진 우리의 심신을 회복하고 힘을 얻는 것이라고 믿는다. 당장 숲으로 가서 [월든]을 읽으라.

무소유의 삶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최소의 것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무소유의 삶을 살지는 못한다. 나도 무소유의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다만 과소유를 하고자 하는 마음만 내려 놓아도 소로가 추구했던 '자연스러운 삶'에 가까워지리라고 믿는다.

언젠가 기회가 되어, 미국의 보스턴에 가면 꼭 월든 숲과 1945년 발견된 소로의 오두막집도 방문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우리의 마음에 [월든 숲의 오두막집]을 지어보자.
그게 단 2년 2개월일지라도......단순하게 살기로 작정하자!

지금도 나의 책상머리에는 [월든]이 있다.

<여기는 월든 호수 “이 호수는 그 자신이나 창조자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기쁨과 행복의 샘물이다.” 소로의 고백이 들리는 듯 하다.>
1부를 마친다.


소로우, 월든, 그리고 봄(Spring) 2부

"나는 1847년 9월 6일, 마침내 월든을 떠났다"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의 '봄'이라는 부분의 마지막 줄은 이렇게 끝난다.
물론 이 구절이 마지막 구절은 아니다. [맺음말]에 마지막 구절도 소개할 것이다.

그는 월든 숲에서 보낸 하루 하루를 [월든]이라는 이름으로 불후의 명작을 남긴다. 월든은 정말 놀라운 역작이다. 이 두꺼운 책을 곁에 두고 읽었다는 '법정'스님이 생각난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둔 [월든]을 잠시 소리내어서 읽었다고 한다. 그 정도의 독서습관은 가지고 있어야, [월든]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름대로 독서에 몰입하는 사람중에 하나지만, 아직도 법정 스님만한 열정은 미치지 못한다. 그래도 [월든]이라는 것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나 자신도 독서의 폭이 넓어지고 이해도 역시 깊어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월든의 [독서와 소리]라는 부분을 보면,

"착실히 책을 읽는 것, 곧 좋은 책을 바른 정신으로 읽는 것은
고귀한 수련이며, 요즘의 풍습이 존중하는 어떤 수련보다도
독자들에게 엄격한 노력을 강요한다"

중간 중간 나의 라이브러리(호독자의 서재)에 꽂혀 있는 [월든]을 꺼내어 본다.
요즘처럼 시간이 남는 시절에는 얇은 책보다는 두꺼운 책이 좋다. 물론 가장 두꺼운 책은 성경과 탈무드이다. 두꺼운 책이라고 하여도 결국 '한 권의 책'이다. '책'이라는 것은 에머슨의 말대로 일종의 말과 같다. 어떤 말은 다루기 쉽고, 어떤 말은 다루기 어렵다. 다만 올라 타고 다니는 것은 바로 사람의 할 일이다.

아침에 잠시 그의 책을 열어보았다.
월든을 여러번 읽어보려고 시도하였지만, 아직도 끝까지 읽지 못했다.
그래서 끝을 쳐다보니 마지막 구절이 너무나도 인상적이다.
그의 책의 첫 구절도 매우 인상적이다.

1편의 '숲의 생활 경제학'을 보면
"이 글을 쓸 때, 아니 이 글의 많은 부분을 쓰고 있을 즈음 나는 이웃들로부터 1마일쯤 떨어진 숲 속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었다. 메사추세츠 주 콩코드 월든 호숫가에 직접 오두막을 지어 보금자리로 삼고 하루하루 두 손으로 일하여 양식을 얻으면서 살았다. 나는 2년 2개월 동안 그렇게 지냈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문명사회로 돌아와 살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이코노미에서 에콜로지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자신의 저술을 '숲의 생활 경제학'에 관하여 쓴다.
숲속 생활에 무슨 '경제학'이 필요할까?
그가 말하는 경제학은 '통상의 경제학'이 아닐 것이다.
사람이라는게 어찌보면 '경제적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자신도 경제적 동물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지만
그 한계를 벗어나려고 하는 초월적 의지를 표현한게 아니라, 도리어 무엇을 해도 별도의 경제적 근거가 보장되지 않으면 월든속에 살아가는 현실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그는 이코노미에서 에콜로지로의 관념이 아닌 실천적 삶에 대한 노력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야생과 문명의 경계를 살았다.

그래서 소로는 '생태주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이 된다.

그의 책은 '봄'으로 끝난다.

춥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메인 숲의 월든호수를 얼려 버린다.
겨울이 되면 그래서 그 위를 사람들이 충분히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두꺼운 얼음이 언다. 소로는 이 얼어붙은 호수도 깊이 있게 관찰을 한다.

그리고 봄이 온다.
"봄이 되면 태양의 감화를 받아 대지가 따뜻해질 뿐만 아니라,
태양열이 30센티미터 이상의 얼음을 통과하여 옅은 물밑까지 반사한다.
그 때문에 수온이 높아져서 얼움은 직접 위에서부터 녹는 동시에
안쪽에서도 녹기 때문에 울퉁불퉁해진다.
그 내부에 포함된 기포가 위아래로 퍼져나간 결과,
얼음은 마치 벌집 같은 모양이 되고 마침내 봄비가 한번 내리고 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보 버린다."

그가 이 숲에 오게 된 목적도 바로 '봄' 때문이다.
"내가 이 숲 속 생활에 이끌린 이유 중 하나는,
봄이 찾아오는 것을 여유있게 볼 기회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라고 하면서,
소로는 봄소식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또다른 귀한 대목도 발견한다.
봄의 상징성을 말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인류의 재출발을 촉구하고 싶다"

새싹이 돋아나고,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는 새봄은 젊은이들의 양지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을 '청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도 '사무엘 울만' 랍비가 말한 대로 '봄으로 살고, 봄으로 남고 싶다.' 푸르른 봄으로만 남고 싶다는 것은 청춘의 소중함과 청춘이 가지는 엄청난 특권과 가치 때문이다.

[월든]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활력을 주고, 힘을 증폭시키는 최고의 인문학서이다. 그의 책의 시작도 범상치 않지만, 그의 책의 맺음도 범상치 않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나는 이상하게도 책의 첫머리와 끝머리를 먼저 읽는 유형의 사람이다. 몸통은 스킵하듯이 읽는 습관도 여전하다. 그래서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너무 깊어지고 머리 아프게 책을 읽는 것은 도리어 독서의 독이 된다. 다만 인상적이고 내 눈을 빛나게 만드는 장면과 지점에서 나는 사색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 책의 마무리는 정말 압권이다. 그 마무리로 나의 글도 마무리한다.

"우리의 눈을 속이는 빛은 우리에게 어둠과도 같다.
우리가 눈을 떠야만 비로소 새벽이 찾아올 것이다.
새로운 새벽이 찾아오려 하고 있다.
태양은 새벽의 샛별에 지나지 않는다."

살면서 소로우를 잊을지라도 [월든]을 꼭 만나라.



* 참고로, 소로의 다른 책들도 모조리 읽어본다.
* 소로에게서 살아가는 지혜를 얻어보자.



한겨레에서 나온 [소로우의 강]
갈라파고스에서 나온 [소로의 일기] , [소로의 야생화 일기]
굿모닝북스에서 나온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열림원의 김석희가 번역한 [월든 특별판] 월든 호수 풍경사진 66점이 들어감
에이지 출판사 [고독의 즐거움 ]



* 이 글은 여러 필자들이나 작가의 글들이 어느 정도 인용되었음을 밝힌다.
* 주요 사진들은 Google에서 발췌했음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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