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서양의 지혜와 지혜인들

상선약수,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노자의 도덕경 명상하기

by 코리안랍비 2022. 10. 24.
728x90
반응형
SMALL
  • 구글출처 이미지 - 노자의 도덕경에서 잘 사는 법을 배우다.



노자의 [도덕경]을 통해서 본 잘 사는 법에 대하여 <1부>

저와 당신은 잘 살고 있습니까?
사니까 사는 것이라고 대답할지 모르지만,
이 질문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라고 답할 수 있는
현대인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 잘 산다는 것]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인문학적인 질문이면서, 우리의 생존과 생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의 세계관을 보면 잘 산다는 것은 현대적인 성취나 성공을 이룬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적인 성취라는 것은 직업적 성공, 사회적 지위, 높은 임금, 경제적 부, 부동산의 크기 등을 추구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 지표(index)가 정신적인 행복(wellness, happiness)로 이어진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에릭 프롬의 [소유나 존재냐]를 보면, 인간의 행복이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존재의 발견과 목적지향에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대 인간은 행복추구보다도 물질추구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신의 발달속도가 물질의 발달속도를 못따라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인의 괴리감이고 갈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현대는 빈부격차가 크게 벌어지고는 있지만, 물질적인 면에서는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현대사회는 각박해지고, 불행해지고, 서로 불신하며 불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삶의 질은 높아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입니까? 바로 현대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여전히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살아도 어떻게 잘 살 것인가?"] 라는 인문학적 비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문학적 비전]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마치 배의 나침판이나 닻과 같습니다. 잘 사는 삶이라는 것은 삶의 질(QOL)이 높다는 것인데 현대적이고 현상적인 가치에만 매몰되어진 현대인들의 삶은 [비참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대사회는 경쟁이 과열된 사회이며, 타인과 타자의 삶에 대한 관심에서 멀어진 무관심한 사회라는 것입니다. 외적인 성취를 목적으로 삶는 사회는 참된 [나]를 찾고 만나는 기회를 배제합니다.

우리는 실존주의 문학인 프란시스 카프카의 [변신]을 통해서 주인공인 그레고르의 삶을 통해 가장 극단적으로 그려진 현대인의 삶의 단면을 봅니다. 유태인이면서 천재였던 카프카의 예리한 통찰력이 빚어낸 이 작품은 짧지만 선명한 메세지를 전달합니다.

가족 생계를 책임지던 주인공은 스트레스와 피곤한 회사 생활을 당장이라도 때려치고 싶어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가 일이 없어지고, 회사에서 벗어나면서 그는 분리된 개체로서 근원적인 고독감에 직면해서 살아갑니다. 커다랗고 흉측한 벌레로 변신한 그는 주인공은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외면당합니다.
이는 현대인의 소외된 삶을 보여줍니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자아확장노력]을 하면서 지냅니다.
친구들을 만나고, 동호회를 결성하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심지어 도박을 하고, 종교시설을 찾기도 하는 것은 상당부분 [자아확장노력]입니다.
이렇게 지내도 인간의 욕망은 플라톤이 말한데로 [밑빠진 독]과 같습니다.
그러한 삶에 집착하면 할수록 현실의 삶은 공허하고 텅텅 비어가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쁘게 살면서 자신의 자아의 공허감을 메꾸려고 하고, 또한 많은 빚을 지고 빚을 갚느라 바쁘게 지냅니다.

매일 아침 뉴스들을 보면 어떠신가요?
여러가지 사건 사고들을 보면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과연 좋은가?" 에 대한 고민도 생겨납니다.
문제많은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잘 살아가야 하는가?" 에 대한 고민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현대 사회의 특징은 3가지로 잡아 볼 수 있습니다.
위기사회 /분노사회 / 경쟁사회로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위기사회라는 것은 현대인의 근원적인 불안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인터넷이나 매체를 통해서 세계의 일어나는 소식을 접합니다.
전쟁이나 재난을 보기도 하고, 또한 우리 삶의 주변에서도 예기치 않은 위험과 위기의 순간들을 만납니다.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우리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안전의 가치가 가장 중요한 가치중에 하나입니다.

두번째로 우리 사회는 분노사회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헝그리 사회에서 앵그리 사회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여러가지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분노는 인간관계를 깨뜨리는 가장 위험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노의 주된 요인은 스트레스입니다. 적절한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건강에 좋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나 지속적 스트레스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황폐화하고, 곧 분노를 표출하게 만듭니다.

개인이 화가 집단이나 사회의 화로 이어져 현대사회는 분노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치열한 경쟁사회라는 것입니다. 메가 컴피티션의 사회가 왔습니다.
한국사회는 마치 정글과 같아서 고도의 경쟁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그 원인중에 하나가 인공지능의 발달이나 기술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사람들의 일자리가 부족해지고, 그리고 부족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과도하게 경쟁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경제적 상황이 저성장 또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서면서 경쟁하지 않고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서바이벌 게임]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지금 [투사]가 되고 있습니다. 즉 전쟁을 치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현대인은 [욕망의 노예]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많은 아이템들을 구비하고, 더 많은 것을 사고, 소유를 해야 한다는 것에 강박적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현대인들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인]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교하는 인간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사회가 불안하고 바빠지고 그러면서 서로를 비교하는 일이 많이 발생합니다. 또한 지식중심의 사회가 되면서 [지식노동자]들의 등장이 곧 사람들의 소외를 늘려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대인들의 잘 살아가려는 노력이 권력, 부, 명예, 죽음의 노예로 만드는 것입니다. 곧 자아확장노력이나 자아확장투쟁이 보편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 노자의 유유자적을 통해서 잘 사는 방법을 생각해보다.


그렇다면 노자는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노자의 사상은 사실 3가지를 잘 기억하면 됩니다.
1. 다투지 않는 삶
2. 있는 그대로 사는 삶
3. 삶으로부터의 자유함

노자의 사상에서는 현대사회와는 반대의 사상을 볼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사고방식과 대비되는 것이지만,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가?"를 고민할 때
반대의 역발상이나 역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부에서는 [다투지 않는 삶] 까지만 밝힙니다.

다투지 않는 삶이란? 현대인들이 경쟁과 스트레스를 당연시 여기면서 불행의 크기를 키우는 삶을 살아가는 경향을 뒤집은 말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은 [물]에 대한 수준을 도의 반열까지 올립니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상선약수)
물의 훌륭한 점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더불어 다투지 않으며 뭇사람이 싫어하는 바에 거처함에 있다. 그러므로 물은 도에 가깝다. 성인은 지극한 경계에 자리하며, 마음은 깊은 연못처럼 매우 화평하며, 함께 있을 경우에는 따뜻하게 감싸주며, 말을 하면 그대로 믿게끔 한다. 정치를 하면 누구라도 편안하게 다스리며, 일을 할 경우에는 매우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며, 세상에 나아갈 경우 시절의 변화를 그대로 탄다. 성인은 그저 남과 다투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이 대목을 보면 그저 감탄하고 감탄하고 감탄합니다.
물과 도를 대비하여 말하는 노자의 탁월한 어록이 아닌가요?

노자는 물의 속성이 도(TAO)에 가깝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은 높은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고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서 겸손합니다.
물은 다른 존재들을 이롭게 합니다.
그리고 다른 것들을 간섭하거나 지배하지 않습니다.

이는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라는 메세지입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솔직함을 보여주고, 나를 꾸미려고 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믿음을 말합니다.

자신의 삶을 물과 대비하여보려면 우리는 [성찰의 힘] [반성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노자는 자신의 저서 [도덕경]을 통해서 "생각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생각의 힘으로 생각하는 삶을 살아라"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칫 노자의 사상이 [현실도피적]이라고 부를 수 있으나,
그의 [도덕경]을 제대로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도덕경 1장에 나온 것을 보면, "우리 모두는 주어진 삶의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삶의 위치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곧 플라톤이 말한 [국가론에서 나온 정의 JUSTICE]와 유사합니다.

"정의란 자신의 맡은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 국가론

현대인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오르려고 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부와 재산을 얻으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행위는 나쁜 것이 아니라 정당하면 그것은 반드시 추구해야 할 일입니다. 부정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이익을 추구하면 그것은 사리사욕입니다. 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것을 경계삼아야 잘 사는 법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다투지 않는 삶을 살려고 한다면 우리는 작고 소박한 인간적인 삶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미니멀리즘이나 자연주의적 삶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것에 대한 욕망이나 과도한 추구를 줄이고 절제할 수 있습니다.

작고 소박한 삶이란 다른 사람들보다 무엇인가를 더 얻고, 더 가지려고 하는 갈등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작고 소박한 삶이란 물처럼 마음이 흘러서 마음이 늘 평안하고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맛있게 잘 먹고,
어떤 사람을 만나도 즐겁게 대화하고,
어떤 옷을 입어도 좋고, 어떤 집에 살아도 아름답고 편안합니다.
작고 소박하다는 것은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되니 이런 사람들은
자신도 비교하지 않고 이웃과도 비교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도는 이롭기만 하고 해를 주지 않으며, 성인의 도는 남을 위하기만 하고 다투지를 않는다. 성인은 자신을 위한 쌓아 놓지를 않나니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하는데도 도리어 자신에게 더욱 있게 도며, 모두 다른 사람에게 주는데도 도리어 자신에게 더욱 많게 된다." - 노자의 도덕경 81장

노자는 바로 비교하고 계산하는 교언영색하는 이성과 지성의 함정과 위험성을
그의 [도덕경]에서 경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도를 갖출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남을 이롭게 하고, 해롭게 하지 말라는 메세지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남을 해롭게 하는 삶은 결코 잘 사는 법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잘사는 법은 곧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면서 곧 자신도 이롭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삶은 사실 위대한 예술입니다. 저는 이를 [인생예술]이라고 부릅니다.

노자는 또한 "큰 나라 다스리기를 작은 물고기 조리하듯이 하라" 라고 합니다.

이 말은 주어진 삶을 크게 보지 말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바라보고 기다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느린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특징이 바로 [조급증]입니다. 무엇인가 빨리 크게 이루려고 하는 욕망입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언어습관에 [조급함]이 너무나 많이 베어 있습니다.

그 조급함으로 인하여 많은 문제와 폐단이 생깁니다.
큰 일도 작게 나누어서 생각하는 법을 우리는 키워야 합니다.
지나친 욕망(큰 일)을 나누어서 소박한 욕망(작은 물고기)으로 분산한다면
우리의 삶은 욕망의 노예가 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계명대 이현지 교수의 주장)

앞서 인생은 예술이고 삶도 예술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조급하거나 다급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상선약수의 삶 - 노자사상의 핵심이지만,
사실 그의 사상을 우리 삶의 모토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실 흘러와서 흘러가는 존재입니다.그렇다면 잘 흘러가야 합니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돌아가고,
다툴일이 생기면 피하고,
마음에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남을 이롭게 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누구도 싫어하지 않으면 외면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배우려 하고, 벗이 되려고 하며, 선(착함과 인정)을 도모하고
인(어질고 사랑스러움)을 숭상합니다.

[상선약수]의 삶은 곧 [다투지 않는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소유의 많고 적음을 자랑하려 하지 않습니다.
남을 이롭게 하고 해롭게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해치지도 않고 더불어 잘 지내는 것입니다.
바로 자신의 인격과 덕으로서 스스로의 평안을 지키는 것에
스스로를 갈고 닦는 수신이 무척 중요합니다.

결국 도라는 것은 바로 올바른 [덕 ARETE]을 갖는 것이 아닐까요?
잘 산다는 것은 우선 다투지 않는 삶 - 서로 평화하는 삶에서 먼저 비롯됩니다.
세계적 계몽가 [나폴레온 힐]의 말대로 마음의 평화로 부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상선약수 하십시오 ~^^

제 2부는 - 있는 그대로의 삶에 대하여 논합니다.
제 3부는 - 삶으로부터의 자유함에 대하여 논합니다.

기대하십시오 !!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