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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과 고전 이야기

명길묻64,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생태학적 읽기

by 코리안랍비 2022.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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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미래를 보는 눈을 잃고,
현실을 앞지른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인간,
그 종착역은 자연의 파괴다" -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생명에 대한 외경심)

얼마전 신문기사를 보니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지구적 확산(펜데믹)이
지구환경을 청정하게 바꾸고 있다는 기사를 유심히 보았습니다.
가장 최악의 대기환경을 가진 중국이 푸른색 하늘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이태리는 강물에 돌고래가 돌아왔다고 합니다.
미국의 대도시에도 하늘이 푸르고, 상당히 대기가 건강해졌다고 합니다.



지구상에서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줄이려고 만들었던
기후협약은 사실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지구상의 생태계를 청정하게 바꾸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거대 시스템과 발전의 흐름을 다시 8,90년대의 모습으로 돌이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연의 역습입니다.
자연은 결코 패자가 아니며
인간은 결코 승자가 아닙니다.

전세계 경제가 30% 이상 뒤로 후진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하고, 인류가 보여준 교만하고 추악한 환경파괴나 인간성 상실의 모습에 대한 반성과 회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질주의와 자본주의로 병든 산업사회가 새로이 갱신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도 그동안 문명의 이기로 인해서 생긴 인류의 죄악에 대해서 다시 돌이키는 대각성이나 회개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몇년전 같이 인문학 포럼을 하던 자연주의 철학 교수가 말했습니다.
"지구가 한번 용트림을 하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미세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의 삶의 근본과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다. 생명의 소중함, 건강의 소중함, 인간성의 중요성을 회복시키고 있고, 물질주의와 타락한 천민 자본주의의 병폐를 고치고 있습니다.
다시 루소가 [에밀]이란 저서에서 말한데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이 엄청난 명제가 제 속에 크게 들어왔습니다.

다시 서재에서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최근 법정 스님의 책들을 다시 끄집어서 보았는데,
법정 스님은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맡에 소로의 책을 두고 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로가 잠시 머물렀던 [월든 호숫가의 오두막집]도 방문했다고 합니다. 물론 함석헌 선생님도 소로의 정신적 제자를 자처하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소로의 영향력은 대단하고 놀라운 것입니다.

  • 다음 출처 이미지 - 생태학적 그림을 자주 그리게 하자



그런데 우리가 놓친 한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이분을 한나 아렌트와 견줄 만큼 뛰어난 여성학자로 보고 싶습니다. [월든]을 읽으면서 여성 환경론자이면서 페미니스트였던 [레이첼 카슨]이 떠올랐습니다.

레이첼 카슨은 초월주의자인 소로의 영향을 가장 강력하게 받은 여성학자중에 하나입니다. 그녀는 원래 미국 피츠버그 대학에서 영문학을 하다가 심각한 환경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생물학으로 전과하여 나중 생물학적으로 가장 뛰어난 여성학자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처녀시절에 영문학서로 소로의 [월든]을 읽고 반전의 인생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녀의 책을 검색하다가 [침묵의 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침 서재에는 [침묵의 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보문고에 가서 레이첼 카슨의 책을 알아보았습니다. 그곳에 그녀의 책이 있었습니다. [센스 오브 원더스]와 [침묵의 봄]이 같이 합본호로 되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사서 읽는데 마치 여성 선각자를 보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레이첼 카슨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남성적인 책들 위주로 읽었던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레이첼 카슨은 본인의 [침묵의 봄]이라는 책을 보면
그녀가 양성평등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환경보전과 보호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그녀는 1970년도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을 만든 여성입니다. 그녀의 노력 덕분에 이 [지구의 날]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침묵의 봄>의 출간후 레이첼 카슨은 미국의 [생태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책이 일부를 소개합니다.

"이 세계는 분명히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이 세계에는 인간들만 사는 것이 아니다.
식물과 동물들도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이 목소리를 크지 않아도
싸움은 도처에서 벌어져 이윽고 언젠가는
승리가 그들 위에 빛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이 지상의 세계와 화해할 때 ,
광기에서 깨어난 건전한 정신이 빛날 것이다."

지구 생명의 역사를 보면,
자연이 환경을 변화시키는 작용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이후 인간은 아주 짦은 시간에
무서운 힘을 손아귀에 쥐고 자연을 변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구 생명의 역사는 살아있는 생명들과 그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그 상호작용의 역사를 인류는 파괴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역사가 시작되고 나서,
인간은 누구나 모두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된 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무서운 화학물질의 속박밑에 놓여 있습니다. 레이첼 카슨 박사는 인간에게 있어서 살충제의 개발과 생산, 그리고 보급이 인류와 지구환경에 가장 큰 악영향을 미쳤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아프리카의 성자라고 불리운 슈바이처 박사의 말을 인용합니다.
"인간 자신이 만들어 낸 악마가 어느 틈엔가 손을 쓸 수 없는 것으로 변했다"

레이첼 카슨의 책을 읽다보면 사실 그리 재미가 없습니다.
상당부분 과학적인 지식이나 생물학적인 지식을 다루는 글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마이크로적으로 읽으려고 하면 정말 이 책이 말하는 진가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녀의 책은 매크로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숲을 보고 나무를 보는 독서방법이 요구됩니다.


그녀의 스케일은 정말 대단합니다.
소로가 [월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월든]이라는 숲과 호수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월든]이라는 숲이나 호수만 말했다면 그저 생태보고서에 불과한 책이 될 것 입니다. 그런데 그 책의 위대성 greatness는 바로 그의 스케일이 남달랐다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좁은 식견으로 세상을 봅니다. 하지만 소로는 그 좁은 장소에서도 세계를 본 천리안의 식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천안 아산 지역을 무대로 사는 사람이지만,
이 좁은 지역에서 주변 환경을 보면 너무나 보잘것 없어 보이고
형편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소로의 눈이나 소로의 렌즈를 가지고 본다면
이 지역에서 무한한 진리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소로의 렌즈가 필요합니다.
[월든 숲과 호수]에는 소로 말고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로 한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저 자신들이 주어진 환경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좁은 식견으로 살았습니다. 소로는 하버드대학을 나와서 월든 숲에서 자신만의 생을 꾸려가면서 인생의 깊이와 대자연이 주는 놀라운 서사시를 몸으로 익혔습니다. 그는 책속의 세계에 파묻힌 모범생이 아니라 , 책을 넘어서 인류와 지구환경을 생각한 진정한 초월주의자의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위대한 인간]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다시 레이첼 카슨으로 갑니다.
그녀의 책을 [숲]이다 라고 생각하고 보면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로의 렌즈]를 가지고 보면,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갖는
진정한 매력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레이첼 카슨은 바로 [소로의 렌즈]를 가지고 글을 썼습니다.
그리하여 미국을 움직이고 우리 인류가 저지런 악행과 잘못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는 책은 진정 [인문학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현대의 고전에 들어갑니다.

그녀는 제일 먼저 인류의 내일을 걱정하며
'내일의 우화'라는 것으로 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인내해야 할 의무'로서 지구인이 파괴한 것이
다시 돌아오는데 수세대가 걸릴 것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죽음의 영약 살충제'에 대해서 기술하면서
곤충 2-3종을 죽이려고 인간이 만든 영악한 약이 살충제라고 말합니다.
그런 곤충들이 침묵을 하지만, 결국 그 무서운 침묵이 도리어 인간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땅위 물과 땅밑 바다]에 대해서 기술하면서
자연자원중 제일 중요한 것이 물인데, 이 물이 수많은 화학물질과 오염물질로 인해서 더럽혀진다면 결국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물은 생명의 연결과 따로 떨어져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의 세계를 말하다가, 그녀는 [흙의 세계]를 말합니다.
지금 우리는 흙을 밟아볼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산에 가거나 밭에 가야 간신히 겨우 흙을 밟아봅니다.
우리가 다니는 상당한 곳은 모두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간다는 본질성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 흙에다가도 수많은 [살충제]들을 살포하여 흙마져도 위험에 처했다고 말합니다. 그녀가 살던 피츠버그의 흙이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천안 아산이 흙이나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흙에 살충제를 뿌리는 것도 다를바가 없습니다.
지금 인류는 모두가 이런 악행을 저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지구의 녹색 겉옷]으로 주제를 옮겨 갑니다.
물, 흙, 그리고 세계를 덮고 있는 지구의 녹색 식물이 지구 위의 모든 동물과 생명을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말합니다. "식물이 없으면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식물이 그저 쓸모없다는 생각을 너무나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화학약품을 가지고 인류는 장난질을 친다는 것입니다.
화학약품은 인류가 만든 최악의 장난감이라고 지적합니다.

결국 [쓸데없는 대파괴]라는 부분에서는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시도가 결국 무참한 파괴의 역사였음을 밝힙니다. 그녀의 책의 여러 쳅터에서 계속 등장하는 것은 [살충제]입니다.

결국 이러한 화학물질이나 독성물질을 사용하여도
인간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경고합니다.

그녀는 그리하여 [새들은 더 노래하지 않고] 라는 쳅터에서는
"새는 돌아오지 않고, 봄만이 오고 있다" 라고 시적으로 말합니다.
그 시는 아일랜드의 [키츠]의 시의 일부입니다.

최근들어서 [제비]를 구경해 본 적이 오래입니다.
심지어 [참새]를 구경하기도 힘들어졌습니다.
새들이 떠난 숲과 산이 많아졌습니다.
꿀벌의 개체수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새가 다시 돌아옵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그녀는 그리하여 인간이 치룰 댓가에 대해서 말합니다.
중국 베이징에 여행을 2번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공기가 좋지 않아서 평생 가지 않기로 다짐을 하였습니다.
중국의 석탄 산업이나 굴뚝 산업이나 교통이 만든 환경오염은 중국의 하늘을 갈색으로 만들었습니다. 거기는 마스크가 없이는 살 수 없는 동네입니다. 화려한 북경 그리고 초라한 대기환경을 보면서 그 도시는 제대로 된 도시가 아니라, '괴물도시'로 변모하고 있었습니다.

레이첼 카슨은 그 책에서 반격을 합니다.
쳅터 15장에서는 [자연은 역습한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쳅터 16장에 가서는 [걷잡을 수 없는 곤충의 저항]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책의 결말부로 가서는 수많은 인류가 직면한 절망과 더불어서 희망을 말합니다. 바로 갈림길입니다. 또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빠른 속도로 달렸지만, 그 길의 끝에는 파멸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보다 오솔길이나 좁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속도로는 한번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좁은 길이나 산길은 우리들의 몸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유일한 기회라고 말합니다.(또 다른 길)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우리들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 결국 우리 인간을 유용하게 해주는 길입니다.

레이첼 카슨의 책을 읽는 내내
생물학자가 아니라, 생태 철학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소로의 눈과 렌즈를 가진 그녀의 위대성을 보았습니다.
그녀가 보여준 생명에 대한 외경심은 그녀의 사상의 본질입니다.


독서를 하는 것이 꼭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독서를 하는 것이 취미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어부들이 책을 읽으면 그것은 취미입니다.
그런데 학생들이나 학자들이 책을 읽는 것은 본업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취미로 읽습니까?
아니면 본업으로 읽습니까?
취미로 책을 읽겠다는 사람들은
자기 만족에만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소로의 눈이나 레이첼 카슨의 눈으로
책을 읽는다면 그것은 취미를 넘어서
본업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책들로 인하여
변화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책속에 길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실 소로나 법정 스님의 글에서 나온 생각을
필자가 끄적여 본 것입니다.

세상을 바꾼 인물들, 세상을 바꾼 책들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너무나 좋은 자원이 되고, 자극이 되고, 자생력을 갖추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나 저나 코로나 19의 역습이 무섭습니다.
반면에 인간의 대응은 너무나 역부족입니다.
오래 참고 인내하면서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를 소망합니다.

이 지구라는 별은 온우주에서
아마도 유일한 생명이 숨쉬는 최고의 자연공간입니다.

  • 나는 자연인이다. - 출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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