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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여행 이야기

칸트의 산책길 / 루소의 산책길 2018년 작성 글

by 코리안랍비 2022.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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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길에서 나온다. 사람은 길위에서 자란다.
- 산책의 예찬론자들

가을은 산책의 계절이다. 

독서의 계절이 아닌 것 같다. 

독서의 계절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독서를 가장 하지 않는 계절이다. 

그렇다고 하여도 아이러니가 아니다. 

밖에만 나가면 가을의 바람이 우리를 부른다. 

그리고 산책길로 안내한다. 

 


현대를 정하는 가장 큰 아이콘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동차이다.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걷기를 외면한다.
물론 도심지에서는 일정거리는 걸어다녀야 하지만
조금만 거리가 멀어져도 차량을 이용하여 움직인다.
자동차는 비싸지만 편리하고 빠르다.

시간이 돈이며, 이동의 속도가 곧 돈과 직결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교통수단이 없이는 속수무책이 된다.
심지어 자동차가 집보다 더 중요한 물건으로 대두된다.
집은 그저 자는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지만,
자동차는 기동력을 발휘하여, 이동하면서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신속하게 처리한다.
자동차가 사무실인 영업자들도 부지기수이다.

이런 자동차가 많고 많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아날로그의 역습이 있다.그것은 바로 [산책]이다.
현대인들에게는 걷기가 그저 다이어트나 운동효과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많은 정신적 문제, 경제적 문제,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이 걷기와 산책이 가지는 위대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산책은 등산과 다르다. 등산은 산을 정하여, 등산장비를 잘 챙기고, 정상을 돌고 도는 일이다.
일단 좋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것에서 보면 산책과 비슷하다. 하지만 산책은 등산과 엄연히 다르다. 산책은 산에 책을 들고 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한 바람쐬기도 아니다.



어느 유명한 시인은 [사람은 길위에서 자란다] 고 한다.
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하였다.
창의적이고 위대한 생각은 실은 산책에서 나온다.

오랫동안 책상머리에 앉아서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영감(inspiration)이 찾아 오거나,
행운(fortune)이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좋은 생각은 사실 길에서 나온다.
산책은 곧 자아성찰을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자동차를 타면서 산책하는 사람은 없다.
산책은 두발로 걸어야 하는 가벼운 노동이면서,
두뇌를 맑고 투명하게 만드는 알파파의 생성의 정이다.
산책은 꼭 둘이 할 필요도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누려야 한다.

역사에 위인들은 상당수가 산책의 숭배자들이었다.
길에서 자란 사람들이며,
위대한 생각은 길에서 탄생하였다.

오랫동안은 아니지만, 동서양의 고전을 탐미하고,
다양한 위인들을 만나보니
이들의 공통점은 산책과 릴렉스에 있었다.
때로는 고독하지만 그 고독함이 자신을 키워나가는 촉진제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글을 쓰는것도 산책의 일부이다.
나는 그 위인들의 걸었던 길들
산책로들을 생각하면서 같이 걷고 있는 것이다.


대학시절 나를 사로잡고 있는 철학자는 [임마누엘 칸트] 였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젖줄인 네카강에는
'카를 데오드르'라는 브리지가 있다.
이 다리를 관념철학의 아버지인 칸트가
마을길을 산책할 때가 되면 건너던 곳이다.
지금도 독일 사람들은 독일 철학의 금자탑을 쌓은
임마누엘 칸트를 생각하면서 걷는다고 한다.
걸었던 장소가 관광명소가 되었다.

그는 매일 오후 3시 20분이면(혹은 4시라는 기록도 나와 있다.) 산책에 나섰다. 그는 거의 평생을 하이델베르크를 벗어나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그의 산책은 매우 규칙적이었다.
이런 산책을 30년동안 이어져 갔다.
다리 위로 칸트의 모습이 보이면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시계를 맞추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칸트는 한쪽으로 머리를 기울이고 골똘히 생각하면서
산책을 하였는데, 그에게 산책은 연구하는 시간이었다.


칸트는 어린 시절 키가 겨우 156센티미터의 단신에
무척이나 허약체질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매일 5시에 기상하고,
밤 10시면 어김없이 잠들었다.
인류역사상 이렇게 규칙적인 시간을 두고
살아간 유일한 존재가 칸트다.

그는 이토록 치열하고 엄격한 자기 관리로 건강을 지켰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지극히 건강하고, 강인하다.
그가 말년까지 성경에 나오는 모세처럼
눈에 총기를 잃지 않은 것은
순전히 이런 규칙적인 생활 덕분이다.

[리바이어던], [사회계약설]을 쓴
사회학자 홉스도 탁월한 산책자였다.
걷다가 생각이 떠오르면 재빨리 메모하기 위해서 잉크병을 자신의 휴대용 지팡이에 달고 다녔다.
그의 지팡이는 휴대용 메모리 스틱의 원조이다.

무릎이 좋지 않았던 것 같지만 그는 매일 매일 산책하면서
자신이 연구하는 주제나 대상에 몰입하고 고민에 고민을 하며 가장 좋은 해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는 교육학적으로 메타인지를 한 것이다.

아인슈타인도 산책의 예찬론자이다.
아침마다 자신의 연구소 근처 산책로를 맨발로 산책하였다.
산에 가보면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있다.
아인슈타인인 기인답게 산책을 하곤하였다.
그런데 그는 산책하면서 상대성 이론을 길을 걷던 중에
생각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새벽에 일어나 탈무드를 읽다가 산책을 가던 중 상대성 이론의 단초를 발견했다고 한다.
나는 이를 그가 세웠던 히브리대에서 알게 되었다.
히브리대는 아인슈타인 정신이 살아있는 곳이다.


산책하면 [에밀] [참회록] [사회계약설]을 쓴 루소도 빼 놓을 수 없다.

그는 "나는 걸으면서 명상에 잠길 수 있다. 나의 마음은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 그의 유고작도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이었다.

1776년에서 1778년까지 2년에 걸쳐 루소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써나갔다.
그 기간 동안 그가 끊임없이 갈망한 것은 단 하나, 행복이었다.
그는 그 행복을 산책중 자신과의 대화로 되찾을 수 있었다. 10개의 산책에 대한 글이다.
이 책은 두껍지 않지만 최후의 저작이니 꼭
산책하며 읽기를 권한다.

키에르 케고르도 "걸으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니체도 "심오한 영감, 그 모든 것을 길위에서 떠올렸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강진 유배지 오솔길을 걸으면서 목민을 고민했다.
그리고나서 불후의 저서인 [목민심서] 가 나왔다.

율곡 이이 선생도,
"낮에 졸움이 와서 눈거풀이 무거줘지면 일어나 걸어다녀라" 라고 제자들에게 언명했다. 그의 성리학적인 통찰력등의 상당수는 바로 자연산책에서 나왔다고 한다.



2015년 1월 12일 뉴욕타임즈 기사에는,
"산책은 긴장된 신경 근육을 완화시켜 진정 작용을 하게 한다."
몸이 열을 받게 되면 혈액순환이 가속화되어서
대뇌 산소 공급량이 함께 증가한다.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운동이다.

오늘부터 시간을 정하여서 산책을 하는 것은 어떨가?

생각도 길에서 나온다.
그런데 심지어 사랑도 길에서 나온다.
연인들을 보라
길에서 사랑이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산책은 단순히 머리를 식히고,
건강을 촉진하는 쉼과 운동기능만이 아니다.
산책은 좋은 생각을 내리는 것과 같으며,
위대하고 창조적인 발상을 만들어낸다.
참으로 스마트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위대한 시인들도 기록장을 가지고 다니며
산책에 열중했다. 길위에서 만나는
사람 사물 동식물 자연물 숲 공기 물 등이
모두 창작과 영감의 스승이 된다.

사람은 길위에서 자란다.

그래서 그 길을 위인들은 [도 TAO] 라고 부른 것이다.
산책도 오래되면 도의 경지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이런 클라스가 남달랐던 위인들의 삶에
우리도 물들어 가는 것 정말 멋지고 낭만적이지 않은가?


이래도 산책을 안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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