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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여행 이야기

정약용과 양평 두물머리 인문학 기행

by 코리안랍비 2022.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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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양평 두물머리 2021년 9월 기행문



오늘의 글은 내가 살아 숨쉬는 대한민국의 여러 곳을 살펴보고자 하는 심산에서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늘 글을 쓰는 작가이다보니 글재주는 메주이나 나름대로 나의 상상력과 지식력을 발휘하여서 작성하고자 하였습니다.

가끔씩 신문에 지역이나 지리를 소개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보면 일단 가위로 오려서 모읍니다. 그리고 줄을 몇번이고 치고 읽곤 합니다. 몇 번 읽으면 마음에 '저곳에 가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마음이 발동하면 반드시 가보야 한다고 마음을 먹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그곳에 가보게 됩니다.

어느 아는 사람과 통화하다가 그곳에서 자신이 상담실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두물머리'에 들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이야기는 '두물머리'로 두서없이 시작됩니다서울이나 한양을 먼저 잡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한강의 제 1호 유적지는 단연 두물머리'입니다.

살면서 자주 가지는 못해도 못가서 안달이 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양평 두물머리입니다. 두물머리는 '양수리'의 옛 우리 말 지명입니다. 두 물이 합쳐지는 곳, 그리고 다시 나누어 지는 곳.... 천하의 명당자리중에 하나에 정약용 선생의 가문이 있었습니다.

 



저 멀리 금강산에서 흘러온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에서 흘려온 물이 굽이 굽이 흘러서 합쳐지는 곳이다 보니 그 기세가 장엄하고 웅장합니다.

두물머리는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과 남양주시 사이에 있는 곳입니다. 조선 전기의 문신 서거정은 남양주의 운길산 수종사에서 멀리 한강의 두물머리를 내다보면서 '동방의 절 중에서 제일 가는 전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에 동의하고는 쉽지 않으나 중국에 가보면 천하의 절경에 세워진 절이나 사찰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렇지만 서거정의 눈에는 '수종사'가 최고의 절이었나 봅니다.

거센 물살이 흐르면서 두물머리를 돌아서 흘러가는 한강수를 보고 있노라면 온갖 시름은 잊고 시심이 생겨나며, 그러면서 미래의 창조적 에너지를 갖게 된다는 곳이어서 아마도 이곳이 명당중에 명당으로 손꼽히는가 봅니다.

수종사는 조선 중.후기의 차를 즐기는 '차 마니아'들의 거점이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3대 다도인을 꼽자면 다산 정양용, 초의 선사, 그리고 추사 김정희 선생을 꼽습니다. 이들은 서로 '차로 우의를 다지며, 학문을 논하고, 나라의 대소사를 생각했던 인물들'입니다.

평소 나는 이 분들의 글과 책이라면 수시로 모읍니다.
새책으로 모으기도 하지만 오래된 서적에서도 이분들의 스토리들이나 사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모으다보면 어느새 수십권으로 늘어가서 가끔씩은 강의를 해도 될 수준까지 오른 것 같습니다.

정약용 선생은 조선후기의 천재이면서 지금도 한국인들에게는 최고의 인문학자요 슈퍼스타입니다. 그는 평소에 '풍수지리설'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유학자로서 그는 주자의 학풍을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도교에서 말하는 풍수설은 멀리하고 도리어 주자가 말하는 바, "산과 물이 거듭 둘러싸서 좋은 기상을 이룬 곳이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따랐으나, 어찌보면 풍수설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지금도 좋은 자리 - 명당이나 명산지리를 찾습니다. 그래서 좋은 묘자리나 날자리를 찾습니다. 하지만 명당자리의 중요한 특징은 바로 물자가 풍부하고, 물산이 풍부하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야 합니다. 그곳이 충남으로 말하면 '내포'입니다. 지금의 충남도청이 자리잡고 있는 내포는 사람들이 살기에 아주 좋은 최적의 장소중에 하나입니다. 대학시절에 이중환의 [택리지]를 읽으면서 기독교학생이지만 그래도 '좋은 명당'에 자리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웁니다.

장사는 '목'이 좋아야 한다고 합니다. 좋은 자리에 있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와도 장사가 잘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장사는 확실이 목이 80%입니다. 그런데 좋은 자리는 장사만이 아니라 앞으로 가문을 크게 일으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하고 대단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약용의 스티그마(발자취)

정약용은 팔당호수의 마재마을 - 또는 마현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곳은 현재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입니다. 정약용 선생은 정조대왕의 총애를 받았지만 나중에 사화에 휘말려 '강진 유배'를 당합니다. 무려 그 세월이 18년간이었으니 지긋 지긋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여유당전서]를 만듭니다. '목민심서'를 썼다는 것만 보아도 변화의 능력자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조선시대 이건필의 [두강승유도]나 겸재 정선의 [독백탄]에도 그려진 두물머리는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합니다. 그 두물머리의 흐르는 물가에는 반드시 아름다운 꽃들이 필어납니다. 그 꽃들을 구경하고 싶어서 만든 것이 바로 정원입니다. 한국의 [정원문화]를 보면 반드시 주변의 굽이굽이 흐르는 강가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런데 예전에 잠시 들린 경기도 지방정원 1호인 [세미원]을 가 본 기억이 납니다. 거기에는 두물머리에서 세미원 후문까지 산책하듯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있고, 물과 물을 건너도록 한 [배다리]가 인상적입니다. 배다리라 하면 바로 정약용 선생이 정조 대왕을 위하여 놓았던 나무로 만든 다리가 기억이 납니다.

그 배다리의 정식 이름은 [열수주교]라고 합니다.
세미원은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물의 정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의 정원]에는 온갖 수생식물들이 자랍니다. 한국 정원의 아름다운 양식도 볼 수 있고, 그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거기에는 [장독대 분수]가 있습니다.

또하나 가 볼만한 곳이 [능내역 폐역사]입니다. 그곳에 경의중앙선이 생기면서 능내역은 없어졌지만 폐역으로서의 추억의 장소로 너무나 좋습니다. 그 폐역 주변에는 자전거 길이 조성되어 있어서 자전거 매니아들이나 동호인들에게는 '환상의 자전거 드라이브 길'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정약용으로 유명한 남양주



여러 사람들이 양주중에 최고의 양주는 하고 질문을 하면, 나는 우스게 소리로 '남양주'라고 합니다. 남양주에는 정약용 선생의 스티그마 - 흔적이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곳을 방문을 하였을 때 처음의 감격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전라도 강진에서도 또다시 감격을 만났습니다.

그곳에서 정약용 선생님이 없었다면 남양주는 그저 잊혀진 곳으로 전락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물머리'라는 대자연이 있었기에 여전히 이곳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곳입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서 휘돌아가는 멋진 곳 -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 조만간에 다시 가보렵니다.

인문기행을 가끔씩 가는 사람중에 하나로서 충분히 공부를 하고 가렵니다. 인문기행이라는 것은 그저 관광이 아니라 여행입니다. 그것도 땅의 인문학을 배우러 가는 여행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유학할 때 이스라엘 관련 책자를 무려 200여권이나 읽었습니다. 그 책들을 보면서 어느새 '이스라엘과 나가 서로 하나가 되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는 [몰아일체]의 감동으로 읽어야 합니다. 인문학서는 우리내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터전의 이야기고, 살아있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그곳에는 '소원나무'라는 수령 400년된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가 너무 웅장하고 그 그늘이 대단하여 그 아래서 잠시 쉬고 가면 좋습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잠시 쉬어도 좋습니다.



북한강- 남한강 - 운길산 수종사 - 두물머리 - 능내역 폐역 - 소원나무 - 세미원 - 마재마을 정약용 생가 - 여유당 - 정약용 묘소 - 정약용 도서관 남양주의 랜드마크

 

  • 뉴시스 - 두물머리 - 정약용 선생님이 너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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