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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딕 디베이트와 인생퀴즈

유대인 가정 교육의 제 1 원칙을 아는가?

by 코리안랍비 2022.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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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출처 이미지 - 탈무드 하브루타 러닝 / 유대인 가정교육의 원칙은 하브루타의 철학으로 나타난다.

<무단전재 절대금지>

 

유학시절에 [유대인교육]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갖고 탐구하고 몰두를 해 보았으나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나는 [질문법]을 가지고서 많은 교수들에게 물어 보았다.

[질문법]은 정말 돈이 가장 적게 드는 최고의 공부법중에 하나이다. 그 이유중에 하나는 유대인 교수들은 

학생들의 질문에 대해서 물리치는 법이 없다. 모든 학생들의 시시콜콜한 질문도 친절하고 온유하게 답해준다. 

 

그래서 유대인 가정 교육의 제 1 원칙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 과거의 질문을 기초로 하여서 오늘의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유대인 가정 교육의 제 1원칙은?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이라고 여겼었는데 그것이 전혀 아니었다. 

 

제 1 원칙은"여성을 존중하라" 라는 것이었다.

'여성을 존중하라'는 것은  남성중심적인 세상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여성성을 길러낼 수 있는 대화를 자주 나누라는 의미이다.  또한 모계중심이 되라는 말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유대인 가정은 상당히 '가부장제적 특성'이 강하다. 아버지의 존재감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존재감도 동등한 위치에 올려 놓는다. 그것이 바로 균형잡힌 가정의 모습일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차등을 둔다면 서로 틈이 벌어지게 되어 갈등과 다툼의 가정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에 대한 지나치면서 확고한? 고정관념이 도리어 경직되고 불안정한 가정의 모습을 만들어 낼 것이다. 

 

왜 이들은 여성을 존중하라는 말을 하였을까? [유대인 자기대화] [유대인 가족대화]를 쓴 보테악 랍비의 글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은 왜 서로 투쟁하는가]라는 책을 쓴 유대인 사회철학자 에릭 프롬의 저서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돕는 베필]이 나온다. 

이를 히브리어로 하면 '에제르 케네게도'이다. 

 이 말 속에 여성에 대한 두가지 지위를 느끼게 해준다.

 

하나는 돕는 자로서의 여성이다.  에제르는 Helper의 의미이다.

돕는 자는 말 그대로 남성을 돕는 역할을 말한다. 

이는 바로 [친구의 역할]과 비슷한 개념이다.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최고의 친구이다.

그러므로 남성과 여성은 서로 동등한 입장이지만 

서로 협력자로서 지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케네게도는 Against Him이다. 

이는 그에게 반대도 하는 자라는 뜻이다. 

항상 남성의 말이 옳거나 바르지 않다. 그리고 남자의 판단이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여성의 반대나 대립되는 말도 잘 귀담아 들어야 한다. 특히 사업세계에서 그렇다. 

이를 한국에서는 '내조'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왜 성서는 [돕는 베필]이라고 하였을까? 이를 놓고 프랑스의 데카르트와 스피노자는 다른 인간관의 차이를 보였다. 데카르트는 인간창조와 더불어서 자유의지를 강조하였다. 하지만 유대인 철학자인 스피노자는 '신의 의지와 범신론' 의 입장에서 인간을 보았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와 더불어서 신의 의지가 같이 공존한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유대교 신비주의 카발라에는 신의 남성성과 여성성의 양면성이 같이 강조된다. 

이들은 남성적인 신의 모습은 역사의 신으로서 등장하는 것이며, 여성적인 신의 모습은 창조의 신으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남성적인 모습으로 보면 신의 모습은 전쟁을 좋아하고, 심지어 파괴하는 신으로서의 이미지를 크게 부각시킨다. 하지만 여성적인 신의 모습으로 보면 자비롭고 사랑이 많은 신의 이미지로 부각된다. 

물론 신은 영이시기에 남성과 여성의 모습을 한 인간을 상정해서는 안된다. 

 

전 문용린 교육부장관이 추천한 책

 

창세기에 보면 에덴동산이 등장한다. 그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와 선악과를 먹고 이들은 범죄하게 되어 낙원을 상실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 기독교회는 모든 것을 신학적으로나 영적으로만 해석하려고 하였다. 인류학이나 인간학, 사회학적인 접근을 거의 배제를 하였다. 그러한 해석이 전혀 맞을 리는 없다. 그저 추측이고 상상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하지만 인문학적인 접근을 하다보면 그에 대한 일종의 해답을 마련하는 길이 생긴다. 오늘의 주제는 [여성성]에 대한 것이므로 달리 해석한 것을 살펴본다. 랍비들의 창세기 주석을 보면 재미있다. 

 

에덴동산에 있는 시기는 - 어린아이의 시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벗어난 시기는 -  어른들의 시기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 해석을 가정에 빗대어서 한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의 동산인 에덴동산을 가정으로 묘사하면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여성관이 올바르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랍비 보테악의 해석에 기반하여 이 글을 해석하지만 반드시 이를 일반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는 확실히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다. 

 

반대로 비뚤어진 여성성은 과장된 겉모습으로 나타난다. 내면이 충분히 강한 사람이라면 겉으로 강한 척할 필요가 없다. 남성은 강함 여성은 약함이라는 도식을 세워서는 안 된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고 노자는 말한다. 

 

어떤 랍비는 이렇게 말한다. "남자 아이들을 보면 또래집단에서 공격성을 상당수 배운다." 이 말에서 나 자신을 빗대어 보아도 가정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교육이 부족하거나 거의 전무한 가정에서는 또래집단이나 선후배 집단에서 여러가지 공격성을 많이 익히는 것에 동의를 한다.  이를 사회문제로 보면 이혼한 가정의 백이면 백, 남성들이 모두 여성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집이 많았다는 통계를 보아도 이느 정도 인정되는 부분은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문제만 가지고서 가정문제를 예단할 수는 없다. 

 

아이의 입장에서 여자를 얕잡아 보고 욕하는 남성을 위한 자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밝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필수덕목이 바로 [여성성]이라는 것이다. 

아이가 건전한 인간관을 형성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부모는 남녀의 본질을 파악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면서 건전한 인간관을 형성하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랍비 보테악은 말한다."남자는 살아가면서 늘 여성을 존중해야 하고, 남자와 여자 모두 반드시 내면에 있는 여성성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여성성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야말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갈 유일한 길이다." 지나친 주장일지 모르지만 상당수 인정한다. 가정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말이다. 

 

자녀들에게 줄 것은 항상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어느 글에 이런 말이 있다. "가장 성공한 남자나 여자는 누구일까? 바로 자기 가족 안에서 성공한 사람이다."

이 책을 보면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여성성의 중요성도강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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