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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경영학17, 가후, 처신과 소신의 조화를 완벽하게 이룩한 인물

by 코리안랍비 2022.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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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후 일러스트 - 다음출처 이미지


<소신과 처세의 조화>
삼국지에서 가장 저평가된 인물
하지만 21세기 재평가할 처세의 달인 - 가후

삼국지에서 가장 대단한 대기업을 일군 CEO는 조조이다. 그런데 최근까지 조조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험하고 악한 세상에서 조조야말로 가장 재조명되고 재평가된 인물이 되었다. 유비나 손권, 제갈량보다도 더 대단한 인물로 재평가 되었다. 삼국지에서는 인물별로 평가가 다르다. 고평가를 받는 인물들이 있는 반면에 저평가를 받는 인물들도 많다.

자리나 지위, 권세나 능력으로 삼국지 인물들을 평가하지만 사실 두각을 나타내고 소위 ‘튀는 인물’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반대로 두각을 나타내지 않고 소위 ‘무던하게 지내는 인물’은 높은 점수를 얻지 못한다. 장수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사들도 그렇다.

삼국지에서 가장 하이라이트 전쟁은 바로 [적벽대전]이다. 이는 대기업 위나라의 사활이 걸린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결국 위나라의 대표로 마친다. 그런데 이 위나라의 대패는 사실 조조의 참모중 가장 혁신적인 사람은 곽가였다. 그 곽가는 단 한번도 전투에서 패배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작전과 병법의 대가였다. 그래서 조조가 가장 사랑하고 아낀 인물이라면 곽가를 꼽을 수 있다. 그런데 곽가는 조조의 가장 젊은 모사였고, 조조와 일한 지 11년 만인 38세에 홀연히 요절한 비운의 천재였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참패를 당하고, 남군으로 도망친 후 함께 살아 돌아온 참모·장수들과 술을 나누다 말고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가슴을 치며 대성통곡한다.

“봉효야! 봉효야! 어찌하여 네가 먼저 갔느냐. 네가 살았더라면 오늘날 내가 이렇게 낭패를 당하지는 않았으리라. 슬프구나 봉효야, 괴롭구나 봉효야, 아깝구나 봉효야. 네가 어찌 나를 버리고 갔느냐. 네가 없으니 내가 이 신세가 되었다. 봉효야.”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곽가를 평가하면서 “덕행을 수행하지는 못했지만 계책을 짜고 도모하는 데서는 순유와 비슷하다고 했다. 또 유비 진영의 인물 중에선 법정과 비슷한 무리라고 평했다.” 그는 곽가를 무척 저평가하였다. 하지만 조조가 이렇게 방성대곡을 하면서 통탄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곽가는 비운의 천재이면서 오래 살았다면 제갈량급의 모사로서 삼국의 판도를 바꿀 인물이라고 보아도 좋다. 그렇지만 진수가 그렇게 평가하였다면 그만한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조조가 가장 아끼고 총애한 모사가 곽가였지만 일찍 비명에 간 사람이고, 그러면서 가장 가까이 한 사람이 [순욱]이다. 순욱과는 20년간 전장을 누비며 동고동락하며 연전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조의 역린을 건드린 순욱의 최후는 [빈 밥공기]로 끝난다. 이들이 모두 처세를 잘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보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모두들 처세를 잘하려고 애쓴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마다 입신출세하려고 하는 공명심이 있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충의지사와 같은 인물들도 있다. 이들은 역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사람들의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이 곽가보다 더 저평가된 인물이 있으니 바로 가후이다.
중국의 삼국지 전문가로는 단연, 이 중텐 선생을 꼽는다. 그는 “가후야말로 제갈공명과 순욱과 사마의를 합친 정도의 인물이다” 라고 평가했다.
곽가나 순욱보다도 저평가된 인물인 가후를 재평가하여 이렇게 가장 높은 반열에 올려 놓다니, 이상한 주장임에 틀림없다.

이 대목에서 가후라는 인물에 대해서 새삼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보게 된다. 이중텐 선생의 책을 읽다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바로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반발심이 든다.


어떤 삼국지에 정통한 한국의 언론인은, 가후를 [삼국지에서 가장 저평가된 인물]로 보았다.아마 이중텐 선생의 말을 다시 옮겨서 나름대로 자신이 평가한 것 같다.
다들 자신의 개인적인 판단일 뿐이다. 객관적인 판단을 하려면 많은 데이터를 비교 대조하면서 합리적인 지점(포인트)을 찾아야 한다.삼국지를 볼 때 당시 상황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 필요하다.
가후에 다른 다른 글을 보니 놀랍기만 하다.
일단 가후가 제시한 계책은 단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난세를 살아가면서, 관우나 장비처럼 용맹하거나 무예가 뛰어나지도 않았지만, 오직 자신의 판단력 하나로 고난을 겪지 않고 천수를 누렸다는 것이다. 그는 전란의 시대에 5번의 주인을 바꾸면서 그 어떤 사람들의 공격을 받지 않고, 77세에 자신의 안방에서 죽음을 맞이한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군웅할거의 삼국시대에 가장 뛰어난 처세의 달인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에 이르러 처세라는 것이 무척 중요한 것으로 간주된다.
처세를 잘못하면 금새 조직세계에서 밀려나게 되고, 인간적인 대접을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직장인들이나 조직인들을 위한 [처세학]이나 [자기계발서]들이 늘 인기를 얻는다. 대학을 다닐 때는 학점이 중요한데, 막상 대학을 마치고 직장이나 조직체를 들어가면 제일 어려운 것이 바로 [인간관계]이다. 이 인간관계 만큼은 이론과 실제가 너무 다르다

처세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무척 긍정적이고 좋다.

중용(中庸)에 현재를 사는 처세론을 말한다. 부귀에 처해서는 부귀를 행하며 빈천에 처해서는 빈천을 행하며 환란을 행하여 군자는 들어가는 곳마다 스스로 얻지 않음이 없고 위로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上不怨天 下不无人)

프랑스의 현인이라고 불리우는 처세의 달인 귀차르디니는 [처세의 지혜]라는 책에서 처세론, 인간론, 재물론, 군주론, 참모론, 정치론, 인간론 등 7편에 걸친 ‘난세의 처세론’을 달고 있다. 삼국지 처세론과 더불어서 같이 읽어보면 현실적용면에서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삼국지 전문가인 이중톈 교수는 제갈량을 비롯해 곽가, 사마의, 순욱, 주유 등을 압도하는 인물로 [가후]를 선정했다. 그 이유는 그가 [처세에 능통한 인물]이어서 그렇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 난세에서도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적확하게 판단을 잘해서 그런지 알 수 없다. 물론 조직세계에서 오래 살아 남는 것을 큰 가치로 여기는 것이 현대인의 조류라고 할 수 있다. 아마 당대에도 [난세에도 살아남고, 가문을 일으키고, 후대역사에 무난한 평가를 받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이 저변에 깔렸음에 틀림없다

가후는 147년, 중원과는 거리가 먼 무위군 고장현에서 태어났다.
출신성분이 명문가가 아닌 탓에 젊은 시절에는 주위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타고난 영특함으로 관직에 오르지만 재주에 비해 운도따르지 않았고 게다가 병까지 얻어서 낙향하게 된다. 여기에 가후의 능수능란한 임기응변이 돋보이는 일화가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던 가후는 변방의 반란세력인 ‘저족’에게 사로잡힌다.
가후는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서도 특유의 침착함으로 꾀를 낸다. 가후는 다시 막강한 힘으로 저족을 타격하여 저족 모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단영’을 자신의 외할아버지라고 속이다. 한 술 더 떠서 저족의 족장에게 자신을 죽이더라도 다른 사람과 따로 매장을 했다가 나중에 단영 할아버지에게 시체를 주면 큰 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를 잘 간파한 그의 말에 저족의 족장은 후환이 두려워서 가후를 살려준다.

몇 년 후 가후는 동탁의 사위의 부하로 들어가 다시 관직을 얻는다. 지금으로 말하면 7급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였거나, 경력직 사원으로 들어간 정도로 보면 된다. 마치 지방대 출신이 서울에 들어가서 사회초년생처럼 움직이는 모습과 비슷하다.
그후 동탁은 미인계를 동원한 초선의 아버지 왕윤에 의해서 살해당하고, 동탁의 부하들인 이각과 각사는 각기 군대를 해산하고 도망갈 궁리를 한다. 이때 가후가 나서서 이각과 각사를 설득해 왕윤을 공격하게 하고 정권을 장악한다. 물론 ‘천자를 받을어 천하를 편하게 한다’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이각과 각사는 황제를 볼모로 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그 공로로 가후에게 제후의 직을 하사하지만 가후는 받지 않는다.

이각에게, "단지 목숨을 구하기 위한 계책이었소. 어찌 공이 있다 하겠소."

그 후 가후는 자신의 거취를 놓고 고민하다가 벼슬을 버리고 화음의 단외에게 몸을 의탁하지만 곧 단외의 곁도 떠난다. 단외 역시 가후라는 인물을 부릴 수준이 안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후가 찾은 사람은 바로 남양의 장수이다. 이때부터 가후는 장수를 도와 책사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그 시작이 바로 조조와의 싸움이었다. 그런데 위풍당당 조조의 군대는 가후의 귀신같은 계략에 말려들어 자신의 아들인 조안민, 조카 조앙 그리고 아끼던 장수 전위까지 잃고 거의 죽을 지경에 떨어졌다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는 참패를 당한다. 이기고 지는 것이 병가의 상사이나, 조조에게는 치욕적인 패배를 안았고 장수라는 사람과 책사 가후도 철천지 1급 원수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조조에게도 넘어야 할 큰 산이 있었으니
바로 중원의 최강자 원소였다. 원소는 최고의 명문가 출신이며 천하를 도모할 야심가였다. 가후는 당시 자신이 섬기는 주군인 장수를 형주의 세력가 유표와 동맹을 단단히 맺게 한다. 이때 장수에게 원소와 조조에게서 동시에 사신이 당도하고, 각기 자신과 동맹을 맺자는 제안을 받는다. 눈에 보이는 세력으로 판단하면 당연히 조조보다는 강력한 군대를 보유한 원소에게 가는 것이 올바른 판단으로 보였지만, 가후는 장수에게 조조에게 갈 것을 청한다. 즉 ‘호랑이 굴에 스스로 들어가자’는 소리이다. 이에 장수는 놀라지만 가후는 당당하게 그를 설득한다. 책사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중에 하나가 작전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있지만, [설득력]이라는 것이다. 현대 경영학으로 따지면 [설득마케팅]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후는 여기에 3가지 이유를 든다.

일단 조조가 황제를 볼모로 잡고 있으니 명분에서 앞서는 것이 그 첫째이고, 세력이 약한 조조에게 가는 것이 사람과 군사가 차고 넘치는 원소에게 가는 것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을 것이 두번째며, 마지막으로 조조는 원대한 야망이 있기에 개인적인 악연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큰 그릇이기 때문이라는 평가였다.

이런 가후의 판단력은 놀랍도록 들어 맞았고, 조조는 장수와 더불어서 가후까지 자신의 팀원으로 받아들였다. 조조는 “내게 천하인들의 신뢰를 가져다준 사람이 바로 그대다.” 라며 가후를 크게 환대한다. 이 대목이 상식적으로 맞지 않지만, 과연 조조는 그릇이 큰 영웅의 풍모를 가진 것이었고, 명분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서부터 가후만의 뛰어난 난세의 처세력을 보여준다. 이미 조조에게는 막강한 참모조직이 있고, 정욱이나 곽가, 그리고 순욱과 양수 등 천하의 기재들이 모여 있었다. 여기서의 핵심은 단연 순욱이 참모조직의 수장이요, 조조의 다음가는 2인자였다. 대신 가후는 이들과는 달리 외부에서 영입된 인재이지만, 스스로 호랑이 굴로 들어가서 한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이런 면에서 보면 가후가 더 대단한 인물임을 볼 수 있다. 동탁에서 이각과 각사, 그리고 단외, 장수를 거쳐서 조조에 까지 간 가후는 과연 판세를 읽는 대가라는 생각이 든다. 가후는 자기가 있을 곳이 아니다 싶으면 미련을 갖지 않고 떠났다. 그러면서 신중한 처신을 하며 함부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소신과 처세의 조화를 이룬 인물 - 겸양지덕>

이처럼 쉽지 않은 조조의 조직에서 가후는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해 나간다. 그러다 가후에게 또 다른 호기가 찾아온다. 바로 조조와 원소의 관도대전이다. 삼국지에서 등장하는 거대한 싸움의 시작이 관도대전이다. 이 대전이 장기화되면서 불리한 쪽은 조조였다. 조조는 다른 모사를 부르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 가후를 부른다.

가후는 [설득의 달인]답게 조용히 조조를 설득한다.
“주공께서는 원소에 비해서 비범하고 용맹하며 결단력도 있어 필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단지 너무나 신중한 나머지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조조는 별동대를 조직하여 30여리 밖에 진을 치고 있는 원소를 기습 공격한다. 이 대전에서 대승을 거두고 중원의 패권은 조조에게 기울게 된다.

가후의 이런한 화술을 보면 설득을 하되, 간접화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가후는 직접적으로 대놓고 이야기 하지 않고 자신이 모시는 주군을 묵직하게 설득해 내는 능력이 대단한 사람이다. 함부로 입을 놀리다가 희생된 인재들이 많다 라는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가후의 이 처신은 나중 적벽대전에서도 등장한다. 이른바 ‘신중론자 가후의 진면목’이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조조 휘하의 무장과 참모진들이 100만 대군을 휘몰아쳐 단숨에 촉과 동오의 동맹을 쓸어버리고자 한 목소리를 낼 때 가후만이 반대를 했다. 가후는 조조에게, “덕으로 다스린다면 결국 형주도, 손권도 조조에게 머리를 굽힐 것”이라고 조언한다. 조조는 가후의 이 말을 무시하고 강공을 펼치다가 그야말로 대패를 당해 위, 촉, 오의 삼국정립에 결정적 빌미를 제공한다.후퇴하던 조조가 천재참모 [곽가]만 있었어도 이런 참화를 겪지 않았을 텐데 하면서 아쉬워했지만 실은 가후의 숨은 능력을 인정한 일화가 된 것이다.

나중 조조가 후계자 문제로 고심할 때 그는 사마의를 사부로 둔 우직한 조비와 시문에 능통하고 살가운 셋째 조식 사이에서 의사결정해야 했다. 조조는 다시 가후에게 묻는다.

“경은 누구를 후계자로 삼으면 좋겠는가?” 이 질문에 곧바로 대답할 가후가 아니었다. 그는 잠시 즉답을 피한다. 함부로 다음 대권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다가 큰 사단이 날 것이 분명했다. 조조는 내심 3째인 조식에게 마음이 가 있었고, 다른 대신들은 장자계승의 원칙에 따라 조비에게 마음이 가 있었다. 조조가 재차 묻자, “승상, 잠시 딴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원소와 유표를 생각했습니다.” 동문서답에 조조는 웃으면서, "경은 항시 직접적으로 대답을 하지 않는구나, 무슨 뜻인지 알겠다” 답한다. 때론 동문서답도 필요하다. 그것이 난세에 필요한 코미디이다.

이 대목을 생각해보자. 여기서 원소와 유표는 후계자로 장남을 지목하지 않아서 결국 큰 사단이 났음을 알린 것이다. 물론 가후는 조비와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고 조비는 가후에게 자주 상의하였다. 그러나 조비는 조조의 마음을 얻지 못하였다. 그래서 가후를 통해서 조조의 마음을 돌이키길 바라였다.
조조가 군대를 몰고 출전할 때마다 조식은 항상 [아비를 생각하는 효심 넘치는 글]로 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런 면에서 떨어지는 조비는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였다. 그때 가후는 조비에게 아버지가 출정할 때마다 그저 말고삐를 잡고 눈물을 흘리며 전송하라고 간하였다. 자신이 출정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조비를 보면서 조조의 마음도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고, 결국 조비가 조조의 후계자로 왕위에 오르게 된다. 나중 조비는 동생 조식을 제후로 책봉하여 멀리 보내게 된다.

<물과 같은 융통성의 소유자 가후>
가후를 보면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잘 판단하는 능력이 탁월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물과 같은 융통성의 소유자’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상황판단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났다.
그러면서 명예를 탐하려고 공을 다투는 논공행상에 함부로 나서지도 않고
높은 자리를 주었을 때 오히려 물러서고, 그러면서 위로 주군을 대할 때는 잘 순응하고, 옆으로나 아래로 수많은 시기와 질투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수준높은 경계심을 보여주었다.

가후는 나중에 태위라는 높은 벼슬에 오른다. 하지만 그는 자식들의 결혼에도 조심했다. 원래 권문세가의 많은 요청에도 가후는 자신보다 낮은 벼슬, 그리고 평범한 가문과 사돈을 맺으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경계심과 시기심을 유발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많은 부를 축적하거나 사사로운 명예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함속에 비범함’을 둔 그만의 처신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참모중에서 77세까지 장수하면서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간 인물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에 비할 인물인 것이다.

이런 가후의 모습과 흡사한 인물이 아마도 전서울시장이었던 [고 건] 전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위의 대통령에게 잘 순응하고, 자신의 주위에 있는 정치세력들이나 공무집단들과도 융화되어 지냈던 인물이다.

그런데 가후가 이렇게 오래동안 장수하는 인물이 된 것은 그만의 가지고 있는 절제력이 있어서 일 것이다. 또한 주어진 일에 대한 최선을 다하는 정신에 있을 것이다.그는 자신이 누군가의 신하로 있는 순간에는 최선을 다해서 역할을 수행했다.
동탁이나 이각과 곽사, 단외나 장수 등을 모시고, 나중에는 조조의 휘하에 들어가서 지낸 것을 보면 후세인들은 개인적인 판단에 마치 그가 배신과 변절의 철새 정치인을 보는 것처럼 바라보고 그를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가후는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실력이 있었다. 이를 보면 남들이 ‘철새 정치인’이라고 불러도, 남들이 따라 올 수 없는 실력이 있다면 그를 높이 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정사 삼국지를 기술한 진수는 가후를 전략상 제갈량보다는 한 수 아래지만, 순욱이나 정욱, 곽가와 동급으로 여길 정도로 높게 평가했다. 진수는 ‘책략에 실수가 없고 사태 변화를 꿰뚫고 있었다.’라 인정했다.

조직학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인간은 조직에서 태어나서, 조직에서 살다가, 조직에서 죽는다”
우리는 가정이라는 조직, 학교라는 조직, 직장이라는 조직, 관공서라는 조직, 기타 수많은 사회조직에서 태어나고, 살고, 죽는다. 이런 조직이라는 것이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 가장 신경써야할 공간이다. 여기에는 다이나믹스(역학)이 많이 존재한다. 이런 공간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처신하는가?”이다. 처신을 잘하고 못하고가 조직생활에 제일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이를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는 감각이다. 처신을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집안 출신일지라도 오래 버티지를 못하고 결국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처신을 잘하는 사람은 지방대를 나오고, 변변한 집안 출신이라도 달리 대우를 받고 인정을 받고 높은 평가를 받는다.

물론 가후는 자신의 여러 조건들이나 상황들의 불리함을 잘 극복했다. 여기에 가후를 알아보고 제대로 인식한 조조의 용인술(사람을 쓰는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모든 성공은 한두가지 장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점이나 결점도 같이 어우러져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처세술은 어찌보면; 짧고 굵게 살 것인가, 아니면 길고 가늘게 살 것인가? 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종합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이론과 실제가 다른 종합예술이다.

가후의 처세술을 보면 자신의 소신도 담겨 있으면서, 그러면서 상대방에게는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고 어찌보면 비굴함도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나가 아닌 우리로 살아갈 때 필요한 공존의 미덕이고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함께 살아가는 기술 이것이 [공존의 기술]이다. 우리는 어찌보면 어렵지만 종합예술가로, 공존하는 인간으로 살아가야 맞다.

가후가 이 시대에 살아있다면, 나는 그분을 모셔서 [소신과 처세학 강좌]를 백일동안 열고 싶다. 배우고 싶은게 한두가지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중텐 선생도 가후에 대한 높은 평가를 했던 것 같다. 나도 그를 이제는 높게 평가한다.


우리 현대인들은 이제 백세 시대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백세 시대라고 해서 힘에 겹고 쉽지 않은 세상살이이다. ‘오래 사는게 무슨 복인가’ 하지만, 오래 살려면 자신의 소신과 더불어서 처신을 잘해야만 한다. 이 좋은 세상에 오래 살아야 한다. 나는 2070년까지 살 계획이 있다. 몸에 화가 많고, 스트레스가 많고, 시기와 질투가 많은 사람은 오래 살거나, 다른 이들과 잘 섞이지 못한다. 직장생활과 조직생활은 특히 그렇다. 그런데 가후는 당시로 말하면 오래 오래 장수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읽고, 세상을 읽고, 판세를 읽었던 인물이다. 그러면서 겸양지덕으로 난세를 이겨나간 인물이다.

“나 자신이 지방대 출신이다. 변변치 않은 집안 출신이다. 가진 부나 배경도 극히 부족하다” 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가후를 통해서 그 생각의 진로를 바꾸기 바란다. 인생도 전략이 필요하다. 부분적이고 단기적인 성공이나 성과보다도 전체적이고 장기적인 성공과 성과를 추구하여야 한다. 살아남아라, 당신은 아름답다 ~

삼국지는 그 중요한 처세의 시크릿을 오늘도 가르쳐 주고 있다.

  • 다음 출처 이미지
    <2020년 4월 작성된 삼국지경영학 시리즈 가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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