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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경영학 18, 한발 앞선 신의 한 수로 촉을 정벌한 등애

by 코리안랍비 2022.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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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앞선 신의 한수로 촉을 정벌한 등애
<부제, 모험추구가의 화려한 승리 그후의 비참한 죽음>




삼국지를 읽다가 가장 허망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바로 제갈량의 뒤를 이은 강유와 등애, 종회로 이어지는 부분이다. 촉의 멸망과 함께 나의 삼국지 읽기는 그 때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삼국지 결말부의 방점을 찍은 등애에 대해서 알아보는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등애에 대한 글을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도 망설이다가 최근에야 들어서 펜을 들게 된 것이다. 등애라는 사람이 나에게는 이상하게 미운 털이 박힌 사람이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소나 말의 등에 붙는 ‘등에 파리’가 생각이 난다. 세월이 흘러서 차세대 리더들의 리더쉽을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등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등애와 더불어서 주변인들과 주변상황을 골고루 살펴보는 눈이 필요하다.

혹시 중국의 [흑묘백묘론]으로 개혁개방을 이끈 등소평의 조상이 누군지 아는가? 바로 등애이다. 등소평은 그의 54대손이다. 덩샤오핑은 과연 등애의 후손답다.

위나라가 촉나라를 일거에 멸망케 한 것은 전적으로 등애라는 장수의 공이다.
경영학에서는 모험이나 위험을 추구하는 사람이 돌아오는 수익(profit)은 정비례 그 이상이다. 이를 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한다. 위나라 장수중 가장 하이 리스크를 지불한 사람은 단연 등애이다. 이는 히말라야 산맥에 별다른 등산장비도 없이 악으로 깡으로 올라간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등애는 지금으로 말하면 등산왕이나 산악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등애의 [신의 한수]가 촉의 멸망을 가져왔으니 등애는 위나라의 영웅으로 등극한다.

이 등애에 대한 이야기는 후반부에 가면 달라진다.
그는 촉의 병합이라는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결국 20%의 정치적인 감각의 부족으로 처형되어 불귀의 객이 된다.


등애는 일개 둔전병에서 나중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둔전(屯田)은 변경이나 군사 요지에 주둔한 군대의 군량을 마련하기 위하여 설치한 토지. 군인이 직접 경작하는 경우와 농민에게 경작시켜 수확량의 일부를 거두어 가는 두 가지 경우가 있었다. 당시에 둔전병은 미관말직이었다. 그 이유중에 하나는 그가 ‘말더듬이’이기도 하였다.

이에 대한 스토리가 있으나 지면관계상 생략하고, <미완의 책사 사마의> 라는 중국판을 보면 등애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는데 그녀만 만나면 말더듬는 버릇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은 ‘자야’였다. 나중에 자야는 등애와 함께 서량으로 가서 같이 둔전에 힘쓰는 인물이 되었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그의 러브스토리는 추후에 상정하기 하고, 등애의 가슴속에는 큰 포부가 있었다. 자신은 둔전병을 넘어서 위나라의 장수가 되어 큰 공을 세우고 싶었다. 그래서 둔전 일과 더불어서 스스로 자기계발에 힘쓴 사람이다. 나중에 사마의에 의해서 둔전책임자로서 위나라의 지도를 바꾸는 인물이 된다. 지금으로 말하면 등애는 수자원공사의 수장처럼 [대운하 프로젝트]를 성공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농사로 성공하면 군사로 승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말단에 있어도 언젠가는 사장이라는 자리에 오르고 싶어하는 야심이 있다. 그러나 그 야심이 제대로 성공하는 경우는 겨우 1%도 되지 않는다. 동북아 기업들을 보면 대부분이 자수성가형 기업들이 많다. 한국의 경우는 1대가 잘하여 3대가 먹고 사는 기업들이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수성가형 기업들의 경영은 곧 가족중심체제로 바뀐다. 그래서 가족이나 집안 사람 외에 높은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삼국지를 보면 누구나 가능성과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의 기업문화는 아직도 자수성가형 인물을 능력있는 인물로 생각한다.

당시 민정시찰을 나온 사마의는 그가 농사짓는 것이나 민정업무는 물론 군사일에도 실무적으로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그를 발탁한다. 사마의 사단에 그를 편입시킨 것이다. 나중 남안태수가 되어 서량에 파견된 후 정서장군 곽회와 진태의 휘하에서 군사경력을 쌓기 시작한 등애는 곧 무장으로서 두각을 나타낸다. 그가 떠오르는 신성이 된 것은 바로 국산전투에서 무적에 가까운 촉의 장수겸 지략가인 강유를 격퇴하고, 관구검의 난 진압에도 일익을 담당하였고, 또다시 량주에 침입하여 기세등등해진 강유를 단곡과 장성, 그리고 후화의 전투에서도 연파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정서장군이 되어 촉나라 방어를 총괄하는 변방의 일인자가 된 것이다.

촉나라 조정이 내부적으로 분열되자 이 기회를 타서 위나라의 사마소는 강유를 답중에 묶어 두게 하고, 종회에게 20만 대군을 주어 촉의 수도 성도로 진격하게 한다. 하지만 천혜의 요새인 촉의 성도로 간다는 것은 쉬운 여정이 아니었다. 등애가 강유를 저지하는 것이 실패하고 검각(당시, 검각은 일부당관一夫當關, 만부막개萬夫莫開라고 할 정도의 험한 요새였다.)으로 달려간 강유는 종회의 10만 대군을 막아서는데 성공한다. 사마소의 촉 정벌에 대한 실패는 전적으로 등애의 뼈아픈 실책이었다.

그런데 이 때 등애는 신의 한수를 날린다. 이는 마치 장기판에서 [외통]이라는 기술을 거는 것과 같다. 또한 복싱에서 회심의 일발을 날리는 것과 같다. 그는 정예병 3만만 이끌고 무인지경으로 들어가 700리길을 행군한다. 그는 전광석화같은 속도로 성도를 기습하여 자중지란에 빠진 촉을 멸망시키게 된다. 등애의 이 업적은 최고의 리더인 조조나, 사마의도 결코 이루지 못한 일이었다.

나는 이 700리길이 어떤 길인지 다시 살펴보았다. 삼국지에서의 밝히는 내용은 등애가 음평(陰平)의 소로를 따라서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는 장거리 행군을 했음에 틀림없다. 마치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들어 간 고난의 행군이었다.

[산을 뚫어서 길을 내고 계곡에 다리를 만들었다. 산은 높고 계곡은 깊었으므로 작업은 매우 어려웠고, 또 식량 수송의 어려움으로 거의 위기에 도달하게 되었다. 등애는 포대기로 자신의 몸을 감싸고 산기슭을 따라 구르듯이 내려왔다. 장사와 병사들은 모두 나무를 붙잡고 낭떠러지를 기어오르며 서로 이어서 전진하였다.] <삼국지 등애전>

자세한 설명을 더하자면, 삼국지에서는 촉의 성도로 가려면 마천령(摩天嶺) 이라는 험준고개를 넘어야했는데 이곳을 지나는 동안 촉의 군사를 단 한명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 출발할 때는 3만의 군사였으나 나중에는 2천명의 군사로 줄었다고 한다. 그 700리를 행군하면서 마지막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앞두고 있었다. 이때 겁을 먹은 2000의 군사에게 등애는 소리높여 외친다.

“우리 군사는 여기까지 벌써 700리를 행군해왔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있겠는가?”

등애와 2000의 군사들로 촉은 일거에 무너졌다. 마치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대군 로마를 상대로 스위스 알프스 산맥을 넘는 소수의 한니발 군대를 보는 느낌이다.

  • 구글출처 이미지 - 등애는 정말 대단한 장수였다. 마천령

<등애가 넘었다던 중국의 마천령>

다시 기습공격의 상황속으로 들어가본다.

등애의 기습으로 성도에 있는 2만의 군사가 힘없이 주저앉고 제갈량의 아들인 제갈첨(諸葛瞻)과 제갈강(諸葛尙)이 등애군에 의해 전사당한다. 그리고 성도로 진격하여 유약한 유선은 싸울 의지를 잃고 항복하기에 이르른다.

등애의 속전속결한 신의 한수는 ‘설마가 사람을 잡다’라는 속담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험준한 촉을 일거에 제압한 ‘산악왕’ 등애는 삼국지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결과를 만들었다. 삼국지의 시작은 도원결의라는 유비와 관우 장비 삼형제의 의기투합으로 이루어졌지만, 결국 등애라는 의외의 인물에 촉은 무너진다. 결국 한나라 황실의 부흥을 꿈꾸며 분연히 일어났던 유비의 지고한 뜻한 촉한의 멸망과 함께 역사속으로 지고 말았다.

이 촉나라가 망하게 된 빌미를 제공한 것은 사실 제갈공명 시절부터라고 할 수 있다. 위나라와의 오래된 숙명의 라이벌전을 몇차례 하였지만 번번히 실패로 돌아간 제갈공명의 나라 촉은 많은 힘과 자원을 잃었다. 또한 서촉 내에서도 여러 그룹간에 갈등이 많았다. 형주와 익주, 그리고 성도의 그룹들이 서로 갈등구조를 보였고, 그런 와중에 촉의 분열까지 왔으니 촉의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였던 것이다. 그것도 의외의 인물 등애에 의해 무너진 것도 아이러니는 아닌 것이다.

필자는 이 사이에 갑작스럽게 제갈량의 마천령 비문을 넣고 싶다. 나관중은 제갈량을 신비하게 그리기 위해서 이 대목을 넣었다.

이화초흥 - 두 불이 처음 일어나면
유인월차 - 여기를 넘어 오는 이가 있다.
이사쟁형 - 두 선비가 서로 지지 않으려고 다투니
불구자사 - 저절로 죽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
(*여기서 두 선비는 등애와 종회이다. 원래는 이 마천령에 이미 제갈량은 병영을 세웠으나 무약한 유선이 이 병영을 없앴다고 한다. 그리하여 나중 사람들은 “제갈량은 과연 무후(전무후무)로다” 라고 격찬한다.

그런데 사마의에 의해 천거된 등애의 허를 찌르는 전략에 힘잆어 아들 사마소는 성공적으로 서촉의 정권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이때 ‘다른 큰 문제가 발생’ 하였는데, 너무나 능력 있는 사람이 성과를 내게 되면 기고만장하여 전체 조직에 해를 가하는 경우를 쉽사리 보게 된다. 결국 사자의 등에 날개를 단 것 같은 등애도 사마소에 의해 그 날개가 꺽이게 된다.

등애는 촉을 정벌하여 태위에 제수되고 식읍으로 2만호를 받는다. 그러나 등애는 태위(지금의 총독격)에 제수되면서 [자아팽창]의 성공병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중앙정부의 말을 듣기보다 제멋대로 간부를 임용한다. 그리고 분별없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여러 차례 저지른다. 등애는 전투력으로는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문외한이었다.

이를 가만 둘리 없는 종요의 아들 종회는 등애를 제거하고, 간이 배밖에 나온 강유와 더불어서 위나라를 취할 모반의 계획을 세우게 된다. 둘다 사마의가 발굴한 제자들이지만 동상이몽자들이었다. 종회는 등애의 말투와 필체를 모방하여 조정에 한 장의 거짓 상소를 올린다. 그 상소에 속은 실세 사마소는 등애의 병권을 빼앗고, 그들 부자를 낙양으로 압송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결국 등애는 호송 수레에 실려 낙양으로 끌려가게 된다. 등애 등충 부자는 장탄식을 한다.

“우리가 이렇게 큰 공을 세웠는데, 결국에는 이렇게 끝나는 구나”

그런데 모반을 꿈꾸는 종회도 결국 자신의 부하들에 의해 모반을 당하고 살해당한다. 등애 등충 부자를 제거하고 남은 종회를 의심하였던 사마소는 마치 거미줄을 치고 기다리는 거미처럼 종회가 걸려 들기를 기다렸다. 중간생략하고, 마침내 음모를 꿈꾸는 종회도 죽고, 같이 합류했던 촉의 강유도 죽는다. 서촉은 모두 사마소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삼국지집해, 세설신어, 삼국지 등애전 참조>

물론 등애를 통해서 배우는 경영지략은 있다.
등애가 촉을 정벌한 나이가 70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대망을 꿈꾸었다는 것이다. 성서에도 보면 여호수아의 친구 갈렙이 나오는데 가나안을 정복했지만 험산과 험지라는 산림도 개척하는 정신을 보여주었다. 마찬가지로 등애는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등애는 대망을 지켰고, 남이 가지 않은 길로 나아간 개척자라는 것이다.

바로 사업의 관건은 독창성이라는 것이다. 또한 절대로 타인을 모방하지 않고 자기만의 [마이웨이전략]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과거의 낡은 틀에 매달리고 옛날의 경험에 얽매이는 것은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남보다 먼저 성공하려면 개척 정신이 풍부해야 하고, 과감하게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야성이 있어야 한다. 요즘 기업들에서는 이러한 야성이 부족하다고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나 전략이 떠올랐다면 용감하게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 개척자는 외롭고 힘들지만 그러나 의외로 대단한 사업 성공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한편으로 개척자 정신으로 올라선 사업이 [자기관리능력의 부족]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등애의 전반부는 성공했지만, 등애의 후반부는 실패한 이유가 바로 [관리능력의 부재]였다는 것이다. 이래서 사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사 삼국지의 진수의 등애에 대한 평가로 나의 글을 마친다.
“등애는 강인하고 건장하여 공을 세우고 대업을 이루었지만
화를 방비하는 생각이 부족하여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삼국지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역사와 문학을 넘나들며 만나는 삼국지의 진실
우리는 그 삼국지에서 인문학과 경영학의 만남을 도모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의 [삼국지 경영학 시리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으셨으면 그냥 버리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세대는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는 세대요, 우이독경의 세대입니다.
다만 남이 닦고 만들어 놓은 길로 가지 말고, 자신만의 걸음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삼국지만이 아니라 동서양의 고전을 통해서 인문학의 르네상스가 열리기를 바랍니다.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산에 있는 난초처럼 스스로 향기를 발하는 사람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 다음 출처 이미지



한국의 CEO 100인 뽑은 <사마천의 사기열전>으로 다시 만납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 명시로 마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지만
(人固有一死 .인고유일사)

죽음이 태산보다 무겁기도 하고
(死有重於泰山 .사유중우태산)

어떤 죽음은 깃털보다 가볍기도 하니
(或輕於鴻毛 .혹경우홍모)

그 쓰이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用之所趨異也 .용지소추이야)

- 사 마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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