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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과 고전 이야기

명길묻39, 자유의 철학자, 장자의 천도

by 코리안랍비 2022.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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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책을 읽으면 반드시 쓸 준비를 하라.

<<장자, 천도편>> 을 읽고
  • 최고의 철학자 중에 하나인 최진석 교수님
    다음출처 이미지


2020년 글중에서 


인문학의 열풍이 뜨겁다가,
이제는 인문학의 열풍이 사그러져 가는 것을 목도한다.
도대체 인문학은 무엇이며, 인문학적 인생이라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어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문학이 학술위주로 강연되고, 발표되고, 책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강사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혹은 유명한 사람들의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내가 그런 사람들과 같아진 것 같은 특이한 [동류의식]이 생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현상과 본질은 다른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현상이나 외면에 빠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위인들이나 성인들이 만들어놓은 훌륭하고 우수한
고전에 붙들려있다. 그런 고전들은 정말 감탄스럽고, 경이스러우며, 놀랍기만하다. 그런 고전들을 읽다가보면 마치 나도 그 고전의 일부가 된 것 같은 희안한 착각을 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하고, 또래 동기나 친구들보다
몇배의 책을 읽어왔다.
그렇지만 나의 독서는 어느 순간 무뎌지고, 무너지게 되었다.
나의 주체성이나 관념이 약하고, 나의 나됨을 추구하는 '나' 정신이 약해서이다.

얼마전에 동양철학자 최진석 교수의 강연을 듣다가,
장자의 이야기를 열심히 경청하였다.

최진석 교수는 [서양의 니체와 동양의 장자]를 늘 닮고 싶어하는 분이시다.그의 강의는 힘이 있고, 정력이 넘친다. 그러면서 속이 후련해진다.


그러면서 이 <<장자>>라는 양반을 무척 좋아한 대학원 동기가 보고 싶어졌다. 그 친구는 자신의 공부도 잘했지만, 늘 노장사상에 사로잡혀 살았다. 읽은 책을 몇번이고 곱씹으면서 자신만의 주체성을 높여 나갔다. 물론 성서도 열심히 탐독하는 친구였다. 반대로 나는 성서와 기독교 신학서적에 많이 사로잡혀 살았다. 성서는 정말 닳고 닳도록 읽었다. 그런 나와 친구는 자주 대립을 하게 되었다.

성서의 신앙의 기반과 기준을 삼고 있는 나를 볼때, 그 친구는 내가 '종교에 종속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반대로 나는 내가 따르는 진리라고 여기는 기독교를 따르지 않는 친구를, 다른 시각이나 차별의 눈으로 보았다. 사실 나는 종교라는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거나, 허탄한 신화에 빠진 것이다. 기독교의 핵심교리나 정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근본주의자로 산 것이다. 그 친구에게 지금도 미안한 감정이 남아 있다.
다시 만나면 이제는 노자와 장자의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친구가 27살 혈기에 읽었던 그 책을, 나는 37살이 넘어서야 처음 읽었다.


이런 스토리를 하는 이유는, 바로 나 자신이 얼마나 소견이 좁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으며, 극단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한손에는 기독교의 진리를 다른 한손에는 세속의 진리를 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균형이 잡혀 있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은 장자의 천도편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장자>>라는 책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이 세상에 수많은 책중에 <<장자>>라는 책이 허무맹랑하고, 특이한 책은 없다고 본다. 이 책을 읽다보면 도가에서 말하는 말장난이나 허탄한 신화나 전설집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장자의 내용에는 비단 그러한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장자 스타일]이라는 말을 만들고 싶다.

장자 스타일이란 사람이 갖추어야 할 주체성이나 자발성, 또는 자유로움과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진선미의 추구를 말한다.
남이 한 말이나 , 남이 한 경험이나, 남이 한 행위를 따르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어떤 사람의 기준이 나의 인생의 기준으로 삼아서도 아니된다는 것이다.


나는 너가 아니고, 너도 나가 아니다. 나는 나일 뿐이다.
그렇게 자기 선언을 하면서, 세상 살아가는 일상이 사실 나의 지식과 경험을 기초로 하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썰을 풀고 싶다.

제나라 환공이 대청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윤편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수레바퀴를 깍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인데, 그가 수레바퀴를 망치와 끌을 놓고서 대청 위를 쳐다보면서 환공에게 묻는다.

"대왕께서 읽고 계신 것이 무슨 책입니까?"

"성인의 말씀이니라"

"그 성인은 지금 살아계십니까?"

"벌써 돌아가셨느니라"

"그렇다면 대왕께서 지금 읽고 계신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입니다."

제나라 환공이 이를 들으니 벌컥 화가 나서 말하였다.
"과인이 책을 읽고 있는데,
수레바퀴나 깍는 놈이 감히 시비를 건단 말이냐,
합당한 설명을 하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제가 하는 일의 경험에서 말씀드립니다.
수레바퀴를 깍을 때 많이 깍으면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깍으면 뻑뻑하여 굴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니게 정확하게 깍는 것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뿐, 입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

<<이 대목을 보면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소고에 나오는 위대한 경구인, "말로 안되는 것은 몸으로 보여주어라" 라는 말로 대치될 수 있다.>>

계속 이어서,
"물론 더 깍고 더 깍는 것은 그 어름에 정확한 치수가 있을것입니다만,
제가 제 자식에게 깨우쳐 줄 수 없고, 제 자식 역시 저로부터 전수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너 나이 70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레바퀴를 깍고 있는 것입니다.
옛 성인도 그와 마찬가지로 가장 핵심적인 깨달음은 책에 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을 것입니다.그러니 대왕께서 읽고 계신 것이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 말에 환공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윤편이라는 사람은 [죽은 성인의 가르침을 찌꺼기]로 묘사하였다.
우리는 참으로 독서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독서를 통해 얻는 것이 참으로 많은데, 하지만 자기의 것은 과연 얼마나 될까? 독서를 그저 독서로 끝마치는 사람은
결국 겸손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하하는 것이다. 독서는 반드시 표현되어져야한다.

윤편의 이야기를 다시 재해석해보면, 아무리 훌륭한 성인구자라도 과거의 일의 교훈으로 현재의 그 큰 차이와 미묘한 차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념이나 기준으로 현재를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하는 것이다.
성인의 말을 찌꺼기로 보는 윤편의 당돌함과 거침에
적잖이 놀란다.

글로 쓰여진 고전,
명문대 출신의 박사들이 쓴 전문서,
글로 쓰여진 신문과 사설을 무조건 믿고 삶의 기준이나
모델로 삼는 것은 경계할일이다.
언론플레이에 놀아나는 사람들도 참으로 많다.
유투브에 오른 것을 정설이나 정론처럼 여기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는 우매한 국민들도 많다.

내가 좋다고 느낀 그것은 나의 감정이지 남의 감정에 강요되어서는 안된다.
내가 내 손으로 느끼고 감지했을 때 그것이 내것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러면서 경험의 수도 늘어난다.
그래서 늙어가는 것도 두렵지 않은 이유는 바로 내 손으로 느낀 감각이 점점더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젊어서는 IQ나 EQ가 중요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EEQ 경험지수가 중요하다.
경험지수가 높다는 것은 곧 지혜롭다는 것이면서 현명하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지성이나 추구하고, 배우는 것에만 몰입하면 절대 창의적이거나, 주체적인 삶이 아니다.
베끼기 인생이다.

남이 만든 기준, 충고, 제안들에 나이가 들어서도 매몰된다면
그것은 끌려가는 삶이지 끌고가는 삶이 아니다.

우리는 독서하는 사람들이다.
독서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책을 읽을 때, 경험과 연결지어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표현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감의 반대는 자기비하이다. 자신감이 결여된 사람들은 자기를 낮추는 것 같지만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자기비하이다.

부잣집 출신이시지만 여러가지로 실패하신 아버지를 만나
평생을 가난하고, 힘들게 사신,
어머니가 자주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세상은 자기 잘난 멋에 사는거야"
"멋대로 살아봐, 남의 인생 대신 살지 말고..."

독서는 사실 배우는 것이며, 배우는 것은 때가 그쳐야 한다.
이를 지학(그칠지, 배울학)이라고 부른다.
윤편의 이야기를 통해서, 많은 시사점을 얻었다.
장자의 이야기를 논하자면 평생을 해도 부족하다.


장자가 원하는 삶은 바로 [자기를 잃지 않고, 자기를 찾는 것이며, 지독한 자기 사랑을 가져라] 라는 것이다.

이제 독서를 하면 반드시 글로, 말로 표현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남의 말이나 생각이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말과 생각이 기준이 되어 확고하고 주체적인 자아로 나아가야 한다.

자연스럽게 산과 같이 흔들리지 않고, 강과 같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꿈이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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