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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이야기

유대인들의 3가지 영원한 민족적 확신

by 코리안랍비 2022.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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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과연 어떤 민족인가?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어느 종교인 - 하레딤

시중에는 많은 유대인과 관련된 책들이 많이 나와 있다. 

이 조그마한 소수민족이 왜 이렇게 주목을 받을까?

그 이유는 분명한 민족적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계를 호령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제국을 형성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정복국가로서의 위상도 갖추지 못하였다.

인구수로 말하면 망해도 벌써 망해야 되는 민족이다. 

그런데 이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3가지 민족적 확신은 

이들을 세계속에서 가장 정상급 민족으로 만들었다. 

 

그 세가지를 여기서 밝혀본다.

 

1. 모세의 율법(토라)를 따르는 법의 민족

이들에게 율법 곧 토라는 없어서는 안 될 법적 유산이다. 

법적 유산이라는 것은 거의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모세의 토라는 이들에게 전해진 가장 중요한 법적 유산이다. 

 

"모셰 나탄 라누 토라 - 모세가 우리에게 토라를 주었다."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그리고 신명기까지 

심지어 여호수아까지 보는 학자도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토라의 연구는 

위대한 연구로서 이해된다.

시편 1편에도 '율법 토라를 주야로 연구하는 자의 기쁨과 영화로운 삶'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시편 -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풍성함

 

2.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성약, covenant)를 맺은 선택된 민족

성서에는 다양한 언약과 관련된 부분들이 나온다. 

아담 언약,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소금 언약, 은혜 언약 등 다른 언약들이 다양하게 나온다. 

언약이라는 것은 신과 인간간의 맺어진 거룩한 약속이다. 

성서는 거룩한 약속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고 밝힌다.

언약을 지킬 경우 엄청난 부와 명예, 축복과 결실이 따르지만

지키지 않을 경우 저주와 형벌, 죽음과 멸망이라는 것이 따를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잘 보면 언약은 하나님이 정하신 언약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자 

먼저 다가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언약안에 담긴 은혜와 축복을 더 보라는 것이다. 

이들은 그래서 '약속'을 목숨같이 여긴다. 그래서 '지키지 못할 약속은 정하지 말라'라는 

탈무드의 언명도 그런 것이다. 성인식을 마치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시계'를 주면서,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철저히 믿는 민족이다. 이들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유리 방황할지라도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을 믿고 버틴 것이다. 그리고 철저히 개인의 삶 속까지 언약을 골수에 새길 만큼 강한 자부심과 선민의식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유일하신 분으로 믿는 유일신관의 민족

유대인들에 의해서 유일신관이 제일 먼저 생겼다. 종교의 역사를 연구해봐도 불가능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유대인들이다. 이들은 가나안 -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올 때 다신교 전통과 흐름이 강한 곳으로 들어왔다. 

다신교의 특징은 보이는 형상을 신으로 믿고, 그리고 각 지방의 지방신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은 다 허탄하고 허구라는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하지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자신들의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모셨다. 

신명기 6장의 쉐마가 그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은 곧 하나이신 하나님이시다. 쉐마 이스라엘 아도나이 엘로헤이누 아도나이 에하드"  이들에게 있어서 위로 아래도 다른 신은 없다는 것이다. 유일신관이 강한 유대인들에게서 

우상숭배야 말로 가장 경계대상 1호였다. 그래서 토라나 탈무드도 이를 철저히 강조하였다. 다신교나 잡교 중심의 중동에서 유일하게 유일신관을 유지하였던 유대인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놀라운 민족적 저력을 발견한다. 영원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잘못되었다고 배격하는 사회학자나 과학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유대인들만큼 학문적으로 높은 민족이 없기에 이러한 종교관이나 유일신관이 절대 흔들리는 경우도 없다. 이것이 바로 헤브라이즘이다.

 

어떤 목회자가 서양학문에서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구분할 수 있겠느냐? 라는 질문을 내게 던졌다. 

정말 어려운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나의 대답은, "헤브라이즘은 진리(에메트)에서 시작되어 여러 갈래로 퍼져나가는 것이라면, 헬레니즘은 진리(지식의 산, 컨콜디아)에 가는 길은 다양하다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그 목회자는 너무나 감탄을 했다. 사실 진리에서 출발한 삶과 진리를 향하여 가는 삶은 엄연히 다르다. 그 길과 세계가 다르다. 

여기에는 선택과 만남이라는 중요한 원리가 들어 있는 것이다. 서양의 학문이 헬레니즘에 입각하여 형성이 되고, 그리고 대학들이 헬레니즘 스타일을 따르는데 반하여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헤브라이즘을 끝까지 고수한다. 그러면서도 헬레니즘에 관한 것들도 섭렵을 하기 때문에 이들이 강성하고 대성하는 것이다. 이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이브리드'의 고수인것이다. 우리도 융복합 능력을 더욱 기를 일이다. 위의 3가지 영원하면서 변하지 않는 민족적 확신을 갖춘 유대인들에게 정말 좋은 것을 많이 배운다. 이제는 부럽기까지 하다. 우리가 못가진 것을 저들은 가지고 있으니까... 이제라도 이런 글을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나라가 가진 민족적 확신은 무엇일까? 고민해 볼 일이다. 

 

바르 미쯔바, 성인식 장면 / 13세된 아들이 토라의 한 부분을 읽고 있다. 머리에는 트필린을 착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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