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스라엘 이야기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의 코로나가 주는 의미 <2020년 작성글>

by 코리안랍비 2022. 10. 15.
728x90
반응형
SMALL
무단전재 절대금지
공유가능


Corona in Jerusalem: What story will we tell?
예루살렘에서의 코로나가 주는 의미

오늘은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보다는 현재 이스라엘에 처한 코로나 19로 인한 리얼리티를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 이스라엘 관련 매체나 저널을 참고하였습니다.(2020년 겨울 작성글)

다른 나라들도 코로나19로 비상시국이지만 이스라엘도 비군사적 비상시국입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현재의 처한 고통스러운 현실은 코로나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스라엘도 거리 어디를 가나 한산합니다. 넓은 광장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현저하게 줄어 들었고 좁은 골목에서는 사람들의 발길을 구경하기 힘듭니다. 이런 시국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껏 겪었던 중동전쟁들을 상기합니다.

1991년 걸프전이 발발하고 사담 후세인 이라크 통치자는 화학무기 공격을 단행하겠다고 위협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집들을 화학무기의 공격에 대비하여 거의 물샐틈이 없이 ‘차단’하려고 하였습니다. 방독면을 구입하고, 비상식량도 충분히 구입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부적절하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겪은 공포감은 리얼하고 직접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 아닌 텔아비브와 하이파는 이라크에서 혹시나 날아올지 모르는 미사일 공격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모든 국경을 봉쇄하고 나라의 문을 막았습니다. 진짜로 이라크에서 스커드 미사일이 몇발 날라왔고 한명이 죽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걸프 전쟁이 진행되는 도중 이스라엘은 1991년 푸림(Purim)절 행사를 치루지 못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푸림절 절기행사를 취소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성서 에스더서 참고)

그런데 2020년 현재로 돌아와서 이스라엘은 다시 푸림절 행사를 취소할 예정입니다. 어디를 가나 다중이용시설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이스라엘도 한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 자신들을 서로 흩어져 분리되어 지낼 것인가, 아니면 함께 더불어서 이 고통의 시간을 가질 것인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걸프전에 기억은 생생하지만 지금이 코로나 19와는 상당히 성격이 다릅니다. 전쟁의 시기에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서 생활하거나 노동을 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오래 걸리지 않았고 사람들은 곧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19와의 전쟁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작지만 강한 나라인 이스라엘은 코로나 19에 대한 의미를 달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몇몇 소수의 기저질환자나 노약자들에만 겪는 일이 아니라 그 나라 그 민족 전체가 고통받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방따땅에서 민족 전체가 위기에 빠졌던 푸림절의 순간을 더욱 기억합니다. 그런 기억들이 도리어 코로나 19의 위기상황을 참는데 큰 정신적 도움과 위안을 주는 것입니다.

이들의 다음의 기억은 팔레스타인과의 ‘두번째 인티파다 INTIFADA 아랍인들의 민중봉기’입니다.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이 충돌이 격화되었던 장소는 바로 예루살렘이었습니다. 필자도 예루살렘에서 2번째 아랍인들이 민중봉기를 지켜보았습니다.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서로 물과 기름과 같습니다. 이들에게 평화의 길은 멀고 먼 여정이었습니다.

인피파다가 무서웠던 것은 바로 아랍인들중에 ‘자살폭탄테러’를 일으키는 테러리스트들이 있었습니다. 주로 타켓은 버스나 주요 건물, 광장에서 폭탄을 터뜨리는 것인데 이러한 폭탄테러로 인하여서 도시 전체가 공포에 떨고, 여러 시민들이 죽거나 다치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동안에 필자는 약 30 여건 이상의 테러 사건을 뉴스로 보기도 하고, 직접 가까운데서 겪어 보기도 하였습니다.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이 아니라, 테러의 도시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심지어 유학중인 예루살렘 히브리대의 카페테리어가 폭발하여 8명이 죽고 100여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러한 테러 사건들이 이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언제 어디서 테러가 일어날지 모르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티파다의 기억도 지나가고 코로나 19가 왔습니다. 코로나 19와의 전쟁은 아랍인과의 전쟁도 아니고, 갈등도 아닙니다. 팔레스타인 지역도 코로나19로 인하여서 비상입니다.

예루살렘은 이제 어디를 가도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도리어 이들은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지금까지 드렸던 기도와는 다른 기도를 이들은 드립니다. 이스라엘에서도 코로나 19 확진자들중에 몇몇이 죽어가고 있고, 경제적으로 황폐화가 진전되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해법이 없어 보입니다. 물론 유대인 사회에서는 많은 지원을 미국이나 유럽의 유대인 재난기금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에게 있어서 돈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이며, 건강하게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어떤 이스라엘 기자는 “우리가 가진 민주주의의 제도도 코로나로 인하여 무력해졌다’ 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생활이 아니라 생존이 더 중요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기술강국이면서 벤처왕국인 이스라엘이지만 기술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총체적 난국에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들은 시민들의 생명의 위협을 받는 ‘시민의 위기(Civic Crisis)’를 겪고 있습니다. 또한 선진화된 메디컬 능력을 갖춘 나라이지만 이제는 이러한 능력도 서서히 바닥이 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쳐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코로나 19의 사태는 비단 이스라엘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문제입니다. 초강대국 미국은 하루에도 수만의 확진자가 나오고 사실 국가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입니다. 강소국 이스라엘이 처한 현실과 난국은 타개하기 힘든 수준입니다. 물론 다른 아랍국가들과의 대치상황속에 있지만 도리어 평화의 시기가 오고 있다고 합니다. 서로 전쟁과 갈등을 치루기보다는 자국의 ‘코로나19 비상대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유럽에서 오는 이들중에 특히 이태리에서 오는 이들을 원천차단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오는 이들도 거의 차단중에 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성지순례객들이 옵니다. 하지만 이제는 텅빈 예루살렘 올드 시티가 코로나의 위력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알 아크사 모스크(황금돔사원)도 지금 출입을 금지하고 있고, 정통파 유대인들이 사는 지역(메아 셰아림)도 봉쇄 중입니다. 한산한 거리에서 들리는 것은 아랍 모스크에서의 이맘들의 독경소리와 연일 방송되는 코로나 뉴스들입니다. 예루살렘의 집들마다 아마도 기도소리와 탈무드를 읽는 소리가 많을 것입니다. 이들은 이런 고통이 곧 영적으로는 축복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19가 주는 의미나 교훈보다는 이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릴까봐 더 걱정합니다. 코로나 트라우마가 걸프전이나 인티파다보다 더 크고 길것입니다. 필자도 코로나 19로 고통받는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전에는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이제는 코로나 19가 조속히 물러가고 이들이 건강하게 일상이 회복되어지길 더 기도합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제 ‘일상이 이다지도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매일 아침 목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가 서로를 분리할 것인가, 아니면 통합할 것인가의 고민은 둘째입니다. 코로나 19가 쉽게 물러갈 것 같지 않고, 사태가 장기화 될 것이라는 비관론이 대두되는 가운데 사람들의 삶은 도리어 개인화되고, 더욱 가족주의(familism)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뉴 노멀(New Normal)이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코로나 사태는 전대미문입니다. 처음 겪는 전염병 국가위기입니다. 전무후무한 코로나 19의 위력앞에 연약하지는 예루살렘이지만 도리어 무릎 꿇는 희망의 도시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도성’ 이면서 ‘평화의 도성’ 예루살렘도 여전히 구별된 도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고통과 희망이 나란히 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의 코로나 19가 주는 의미는 바로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의 세기가 찾아 왔음을 보여주는 시그널입니다.

 

  • 트럼프도 이스라엘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노력은 인정한다.
    트럼프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해소하고자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 베냐민 네탄야후 전 수상 - 코로나 상항에 연설하는 모습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