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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강연 이야기

시험 받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 소크라테스와 카뮈

by 코리안랍비 2022.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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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살만한 가치]와 카뮈의 [시지프 신화]

“사유하지 않는 삶(검토되지 않는 삶으로도 번역)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
- 소크라테스 Socrates

얼마 전 [네이버 문화정전 강연] 프로그램에서 이태수 교수님의 희랍철학 강의를 들었습니다.[서양철학은 소크라테스 이전과 소크라테스 이후로 나눌 수 있다]는 것에서 흥미로운 대목이 나타났습니다.
노학자의 강연은 나에게 이해를 넘는 충격을 주는 것입니다.

소피스트들(소피아가 지혜이고 이를 추구하는 이들이니 실은 대단한 칭호)은
자연에 대한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탐구에서부터 그 개념 도구를 만들고 받아들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그런 자연만 탐구하는데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철학이라는 것을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길을 열어준 사람입니다.

자연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만물의 근원이 무엇이고, 지구나 우주라는 것의 시작은 무엇인가? 에 대한 논의는 소크라테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식주의자나 수사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희랍철학 강의가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지금 세상에서 과연 남는 철학은 무엇일까? 소피스트들의 철학일까? 아니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의 철학일까? 아니면 동양철학일까? 남는 철학은 과연 무엇일까?

귀결점은 [남는 철학이라는 것은 곧 살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나름의 답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알베르 카뮈입니다. 책을 보면 그는 철학의 고장 알제리와 프랑스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그는 장 그르니에라는 철학선생에게 [철학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는 22살의 나이에 [철학과]를 졸업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선생보다도 더 철학과 문학에 조예가 더 깊어졌습니다. 물론 그는 40 후반에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미친 영향은 대단합니다. [가장 뛰어난 프랑스인] 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르트르]보다 먼저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여기서 노벨 문학상을 먼저 받아서 대단하기도 하지만 이것을 빌미로 단순히 [까뮈는 대단한 사람이야] 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그는 ‘통찰력과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뭔가 중요한 것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쓴 [시지프스의 신화]의 서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카뮈는 [자살 -suicide]에 대해서 또 말합니다.

“그것은 ‘인생은 굳이 살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고의적으로 죽음을 택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습관의 가소로운 면, 살아야 할 심각한 이유의 결여, 법석을 떨어가며 살아가는 일상의 어처구니없는 성격, 그리고 고통의 무용성을 본능적으로나마 인정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 구글출처 이미지 - 카뮈와 사르트르 두 라이벌



그는 부조리에 대한 인식은 곧 죽음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일관성 있는 철학적 태도는 반항이다.”

참 고민이 되는 구절입니다. 너무 깊이 고민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볼 일입니다.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는 바로 소크라테스가 말한 [생각하지 않는 삶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라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자기 자신의 생각을 넘어서는 생각이 바로 철학이라면,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 다른 것들을 다 부차적인 것입니다. 카뮈는 철학이라는 것이 바로 [삶과 죽음]만 다루면 충분하다고 본 것 같습니다. 그의 다른 주장도 있습니다.

“세상이 3차원으로 되어 있던, 인간의 사고가 13가지이든 죽음 앞에 다 부차적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것은 과학적인 지식,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 다른 사회과학에 대한 통찰력이 중요하더라도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다양한 사고력과 생각의 폭이나 종류도 [죽음] 앞에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보면, [철학하기]가 우리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철학이라는 것이 너무나 지식이나 학술로 빠지는 것보다는
이제는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 대한 것으로 귀결해야 함이 마땅해보입니다.
우리가 [철학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카뮈가 본 세상은 상당히 [부조리]한 세상이었죠. [부조리]한 세상에서도 그는 철학이라는 무기로 대항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관되게 부딪쳐야 할 철학적인 도전은 [반항]으로 본 것입니다.
반항이라고 해도 좋고 저항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카뮈가 마지막 [시지프스 신화]의 종결부에서 밝힌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세계와 나의 정신 사이의 갈등과 마찰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바로 그에 대한 나의 의식 자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만약 내가 그것을 견지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항상 새로워지고 항상 긴장을 유지하는 항구적인 의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지금 당장 내가 인식해두어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시지프스 신화]는 이래서 필독하도록 강추합니다.

이 책을 다시 읽고 또 읽어보렵니다.

당대 한국의 최고의 희랍철학자의 말에서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말한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 만물에 대한 사유를 다 할 수 없다는 인식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는 전제입니다.

다시 희랍철학자인 이태수 교수가 강의 중에 다른 것들은 부차적이고 이 한 말씀이 크게 기억납니다. 하나의 메시지가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나의 삶의 50%의 영향은 소크라테스의 [검토되지 않는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와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였다”

  • ㅜ글출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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