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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경영학16, 신의 화타와 조조 그리고 관우의 병고침

by 코리안랍비 2022.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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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 이면서 신의였던 화타
조조의 두통, 관우의 오른 팔
  • 구글출처 이미지



고등학교 시절에 월탄 박종화 선생의 [삼국지]를 읽으면서 가장 서프라이징한 대목을 만났는데, 그게 바로 신의 화타에 대한 스토리이다.

화타의 진료기록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조조와 관우에 대한 것이다.화타가 조조의 두통을 치료하려고 했던 대목과
관운장의 팔에 독화살을 제거하는 수술의 대목이 가장 유명하다.
물론 동오의 손권의 부장인 주태를 치료하는 장면도 유명하다.

그런데 삼국지 경영학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다시 화타를 만나게 되었다.
나관중은 왜 화타를 이리도 등장을 많이 시켰을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궁금할 것이다. 화타의 의술은 당대 최고였다. 그러나 화타는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다.
당대에는 영웅들의 시대였고, 강하고 담대한 영웅들은 인정을 받고, 도리어 신의 경지에 다다른 의술을 가진 화타 라는 인물들이 푸대접을 받던 시절이었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화타는 조조의 치료에 관여한 것은 사실이나, 관우의 팔을 고친 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관중이 자신이 소설에 죽은 화타를 등장시켜서 치료한 것이다. 죽은 화타를 소설속에서 다시 환생시킨 것이다.

관운장의 팔을 고친 사람은 화타가 아닌 화타의 제자였다.
이것에 대한 설명은 뒷부분에서 할애하기로 하고 화타에 대한 나의 글을 전개하려고 한다.

화타라는 인물은 당대에 실존했던 인물이고,편작과 더불어서 중국의학의 대명사로 꼽힌다.이집트에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있고,한국에는 [동의보감]을 지은 명의 허준이 있고, 사상의학을 수립한 [이제마]가 있다. 이들은 모두 공통점이 바로 '명의'라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학에서는 [화타와 편작]이 가장 유명하고, 중국의 의학도들은 이 두 사람을 목숨처럼 흠모하고 따른다고 한다. 이들이 바로 신의 경지에 다다른 의술로도 유명하지만 마음으로 치료했다하여 '심의'라고 부른다.


최근에 안타깝게도 죽은 [리원량]이라는 의사가 있다. 안과의사지만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확산을 예견하고, 중국 정부가 코로나 19에 비상대책을 세우고, 전염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부에 의해 거부당하고 도리어 탄압을 받았으나, 환자들을 끝까지 돌보다가 자신도 코로나 19에 감염되어 죽게 되었다. 너무 젊은 날 요절한 의사여서 안타깝지만 그는 의사로서의 본분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환자곁을 지키다가 떠났다. 그는 크리스찬 의사였다고도 한다. 중국은 아직 의사들에 대한 깊은 존중과 경의심이 크게 부족하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의사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치료라는 의사요 의로운 의사다.<2020년 10월 4일 글이다>


화타의 진료에 대해서는 삼국지 위지(魏志)의 화타전 및 그 주석에서 인용된다.여기서 약 21가지 예가 들어 있다.

화타의 경우 신의라는 소리를 듣는 대목이 여러군데 나온다.

“병이 몸 안에 ‘덩어리가 되어’ 침으로도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경우는몸을 ‘갈라 쪼개어’ 즉 절개한다. 그 때에 마비산 또는 마폐탕(현대의 마취약)을 먹이면 취하여 죽은 상태가 된다. 병이 장 속에 있으면 장을 잘라 내어 씻은 뒤에, 배를 꿰매고 고약을 바른다. 통증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 치료가 끝난다.”<삼상의부 - 관우의 창상과 화타> (*마비산의 성분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지만 아마도 대마초 또는 마리화나였을 것이라고 본다. - 삼국지 사이언스)


중국의 [몸으로 본 의학사]를 보면 그 당시 이러한 전신 마취법이나 개복 수술을 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삼국지 화타전에 등장한 기록을 한번 살펴보자.

[또 어떤 사대부가 있었는데 낫지 않았다. 타佗가 말하기를 “당신은 병이 심하다. 마땅이 배를 갈라 꺼내야 한다. 그래도 당신의 목숨은 역시 10년을 넘지 못한다. 병이 당장 당신을 죽이지는 못한다. 당신이 병을 십 년 동안 견디면 수명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진하여 수술 받는 것만 못하다” 라고 하였다. 사대부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마침내 그것을 제거하려 하였다. 드디어 타佗가 손을 대어 아픈 곳을 찾아내 고쳤고 십년이 지나 그가 죽었다.]


[또 어떤 사람이 배에 병이 났는데 가운데가 끊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십여 일 사이에 터럭과 눈썹이 빠졌다. 佗가 말하기를 “비장이 반이나 썩었지만 배를 갈라 치료할 수 있다” 고 하고 약을 먹여 눕힌 뒤 배를 갈라보니 비장이 정말 반은 썩었다. 칼로 잘라 나쁜 살덩이를 도려내고, 고약을 상처에 바르고서 약을 마시게 했다. 백 일 만에 회복되었다.]


이상은 삼국지 화타전에 나오는 대목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19세기에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마취법이 1,2세기에 가능했고, 지혈법이나 소독법도 가능한지 의문시된다. 지금으로 말하면 몸을 복개한 외과수술을 했다는 것만 보아도 놀라운 의술의 경지에 다다른 인물이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화타논쟁]이 있었다. 화타가 심지어 페르시아 사람이라는 주장도 있다. 페르시아어로 후아다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화타라는 이름은 대음이었으며 ‘의술에 뛰어난 선생’ 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 지나친 비약이라고 본다. 다만 의술에 뛰어난 선생은 들어 맞는다.

중국의학은 그냥 발전한 것이 아니라, 아마도 인도나 페르시아에서 온 의료인들과의 교제나 교류가 상당히 있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삼국지로 다시 돌아가보자.

조조는 두풍(頭風)이라는 지병이 있었고, 화타를 불러서 치료시키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러나 화타는 자신의 고향으로 가고 싶어서 부인의 병을 핑계로 물러가 버렸다. 평소 조조는 의술을 마치 도술이나 방술로 보고 화타를 그리 존중하지는 않았다. 그가 고향으로 가자 조조는 자신의 권세로 그를 돌아오라고 재촉하고, 그래도 오지 않아서 그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게 되었다.

측근 모사 순욱이 말하기를 “화타의 기술은 참으로 뛰어납니다.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 있으니 마땅히 받아들여서 화타를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말했지만 조조는 “걱정할 것 없다. 세상에서 이런 쥐새끼 같은 놈들은 당연히 없애 버려야 한다”고 했다. 이같이 화타는 조조에게 ‘쥐새끼 같은 놈’ 정도로 여겨졌다.
이 대목을 보면서 조조에 대해서 다른 생각이 든다. 조조가 화타를 자신의 주치의로서 존숭하였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런 역사의 흐름을 알 갈이 없었다는 것이 조조의 문제라면 문제였다. 리더는 역사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경천애인의 리더]를 최고의 리더로 치는 것이다.

이제 화타는 자신이 의사가 된 것을 후회했고, 조조는 지병의 재발과 사랑하는 아들 조충의 요절(208)에 직면하여 화타를 죽인 것을 결국 후회하였다. 당대에 화타만한 사람은 없었다. 조조는 죽을 때까지 두통이 계속되었고, 난세의 간웅은 65세의 일기로 사망하게 된다. 어떤 이는 나처럼 화타가 조조의 두통을 치료했다면 삼국지의 판세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화타]에 대한 연의의 기록이 있지만
화타의 직접적인 죽음이 원인이, 삼국지의 조조가 주치의로
자신의 군영에 머물러 주기를 명령하자 자신을 필요로 하는 백성을 치료하러 가야 한다면서 명령을 거부하여 사형을 당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한다. 그리고 그는 "의사는 환자 앞에 있어야 한다"는 말을 남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의사의 경지가 아닌 성인의 경지에 이르른 분이라고 여겨 '의성'이라고 부른 것이다.
물론 마지막에 자신이 감옥에서 의학서를 만들었으나, 이 의학서를 받은 간수의 부인이 이를 태우는 기록도 있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이다.

삼국연의에는 오나라에 의해 관우가 죽고 나서 관우의 목이 조조에게 전달되어진다. 그런데 관우의 머리가 눈을 부릅뜨는 신비체험을 겪은 후 조조는 심각한 두통에 시달리고, 백방으로 의원을 수소문한 끝에 화타를 불러 들이게 된다. 화타는 “마비산으로 마취를 한 뒤에 도끼로 두개골을 뻐개어 뇌 안의 병든 부분을 꺼냐야 합니다.” 라는 대담무쌍한 제안을 올린다 그러나 의심이 많아진 조조는 화타에게 자신이 목을 내 놓을 리가 없었다. 당시 뇌수술을 시도하려고 했다는 것인데 이는 기절초풍할 일이다. 그래서 화타가 옥에 갇히고 결국 옥사를 하게 된다.

두통에 시달린 조조

화타는 원래 패국의 재상과 태위에 의해서 효렴(孝廉)이라는 높은 관직에 추천받았지만, “사람이 본성은 악해서 헤아리가 어렵다.”

“재능을 믿어서 벼슬하기를 싫어했다” 고 전해온다. 그래서 속박이 싫어 주방의(走方醫) - 지금으로 말하면 순회의사의 길을 택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화타가 삼국지의 관우의 팔을 고친 이야기로 가보자. 여기서 나관중은 조조에 의해서 죽은지 11년이 된 화타를 등장시킨다. 그렇지만 먼저 연의에 등장하는 화타의 치료에 대해서 발설하지 않을 수 없다.

관우가 독화살을 맞고서도 태연하게 바둑을 두었다는
대목은 믿기 어렵다. 아마도 화타의 [마비산]이 관우의 통증을 상당히 완화시켜 주었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에서 발간된 [화타와 편작 열전]이 있다. 이 열전을 기초로 하여 삼국연의와 같이 연결지어본다. 그 스승에 그 제자인 것처럼 오보라는 의원은 중원천하를 떠돌며 백성들의 병을 고치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바로 조조에 의해 스승이 살해되고 조조의 땅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이다. 원래 관우를 치료한 인물은 화타가 아니라 화타의 수제자인 [오보]라는 사람인 것이다.

오보는 관운장에게 “대장군께서 저의 치료를 받고 나으시어 반드시 조조의 머리를 잘라 준다면 저는 스승의 원한을 씻는 것이 됩니다.” 하면서 약을 쓰기에는 늦은 관운장의 팔에 박힌 독화살촉을 제거하고 소독해야 함을 말한다.

그때 마량이 말한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의 뼈를 깍겠다는 것이요?”

“이보시오, 오보 의원 하타의 마비산이라고 있으면 모를까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 뼈를 어떻게 깍아낸단 말이오?”

오보는 “지금으로는 다른 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한다.
이에 곁에 있던 관우가 조용히 눈을 감고 말한다.

“오보 선생, 시간이 없으니 빨리 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하오”

그리하여 오보는 관운장의 입에 막대기를 대고 어금니로 꽉 물도록 하였다.
그런 와중에 관운장은 부관과 함께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오보의 칼이 관운장의 오른팔에 닿고, 날카로운 칼이 살을 베어내고, 뼈에 묻은 독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관운장의 얼굴엔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얼마후 상처부위에 약을 뿌리고 정성스럽게 붕대를 감고는 수술이 끝난다.

관운장은 말한다. “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로군요”

그리고 수일후에 오보는 관운장에게 다시 한번 조조의 명을 거두어 줄 것을 간언했고, 관우는 이를 받아들였다.관운장의 청룡언월도를 들고 휘둘러야할 오른팔이 치료를 받았다는 것은 곧 소문이 났다.치료를 받아 청룡도를 다시 든 관우의 오른 팔은 나중에 인구에 회자되고, 나관중은 오보대신 화타를 등장시켜서 관우를 더욱 삼국지의 레전드로 만들어갔다.

삼국지의 이야기가 자칫 장수들과 모사들의 전략게임으로만 치우치기 쉽다.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들과 전설도 같이 아울러 보아야 한다. 화타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기로 하고, 다음에 더 디테일한 글로 만나기를 바라며 의사라는 존재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예나 지금이나 건강과 더불어서 병을 고치는 의사라는 존재는 중요하고 중요하다. 병든 자들을 고치고, 상한 자들을 치료하고, 죽어가는 자는 살리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는 의술인들을 존중해야 한다.

지금 전세계는 코로나 19로 인하여서 초비상상황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감염되고, 죽어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자신이 가진 의술과 희생으로 봉사하는 의료진들이 있다. 이들은 21세기 화타요, 편작이요, 허준이다.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코로나 19가 하루바삐 사라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금까지 의성 화타에 대한 열전을 다루었다.
이 글을 완성하고 나서도 이상하게 아직 추가사항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성 화타와 더불어서 또 하나의 의성은 바로 [편작]이다.

그가 말한 6가지 불치병에 대한 기록을 말하고
나의 [의료인에 대한 신뢰]를 더욱 공고히 한다.

첫째, 환자가 교만하고 방자하여 의사의 치료에 어긋나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고칠 수 없다 . 둘째, 자신의 몸을 가벼이 여기고 몸과 재물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병은 고칠 수 없다. 셋째, 옷과 음식이 적절함을 벗어나는 것 또한 불치병이다. 넷째, 음양의 평형이 깨져서 오장의 기가 안정되지 않는 경우이다. 다섯째,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도저히 약을 받아들 일 수 없는 상태다. 여섯째, 무당의 말을 믿고 의사의 말을 믿지 못하는 환자이다.

이상 편작의 불치병에 대한 기록이다. 화타의 이야기를 하다가 편작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로 삼국지에 이런 불치병을 가진 이들이 있어서 그렇다.

일단 교만한 조조가 불치병자였다. 또한 완벽주의 전략가 제갈공명이다. 그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쉼도 없이 주야로 '나 아니면 일처리를 못한다'는 식의 완벽주의를 추구하여서 그가 53세의 나이로 대업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편작의 말을 들었다면 그는 촉의 판도를 뒤업고, 천하를 통일했을지도 모른다. 나중 [사마의]편에서제갈량의 죽음에 대해서 논할 것이다.

화타에 대한 언급은 삼국지 경영학에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려 했으나,
화타라는 사람을 삼국지연의에 등장시킨 나관중
이 저자 덕분에 넣어야 했다.

그가 화타라는 사람을 삼국지연의에 넣었다는 것은 평소 화타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화타는 의술을 하기 전에 [선비]였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아무리 좋고 훌륭한 글보다 더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관중은 삼국지를 약 20여년 이상 쓰면서
부인은 도망가고, 자식들은 굶어 죽을 지경이었다고 전한다.
그가 그토록 [삼국지연의]를 쓰려고 집착했다는 것을 보면 그저 아연실색해진다.
그는 그것을 쓰고 명예를 얻었으나 처자식을 잃은 불의의 사람이다.
마르크스도 [자본론]이나 다른 [공산주의 선언]을 썼으나 그도 부인과 자식들을 굶주림과 아사에 시달리게 하였다. 천재 [에밀]이나 [고백록]을 쓴 루소도 마찬가지이다. 자식들을 고아원에 보내고도 교육신서를 썼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화타라는 사람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최소한의 마음을 담아서 여기에 나의 글로 남긴 것이다. 아울러 편작의 불치병에 대한 기록도 알아두기를 바란다. 예나 지금이나 의사는 중요하다. 신약성서는 말한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성서의 예수께서도 의사와 환자를 존중하셨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화타는 신의였지만 한편으로 선비였다.
그래서 삼국지에 [선비론]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삼국지에 담긴 유가적인 [선비사상]에 대해서 발굴하여 삼국지 인문학에 포함시키고 싶다. 아직 이 연구에 대해서는 거의 이루어져 있지 않으나, 잘 발굴하여 많은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선비정신은 지금도 중요한 에토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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