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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과 고전 이야기

공감하는 당신이 아름답다.

by 코리안랍비 2023.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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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는 당신이 아름답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공감능력이다.
공감은 영어로 compassion이다.
이는 열정passion이라는 단어와 그리고 함께 라는 단어인 com
이 합성된 말이다. 즉 함께 가지는 열정이다.
살다보면 공감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순간 순간 발견한다.
공감능력이 결여된 사람도 있고,
공감능력이 과잉된 사람도 있다.
공감능력은 내가 남의 아픔과 기쁨과 공감하거나
남들이 내 감정과 처지에 공감할 때 놀랍게도
치유의 능력이 상호간에 작용하게 된다.


헨리 나우웬은 [상처입은 치유자]에서
[치유라는 것은 상처가 적은 사람이 상처가 많은 사람을 안아주는 것이다]
라고 한다.
남의 아픔과 상처가 자신의 아픔과 상처처럼 공유되어질 때, 공감이 일어난다.

방송인 김수민씨가 쓴 글을 보니, 공감의 중요성을 많이 발견한다.
그녀는 갈수록 공감능력을 상실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잔인해지는 것을 생각해 보면서,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데서 오는 생의 기초가 결여되어서 그렇다고 판단한다.

남의 입장과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의 태도가 결여되어 있음도 지적한다. 남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남을 짖밟는 의식이나 행동이 점점더 늘어나고 있다. 남의 감정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감정에만 충실한 것이 바로 지독한 이기심이다.

공감능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장소는 가정이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공감능력을 자연스럽게 가르쳐 주고, 상호교감하는 연습이 많아야만 화목하고 좋은 가정이다. 그렇지만 갈수록 한국에서는 가족의 해체가 심각해지고 있다. 가족간의 대화도 많이 사라지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노령화되어가고, 고령화되어가는 한국사회의 현실과 앞날이 그냥 두렵다. 나의 집안의 상황을 보아도 그럴고 우리 주변의 상황을 보아도 그렇다.
한국 부모는 세계에서도 자식사랑이 지나치다. 부모는 오로지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 노후대책 없이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경제적으로 자식들의 부양을 받을 만한 처지의 노인들이 많지 않다. 부모는 거지같이 살고, 자식은 귀족같이 산다는 말도 나온다. 노인부부나, 홀로된 노인을 보면 병든 몸과 외로운 마음에 공감해 줄 수 있는 가족이 주변이 없어진다고 느껴질 때 생의 한계를 경험한다. 그래서 극단의 선택을 하는 노인들이 많다고 한다. 또한 늙은 부모를 학대하고 방치하는 것도 그들의 외로움과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엘리에젤은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하였다. 가족에서부터 무관심이 가장 큰 무관심이다. 이 이기적 무관심에서 벗어나는 것은 실상 개인의 몫이다. 가족의 몫이다.

이 이야기가 공감능력을 끌어낼지는 모르지만,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여서 실감이 갈 것이라고 믿는다.

추운 겨울날 한 엄마와 아들이 육교 밑에서 구걸하는 한 거지 노인을 만났다.
아들이 엄마한테 '엄마, 저 할아버지 너무 춥겠다, 돈 가진 것 있어?"
라고 하자 엄마는 "그래, 많이 추우시겠구나, 이 돈 두손으로 할아버지의 깡통에 넣어드리고 오렴"이라면서 만원짜리 한 장을 주었다.

잠시 후 두 번째 가족이 지나간다. 아이가 "엄마, 저 할아버지 봐, 돈을 좀 갖다 드릴까?" 라고 하자 엄마는 아들에게 "야 임마, 정신을 차려, 너도 평소에 공부를 안하면 저렇게 돼, 알았어? 라며 냉담한 표정을 날리고 지나갔다.

세월이 흘러 이 아들들이 장성했을 때 엄마가 전화를 한다.
"아들, 엄마가 오늘 너무 아픈데, 좀 일찍 올 수 있니?"
이때 전자의 아들은 이런 반응을 한다.
"음, 어머니, 많이 아프세요? 조금만 기다려요, 오늘 회식인데 부장님한테 얘기를 하고 약 지어가기고 빨리 갈께요"

그런데 후자는 이렇게 반응하며 언성을 높인다.
"아니,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어! 평소에 자기관리를 좀 잘 하라고 했지?아휴 정말 바빠 죽겠는데 집까지 협조를 안해주네..."

이 이야기는 지어낸 것이 아니다. 실제 상황이다.

행복한 가정은 행복한 이유가 있으나 잘 보면 말에서부터 공감능력이 높은 집이다.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으나 공감능력이 결여가 심각한 집이다.

공감능력을 키우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철저한 이기주의자 에고이스트이다.
자기만 아는 사람이다. 결국 자기도 모르는 사람이다.

공감능력을 잘 키운 사람은 휴머니스트 - 인문주의자가 된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의식의 확장을 이룬 사람이며, 인류발전에 기여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참 멋있다.

어느 모임이나, 어느 장소에 가보아도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이 많은 곳은 정말 복받은 곳이다. 그런 사람을 중심으로 그 모임이나 조직이 돌아간다. 리더는 공감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그런데 공감능력을 키우는데 가장 쉬운 방법을 가르쳐 드린다.
1.2.3 법칙이다. 탈무드에 신이 인간에게 하나의 입과 두개의 귀를 주신 것이
바로 말하기는 반으로 하고, 듣기는 두배로 하며, 맞장구와 칭찬은 3배로 하라는 말이다.

사실상 말을 독점하면 친구를 잃는다.(이것도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적을 도리어 많이 만든다. 말이 많으면 반드시 실수를 하게 되고, 그 실수가 많아지면 주변 사람들이 떠나게 된다. 그런데 듣기를 잘하면 반듯이 본전을 찾는다. 하지만 듣기에도 함정이 있다. 듣기는 하는 것 같은데, 말은 다른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은 잘못 듣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경청]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한다.
경은 기울일 경이며, 청은 들을 청이다. 기울여서 듣는다는 말이다.

기울여서 듣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결국 타인에 대한 이해가 낮은 사람이다. 마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은 잘 들어주고, 잘 말해주는 사람이라는 오해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렇다면 이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 못한 사람이다. 결국 그것은 교만한 것이다. 겸손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공감의 말을 해주어야 한다. 대화의 능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공감의 말이다. 공감해주고, 이해해주고, 수용해주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다.

참 말이 난무하는 시대이다. 말이 말같지 않은 것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어수선하고 복잡한 시대에는 공감하는 사람이 빛나게 되어 있다. EQ
연구(감성지능)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교 교육심리학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는 "공감하는 사람이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라고 하였다.

물론 그 전에 괴테는 "상상력이 좋은 사람이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라고 하였지만... 상상력과 공감능력을 둘다 가지고 있다면 정말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다.

나는 과연 공감능력이 어느 정도 인지 아는가?
잘 모른다면 남을 상대할 때 최대한 공감의 표현으로 대해보라.
그러면 이상하리만치 행복해지고, 감격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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