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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과 고전 이야기

명길묻3,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인문학적 읽기

by 코리안랍비 202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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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이다. [노인과 바다]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한국 사람들이면 이 작품을 한번쯤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왜 이 작품이 그리도 잘 읽히고, 인기가 많을까? 이 소설은 중편이다. 짧고 간결한 문장이 압권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헤밍웨이가 살았던 쿠바라는 나라가 떠오르고, 바다에서 물고기들을 잡는 어부의 일생이 떠오르고, 무엇보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를 논하기 보다는, 이 작품이 갖는 위대성을 논하고 싶다.

카리브해의 진주라 불리우는 쿠바(Cuba)는 헤밍웨이가 사랑한 나라이다. 그러면서 혁명가 체 게바라의 나라이다. 쿠바는 이 두 명이 먹여 살린다고 할 정도로 이들의 흔적이나 루트를 찾아 전 세계에서 여행객들이 몰려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위대한 남자들은 쿠바 출신이 아니다. 이 둘은 사실상 세상에 돌은 던진, '문제적 인간들'이었다.
헤밍웨이의 일생은 카리브해의 너울성 파도와 같다. 헤밍웨이의 전반기의 일생은 화려하고, 웅장했으며, 멋있었다. [노인과 바다]는 그에게 엄청난 문학적 성공을 가져왔다. 그러나 후반생은 심각한 우울증과 지병으로 술과 함께 보낸다. 그리고 1961년 7월 부친의 총기자살과 같은 방법으로 자살함으로써, 불우한 가족사를 남기고 최후를 맞이한다.

  • 영화 노인과 바다의 - 앤소니 퀸의 모습 - 너무 리얼하다

구글 출처 이미지 - 위대한 소설가의 위대한 생애를 만날 때마다 나는 감격한다.



다시 시간을 되돌려서, 낚시광인 헤밍웨이는 1928년 낚시여행으로 처음 쿠바에 발을 디딘다. 그리고 그 후 약 28년간 쿠바에서 지낸다. 왜 그는 쿠바라는 나라 거기서 반평생을 살았을까? 그의 작품중에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썼던 암보스문도스 호텔, 소설 [노인과 바다]의 배경지인 코히마르가 있다.
이 코히마르에는 그가 잘 가던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가게의 이름은 '라 테레사'이고 거기서 유명한 '모히토'라는 술을 즐겨 마셨다.

헤밍웨이는 소설 [노인과 바다]로 1953년에 퓰리처상을, 이듬해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코히마르(Cojimar) 는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거기서 20분간 차로 가면 작은 어촌마을이 있는데, 그 소박한 마을에는 아직도 [노인과 바다]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헤밍웨이는 코히마르에서 낚시를 즐겼고, 그곳의 어부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풍류를 나눴다. [노인과 바다]는 그가 코히마르 어부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내용을 중심으로 써졌다고 한다.

코히마르에서 '라 테라사' 레스토랑은 헤밍웨이의 단골가게이며, 그 앞에는 청새치 물고기 입간판이 있고, [노인과 바다]의 실제 장소이기도 하다. 여기서 노인의 유일한 친구인 소년 마놀린이 노인 산티아고를 위해 커피를 받아왔던 곳이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로 노벨상을 받으면서, 자신을 '쿠바입양인' 이라고 했으며, 그래서 행복하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서재에서 처음 [노인과 바다]를 접했다. 그리고 엔소니 퀸이 주연한 [노인과 바다]영화를 구경하기도 하였다. 재미있게도, 존 스터시스 감독이 [노인과 바다]를 찍을 때, 헤밍웨이는 반드시 코히마르에서 찍어야 한다고 하여, 이 영화는 그곳 풍광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한다. 그곳 해변에서 뼈만 남은 6미터가 넘는 청새치의 모습을 그려보면, 헤밍웨이의 넓은 관찰력이나, 깊은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잠시 생각할 거리가 되는 줄거리를 나누어보자. 중간 중간 필자의 생각이 담겨 있다.

"산티아고라는 노인은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고기잡이하는 노인이다. 그는 84일 동안 고기 한마리도 못잡고 허송세월을 보낸다.(필자의 생각에는 작은 고기보다 큰 고기를 잡고자 하는 바다의 달인이기에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자존심도 강한 노인이었음에 틀림없다.)처음 40일 간은 풋내기 조수 - 마놀린- 이 같이 있었지만, 40일 동안 한 마리도 낚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마놀린을 산티아고의 배에 태우지 않는다.
어느 날, 노인은 홀로 바다 한 가운데 나가서 커다란 청새치 한마리를 낚는다. 무려 길이가 6미터가 넘는 거대한 물고기이다. 물고기가 워낙 커서 하룻밤과 하눌 낮을 물고기에게 끌려 다니다가 죽을 힘을 다해 싸워 두 번째 밤이 밝을 무렵 마침내 물고기를 배에 붙들어 맨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청새치가 바다 위에서 벌이는 사투를 마치 옆에서 지켜보는 듯이 생생하게 묘사한다. 잠시 그 대목을 삽입한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뭍이 보이지 않았다. 뭍(육지)이 보이지 않아서 어떻단 말인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난 언제든지 아바나 쪽에서 비치는 밝은 빛을 보고 항구로 돌아갈 수 있거든, 해가 지려면 아직 두시간이나 남았고, 어쩌면 그때까지는 고기 놈이 올라와 줄지 모르지. 만약 그때까지 올라와 주지 않는다면 달이 떠오를때까지 올로와 주겠지, 또 그때까지도 올라오지 않는다면 내일 아침 해가 뜰때는 올라와 주겠지, ...... 저놈 낯짝을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내 상대가 어떤 놈인지 알기위해서라도 꼭 한번만이라도 꼭보면 좋으련만. "

  • 청새치와 - 사투를 벌이는 - 노인
    구글출처그림


노인은 돌아오는 길에 상어떼의 습격을 받고 사투를 벌이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에게 소년이 있다면...."
이 말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인생이 외롭다는 뜻이된다. 인생들은 고난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면서 외롭고 힘든 고독한 싸움을 하는 존재라는 말이다. 함께 동행해 줄 이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우릴 우울하게 하는지 모른다. 결국 인생은 함께 가는 것 같지만 홀로 가는 것이다.
노인은 또한 물고기를 잡아 놓고 허기를 달래면서 뜻모를 한탄을 한다.

"내가 소금을 가져왔더라면..."
하지만 그는 가지고 있는게 없다. 잡은 생선을 먹으려면 소금이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에 꼭 필요한 것이 없을 수도 있다는 반증이다. 헤밍웨이는 인생에서 필요한 것은 반드시 잘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항구에 돌아와 보니 물고기는 뼈만 남게 된다. 노인은 그래도 만족을 한다. 그 청새치는 헤밍웨이에게 노벨상이었는지 모른다. 대어를 낚았지만 여전히 허무한 상태를 말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은 만족이다. 만족은 충만한 마음의 상태이다.

  • 거대한 청새치와 - 사투를 벌이는 - 노인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는 과연 누구일까? 노인은 모든 생명의 어머니인 바다를 동경한다. 그리고 그 바다가 품고 있는 생명체인 물고기에게 형제와 같은 유대감을 느낀다.

"노인은 몸뚱이가 뜯겨 성하지 않게 되어 버린 고기를 이제 더 이상 바라보고 싶지가 않았다. 고기가 습격을 받았을 때, 마치 자신이 습격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내 고기를 공격한 상어를 죽였어,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 차라리 이게 한낱 꿈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고기는 잡은 적도 없고, 지금 이 수순간 침대에 신문지를 깔고 혼자 누워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
"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노인과 바다의 최고의 명대사중의 하나)"

이 대사속에서 대양의 푸른 파도를 헤치면서 바다의 왕자처럼 살아온 거대한 청새치이지만, 이제는 꼼짝없이 온몸을 상어떼에게 물어 뜯기는 처지이다. 한편으로 노인에게 물질적으로 볼때는 확실히 패배를 당한 것으로 보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것이기에 패배라고 볼 수 없다. 노인의 눈에는 상어 떼들에게 무력하게 당하고 있는 청새치의 모습이 마치 욕심많은 사람들이나 영악한 사람들에게 밀려나 초라해져가는 늙은 어부 자신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쩌면 산티아고 노인이 헤밍웨이 자신의 실존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 구글 일러스트 출처


다시 줄거리로 와서,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고, 다시 상어떼들과 사투를 벌인 노인은 지칠대로 지친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잠밖에 남아 있지 않다. 피곤에 지쳐 잠든 노인의 판잣집에 소년 - 마놀린과 마을 사람들이 찾아온다. 거대한 물고기 뼈를 보고는 깜짝 놀란다. 한참 뒤 잡에서 깨어난 노인은 마놀린과 대화를 나누고는 다시 잠이 든다. 그리고 노인은 아프리카 해변의 사자들 꿈을 꾼다.

'노인은 사자의 꿈을 꾸고 있었다'
이 마지막 대목에서, 노인이 이룬 성취가 허무하게 끝나게 되지만, 여전히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삶의 희망을 불태우려는 노인의 의지가 드러난다.

이 위대한 작품속에서 헤밍웨이는 산티아고라는 노인을 통해,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며, 죽음에 이를 정도로 무서운 절대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은 분명히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의 상자에 남아 있는 최후의 것 - 그것은 희망이다.
그래서 내가 뽑은 [노인과 바다]의 가장 명대사는 이것이다.

"희망을 버리는 건 쑥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그것은 분명한 죄다."

결론적으로 [노인과 바다] 이 작품에서 노인의 만족은 결과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얻어진 것이다. 애써 잡은 청새치를 상어 떼에게 모두 빼앗겨 버리지만, 끝까지 불굴의 정신으로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과정을 통하여 정신적으로 굴복당하지 않는 승리를 얻은 것이다. 정신마저, 희망마저 빼앗길 수 없다는 노인의 불굴의 극기정신은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 놓는다.
이러한 정신은 어부로서의 자존심과 인간으로서의 긍지를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내려는 정신이다. 또한 하나의 어부이자 인간으로서 노인 산티아고의 지극한 자기애(자기사랑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험한 세상의 바다에 살고 있다. 여기서 청새치를 잡아 보려는 성공을 이루어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을 이루어 내더라도, 누군가가 그 성취를 빼앗아 버리기도 한다. 수없는 실패를 겪기도 한다. 파멸당하는 아픔도 겪기도 한다. 우리 인간은 그 결과가 허무하지만 그러나 그 결과에 패배당하지 않아야 한다. 희망의 이름으로 삶을 살아내야 한다. 삶이 힘들고 괴로워도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인간은 아름다우니까...하루 하루 지치고 고단한 몸을 뉘여 단잠을 자면서, 또다시 사자꿈을 꾸어야 한다. 꿈을 꾸자. 노인이 되어서도...

                                                                                     구글 일러스트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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