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명작과 고전 이야기

명길묻2 허먼 멜빌의 모비딕 인문학적 읽기

by 코리안랍비 2022. 9. 8.
728x90
반응형
SMALL



허먼 멜빌의 [모비딕(백경)]



허먼 멜빌이라는 작가를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치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큰고래 모비딕'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모비딕]에 대한 독서평설을 먼저 하기 전에, 이 [모비딕]의 모티브가 되는 성경의 소재를 먼저 밝히기로 한다. 모든 훌륭한 소설이나 저작들에는 나름대로의 코드와 배경이 담겨져 있다. 이 코드와 배경을 따라서 읽으면 읽는 것이 정말로 재미있어진다.

어린 시절 주일학교의 기억이 선명하다. 교회선생님의 [요나와 큰 물고기] 이야기는 한마디로 '어메이징'이었다. 성경속의 이야기중에서 나는 이 대목을 제일 좋아한다. 목사님의 설교는 지금도 안남지만 스토리의 힘은 위대하다. 탈무드에 의하면 '진리를 배우면서 스토리가 같이 가지 않으면 진리는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많은 종교적인 사람들이 저지르는 큰 실수는 진리를 추구하면서, 이야기나 스토리에 전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언컨데, 이야기만이 남는다. 다른 것은 솔직히 안남거나 버려진다. 설사 그것이 진리라도...


성경 구약에 보면, 기원전 8세기경 요나라는 실존했던 선지자(예언자)가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선교명령을 받고 야포(야파)라는 지역에서 오늘날의 시리아 니느웨로 가야 하는데 반대방향인 오늘날의 스페인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거센 풍랑을 보낸다. 배가 뒤집혀질 것 같은 긴박한 상황이었고, 아무리 선원들이 노력을 해도 배를 안정시킬 수 없었다. 이 때 요나가 제비가 뽑혀 그를 바다속으로 던지게 된다. 그러자 갑자기 큰물고기가 나와 요나를 삼킨다. 요나는 고래의 뱃속에서 3일간을 있게 되고, 3일후에는 회개한 요나를 밷어 낸다. 이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지인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선포하는 내용이다.


요나서에 나오는 큰 물고기란 오늘날로 말하면 향유고래나 고래상어일 확률이 크다. 실재적으로 지중해 연안에는 고래들이 출몰을 했으며, 이러한 고래의 존재는 신화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고래의 거대한 몸집은 사람들을 매혹시켜 왔다. 그 때문에 아득한 고대부터 고래의 삶에 대한 환상적인 신화와 전설이 전해져 내려왔고, 고래는 여러 많은 작가들과 시인들, 박물학자들과 역사가들의 기록에 등장한다.


성서 시편 104편에도 '리바이어던'이라 불리우는 "심해를 가마솥같이 끓게 하며" 라며 묘사된 존재가 있다.

"여기 드넓은 바다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피조물들이 움직이고 있다. 또한 그곳에는 배들이 항해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만드신 리바이어던이 파도속에서 놀고 있다."


존 밀턴의 [실락원]에서는 "고요한 물결 위에서 바다표범과 같이 등이 굽은 돌고래가 장난을 친다. 한편에서 거대한 몸집을 가진 무리들이 천천히 바다에 폭풍을 일으킨다. 그것은 생물중에서 가장 큰 리바이어던이다. 하나의 갑주처럼 심연위에 길게 누운 리바이어던이 잠이 든 것인지, 아니면 헤엄을 치고 있는 것인지.... 마치 움직이는 육체처럼 보인다. 그것은 청각기관으로 바닷물을 끌어들이고 자신의 분수구멍으로 바닷물을 한꺼번에 내뿜는다."

기타 수많은 책들이 고래를 말하고, 묘사했다. 하지만 허먼 멜빌의 소설처럼 고래의 이야기를 아름답고 완벽하게 표현해 낸 글은 없다. 작가 자신이 고래잡이 출신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속에서는 작가로서의 재능만 아니라 고래잡이의 관잘차로서의 기질도 함께 응축되어 있다. 허먼 멜빌은 삶의 열정을 고래사냥에 쏟아 부었던 사람이다.


이 글을 쓰면서 가수 송창식의 1995년 [고래사냥]이 떠오른다. 원작자는 '최인호 작가'이다. 그도 [모비딕]이라는 작품에 매료되어서 이 노래를 만들고 불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송창식이란 가수의 음률에 떠올라, 가슴이 흥분을 지울 수 없다. 잠시 송창식 가수의 노래를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감동이 두배는 차오른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잡으러~~

우리들의 사랑이 다 깨진다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린다 해도
모두들 가슴속에 뚜렷이 있다
한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나의 학창시절에는 이 노래가 왜이리 웅장하고 멋있었는지, 지금도 나는 송창식이라는 특이한 가수의 노래에 매료되어 있다. 그는 노래하는 고래가수다. 고래가수라는 것은 고래의 꿈을 노래하는 가수라는 것이다. 이 가수를 다시 나의 삶의 무대로 불러내고 싶다. 멜빌의 [모비딕] 때문에 좋아진 노래이다.


거기에 아름다운 시어로 유명한 정호승 시인의 [고래를 위하여] 라는 시가 생각난다.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 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이 말이 너무나 좋아서 그런지 광화문의 교보문고에도 한때 캘리그라피로 크게 걸린 적이 있었다. 물론, 나도 캘리그라피 작가를 하다보니 그분의 시를 캘리그라피로 묘사한 적 있다. 나에게 정호승 시인은 시를 쓰는 고래시인이다. 고래시인이라는 것은 고래의 꿈을 쓰는 시인이라는 것이다. 새우잠을 자도 고래의 꿈을 꾸어야 청년이다. 나는 아직도 꿈꾼다.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가 사자의 꿈을 꾸었다면, 거친 대양을 질주하는 고래의 꿈을 꾼다.


[모비딕]이 방대하다고 해서 줄거리가 매우 복잡한 것은 전혀 아니다. 이 줄거리를 말하기전에 허먼 멜빌의 삶의 여정을 어느 정도 살펴보는 것이 좋다.
원래 허먼 멜빌은 1840년, 태평양으로 가는 포경선을 타고 이듬해부터 태평양을 횡단하였다. 후에 멜빌은 그의 인생은 이 시점에서 시작되었다고 고백한다. 그 18 달간의 여행을 통해 그는 [모비딕]을 완성하게 된다.

허먼 멜빌의 당대에는 그의 작품이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최초의 해양소설을 개척한 인물이지만, 아무도 그의 작품을 거들떠 보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1921년 그가 죽은지 30년후에 그의 작품이 조명되기 시작했다. 마치 미술가인 반 고흐처럼 말이다. 그 해에 레이몬드 위버가 쓴 [허먼 멜빌 - 뱃사람 그리고 신비주의자] 가 발표되었고, 멜빌의 16권짜리 전집이 발간되었다. [모비딕]은 영화화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위대한 역작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미국의 대표작가인 서머셋 모음은 [모비딕]을 세계 10대의 명작이라고 격찬하였다.

일단 허먼 멜빌의 원작이 방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기 힘들다. 필자도 그 책을 몇번 읽으려고 무진장 애?를 먹었다. 대학 1학년 시절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앉아서 읽었는데, 반도 읽지를 못했다. 단순한 줄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고래 [모비딕]을 잡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작품 전체가 상징적인 면이 강하고, 그 상징들이 매우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 상징주의 문학 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해양소설작품인 [모비딕]. 세상에서 버림받아 마지막 삶터로 바다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쉬마엘의 눈으로 바라본 바다가 펼쳐진다. 에이하브 선장의 한쪽 다리를 삼켜 버린 고래 '백경 - 모비딕'과 고래 턱뼈를 깍아 잃어 버린 다리를 대신하고 있는 에이하브 선장의 목숨을 건 한판 승부가 생생하게 그려낸다.(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신문수 교수)
  • 허먼 멜빌의 - 모비딕- 책표지
    모비딕 책


이 소설은 고래잡이에 대한 박물학 서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고래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필자가 처음 [모비딕]을 읽다가 너무나 많은 고래기사에 놀람을 금치 못한다. 그의 고래에 대한 놀라운 열정에 나는 두번 놀란다. 그래서 우습게도 [모비딕]이 출판되었다고 해도, 문학코너가 아니라 수산업 코너에 꽂혀 있었다고 전한다.(*경향신문) 그가 이 작품에 벌어들인 수익은 고작 556,37달라였다고 한다.

필자가 여기에 놀라운 사실을 담으려고 하는데, 읽는 독자들에게는 재미있는 코너를 소개한다. 100여년전 멜빌의 재평가와 관련된 것이기도 하고, 멜빌은 독자들에게 어려운 작가였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그의 이름을 대중적으로 알리는데 일조한 것은 세계적인 커피체인 [스타벅스 Starbucks]다. 스타벅스와 관련된 책을 읽어보면, 스타벅스 초기 창업자들은 문학적 성향이 강했고, 무엇보다도 [스타벅스]라는 카페는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인 허먼 멜빌의 [모비딕]속 냉철한 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다시 줄거리로 들어가, 그가 [모비딕]을 완성한 것은 불과 32살의 나이였다. 그는 포경선 포퀴드호에 승선한 이스마엘,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흰고래 모비딕에 대한 증오와 광기에 사로잡힌 에이허브 선장, 합리적 기독교도인 일등항해사 스타벅, 이민족이지만 대단한 통찰력을 지닌 퀴퀘크 등이 흰고래 모비딕을 계속해서 뒤쫒는 과정을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모비딕] 속 가장 중요한 인물인 에이하브 선장과 스타벅의 관계도 단순하지 않다. 이들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존경한다. 스타벅은 에이하브 선장이 광인이지만 자신의 "영혼의 빝바닥을 찌르는 힘"이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에이하브 선장은 일등항해사인 스타벅이 진정으로 "신중한 용감성"을 지닌 자라고 평한다.

스타벅은 "짐승을 상대로 복수를 하다니 미친 짓"이라고 만류하지만 에이하브 선장은 아랑곳없다.모디빅을 찾아서 대서양에서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거쳐 태평양까지 항해를 계속한다. 마침내 일본 근해에서 모비딕을 발견해 사투를 벌인다. 그러다 사흘째 되는 날, 에이하브 선장은 모비딕의 눈에 작살을 꽂지만 고래와 함께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그 와중에 피쿼드호도 침몰하고 스타벅을 포함한 선원들도 함께 최후를 맞이한다.


이 항해에서 살아남은 이는 오직 한 사람, 이야기의 서사적 임무를 맡은 서술자인 이슈메일뿐이다. 성서 구약에서는 이스마엘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유대인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집트 여인 하갈사이에서 낳은 아들의 이름이 이스마엘이다. 허먼 멜빌은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모비딕]에 상정하여, 인물의 캐릭터를 살리려고 노력한다.

선장인 에이하브의 이름이 특이하지 않은가? 구약성서 열왕기서를 보면, 아합(또는 아하브)왕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의 부인은 이세벨이며, 대표적인 폭군이며 하나님이 싫어하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우상숭배자였다. 그는 다른 탐욕이 많은 사람이어서 다른 사람의 재산과 생명을 빼앗는 것을 좋아하였다. 허먼 멜빌은 그의 이름을 따서, 에이하브라는 선장을 만들어낸다.

나도 이 글을 쓰면서, 허먼 멜빌의 깊은 성서에 대한 이해에 놀란다. 멜빌의 [모비딕]은 성서 욥기와 밀접하다. 멜빌이 문학세계에서 추구하고 말하고자 하는 진리는 성서에서 찾아지는 원죄를 가진 유한한 인간으로서 겪어야 하는 삶의 고난과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욥이라는 이름은 아카드어로 '고통'이다. 여기서 JOB 일이라는 말이 나왔다.(필자는 이스라엘 히브리대에서 공부를 한 계기로 인하여 원어에 강하다.) "인간 본유의 타락성과 원죄에 대한 인식과 인간의 영혼에 깊이 자라잡은 암흑의 거대한 힘"에 대한 천착에 빠져들게 한다.

그래서 나레이터인 화자 이쉬메일은 말한다.

"모든 인간들 중에서 가장 진실한 이는 애통하는 사람이요, 모든 책들중에서 가장 진실된 책은 솔로몬의 책이며, 전도서야말로 곱게 정련된 강철과 같은 비탄이다"

어찌하여 21살의 젊은이가 이렇게 격조높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실은 허먼 멜빌이 만든 말이지만 놀랍지 않은가?

거기에 욥에게 제시된 리바이어던은 바로 경이로운 창조물이자 동시에 인간 인식력의 한계의 상징이 된다. "네가 능히 창으로 그 가죽을 찌르거나 작살로 그 머리를 찌를 수 있겠는가, 손을 그것에게 좀 대어 보라 싸울 일이 생각나서 다시는 아니하리라. 잡으려는 소망은 헛것이라 그것을 보기만 하여도 낙담하지 않겠는가"(욥기 41장 7-10절) 욥기에 쓰여진 이 리바이어던은 에이하브 선장의 모비딕이다. 이 리바이어던을 잡으려는 사람은 에이하브 선장이고, 모비딕을 추격하여서 파괴하고자 하지만 결국 파괴를 당한다.
  • 구글 출처


폭군같은 에이하브 선장의 운명은 우주속에서 '나'를 주장하다가 결국은 '나'를 잃어버리는 현대인의 상실된 삶을 예견해준다. 그리고 깊은 바다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나 바다 위를 떠돌다가 선장의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헤매고 있는 레이첼(Rachel)호에 발견되어 귀환하는 '또 다른 고아(470p) 이쉬메일은 추방되어 쫓겨나 황야를 헤메이지만 신과의 대명은 허락되지 않는 영원한 방랑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 에이하브의 모비딕 추격장면
    구글출처



미국의 전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작품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허먼 멜빌의 [모비딕]이다. 얼마전 나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을 평론을 하려고 했는데, 모비딕을 보면 남자의 피를 뜨겁게 끓어오르게 하는 작품이다. 손익을 떠나 인간으로서 위엄과 정체성을 위해 고난을 위해 몸을 던지는 에이하브 선장을 보면서, 초강대국 리더인 오바마가 좋아하지 않을 이야기라고 할 수 없다.

"거대한 흰고래 모비딕에게 자신의 몸을 던진다" 에이하브의 모습은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다. 이 모험담을 보면서 오바마의 가슴도 전율을 했을 것이다. 거대한 전세계의 모비딕(하얀 악마)에게 자신의 몸을 던져야 하는 미합중국 대통령 오바마에게 엄청난 리더십의 방향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은 단순한 책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의 정신을 대표하는 책이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전세계적인 도전에 몸을 던지는 법을 배운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도 이 책은 필요하다.

"모비딕은 공간을 뛰어 넘는다. 동시에 여러 장소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 불사신이기도 하다. 불사신이라 함은 시간적 초월성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옆구리에 작살을 주렁주렁 달고서도 헤엄쳐 갈 수가 있다. 드디어 피를 쏟아 낼 때가 되었다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순식간에 수백 킬로미터 달아나서 아스라이 물을 뿜어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곤 하기 때문이다."

난 대학교 1학년때 이 책을 읽고, 대학을 졸업할무렵 다시 이 책을 읽었다. 그후 군에서도 읽고, 해외유학중에도 읽었다. 800페이지가 넘는 책인데, 마치 나는 3일간 고래를 잡고자 사투를 벌이는 에이하브와 선원들과 같은 인내를 요구한다. 나는 그 책을 잡고자 했는데, 그 책이 결국 나를 잡았다.

이 글을 쓰면서 가장 힘겨운 거는, [모비딕]이라는 작품을 분석하려고 했지만 결코 분석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비감만 간직하게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비딕의 명대사는 에이하브 선장의 피눈물나는 절규이다.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의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입깁을 너에게 뱉어주마. 관도, 관대도 모두 같은 웅덩이에 가라앉혀라! ㅇ떤 관도, 어떤 관대도 내 것일 수는 없으니까, 빌어먹을 고래여, 나는 너한테 묶여서도 여전히 너를 추격하면서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겠다. 그래서 나는 창을 포기한다."

  • 고래를 소재로 한 - 우수한 영화작품
    하트 오브 더 씨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