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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과 고전 이야기

명길묻 5, 플라톤의 [국가론] 인문학적 읽기

by 코리안랍비 202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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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라톤-국가론의-표지


플라톤의 [국가론]을 보면 정의JUSTICE 에 대한 명료한 정의 DEFINITION 를 내리고 있다. 잠시 그의 국가론으로 들어가보자.

플라톤이 말하는 이상적인 국가의 조건은

1. 남녀평등: 19C 말에 여성의 참정권 시작(1893년 뉴질랜드)
2. 사유재산 금지와 공동생활
3. 철인 왕에 의한 지배
4. 법률에 의한 지배

라고 제시하고 있으며, 플라톤은 최소한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은 가장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철인통치론]을 주장했다. 철인 정치가가 국정을 운영해야, 국민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왜냐하면 철인들은 남들보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여긴 것이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란 산술, 기하학, 천문학, 화성학을 섭렵해야 하며 국가가 좋은 인재를 좋은 교육을 통해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플라톤이 제시한 기준은 그 당시에도 너무 엄격한 듯 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얘기이다. 지금의 정치인들 및 관료들을 보면 과연 몇 명이나 통과가 가능하지 미지수다. 심지어 명문대 철학과를 나온 엘리트도 통과하기 어렵다.

플라톤은 행복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온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온 국민이 행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국정농단의 사건을 계기로 잘못된 통치자는 온 국민을 행복은커녕 불행하게 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플라톤은 나라를 지배하는 계층이 가장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하는데, 통치자는 타고 나는 것이며, ‘교육’을 통해 걸러내고 다음 세대의 통치자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훌륭한 통치자는 타고난 능력과 인성 그리고 사회, 제도적으로인 기준 그리고 교육을 통해 걸러내고 다듬어진 인물로, 국민은 그런 인물을 찾아내고 비판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토플아

 


플라톤이 말하는 『행복』이란?
저마다 자신에게 적합한 일을 하며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 사는 것. 즉, 자신의 탤런트(재능)에 맞는 일을 해야 하며 각기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사는 것을 말하고 있다.

현대에서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얘기가 아테네 시대에서부터 존재했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플라톤은 개인의 정의에서 사회의 정의까지 폭넓게 정의론을 다루고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정의라는 것은 곧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곧 사회와 국가의 질서에 가장 큰 유익이 된다고 본 것이다.

일종의 공자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의 논리와 흡사하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닦고, 그리고 가정을 잘 돌보면 곧 그것이 국가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플라톤이 전하는 『정의 또는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각자가 자신의 일을 하는 것, 훌륭한 국가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지혜, 용기, 절제, 정의(올바름)의 네 가지 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플라톤은 ‘올바름’을 영혼불멸사상과 연관시키는데,
‘우리가 과연 올바르게 산다면 죽은 다음에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관련시킬 수 있다. 이러한 질문은 적어도 죽은 후에 영혼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플라톤이 신앙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플라톤이 신화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 이러한 생각은 기독교적인 사상과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신학THEOLOGY 이라는 말을 만든 철인도 플라톤이다.


우리가 어떠한 보상을 바라고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에는 올바른 행동에는 적절한 보상이 따른다. 올바른 행동에 대해서는 신들과 인간들의 사랑이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처럼 권선징악을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올바른 행동을 하려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소크라테스는 이에 대해 ‘알면 곧 행동한다’고 말했듯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앎은 진정한 앎이 아니라는 뜻이다. 앎이라는 것은 관념이라고도 하지만, 실천하는 지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쁨을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진정한 앎, 진정한 지는 이러한 중요가치들을 구분하고, 구별하는 분별력이나 판단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오래 살기 위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옳게 살기 위하여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키케로)

플라톤처럼 ‘올바르게 살면 잘 살 수 있다’라고 단순하고 명쾌하게 말할 수 있는 정의로운 시대와 국가도 만들어야 하고 각자 스스로도 올바르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할 일이다.

  • 플라톤 국가론 표지에 등장하는 - 아테네 학당의 전경
    구글참조
  • 가을입니다. 예쁜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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