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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과 고전 이야기

명길묻 4, 빅토르 위고 [레미제러블] 인문학적 읽기

by 코리안랍비 202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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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과 영화로 - 자주 재연되는 명작-레미제러블
    구글 출처


빅토르 위고 그리고 호밀빵

오늘은 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고전과 빵에 대한 이야기가 무엇이길래
내가 이렇게 연관을 지어서
글을 전개하는가? 궁금하실 것이다.

나는 빠리바케트나 뚜레주르의 제빵사도 아니고,
서양인들처럼 혹은 현대여성처럼 빵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가난한 날에 먹은 빵들에 대한 기억이 강해서 그런가 싶다.
그리고 빵을 먹는 것은 마치 무엇인가 빵도둑이 되어서 허겁지겁 먹어야 되는 것 같은 조급합이 있어서 그렇다. 쌀밥은 천천히 씹으면서 먹는데, 빵은 우걱우걱 먹게 된다. 거기에 우유나 주스를 벌컥벌컥 먹어야 하는 조급함도 곁들여진다.


빵이 갖는 상징성이나 음료가 갖는 상징성을 생각하면 그렇게 먹고 마시면 안된다. 우리는 먹으면서 뭔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냥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만족을 채워야 한다.

가난한 유학시절 늘 입에 달고 다닌 것은 식빵이었다.
음식을 구할 돈이 없어서
누군가 밖에 내 놓은 식빵 덩어리를 주어다가
몰래 단칸방에서 먹든 시절이 생각난다.
식사는 너무나 단촐했다. 그저 빵과 커피이다.
그렇게 몇개를 먹고 나면 눈물이 흐른다.
처음에는 낭만적으로 먹었지만 그 다음날에는 눈물나게 먹었다.

괴테는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으면 행복을 논하지 말라"
고 하였는데, 눈물젖은 빵을 먹으면서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내가 아직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나는 발견했다.


지금은 그러한 누군가 남긴 빵을 먹고 연명한 시기가 추억이지만,
그 추억덕분에 거칠고 투박한 식빵을 보면 별미같이 느낀다.

그래서 가끔은 식빵을 사러 빵집에 들린다.
그 식빵에 잼을 발라서, 차가운 우유와 모카 커피를 곁들여서 먹다보면 잠시 옛날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게 뭐라고 음미하면서 먹는지 모르겠다.

나는 고전중에 고전을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꼽는다.
이 고전에 등장하는 분노의 식품이 있다.
바로 [빵]이다.
당시에는 아마 [호밀빵]으로 기억된다.

이 고전은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혁명의 시작은 엉뚱하게도 빵에서 촉발되었다고 한다.
루이 16세때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농민들이 먹을 빵이 없다고 외치자,
"그럼, 케이크를 먹지 그래" 라며 외쳤다고 하고,
그것이 혁명의 발화점이 되었다고
앙드레 모르와의 [프랑스사]는 밝히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빅토르 위고는 원래 반정부 인사로 낙인이 찍혀 19년간 다른 나라에 망명생활을 하였다. 물론 나중에는 돌아와 국회의원이나 상원의원까지 하면서 평생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았다. 그런 그가 망명시절에 즐겼던 것은 호밀빵, 혹은 호밀흑빵이었다. 그 당시 호밀빵은 프랑스인의 주식이었고, 공장에서 생산하기도 하였지만 상당부분 가정에서 만들어 먹곤 하였다. 호밀로 구운 빵은 갈색을 띠기 때문에 일반적인 밀빵을 흰빵, 호밀빵을 흑빵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완전히 검정색인 빵도 있는데, 캐러멜이나 코코아 같은 부재료를 넣어 착색한 것이다.
프랑스 혁명기에 [레 미제라블] 의 탄생은 바로 이러한 [호밀빵]에서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공 장발장은 빵 한덩어리를 훔치고 19년동안 감옥살이를 한다. 그렇게 출옥한 한 사내가 여기저기 문전박대를 당하다가, 미리엘 주교의 집에서 [양고기 한 점, 무화과, 신선한 치즈, 호밀 빵 한덩어리 그리고 와인 한병]을 대접받는다. 당시로는 일반 가정의 식사였지만, 감옥을 나온 배고픈 장발장에게는 호사스러운 식단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는 굶주린 배를 채운 뒤
미리엘 주교의 은촛대를 훔쳐 밖으로 나온다.
그러다 빠리 경시청 경찰들에게 잡혀 다시 주교의 집으로 끌려 온다. 그 주교는 그리스의 얼굴을 하고 그에게 촛대만 아니라 은쟁반까지 준다.

그 장발장은 가난하고 힘든 시절의 상징인 [호밀빵]을 평생 기억하고, 미리엘 주교의 [희생정신]을 기억하였다.
나중에 그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하고 그리스도적인 삶을 산다.

그리스도 예수는 '자신을 생명의 빵'이라고 천명했다. 그 몸을 인류를 위해서 내 주었듯이, 장발장도 미리엘 주교처럼 예수처럼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산다.

  • 삽화-일러스트로 그려진 - 레미제러블 표지
    구글 출처



빅토르 위고는 대중의 음식인 [호밀빵]을 자신의 작품속에서 반영함으로서,
가난한 자의 음식이면서, 이 음식으로 인하여서
그의 작품의 제목과 너무나 잘 어울리게 구성한 것이다.

빵은 그 자체로 인류의 양식이다.
동서양 어디나 빵은 존재해 왔다.
빵은 그 자체로 엄청난 상징이다.
우리가 지금 먹는 빵은 몇천년전부터 인류가 먹어오던
그 빵과 다르지 않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마시는 공기도 몇천년부터 인류가 마셔오던 공기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그 빵에서 인류의 숨결을 발견한다.


주기도문에는 "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가 나온다.
날마다 빵을 달라고 기도하신 예수 그리스도,
아직도 우리는 그 빵을 달라고 기도한다.

나는 [빵] 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동네의 빵집들을 생각해 보았다.
전부다 공장의 기계가 만든 표준화된 빵, 대량생산된 빵을 우리는 먹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현미밥처럼 거친 면이 있는 호밀빵 마져도 공장에서 생산된 것을 우리는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수제로 만든 빵의 실종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수제로 빵을 고집하면서 만드는 수제장인들이 있다.
하지만 이 장인들도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다행히도 이러한 잃어버리는 것들, 손으로 만든 빵이 다시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다.


대전에 성심당을 가보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빵을 사가지고 간다.
나도 대전에 들리면 성심당을 찾아가서 사가지고 오는 경우가 있다. 그 수제빵들은 비싸지만 그 맛이란 정말 기가막히다.

대학시절에는 그 많던 수제빵집들이 세월이 흘러
지금은 프렌차이즈에 밀려서 사라지고 없다.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아직도 수제빵을 고집하는 빵집이 있다.
그 집은 새벽마다 직접 각종 빵을 구워서 아침에 내 놓는다.
저녁이 되면 반값이 되기에 종이봉투에 한가득 빵을 산다.
그 제과점도 조만간에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아들과 딸을 미국으로 보내고 빵을 팔아서 유학비를 대었다고 한다. 남편은 회사에서 중역이지만, 젊은 날부터 지난 30여년을 함께 해 온 그 빵집과 그리고 날마다 빵을 만들어서 날마다 손님들에게 신선한 빵을 공급하던 시절이 행복했다고 한다.


나는 새벽에 갓구운 빵이 그립다. 모카 커피와 더불어서 자주 먹었던 베케트 빵도 그립고, 크로와상도 그립다. 기계로 찍어내어 공장에서 배송된 그 빵은 입에 대기 싫다. 수제로 만든 빵이 그립다. 아쉽게도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그것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빵만드는 제빵기술을 배울 생각도 했다. 적어도 식빵을 만드는 기술은 배우고 싶다.


대량생산되어 획일적으로 똑같은 빵도 빵이고
고생스럽게 손으로 만든 수제 빵도 빵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와 함께 인류를 지탱해오던
빵의 상징성 때문에 여전히 나는 수제 빵이 그리운 것이다.

누군가 이 지역에 수제 빵집을 세운다면
나는 매일 가서 모카 커피와 더불어서
그 빵들을 하나 하나 먹어볼 요량이다.
그리고 장발장을 생각할 것이다.
미리엘 주교도 생각하고,
가난한 이들, 레 미제라블들도 생각할 것이다.

  • 호밀빵-꼼빠뉴-프랑스빵

 


나는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주기도문을 아직도 드린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드린다.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빵한조각도 나누어야 하는 나눔의 마음도 달라고 기도한다.

내가 준 하나의 빵이 나중에는
수천 수만을 먹이는 오병이어가 될 것을 믿기에...

 

  • 빵을 먹으며 - 울고 있는 - 전광렬 배우
    구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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