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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과 고전 이야기

명길묻91, 타히티로 간 고갱과 서머셋 모음의 [달과 6펜스]

by 코리안랍비 2022.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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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히티로 간 고갱과 서머셋 모음의 [달과 6펜스]

“열정은 생명의 원천이고, 더 이상 열정이 솟아나지 않을 때 우리는 죽게 될 것이다. 가시덤불이 가득한 길로 떠나자. 열대의 작업실은 더 자연스럽고 더 원시적이고 무엇보다 덜 타락한 삶에 잠길 수 있어 좋다.” - 폴 고갱(1848~1903)


명작에게 길을 묻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겨우 극소수의 사람들만 관심이 많은 소위 [고전 클라식]을 본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수나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고전에 대한 탐독이나 사색이 가당치 않기도 하다. 이런 글작업은 마치 대학의 인문학 교수나 하는 짓으로 여길 수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고전 마니아들이나 하는 짓으로 여길 수 있다.

나는 대학 현장의 인문학 교수도 아니고, 고전 마니아도 아니다. 다만 지난 인류가 만든 고귀한 [문화유산이나 지적유산]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뿐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거의 집착하다시피 [독서광]으로 살아온 것이다.

[명작에게 길을 묻다]라는 것은 이미 5-6년전부터 이루어진 일인데, 한 때는 유명하였지만, 이제는 무명한 사람들을 지금 이 시점에서 끌어올리는 일이다. 다른 이들은 이러한 것을 [지적인 시간낭비]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전혀 어떤고전이나 고전읽기 모임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저 맛있는 집을 찾아서 식사나 하고, 되지도 않는 골프채를 들고 다닌다. 레저와 스포츠 활동에 열광하기도 하고, 그저 근사한 커피숍에 가서 입방정 떠는 것을 즐긴다.

나는 그런 시간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은 ‘제 잘 멋에 사는 것’이다. 누구나 그러한 자유를 누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인류역사에 있어서 만나야 할 위인들은 상당히 많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러한 위인들의 삶에 물들어보는 것은 정말로 괜찮은 삶의 연습이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이 말했다.
“당신은 당신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나는 나의 방식으로 살아가리라”

나의 오늘의 글은 [고흐]로 시작한다. 그러나 고흐는 잠시 소개하고 [고갱]을 부각시킬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흐]라는 정신이 좋지 않았던 화가를 좋아한다. 그의 그림에서 나는 천재인지, 광기인지 모를 신비감을 찾곤 한다. 어려서부터 고흐의 그림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고흐 그림은 모두 나에게 친근한 그림들이 되었다. 그런데 그 고흐라는 사람과 같이 미술 작업을 한 사람이 바로 폴 고갱이다. 폴 고갱은 [고흐]의 광기에 완전히 질려 버리고, 심지어 같이 동행할 수 없는 인물로 여겨 버리고, 나중에는 홀연히 타히티로 떠나게 된다.



오늘의 명작 이야기는 폴 고갱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폴 고갱과 [달과 6펜스]는 무
슨 관계인가?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서머셋 모옴은 폴 고갱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쓴다. 서머셋 모움은 폴 고갱을 모델로 하여, 그의 낭만적 기질을 최대한 신비화했다는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중년의 화가 스트릭랜드다.

안정적인 중산층이자 은행원이었던 찰스 스트릭 랜드는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무심하고 말이 없고 재미없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아내는 교양있지만 속물적인 구석이 있는 여자로 나타난다. 이 소설에서의 ‘화자-나레이터’라는 ‘나’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이 스트릭랜드라는 사람을 그저 특별할 것도 없는 전형적인 사내라고 평가하고, 아내 조차 그를 예술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교양 없는 자라고 언급한다.


이 소설의 초반부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쩐지 마부가 파리를 위해 정장을 한 듯 했다.
마흔쯤 먹은 사람으로 못생긴 편은 아니었으나,
이목구비가 필요 이상으로 조금씩 커서 못생겨 보였다.
면도를 말끔히 하고 나오니, 투박한 얼굴이
거북살스러우리만큼 벌거벗은 느낌을 주었다.
예술계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아내에게
그는 분명 자랑거리는 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자 [나]는 스트릭랜드가 아내를 버리고 파리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스트릭랜드에게 가정으로 돌아오라는 아내의 말을 전하기 위해 파리로 가게 된다. 여자가 생겨서 파리로 갔을 것이라는 아내의 예상과 달리 스트릭랜드는 느닷없이 그림을 그리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휩싸여 집을 떠난 것이다. 오로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을 쫓아 떠난 그에게 금전적이고 경제적인 여유는 없었다. 가난하고 고단한 미술가의 삶속에 그저 의욕과 열정만이 가득한 것이었다. 더럽고 낡은 호텔에서 머무르며 파리 하층민의 삶을 전전하던 스트릭랜드는 결국 생활고에 몸져눕게 되지만 평소 스트릭랜드를 [예술적인 천재]로 여기고 가까이 지낸 더크 스트로브라는 유순한 네덜란드 사람의 도움을 받아 여러 가지로 회복을 하게 된다.


잠시 폴 고갱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고갱은 원래 파리 증권거래소에서 중개인(증권딜러)로 일했다. 그 당시 고갱의 경제 사정은 나쁘지 않았고, 여유롭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파리 주식 시장이 위기를 맞게 되면서 그 간접적 여파로 인해 해고를 당하게 된다. 그는 다시 직장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잠재의식속에서 묵혀 두었던 뜨겁고 숨막힐 듯한 감정이 차올라 다시 [새로운 인생]을 가야 할 기회가 왔다면서 도리어 기뻐하였다. 드디어 고갱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섬 타히티로 떠난다.

그런데 [달과 6펜스]에 등장하는 스트릭랜드도 타히티로 떠난다. 서머셋 모옴은 폴 고갱과 스트릭랜드가 모두 금융권에 종사했던 인물이며, 서로 같은 ‘타히티’ 섬으로 떠나는 것을 설정한다.

  • 구글출처 이미지 고갱의 그림들


고갱은 늦은 나이인 40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어려서 그림에 소질이 강했던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생업을 감당하면서 그동안 감추웠던 소질을 다시 살린 것이다. 그는 [성스러운 봄 sacred spring]이라는 작품을 보면, 고갱은 도시의 스산하고 차가운 잿빛이 아닌 열대의 강렬한 원색에서 생생한 예술적 영감을 얻는다. 감각을 마비시키는 돈의 관능이나 권능이 아니라 타히티에는 싱그러운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천혜의 자연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하나된 인간상들을 발견하며서 그의 그림은 [행복한 그림]으로 거듭나게 된다. [파리와 타히티]는 참으로 대조적인 장소이다.

장소의 대비성을 통해서 고갱은 자신만의 그림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소설속 주인공은 스트릭랜드는 그곳에서 [아티]라는 원주민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그러나 섬에서의 평화로운 생활 도중에 그는 갑작스럽게 천형인 나병에 걸리게 된다. 죽어가는 삶의 마지막 기간동안 자신이 살던 오두막집의 벽과 천장에 영혼을 쏟아 부어서 자신의 최후의 걸작은 그린다. 나병에 걸려 눈이 멀고 육신이 썩어 들어가면서도 역설적으로는 주인공은 마침내 초월적이고 근원적인 달빛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완성된 그림은 아티와 스트릭랜드 그리고 스트릭랜드를 치료하러 온 의사 셋만이 보곤 잿더미로 사라지고 만다.(*그 그림이 사라진 것은 화재가 난 것이 아니라 아티에게 그 그림을 불태워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 그림에 대한 화자의 감상평이 있다.

“창세의 순간을 목격할 때 느낄 법한 기쁨과 외경, 무섭고도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것이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감추어진 자연의 심연을 파헤치고 들어가 아름답고도 무서운 비밀을 보고 만 사람의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서머셋 모옴의 소설 제목은 왜 이럴까?
고민해 본적이 있는가? [달과 6펜스] - 이 제목에 이끌려 막상 읽으려고 하여도 화가 고갱과 연결하여 읽지 않으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달은 무엇이며, 6펜스는 무엇일까?
나는 여기서 무엇인가 주는 메시지를 찾으려고 하였다.
달과 6펜스는 색깔로 보면 그레이나 갈색이다.
달은 하늘에 있고, 6펜스는 땅에 있다.
달은 늘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 위에 늘 머물러 있는 실체이다.
그리고 달이 주는 상징성은 늘 사랑과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은 나름 멋지게 다가오지만, 왜 10펜스나 100펜스도 아니고 6펜스인가? 그 당시 영국에서 6펜스는 지금의 500원 동전과 비슷하다고 한다. 6펜스는 작은 돈의 단위이다. 영국에서는 6펜스는 가장 낮은 단위의 은화였다. 한국은 10진법을 사용하지만, 영국은 파운드화의 계산법이 다르다.


그렇다면 서머셋 모옴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상당히 문학속에 철학을 가미한 것이다. 달은 미술가가 갖는 이상을 나타내고, 6펜스는 그와 반대로 사회의 물질적인 재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스트릭랜드의 모티브는 나이 40이라는 불혹의 나이에 직장을 버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폴 고갱이지만, 본래 삶의 모습은 더 문란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서머셋 모옴은 폴 고갱의 삶이 마치 고상하면서 신비하고 신화적인 인물로 묘사한 것이다. 실제 서머셋 모옴은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직접 타히티를 답사하고, 거기서 그가 머물렀던 집과 그가 데리고 살았던 여자와 얘기도 나누고, 그가 그린 그림을 직접 사기도 하였다.

나는 이 제목이 궁금하여 다시 여기 저기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인터넷이라는 도구가 정말로 편하고 좋은 도구이다. 그저 편하게 놀고 즐길 거리가 많다고 하지만, 이렇게 인문학과 고전을 쉽게 접근하여 볼 수 있다는 장점이 나를 매료시켰다.
원래 서머셋 모움은 이전의 자신의 소설 [인간의 굴레에 대하여 Of Human Bondage, 1915]라는 작품을 먼저 작성하였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 필립 케어리가 말한 대목이 있다. “달을 동경하기에 바빠 발 밑에 떨어진 6펜스도 보지 못한 사람”이라는 논평이 담겨 있다.
이 논평을 보면서 그 비유를 이용하여 다음 소설의 제목으로 삼았다고 한다.


예전에 잠시 철학의 아버지인 [탈레스]에 대해서 다루어 본적 있다. 탈레스가 어느 날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졌는데, 이를 목격ㅎ나 트레케의 하녀가 깔깔거리며 놀렸다는 이야기이다. 하늘의 일을 알려고 너무 열정을 부린 나머지 발 앞의 것도 못 보는 것에 놀린 것이다.

또 플라톤의 [대화편 - 테아이테투스 Theaetetus]를 보면 소크라테스의 일화가 나온다. 소크라테스는 너무 조용히 사색하고 묵상하는 사람으로서 지내자 똑똑한? 하녀가 이를 문제삼고 지적한다. 우선 하녀의 똑똑한 지적에 공감한다. 하지만 곧이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고 비판한다. 멀리 있는 것에 관심을 두는 철학자의 중요성을 모른다는 것이다.

철학자는 멀리 내다보며 남이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생각 너머의 동심원상의 것까지 보는 사람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머셋 모옴도 탈레스나 소크라테스처럼 멀리 있는 것에 대한 갈망이 강렬했음에 틀림없다.
그는 자신의 손안에 있는 달처럼 생긴 6펜스보다는 하늘의 달에 더 무게를 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볼 일이 있다. 손안에 많은 물질이 있어도 저 하늘의 달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서머셋 모움의 다른 글을 본다. “어렸을 적에 그는 달을 보느라 발밑의 6펜스도 못보는 사람을 놀려야 한다고 배웠는데 원순한 나이가 되고나서는 과연 전에 믿어야 했던 것처럼 그것이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6펜스를 싶은 사람은 주워라. 달을 추구하는 일도 더 없이 재미있는 놀이인 것 같다” 라는 말을 자신의 책의 서두에 명시해 놓았다.

성서에 보면 “땅의 일을 생각하지 말라 하늘의 일을 생각하라” 라고 한다. 땅의 일이라는 것은 지극히 물질을 구하고, 현저한 일이다. 그리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 “땅에 떨어진 6펜스를 찾다 보면 하늘의 달을 보지 못한다”

고갱이나 스트릭랜드는 땅을 향해있던 속물적인 근성에서 눈을 들어서 하늘의 달을 바라보면 인물들이 된다. 안정된 삶과 심지어 가족을 버리고 외로움과 고난 그리고 궁핍을 각오하고 예술의 세계를 향한 갈망을 쫓아간 인물들이다.

갑자기 어느 화가의 일생이 떠오른다.아버지가 의사인 어떤 아들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하여 나중에 르느와르나 이중섭 같은 위대한 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공부를 잘하는 아들이 그저 의사로서 대성(大成)하고 싶어했던 아버지는 그가 ‘환쟁이’가 되는 것을 거부하게 하고 결국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그 아들은 10년이 흘러서 전문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나이가 60이 넘어가자 그는 의사의 일을 그만두고 일본의 오카야마로 미술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10년이 흘러서 그는 한국의 S대학의 미술교수로 돌아온다. 나는 그 교수를 S대학에서 만났다.

그 교수는 지금 작고하였지만, 그 교수의 말이 아직도 귓전을 때린다. “사람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때가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간절함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과연 [자기 포기]를 할 수 있는 존재인가?
만일 가정도 있고, 자녀들도 있는데 45살 정도가 되어서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고 싶은 순간을 갖게 된다면 과연 가정도 버리고, 자녀들도 버리고 자신의 열망과 욕망을 쫓아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은 현실세계와는 전혀 맞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저 익숙하고 반평생 길들여진 라이프 스타일을 벗어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더욱 모던 라이프 스타일을 버리거나 포기할 수 없어진다. 더욱 물질추구나, 자본축적에 대한 욕망만 커질 것이다.

우리는 6펜스를 더욱 모으면서, 600펜스, 6000펜스, 60000만 펜스를 향하여 더욱 달려간다. 그런데 여전히 달은 그 달이다. 김소월이 보았던 달, 윤동주가 보았던 달, 이순신 장군도 보았던 달, 고갱이 보았던 달, 소설속 스트릭랜드가 보았던 그 달... 그 달은 여전히 하늘에 떠서 우리를 보고 있다.


아마도 서머셋 모옴의 손안에 6펜스의 크기와 육안으로 보는 달의 크기가 비슷했을 것이다. 고갱과 스트릭랜드는 타이티 여인들을 모두 -달덩이처럼 그려 넣었다. 파리나 뉴욕에서는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6펜스처럼 그렸을 것이다.

대도시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그런데 상당수 문제들이 [돈]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가 상당수이다. 대도시는 돈이 있어야 사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 대도시에 뜨는 달은 무시의 대상이 된다.그래서 달에 대한 정서는 죽은 곳이 대도시이다. 달보다 6펜스에 집착하게 만드는 곳이 대도시이다.

그런데 타히티는 우리의 시골이나 먼 고향과 같다.
그곳의 사람들은 순박하고 때 묻지 않은 정서가 있다.
이들은 금융지식이나 보험지식도 없고, 자동차를 굴리고 돈을 굴리는 재주도 필요 없다. 그저 주어진 농사와 어로, 채집과 과일나무를 키우는 일을 한다. 꽃을 키우고, 나무를 심고, 동물들과 즐겁게 보낸다. 그리고 자녀를 낳고 키우고 즐겁고 신나게 산다. 내 말은 우리도 이런 ‘마음의 타히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루소는 [에밀]에서 말한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우리는 과연 언제쯤 자연으로 돌아갈 것인가? 나이가 더 들어봐야 알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가 이상하게 격조 높은 소설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고갱의 작품들이 주는 인간미와 자연미가 창조적으로 다가온다.

"인생은 순수한 생각으로 살아가면 즐거움이 옵니다." - 서머셋 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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