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조용필 그리고 킬리만자로의 눈표범
제목이 특이할지 모르지만 옛것을 되살려 오늘의 새로운 것을 만드는 온고지신을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헤밍웨이와 조용필이 무슨 관계인가? 난 이 두 거인들의 삶을 살펴보면서 <인간의 위대성 >을 찾아 보려고 한다.
이 글의 발원시점은 12년전이다.
10여년전 내가 사는 허름한 아파트에 '탄자니아' 친구들이 거주했었다. '한국농업진흥센타'에 연수를 온 친구들이었다. 그 친구들중에 영어교사를 하던 마틴이라는 친구랑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마틴은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편인 나를 만나 신나게 떠들었다. 그리고 자기 조국과 자연환경을 자주 말해 주었다.
탄자니아는 동물의 왕국이다. 그리고 케냐와 탄자니아 사이에 영봉 킬리만자로가 서 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서 '킬리만자로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살면서 탄자니아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아쉽게도 탄자니아 대사관은 한국에 없다고 한다.
백두산이 우리 민족의 영산이듯, 탄자니아 사람들에게 킬리만자로는 영산과 다름없다. 백두산의 호랑이가 우리 민족의 야성을 불태우게 한다면 킬리만자로의 눈표범은 초라한 인생이 아닌 당당한 인생을 살도록 자극하는 존재이다.
아프리카라는 더운 나라에 저렇게 높은 만년설이 존재한다는 것이 놀라운 신비감을 갖게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신비감을 갖게 하는 책과 노래를 소개하고자 한다.
가왕 조용필의 8집은 1985년에 나왔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그 안에 수록되어 있다. 그 당시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처음 그의 노래가 나올 때의 강렬함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이 가사는 요즘도 마음으로 읽혀진다.
나는 자주 그의 노래를 들으며 흥분하고, 도전의지를 다시 불태운다.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만 판을 치는 어수룩한 이 세상에서, 차라리 "산정 높은 곳에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표범"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이 야망에 찬 도시 불빛 어디에도" 우리라는 단어는 없다.
가왕 조용필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히트곡을 불러 탄자니아 정부로부터 공식 초청을 받기도 한다.
[모래시계]의 주인공 최민수는, 그가 무명배우 시절에 한계령을 넘는 도중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이 6분짜리 긴노래를 듣다가 차를 멈추고 끝까지 들었다고 한다. 아마도 최민수는 한계령에서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게 만드는 순간을 경험한지도 모른다.
이 가사를 쓴 양인자 작가는 헤밍웨이가 1936년에 쓴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대중가요 중 가장 가사가 길다. 바다처럼 광활하게 펼쳐지는 멜로디에 맞게 기승전결이 있는 가사이기도 하다.
양인자 작자는 이 곡의 가사를 쓰기전에, 수없는 실패를 겪어 왔다. 신춘문예에 너무나 많이 떨어지면서 느꼈던 좌절과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의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2008년 어느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가사를 쓰며 제스스로 위로를 받았어요.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가사는 힘든 현실속에서도 저 너머에 있는 희망을 가져 보자는 뜻이었죠"
이 노래가 왜 아직도 세월을 넘어서 젊은이들을 자극할까? 도대체 이 노래가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들을 매료시키는가?
[불후의 명곡]에서 '알리'라는 여가수는 이 노래를 부르며 대중을 깜짝 놀라게 한다. 이 노래는 아마도 짙은 고독과 남성적인 채취가 물씬 풍기는 도전정신이 담겨 있어서 그럴 것이다. 소녀감성이 아닌 당당하고 우람한 남성적 상상력이 꿈틀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가사가 주는 강렬함은 10대였던 나에게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지금도 그의 노래는 가슴을 쿵쾅쿵쾅 뛰게 만든다.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 덮힌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이 노래에서는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하이에나를 대조시키고 있다. 하이에나는 초라하고 비참한 남성을 상징한다면, 표범은 도시에서 야망을 불태우면서 살아가는 고독한 남성을 상징한다. (*필자가 보기에 하이에나가 짐승의 썩은 고기나 먹는 비참한 동물이 아니다. 탁월한 사냥능력을 갖추고 있고 생고기를 먹는 동물이다. 하이에나에게 명예훼손은 하지 말자. 그리고 하이에나가 낮은 저지대의 동물도 아니다. 표범처럼 높은 곳도 오르는 동물이라고 한다.)
헤밍웨이의 소설 앞부분에는 킬리만자로의 정상 부근에서 얼어 죽은 표범의 주검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다시 헤밍웨이의 작품속으로 달려간다. 노인과 바다이후 가장 강렬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킬리만자로는 높이 5,895미터의 눈 덮인 산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한다. 마사이족은 서쪽 봉우리를 가르켜 '느가이예 느가이'라 일컫는데 그것은 신의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서쪽 봉우리 근처에는 말라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 하나가 나둥그러져 있다. 과연 표범은 그 높은 산봉우리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을 설명할 수 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아프리카의 가장 높은 산에 덮힌 만년설, 킬리만자로의 눈덮힌 봉우리가 앞으로 몇 십년후 우리의 눈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미 85%의 빙하가 녹아 사라졌다고 한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과학자들에게 지구 온난화의 속도와 심각성을 재는 바로미터로 여져진다.(미네소타대 연구팀)
앞으로 20년 안에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은 제목을 바꾸어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킬리만자로의 녹아버린 눈]이라는 이름으로...
책의 주인공, 작자 해리가 패혈증에 걸려 죽어가면서 이루지 못한 꿈, 사랑과 추억들, 잘못된 선택에 대한 후회, 끝내 쓰지 못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회한과 실낱같은 희망으로 바라본 킬리만자로의 눈덮힌 봉우리가 이제 시한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곳의 눈이 다 녹아 내리고, 그저 높고 높은 민둥산의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 우리에게는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로 남을 것이다.
문득 조용필의 원곡을 찾아 다시 들어본다.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자. 얼어죽을 표범이 되는 것은 비참하다고 여겨진다. 굶어 죽기 전에 그저 하이에나 처럼 되라고 유혹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온다. 그렇지만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같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는 끈질긴 삶을 살아내겠다는 의지는 있어야 한다. 먹이를 찾아 헤매다 죽어도 하이에나 같은 허무한 삶보단 표범처럼 당당하게 살아가겠다는 의지는 있어야 한다.
헤밍웨이가 ㅡ 노인과 바다에서 말한 것처럼, 실패할지언정 파괴되지 않는 당당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우리는 21세기에 살아가고 있다. 이 소설과 노래는 20세기에 만들어졌다. 조용필은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다" 라고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포효한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아세요?"라고 묻기도 한다. 어리둥절한 사람들은 궁금하기 그지 없다.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음녀서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답한다.
그러면 모두가 파안대소를 한다.
21세기는 우리의 세기다. 우리는 위대하게도 2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20세기에 초라하게 살았어도 21세기에는 위대하게 살아가야 한다. 숨이 막힐 정도로 거칠고 팍팍한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젊은이들, 그리고 기성세대들에게 조용필의 외침은 실현되어야 한다. 조용필의 이 노래는 꿈과 희망을 되살려준다. 가왕, 고맙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세요.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 둬야지"
나의 타일캘리그라피 작품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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