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허초희, 1563-1589년 3월19일)
얼마전 고 성공회대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를 읽다가 나의 눈은 어느 한곳에 꽂혀 버리고 말았다. 바로 허난설헌 이라는 인물때문이다.
이 여류천재문인이 저평가 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 균의 친누이었던 허난설헌의 무덤을 찾아뵙고 자신의 감정과 소회를 남긴 신영복 선생은 그 소제목을 다음과 같이 만든다.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줍니다]
강원도 강릉에는 기억해야 할 위대한 여성 둘이 있다.
바로 오죽헌의 사임당 신씨이고, 애일당 허난설헌이다.
오죽헌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바와 같이, 율곡 이이 선생과 그 어머니인 사임당 신씨를 모신 사당이다. 율곡 이이는 조선조 최대의 정치가이며 사상적으로는 퇴계 이황에 필적할 만큼 뛰어난 겨레의 사표임에 틀림이 없고, 그 어머니 사임당은 역시 현모양처의 귀감임에 틀림없다오만원권에도 등장하는 사임당 신씨는 아직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인물이다. 아들 율곡 선생이 대단하니 어머니마저 대단하게 보이는게 인지상정 아닌가. 마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처럼...
하지만 허난설헌은 어떤가? 자신의 친동생 허균이 그렇게 존경하고 아끼던 누이가 아니던가? 표면적으로 보면 신사임당의 빛에 가린 초라한 여류문인으로 보기 쉬우나 허난설헌은 문인이면서 신분제 사회인 조선사회에 돌을 던진 여성운동의 모델로 봐도 무방하다. 현대 한국의 페미니즘의 모델로 삼아도 무방하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의 철폐가 현대여성운동이라면, 허난설헌은 새로운 여성운동의 모델로서 적합한 인물이라고 사려된다.
허난설헌은 당시 명시인인 손곡 이달 선생에게서 시와 학문을 배운다.
손곡 이달 선생은 원래 충청도 홍성 출신의 천재 시인이다. 허균과 허난설헌의 스승이다. 시문에 뛰어나 선조 때 삼당파(三唐派) 시인의 한 사람으로 칭송받았지만 서얼이라는 신분적 약점 때문에 평생 불우하게 살았다.서얼을 차별하는 세상에 대한 울분을 시문으로 달래며 지금의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蓀谷里)에 은거해 지냈다.
허균의 시문과 사상에 특히 많은 영향을 남겼는데 허균은 세상에 버림 받은 스승의 불우한 삶을 안타깝게 여겨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을 써서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했다. 글에서 허균은 “원주(原州)의 손곡(蓀谷)에 살면서 자신의 호로 삼았다”고 밝혀 스승 이달의 호가 은거하던 곳의 지명을 취해 지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런 걸출한 스승아래서 천재적인 시재를 일찍 발휘하였다. 허난설헌은 기억력이 좋고, 어린 나이에도 글을 잘써서 가족들을 놀라게 한다.
그녀의 나이 8살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짓는 등 신동이라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딸의 재주를 아깝게 여긴 허엽은 직접 글을 가르치고, 서예와 그림도 가르쳤다. 허엽은 그 당시 서경덕과 이황의 문인으로서 그들의 문하에서 배운 사람이라 아들과 딸에게 큰 영향력을 주었다.
그렇지만 15세가 될 무렵 안동김씨의 김성립과 혼인하게 되었는데, 이 혼인이 허난설헌의 인생을 칠흙같이 어둡게 만난다.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하였고, 그녀의 시재주와 글재주가 뛰어나자 김성립은 괴이한 비교의식으로 그녀를 피하였다고 한다. 여자가 뛰어나면 남자는 괴롭다고 하였던가... 그리고 시어머니의 구박에 시달렸다. 아들선호사상이 강한 조선사회에서 시모와 자부간의 갈등은 늘 있어왔다. 그녀는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었다. 그러기에는 이 나라가 너무나 작았고, 그녀의 그릇은 너무나 컸다. 그래서 추후 그녀는 대장부나 문장가를 만나서 세상을 바꾸어 싶은 변화의 능력자가 되고 싶었다.
허초희의 이상형은 당나라(618~907년) 말기의 정치인이자 시인인 두목(杜牧)이었다. 두보가 아니라 두목이다. 두목은 벼슬은 정5품 중서사인밖에 올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문학적으로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또 호탕하고 강직한 성품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기울어가는 당나라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두목을 좋아한 것에서 나타나듯이, 허초희의 이상형은 지위에 관계없이 호탕하고 강직한 동시에 세상을 건지겠다는 야망을 품은 남자였다. 이랬기 때문에, 그는 꼼꼼한 공직자 스타일의 선비는 좋아하지 않았다. 선비가 지배하는 사회에 살면서 선비 스타일 남성을 싫어했던 것이다
그 뒤 남편은 벼슬을 하였고, 가정에서의 즐거움보다 노류장화의 풍류를 즐기는 한량이 되어갔다. 나중 한성에 들어와 살면서 김성립은 아내 허난설헌은 외로움과 번민이 심해져간다.
한번은 허난설헌에게 남편 김성립이 기생집(지금으로 말하면 강남 룸싸롱이나 단란주점)에서 술을 쳐먹고 있다고 알려주자, 이에 난설헌은 안주와 술을 보낸다.
그러면서 시도 한구절 적어 보낸다.
낭군자시 무심자
동접하인종반간
낭군께선 이렇듯 다른 마음 없으신데,
같이 공부하는 이는 어찌된 사람이길레 이간질을 시키는가
이 편지를 본 김성립의 친구들은 그녀의 글재주에 탄복하였다고 한다.
실학자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소개된 허초희의 시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이승에서 김성립을 이별하고 저승에서 두목(杜牧)을 따르고 싶다."
남편의 바람기와 시어머니의 계속된 갈등에 시달린 난설헌은 아주 기구한 운명을 여러번 만나게 된다.
그런 갈등과 반목속에서 1580년 아버지 허엽이 객사를 하고, 그후 아들과 딸을 병으로 연이어 잃게 된다. 심지어 나중에는 태중에 있는 아기도 사산한다.
그런 그녀는 다음과 같은 애절한 시를 남긴다.
아들딸 여의고서
"지난해 귀여운 딸애 여의고
올해는 사랑스런 아들 잃다니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땅이여
그 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엔 쓸쓸한 바람
도깨비불 무덤에 어리비치네
소지 올려 너희들 넋을 부르며
무덤에 냉수를 부어 놓으니
알고 말고 너희 넋이야
밤마사 서로서로 얼려 놀테지
아무리 아해를 가졌다 한들
이 또한 잘 자라길 바라겠는가
부질없이 황대사 읊조리면서
애끊는 피눈물에 목이 메인다."
나중에는 어머니 김씨마져 객사하고, 동생 허균은 귀양가고 만다.
허난설헌은 27해 죽기전에 방안에 가득했던 자신의 작품을 모두 소각시킨다.
그의 시와 작품들이 친정집에 많았는데, 그것 마져도 소각하라 했으나 동생은 그 누이의 천재성과 시재를 아깝게 여겨 허균이 보관하고, 사후 누이를 위하여 출간을 하게 된다. 허난설헌의 모든 작품은 유고작품들이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아니었으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 누이의 죽음을 아파하면서 그리워하는 추모시를 허균은 남긴다.
"옥이 깨지고 별이 떨어지니
그대의 한 평생 불행하였다.
하늘이 줄 때에는 재색을 넘치게 하였으면서도
어찌 그토록 가혹하게 벌주고, 속히 빼앗아 가는가?
거문고는 멀리 든 채 켜지도 못하고
좋은 음식 있어도 맛보지 못하였네
난설헌의 침실은 고독만이 넘치고
난초도 싹이 났건만 서리 맞아 꺾였네
하늘로 돌아가 편히 쉬기를
뜬 세상 한순간 왔던 것이 슬프기만 하다.
홀연히 왔다가 바람처럼 떠나가니
한 세월 오랫동안 머물지 못했구나"
후일에 허균이 명나라에 가서 누이의 시선집을 보여주자, 명나라 관리들에 의해서 그녀의 작품이 [취사원창]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이 되었다. 심지어 일본에까지 소개되어서 분다이가 그녀의 시를 간행하여 애송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무덤은 경기도 광주 지월리에 있다가, 나중에는 경기도 하남으로 이장된다.
그녀는 시대의 모순에 비켜간 비운의 역사적 인물이다.
화려하고 각광받는 스타나 아이돌만 기억하는 한국사회의 저속함에 우리는 너무나 젖어 있다. 사임당과 율곡 이이에 열중하는 우리들과 당신들입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다.
우리의 조선의 어머니들은 시대의 아픔과 가족의 아픔과 자신의 아픔을 안고 살아갔던 어머니들이었다. 그중에 허난설헌이 있다.
허난설헌은 자신이 여자와 태어난 것과, 너무나 일찍 혼례를 올렸다는 것과, 자녀를 잃었다는 것과, 남편을 잘 못 만났다는 것에 늘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허난설헌을 반드시 만나야 한다.
자신의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쓰면서 글로서 시로서 그림으로서 저항한 여인이 바로 허난설헌이다.
나중 그녀의 시를 보고서, 한석봉은 그녀를 동양삼국에서 가장 뛰어난 여류시인이라고 평가한다.
너무 신사임당만을 부각시키고 현모양처의 전형처럼 묘사하는 것은 바른
여성운동의 길이 아니다. 어찌보면 그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 허난설헌을 400년이 지난 지금도 만나러 가야 한다.
그래서 난 최문희 작가의 [난설헌]을 읽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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