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배와 장자 그리고 이규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빈 배가 와서 부딪혔다면,
아무리 속좁은 사람이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배 위에 사람이 있다면
피해 가라고 소리칠 것이다.
한 번 소리쳤는데 듣지 못하면 재차 소리치고, 그래도 듣지 못하면 세 번 소리를 지르며,
이제는 욕설이 뒤따를 것이다.
앞서에서는 화를 내지 않다가 이제 화를 내는 것은, 앞서는 빈 배였지만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자신을 비우고 세상을 노닐 수 있다면 어느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빈배(虛舟) - 장자(莊子) 산목(山木)
方舟而濟於河(방주이제어하)
有虛舩來觸舟(유허선래촉주)
雖有惼心之人不怒(수유편심지인불노)
有一人在其上(유일인재기상)
則呼張歙之(즉호장흡지)
一呼而不聞(일호이불문)
再呼而不聞(재호이불문)
於是三呼邪(어시삼호야)
則必以惡聲隨之(즉필이오성수지)
向也不怒而今也怒(향야불노이금야노)
向也虛而今也實(향야허이금야실)
人能虛己以遊世(인능허기이유세)
其孰能害之(기숙능해지)
이규보 시선집 중에서 바위와의 대화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바위와의 대화》
"나는 안으로는 참된 것을 가득 채우고,
밖으로는 만물에 대한 집착을 비웠다네.
그래서 혹시 나 아닌 어떤 것 때문에 움직이게 된다 해도 마음까지 따라 움직이는 건 아니고, 누가 나를 떠민다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불만은 갖지 않네.
상황이 닥쳐오면 행동하고, 불러 준다면 간다네.
갈 때는 가고 멈출 때는 멈추니, 좋을 것도 안 될 것도 없는 것이지.
자네는 빈 배를 본 적이 없나?
우리가 배를 타고 건너갈 때 빈 배가 떠내려와 부딪치면 아무도 화를 내지 않지.
그렇지만 거기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모두들 비키라고 소리치고 욕하지 않았겠냐.
나는 바로 그 빈 배를 닮은 사람일세.
그런데 자넨 어째서 나를 꾸짖어 대는 건가?"
그러자 바위는 부끄러워하며 대답이 없었다.
- 이규보, 「답석문(答石問)」-
장자는 전국시대 사상가로 책 로 잘 알려져 있다. 중국 사상은 두 가지 큰 흐름이 있다.
공맹사상(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계승한 유가 학파)과 노장사상(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계승한 노장학파)인데, 장자는 노장학파에 속한다.
노장학파는 “말과 문제에 매이지 말라”는 붓다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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