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의 [필록테테스]
세계의 역사속에서는 위대한 명궁수들이 있었다. 의로운 숲속의 명궁수 로빈 후드로부터, 스위스 독립운동을 주도한 빌헬름 텔, 고구려의 건국자인 고주몽,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그리고 삼국지에는 황충에 대한 이야기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 고전인물중에 활을 가장 잘 쏜 인물이 있다. 바로 백발백중의 명사수 [필록테테스]다.
이 [필록테테스]는 소포클레스가 그의 나이 83살에 쓴 것이다. 소포클레스는 상당히 장수한 문학가였다. 그가 만든 수많은 명언들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의 이 비극에서 우리는 [아픈 몸과 마음의 치유 healing]가 왜 이리도 중요한지 발견한다. 하지만 개인이 개인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도 보여준다. 그래서 이 비극을 소포클레스의 배려가 깃든 비극으로 보고 싶다. 비극도 희극적인 요소가 반드시 들어간다.
소포클레스는 알다시피, [오이디푸스 왕]이야기나 [안티고네]라는 비극으로 너무나 알려져 있지만, [필록테테스]는 거의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의 일대기를 알아보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천하장사 <헤라클레스의 화살>이다.
<헤라클레스의 화살>
필록테테스는 테살리아의 멜리보이아 왕 포이아스의 아들이었다. 헤라클레스가 네소스의 겉옷을 입고 괴로워 할 때 스스로 장작더미를 올려 화장을 하려고 했는데 전설에 따르면 아무도 감히 그 화장 장작더미에 불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이때 필록테테스 (다른 정승에는 그의 아버지 포이아스)가 용감히 불을 놓아 헤라클레스의 장례를 치렀고 이 때문에 그는 헤라클레스의 활과 머리가 온통 뱀인 히드라의 독이 묻은 화살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필록테테스는 헬레네의 구혼자 중에 한 사람으로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자 그리스 연합군의 일원으로 멜리보이아의 군대를 50명의 사공이 모는 배 일곱 척에 나누어 타고 트로이 원정에 참가했다. 그러나 트로이로 오는 도중에 그는 부상을 당해 다른 그리스 장군들에 의해 렘노스에 버려지게 되는데 여기에는 서로 다른 전승이 전해진다.
일설에는 헤라클레스를 도와 준 사실에 앙심을 품은 여신 헤라가 보낸 물뱀에 물려서 부상당해 버려졌다고도 하며 다른 설에는 헤라클레스의 유해가 있는 장소에 갔다가 부상당했다고도 한다. 어쨌거나 그는 다른 그리스 장군들에 의해 (특히 오딧세우스) 렘노스 섬에 10년간 홀로 남겨져있었고 그의 부대는 오일레우스의 서자인 메돈이 대신 지휘했다.
<필록테테스의 소환>
트로이 전쟁이 10년간 지지부진하게 끌게 되었는데 그리스 군은 프리아모스의 예언자 아들 헬레노스를 고문하여 그리스군이 전쟁에 승리할 비결을 물었다. 헬레누스는 “그리스가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헤라클레스의 화살과 활이 있어야 한다”고 예언했다. 그것이 신의 뜻이라면 반드시 필록테테스를 데려고 와야 한다.
그 예언은 곧 필록테테스가 없으면 전쟁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10년간 무인도에 버린 사람이 과연 살아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전쟁에 이기고자 하는 심산에 오딧세우스는 자신의 국가와 명예를 위하여 그 임무를 수행한다. 그는 국가를 위해서는 자신의 한 목숨을 바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필록테테스를 버린 그가 스스로 데려오는 것에 주저했을 것이다. 오딧세우스와의 악연에 필록테테스는 과연 다시 돌아올 것인가도 의문이었다.
그는 죽은 최고의 전사이지만 발목에 화살을 맞아 죽은 아킬레스(아킬레우스)의 아들을 데리고 간다. 그 위대한 장군의 아들은 네옵톨레모스이다. 그러면서 반드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필록테테스를 데려오고, 필요하다면 그를 죽이고 활만이라도 가져오려 했는데 놀랍게도 필록테테스가 아직 살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스 군에서는 필록테테스를 데려 올 것이냐 말 것이냐를 가지고 논쟁이 일어났다. 필록테테스와 사이가 너무나 좋지 않았던 오딧세우스는 활과 화살만 가져오자고 제안했고 디오메데스는 필록테테스도 함께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오딧세우스는 그의 활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네옵톨레모스는 선배 장수인 필록테테스의 [고통스런 스토리]를 듣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 [헤라클레스의 활]을 그에게 돌려주게 된다. 그런데 필록테테스는 그 활로 [오딧세우스]를 죽이려고 하였다. 이를 말리고 제지한 사람이 바로 네옵톨레모스다. 아마 두 사람 사이에 [사나이의 우정]이 생겼을 것이다.
다시 백워드를 하여서, 그 10년의 무인도의 세월동안 필록테테스는 목이 마르면 빗물을 받아 먹고, 배가 고프면 자신의 백발백중 활실력을 가지고 날짐승이나 들짐슴을 잡아서 먹었다. 그런데 그의 상처는 오랫동안 아물지 않았다. 고통이 주기적으로 찾아와서 그는 발을 자르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더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버림받았다는 배반감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였다. 그는 실로 증오로 버틴 것이다.
활만 가지고 가려고 했던 아킬레우스의 아들은 필록테테스의 눈물겨운 삶의 투쟁과 고통을 보았고, 배반당하고 버림받은 사람의 역경을 보며 차마 그를 더 버리고 배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손에 들어온 활을 필록테테스에게 다시 돌려주고 본인도 국가에 등을 돌리게 되었다.
자신들을 길러준 국가, 그리고 키워준 국가이지만, 사람을 무정하게 버리고 외면한 국가에 대한 증오심과 배반감은 실로 너무나 큰 상처였다. 그런데 필록테테스를 움직인 것은 국가에 아니라 바로 아킬레우스 2세의 인간적인 몸짓이었다.
그러고 보면 ‘치유는 인간적인 몸짓과 배려’에서 나온다.
결국 그리스 군은 아스클레피오스의 두 아들 마카온과 포달레이오스를 시켜 필록테테스를 치료하게 했고 필록테테스는 완전히 치료되어서 그리스 진영에 합류했다.
필록테테스는 화살을 쏘아 파리스를 죽였고 나중에 트로이 목마에도 타고 있었다. 트로이를 함락할 때는 많은 트로이 진영의 장수를 죽이는 공을 세웠다.
<필록테테스의 죽음>
필록테테스는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멜리보이아로 돌아왔는데 이미 반란이 일어나 왕위를 빼앗겼다. 그는 이탈리아의 칼라브리아 지방으로 발길을 돌려 그곳에서 여러 도시를 세웠고 시칠리아의 그리스 인들을 도왔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죽었고 거기서 묻혔다. 그는 자신의 왕국도 잃어버렸지만 더 이상 낙심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치유된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국가가 국민을 버리면 절대로 안되지만, 설사 버린다 하여도 다시 찾아가서 회복시켜주는 따뜻한 마음과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 필록테테스의 스토리를 통해서 배운다.
사람들은 상처가 많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상처가 된다.
사람들이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그러한 심신의 상처는 곧 사람을 통해서 치유가 되어져야 한다.
사람이 준 상처는 사람이 치유해야 한다.
스스로 자신을 치유할 길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하버드 출신의 심리학자요 카톨릭 신부였던 헨리 나우웬의 말대로,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상처를 덜 받은 사람이 상처를 더 받은 사람을 치유하는데서 일어난다.”고 한다.
성서 전도서 3장에도 써 있다.
“상처줄 때가 있고, 그 상처를 싸매 줄때가 있다.”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다.”
이를 오늘의 주인공 필록테테스에 비추면 [상처없이 치유는 없다.] 라는 교훈을 얻는다. 상처가 치유로 일어나는 것은 누군가가 이 상처를 보듬어 주고 아파하였기 때문이다. 스스로 치유할 수 없는 것인데, 그 상처에 동병상련이 된 사람이 사람이 있기에 필록테테스는 신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과감히 트로이 전쟁터로 간 것이다.
그러고보면 인생은 비극이면서 희극이고, 희극이면서 비극이다.
당분간 소포클레스의 [비극 시리즈]들을 읽으면서 지내보련다.
마음의 남은 상처도 아물고, 자기 위안도 얻어본다.
[Las Comedia] 는 단테의 [신곡]이라고 부르는데, 이 책의 원래 이름이 [희극]이다. 인생은 코미디와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비극적인 것이 가장 희극적인 것이다" 라고 단테는 말했다. 비극이 곧 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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