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MASK)과 얼굴 그 사이에서 - 2020년 4월 글
4월 4일, 봄의 고향악이 울려퍼지는 시간,
청주의 후배 가정을 만나러 차를 몰았습니다.
청주는 우암산과 무심천의 도시입니다.
후배 가정을 만나서 우암산 산허리를 돌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명암호수로 가서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기로 하였습니다.
청주에서 유명한 옻닭집에서 식사를 하고, TWOSOME PLACE에서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마셨습니다. 그리고 소화도 시키고, 기분전화을 할겸 명암호수를 돌기로 하였습니다. 이미 그 호수에는 많은 상춘객들이 와 있었습니다.
그 상춘객들의 80%는 전부다 하얀색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조용히 호수 주위를 돌고 있었습니다. 여기 저기 밝은 표정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니, 마치 나 자신이 이방땅에 있는 나그네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제 마스크 착용하기가 이제는 하나의 [집단적 습관]처럼
자리잡아 가는 한국사회입니다.
이 사회에서 활력이나 감동은 사라지고 있는 듯한 기분으로
요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어디를 가나 마스크를 쓴 사람을 보는 것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보는 것보다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호수에는 잉어들과 여러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고
몇 마리 청둥오리들이 뒤뚱 거리며 걷고 있고,
호수 위에는 봄을 노래하는 새들이 날아다녔습니다.
저 동물들은 물론 마스크를 쓰지 않았습니다.
저 동물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청주 우암산과 명암호수 투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교차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쓰는 마스크는 마치 가면이나 탈처럼 여겨졌고,
그리고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인간의 이중성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들의 마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얼굴의 반을 가렸으니 반은 알겠고 반은 모르겠다는 의식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 얼(혼)의 굴의 줄임말이라고 합니다.
얼굴은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는 창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밖을 바라볼 때 창을 통해서 바라봅니다.
반대로 밖에서 안을 바라볼 때도 창을 통해서 바라봅니다.
그런데 나와 우리의 얼굴은 정말 제대로 된 얼굴인지,
행복한 얼굴인지, 아니면 불행을 숨기고 있는 얼굴인지 전혀 모릅니다.
본인만 아는 대답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얼굴을 있는 그대로의 얼굴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비추는 얼굴은 같은 얼굴인지, 아니면 다른 얼굴인지
본인만 아는 대답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서재에서 가면과 얼굴에 관한 우화를 찾아 보았습니다.
무엇이든 찾지 못하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나로서는 여기 저기 찾다가
겨우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또한 가면과(마스크)과 얼굴에 대한 시들도 찾아 보았습니다.
이런 글을 쓴 작가들과 시인들을 보면 두 갈래로 나옵니다.
사물이나 현상의 긍정적이고 밝은 면을 문인들과
도리어 부정적이고 어두운 면을 보는 문인들로 나누어집니다.
물론 상당부분 진실과 싸움을 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성을 갖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주제를 가지고 쓰면서
느끼는 것은 감정에 충실하게 쓰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믿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감정을 속이는 것도
좋지는 않습니다. 감정전달이 되지 않으면 그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본인이 감정선에 접근한 글들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하나는 추명희 시인의 시입니다.
얼굴만한 탈이 어디 있으랴
(추명희·교사 시인, 1950-)
얼굴만한 탈이 어디 있으랴
말해야지
기어이 말해야지
정작 당신 앞에 서면
눈길 비키던 날도
밤새 만든 탈에 숨어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떠도는 소문
바람에 스며들어
상처마다 새살 돋을 때까지
손수 만든 탈에 숨어 있었다
숨어 울어도
탈은 젖지 않았다
이제 수많은 탈 속에서
굳은 혀 풀어가며 혼자 연습하는 말
내가 아닌 나에게 묻는다
내 눈, 내 귀, 내 코……
내 얼굴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 얼굴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대목에서 눈이 머뭅니다.
지금의 내 얼굴이 진정 내 얼굴인지 돌아보는 대목입니다.
사람들이 쓰는 가면과 얼굴이 정말 같아지는 감정입니다.
이 시인의 시는 한편의 시라기보다는 우화를 읽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짧은 우화를 소개합니다.
평생 가면만을 만들며 살아온 장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해가 되면서부터 이 사람이 가면을 제작해놓고
통 팔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소문이 돌았습니다.
곧, 이 사람이 가면을 사서 쓰면 가면이 얼굴에 달라붙어서
본 얼굴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가면을 팔라고 졸라대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다들 자신의 얼굴을 아름답게 고쳤으면(성형의 유혹) 하고
바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소문은 드디어 임금님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임금은 가면 만드는 그 장인을 불러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가면 만드는 사람이 궁에 들어오자 임금이 묻습니다.
"네가 만드는 가면이 신기에 가깝다고 들었다.
어떻느냐, 나한테 너의 가면 하나를 줄 생각은 없느냐?"
가면 만드는 장인이 대꾸합니다.
"이미 가면을 쓰고 계시면서 무얼 또 쓰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임금이 그 말을 듣고 대노하였습니다.
"뭣이라, 내가 가면을 쓰고 있다고?"
가면 만드는 장인이 말합니다.
"임금님께서는 때때로 마음먹고 있는 것하고는
반대의 얼굴 표정을 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그것이 가면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임금은 그 말을 듣고 껄껄 웃으면서,
"네 말도 맞다. 그런데 너는 그럼 사기꾼이지 않느냐?"
가면 만드는 장인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가면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가면을 쓰려면
좋은 마음을 3년 쓰고 난 후에 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얼굴이 그렇게 변하니까요/ 후일에, 저는 가면을 씌우는흉내를 낸 다음에 이런 부탁을 하곤 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가면이 흉하게 변할수도 있으니 마음을 바르게 쓰고 살라구요"
일금은 가면 만드는 사람에게 후에게 상을 주어서 보냈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여기 저기 많은 얼굴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도 있지만,
봄의 얼굴도 있습니다.
자연의 얼굴도 있습니다.
도시의 얼굴도 있습니다.
수많은 얼굴들속에서 우리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속에서 기억되어져야 할 얼굴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겉과 속이 같은 얼굴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가면을 벗고 제대로된 얼굴로 서로 서있게 되니까요
그러고보면 이 글을 쓰는 자신도 수없이 다른 사람들을 속인 사람입니다.
여전히 이중성과 가식성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나의 두통(HEADACHE)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이번에 다시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하는
청주의 시인인 도종환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그 분이 쓴 시로 이 글을 마칩니다.
수없이 많은 얼굴 속에서
수없이 많은 얼굴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찾아냅니다
수없이 많은 목소리 속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찾아냅니다
오늘도 이 거리에 물밀듯 사람들이 밀려오고 밀려가고
구름처럼 다가오고 흩어지는 세월 속으로
우리도 함께 밀려왔단 흩어져갑니다
수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속에서
오늘도 먼 곳에 서 있는 당신의 미소를 찾아냅니다
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는 먼 길 속에서 당신은 먼발치에 있고
당신의 눈동자 속에서 나 역시 작게 있지만
거리를 가득가득 메운 거센 목소리와 우렁찬 손짓 속으로
우리도 솟아올랐단 꺼지고 사그러졌다간 일어서면서
결국은 오늘도 악수 한번 없이 따로따로 흩어지지만
수없이 많은 얼굴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기억합니다
수없이 많은 눈빛 속에서 당신의 눈빛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어떤 얼굴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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