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비극
조조의 문재 아들 조식의 공후인과 칠보시
삼국지를 읽으면서, 영웅호걸들의 웅장하고, 멋진 스케일에도
감동받지만, 중간 중간 삽입된 스토리들은 정말 의미심장하다.
사실 오랫동안 삼국지를 읽어온 나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감정을 삭히고 조조의 아들 조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물론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이야기의 일부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삼국지의 비극]이라고 명명한다.
삼국지에는 희비가 엇갈리는 장면들이 무수히 나온다.
위촉오로 천하가 삼분이 되고, 그 삼국의 영웅들의 혈투가 그려져 있다.
삼국의 중원에 대한 다툼도 볼거리이지만, 이들 나라들 내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살펴보는 것도 또 하나의 볼거리이다.
삼국지의 비극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단연 [형제간의 대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전 왕조의 거울을 보면 여러 상상들이 추측들이 난무한다.
중국이나 조선은 옛부터 세자책봉이 매우 중요한 국가의 대사였다.
그래서 세자로 책봉이 되면, 다른 왕자나 공주들은 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거나, 아예 궁궐출입이 안되게 만들거나, 유배를 보내거나,아니면 제거하는 거사를 하였다. 그런 [궁중 비극사]들은 동서양 어디서나 존재한다.
그뿐만 아니라 대기업들이나 재벌을 보면 [후계구도]를 정할시 형제들의 경영권 쟁탈전을 두고 옥신각신, 출혈경쟁을 하는 것을 가끔씩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의 이맹희와 이건희 두 형제간의 정통성 싸움이 그것이다.
선대 회장인 이병철 고 회장에게서 나온 두 형제이건만 서로 앙숙이 되어서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권력을 놓고, 명예를 놓고 불화를 지속했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한국 역사에서도 이씨조선의 개국을 놓고서 이성계의 아들들은 서로 격렬한 아비규환의 싸움을 해야 했다. 결국 이방원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이방원에게 최대의 정적은 바로 형제들이었고, 신진사대부들이나 권문세가들이었다. 형제들을 거의 다 제거한 후 권력을 공고히 해야 했고, 자신의 걸출한 아들 충녕을 세종으로 세우고도 상왕정치를 펼쳤다.
조선의 4대 사화인 갑자사화에서도 진성대군과 광해군의 대립이 그것이다.
광해가 왕권을 쥐자 진성대군은 광해가 반드시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자 조식이 칠보시(칠보재)가 생각이 났다고 한다. 가슴이 조리고 두려운 와중에 광해를 만났지만 영특한 광해는 이미 진성대군은 안중에도 없었다. 물론 자신의 왕비인 부부인 신씨가 눈물을 흘리며 살려두기를 간청하자, 진성대군은 여염집으로 쫓겨나게 되었고 간신히 생명을 부지했다는 일화도 유명한다.
어떤 유럽의 삼국지 연구가는 "삼국지는 시와 시가라는 문학적인 요소만 빼면 정말 세계적인 역사소설이 될 수 있다." 라고 말했다.
그것은 중국의 특수성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중국만 아니라 일본이나 한국도 시와 시문을 가지고 논하는 것은 왕족이든 귀족이든 선비이든 중요한 일상중에 하나였다. 삼국이 대립하고 있는 와중에도 시를 논하고, 노래를 하는 것은 군웅들에게는 늘상 있는 일이었다. 장기간의 전쟁을 치루면서도 이들은 책을 읽고, 시를 논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삼국지의 간판이라 불리우는 간웅 조조도 전시에도 책을 수시로 읽고, 시문을 작성하고, '문화적인 긍지'를 가졌던 사람중에 하나이다. 심지어 명장 관우도 [춘추]를 품에 지니고 다니면서 수시로 읽었다고 한다.
지금도 중국은 한시를 가지고 외교를 하기도 한다. 시도 외교가 될 수 있다.
위촉오가 적벽대전을 마치고 전쟁의 소강기에는 많은 문인들이 모여서 문학을 논하였다고 한다. 조조, 조비, 조식으로 이어지는 건안문학이 바로 그것이다. 건안은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의 연호였다. 이 건안문학의 7대 인물을 [건안칠자]라고 하였으니 그 중에 주도권을 쥔 사람이 조식이었다.
그래서 삼국지에서는 문학적 측면도 깊이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너무나 정치나 역사로 치우친 것도 사실이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책을 읽고, 책을 읽는 사람은 운동을 하면서 자신이 스트레스를 풀고 낙으로 삼는다고 한다. 정적인 사람은 동적인 것에서 활력을 찾고, 동적인 사람은 정적인 것에서 활력을 찾는다.
그래서 우리가 삼국지의 역사적 측면과 문학적 측면을 골고루 살펴본다면 삼국지를 읽는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다.
오늘은 삼국지에 나온 이런 류의 [삼국지의 비극]을 다루고 싶다.
특히 조조의 아들인 조비와 조식의 형제간의 비극적 순간을 다루고 싶다.
이를 보고 나는 [권력무상]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어느 왕조에게나 존재하는 권력에의 의지는 그 과정에서는 가치가 있어 보이지만 결과를 보면 비극으로 마치기 때문이다. 조조가 평생의 대업을 이루었지만, 자식들은 서로 화목하고,우애있게 지내지 못하였다. 조조에게 문재로서 두보이전의 시성인 사람이 바로 [조식]이었다. 조조의 아들 조식은 정말 문재중에 문재였다.
(나는 조식을 신라시대의 최고 지성이면서 풍류가였던 최치원에 비하고 싶다>
조비가 왕위을 얻게 되자, 조식과 조창은 형이 자신들을 위협하고, 죽게 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가졌다. 조창은 형인 조식을 왕위로 세우려고 하였다. 그런데 조식은 지금까지 아버지 조조에게 말썽만 부린 것을 후회하면서 차마 역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결론을 내린다. 당시 조창은 군사를 움직일 수 있는 대장군이었고, 그래서 계엄령을 내린다. 조비와 대립각을 세우고 역성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그때 대군을 거느리고 있던 조창에게 술을 많이 먹이고 영패를 훔쳐서 옥에 갇혀 있었다고 하는 사마의와 가규를 풀어준다. 가규를 성밖으로 보내고 사마의와 이야기와 시문을 나눈다.
역사적으로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겠으나,
사마의에게 자신의 인생무상을 노래한 [공후인]을 남긴다.
<공후인이라면 공무도하가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시이다>
이 장강같이 긴 시를 즉석에서 읋었다는 것으로 나는 조식의 천재성을 보여주고 싶다. 소리를 내어 해금반주나 아쟁반주에 맞추어서 낭독해봄도 좋다.
높은 전각위에 술상을 차려놓고
친한 벗들과 더불어 놀았네
부엌에선 여러 가지 찬을 만들고
양을 삶고 살진 소를 잡았네
진나라 아쟁소리 통렬하고 슬프지만
제나라 비파소리와 부드럽게 어울린다.
옛노래 양아에 맞춰 멋진 춤을 추고
낙양의 이름난 노래를 부르네
기뻐 마시는 술 석작이 넘으니
허리띠 느슨히 풀고 실컷 마셨네
주인이 객들의 천수를 기원하니
객들은 주인의 만수를 빌어주니
오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끝날 때 야박하면 허물이 되는 법
겸손하고 겸손함은 군자의 덕이나
무엇하러 몸을 굽혀 공경한단 말인가?
사나운 바람이 해를 몰고 떠가니
광경은 서쪽으로 내달려 흘러가네
좋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고
백년을 살아도 홀연히 흘러가네
살아서 화려한 집에 살았으나
죽어서 영락없이 산으로 돌아가네
나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 누군들 죽지 않으랴
운명을 알았으니 또 다시 무엇을 걱정하랴
이 공후인을 보면 부귀영화도 헛된 바람을 잡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은 죽을때쯤 되면 깨닫는 존재이다.
그러면서 오늘의 주제에 걸맞게 그 유명한 조식의 [칠보시]를 소개한다.
煮豆然豆
자두연두기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콩을 삶아 국 끓이는데
/메주 걸러 국물 낸다.
콩대는 솥 아래서 타고
/콩알은 솥 안에서 눈물 흘린다.
본래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거늘
/어찌 이리도 다급하게 졸여대는지.
―‘칠보시(七步詩)’(조식·曹植·192∼232)
삼국시대 위왕(魏王) 조조(曹操)에게는
시문에 뛰어난 두 아들 조비(曹丕)와 조식이 있었다.
특히 조식은 ‘천하의 재주를 한 석(石)으로 친다면,
그중 8할은 조식의 것이다’라는 칭송이 따를 정도로 시재가 출중했다.
조조(曹操)가 죽자 아들 조비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이에 두 동생(조창,조식)이 불만을 품고 아버지 장례식에도 참석치 않았다.
삼부자중에 두 동생이 오지 않았으니, 맏형 조비의 화가 극에 달하였다.
아버지 조조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들이 오지 않았으니, 맏형에 대한 예우는 물론이거나와 새로운 왕에 대한 신하의 예를 갖추지 않았다는 것에 대노한 것이다.
후환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한 조비는 사마의(중달)와 상의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조창은 중달이 나서서 말로 굴복시키고
조식은 궁으로 잡아 들이라고 명한다.
군사들이 들이닥치자 마침 문우(文友)들과 어울려 놀던 조식은
가면 죽는다며 못가게 막는 문우들을 향해
'인생은 하루 더 살아도 아쉽고 하루 덜 살아도 충분하다'는
말을 남기고 군사들을 따라 나선다.
조비는 조식을 불러다 놓고
'네가 그토록 재주가 있다면,일곱 걸음 걷는 동안 시를 지으라.
만약에 짓지 못하면 죽을 것이요 지으면 살 것이다'며 거부할 수 없는 제의를 한다. 시제는 '형제'로 하고 시에 직접 '형제'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안된다는 조건을 붙였다. 이에 조식이 머뭇거림없이 그리하겠노라 하자 옆에 있던 한 신하가 '일보, 이보…' 세기 시작했다.
여섯보를 세고 나자 조식이 입을 열었다.모두 긴장했다.
그 시를 듣고 울지 않은이가 없을 정도로 조식은 시재였다.
허망하고 가슴시린 칠보시를 들은 이들은 나중 이 시를
기록하였고, 이렇게 삼국지연의에 까지 등장하게 된다.
또 ‘曹子建集’에 수록돼 있는 이 칠보시는
시작의 수사학적 측면에서 은유법과 擬人法을
기막히게 구사한 대표적인 시로 꼽힌다.
순간적으로 형제를 한 개체인 콩에 비유하고,
콩을 볶는 것과 콩을 볶는 불쏘시게로 콩깍지를 생각해낸
기지와 순발력은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아무리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문학적 재질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시는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의미심장하고, 비유 또한 기발하다.
콩대를 땔감으로 삼아 콩을 삶는 일은 흔히 볼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일종의 ‘동족상잔’이다.
이 시가 체념 혹은 원망을 담은 읍소(泣訴) 그 이상인 이유는
시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는 절박감 때문일 것이다.
삼국지연의 등 후대의 기록에는 시의 앞 2구가 빠진 채 4구로만 소개되는데,
최초로 이 시를 수록한 세설신어(世說新語)에는 지금처럼
전체 6구로 되어 있다.
어쨌든 이 시는 생생한 비유도 그러려니와
단숨에 지어낸 문학적 순발력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성균관대 이준식 교수>
우리는 과연 형제들과 화목하게 사는가? 화목하기는 왜 이다지도 힘든 것인가?
충남 예산군 대흥면사무소 앞에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볏단 양보 형제’로 잘 알려진 ‘의좋은 형제 우애비’가 있다. 자신의 곡식을 서로 양보하는 아름다움은 우리나라 부자들이나 권력자들이 가져야 할 미덕이다. 화목이 제일이다.
조식이 칠보시를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소개하오니,
읽으시면서 형제사랑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경영은 이루기도 어렵지만 가정의 화목도 이루기 어려운 일이다.
충남 예산군 대흥면사무소 앞에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볏단 양보 형제’로 잘 알려진 ‘의좋은 형제 우애비’가 있다. 자신의 곡식을 서로 양보하는 아름다움은 우리나라 부자들이나 권력자들이 가져야 할 미덕이다. 화목이 제일이다.
조식의 공후인은 몰라도 칠보시는 여전히 인구에 회자되는 명시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은 위왕 조비는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식은 기억한다.
히포크라테스의 말대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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