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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경영학 12, 제갈량 리더쉽과 읍참마속

by 코리안랍비 2022.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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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경영학시리즈 12차
  • 다음 출처 이미


전무후무 제갈무후의 리더쉽
엄숙기율과 읍참마속의 진실

삼국지에는 여러 미스테리한 사건들이 존재한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읍참마속]이다.
이는 “눈물을 뿌리면서 마속을 참하다” 라는 스토리이다.
이는 가장 아끼는 사람중에 하나를 비통한 심정으로 팔을 자르는 일이다.

가끔 신문지상에 보면 [읍참마속]이라는 구절을 자주 인용한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눈물겨운 심정으로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읍참마속]은 신복중에 신복이지만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대의를 위하여 참함으로서 권위를 세우고 리더쉽을 세우는 일이다.


마속은 제갈량의 최측근중에 하나이다.
리더에게 가장 난처한 일은 자신의 최측근이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다.
우리 정치사에도 [측근정치]가 많다. 이러한 측근중에도 항시 비리자가 생기고,
배교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항시 충성스러운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정사를 그르치고 나라를 망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의 마속은 충성스러운 인물이며, 제갈량을 도와서 촉한의 정통성을 세우려던 인물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가 죽었다. 그것도 자신의 스승인 제갈량에 의해 죽었다.


나관중의 [삼국연의]에는
마속이 죽기 전에 북벌의 주요 요충지였던 가정에서 대패하자,
마속은 자신의 부장 왕평과 함께 제갈량에게 돌아간다.
제갈량은 그를 때리거나 욕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책망한다.

“幼常아, 유상아(마속의 자), 네가 어디가 유상이냐, 너는 유치(幼稚)다.너에게 산을 의지하며 물이 있는 길에 주둔하라고 했거늘 왜 내 말을 듣지 않았느냐?“

그리고 군령장에 써 있는 대로, “싸움에 지면 목을 바치겠다” 고 했으니 “여봐라 끌고 가서 목을 쳐라!”그런데 이때 급한 마속은 말한다.

“승상, 살려주십시오. 저희 집안에는 위로는 어른이 계시고 아래로는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공을 세워 죄를 대신하도록 저에게 기회를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러자 제갈량은 눈물을 흘리며 마속에게 말한다.
“유상아, 너를 죽이는 것은 내 마음을 도려내는 것과 같다. 그러나 군령장이 여기 있으니 내가 너를 죽이려 하는 것이 아니라, 군법이 너를 죽이는것이다. 군법에 정을 둘 수는 없다. 뒷일은 너무 걱정마라. 너의 고령의 노모는 내가 보살피마, 너의 처와 자식들도 내가 보살피마 너는 마음을 놓아라”

참으로 비정하고 무정한 순간이다.

그런데 사마광의 [자치통감]에도 이렇게 기록한다.

“마속이 돌아오자 하옥시키고 죽였다. 제갈량이 친히 제사를 지내며 눈물을 흘렸다. 그의 남은 가족을 돌보고 평생 동안 은혜를 베풀었다.”

지금까지는 연의나 자치통감에 나온 글을 토대로 말해 보았다.



다시 마속에 대한 진실을 알아보자.
진수의 삼국지에는 [마속전]이 없다.
다만 [제갈량전]에는 제갈량이 한중으로 군대를 이끌고 돌아온 다음 바로
“마속을 참해 대중에 사죄했다” 라고 말한다.

또 촉의 신하였던 [왕평전]에도 “승상 제갈량이 이미 마속을 죽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마량전]에 보면 “제갈량이 공격했으나 근거지가 없어 한중으로 후퇴했다. 마속은 감옥에서 갇혀 죽었다. 제갈량은 이에 눈물을 흘렸다” 라고 전한다.
또한 리중텐의 책에 보면, 기주싸움의 패배를 안고 마속은 도망하였고, 나중에 잡혀서 관직을 잃었다라고 한다.(상량전)

삼국지에는 마속의 죽음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마속은 도망을 간 것인가? 아니면 제갈량에 의해 참수를 당했는가?
일단 참수라는 쪽으로 가는 것이 맞다. 그 이유는 나중에 나관중도 전쟁에는 반드시 승과 패가 일어나는데 패배의 원인이 군사인 자신의 지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과 권위나 리더쉽에 대한 일종의 도전에 따라서 참수가 불가피했다고 본 것이다.

연의에서는 선제 유비의 말이 있다.
"마속은 말이 행동보다 앞서니 크게 써서는 안된다"
이 말이 이미 제갈량의 의중에 있어서 마속의 죽음을 앞당겼다는 말도 있다.

그렇지만 다른 삼국지의 부분을 보면, 마속의 마지막 제갈량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있다. 그 내용을 보자.

명공(제갈무후)은 저 마속을 친아들처럼 대했습니다.
저 마속 역시 명공을 마치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만약 명공께서 치수에 힘을 쓰지 않은 곤(鯤)을 대순(大舜 요순시대의 순임금)이 처벌한 것처럼 저를 벌하신다면 저는 부자지간과도 같은 깊은 은혜의 정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저 마속은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이 편지를 보면 아마도 마속은 도망중에 잡혀서 감옥에 갇히고, 거기서 아마도 참형을 받았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지금껏 어느 누구도 읍참마속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고민해 본적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마속이 죽은 다음에 장완이라는 신하가 한중에 도착해 제갈량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지금 천하는 아직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귀히 여기고 써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럴 때 이런 걸출한 인재를 죽였으니 너무나 애석합니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은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죽이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삼국지 [제갈량전]에 보아도 단순히 머리와 꼬리를 잘라서, “마속을 죽이고 눈물을 흐렸다”라는 식의 대목만 존재한다.


마씨집안에 대해서 잠시 말해보자.
마속은 마량의 동생이다. 마량과 마속 형제는 다섯 명이 있었고, 모두 인재들이었다. 그중에 가장 걸출한 인물이 마량이다. 그래서 항간에 “마씨 5ㅎ형제중에 백미(白眉)가 가장 우수하다” 라는 말이 나온다. 바로 백미가 마량이다. 그러나 마량은 이릉전투에서 애석하게도 사망한다. 마량은 제갈량이 강유와 더불어서 다음의 후사(후일의 군사)로 생각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그런데 마량이 죽자 그의 동생 마속을 극진히 대우한다.

삼국지 [마량전]에 의하면 제갈량은 마량이 죽고 마속을 친아들처럼 신임하고 접견을 하면 낮부터 밤까지 이야기가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마량 못지 않게 마속도 걸출한 인재였다는 것이다.

혹시 [칠종칠금(七縱七擒)]이 이야기를 아는가? 삼국지에 아주 재미있는 부분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도 삼국지가 인기가 많은지 모른다.

나는 스토리 텔러다. 그러다보니 이야기를 서로 맞추는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나다. 이렇게 말해놓고서 책임을 져야한다. 칠종칠금은 남만(지금의 베트남)의 추장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풀어줘서 마침내 굴복시킨다는 고사이다.

이 남만(남중)을 정복할 때 마속은 제갈량을 전송한다. 헤어질 때 마속에서 전략을 주문한다. 평소에는 자신이 전략을 짜고 움직였지만, 마량처럼 아낀 마속에게서 좋은 전략을 제시받는다. 이름하여 [16자 방침] 이라는 전략이다.

그게 바로 “마음을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고 군대로 싸우는 것은 하책이다.” 라는 것이다. 그 전략에 맞추어서 칠종칠금의 전략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마속을 참했다는 것은 사실 촉이라는 나라를 세우면서, 법도도 같이 세우게 된다. 다른 기록들을 보면 가정전투에서 참패를 하자, 그 책임을 물어 여러 장수가 죽는다. 그 중에 장휴와 이성이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장군 황습은 병권을 박탈당하고, 심지어 천하의 조운 장군도 진동장군에서 진군장군으로 강등한다. 오히려 마속의 부장이었던 왕평이라는 장수만 도리어 진급한다.(왕평은 제갈공명의 전술을 그대로 따랐기에 싸움에 졌음에도 불구하고 특진하였다.) 물론 제갈량도 자신의 지위를 3등급 강등을 한다.


춘추대의를 보면, “전쟁에서 패전하면 반드시 최고 책임자를 문책한다” 라는 말이 있다. 제갈량도 자신을 3등으로 강등시키면서, 가정 전투의 가장 큰 패배의 원인을 제공한 마속을 눈물을 머금고 참했다고 보면 맞다. 그것은 바로 제갈량의 [가정자폄소]라는 반성의 글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는 그의 상소는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마속을 참할 이유가 적다.

여기에는 전쟁에 패배에 대한 책임을 묻는 춘추대의도 있지만,
제갈량에는 다른 정치적인 뜻이 있다고 본다. 당시 촉한 정권은 세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첫째는 형주 그룹으로 유비와 유비의 형제들 그리고 제갈량을 중심으로 그룹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동주 그룹으로서 바로 촉한에 있었던 정통파 이엄과 오일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익주 그룹으로서 팽양과 두경, 초주와 낭중 등이 주요 인물이다.


이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원내 1당과 2당, 그리고 제 3지대를 말할 수 있다.
제갈량에게는 이러한 정치세력과의 마찰이나 압력보다는 원내 1당으로서의 지위와 권위를 누리기 위해서 마속을 참했다고 보는 것이 좋다. 그래서 [삼국사화]를 쓴 옌렁 선생의 말에 의하면, [欲謖以謝衆 욕속이사중] 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마속을 참해서 대중에게 사죄했다”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다른 정치세력과 더불어서 만인들 앞에 자신의 권위와 리더쉽을 세우기 위해서 마속을 참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제갈량에게 눈물을 흘리게 한 일이다. 제갈량은 지도자의 위치에 서서 자신이 정한 군율을 자신이 지킨 것이다. 또한 정치적인 세력에 대한 명분도 갖추게 된 것이다. 그 당시 마속이 죽을 때 마속의 나이는 39살이었다.


제갈량은 마속을 참하고, 정권에 도전한 이엄(유비가 유언으로 촉한을 제갈량과 함께 맡길만큼 고중한 인물)을 나중에는 파직시킨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유비의 대표적인 장수중에 하나인 [위연]이 있다. 이 위연이라는 장수에 대해서는 다른 편에서 다루어보겠다.(*이엄에 대한 글이나 [반골기질] 위연에 대한 글은 삼국지 경영학의 엑스트라 스토리에서 반영한다.)

제갈공명은 마속을 참함으로서 자신의 군대의 군기를 세우고, 권위를 세우고, 위엄을 세웠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장수를 참하고 자신도 3계급이나 강등되어서 스스로 위엄을 세웠다. 그가 그저 조무래기들이나 없앴다면 그는 아무런 권위를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기업의 회장이 경영의 책임을 물어서 자신의 아끼는 간부를 가끔씩 내리거나, 강등시키는 경우가 있다. 물론 회장에게는 자신의 경영권과 인사권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사람을 제거하고 자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경영에 저해가 되거나, 방해가 될 경우에는 좌천시키거나 파면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바로 회사라는 것은 반드시 [내규]가 존재한다. 그리고 반드시 파벌이 존재한다. 회장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도 있고, 부회장이나 사장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여러 이사진들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 이도 저도 아닌 무당파 같은 사람들도 있다. 모든 조직은 하나의 혼연일체된 조직을 갖지는 못한다. 여러 분파들이 모여서 하나의 대기업을 이루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촉한의 유비나 제갈량도 자신들만 따르고 오로지 충성하는 간부들만 두지 않았다. 반드시 반대하는 세력도 존재하고, 배반하거나 모반할 세력도 존재한다. 삼국지를 자세히 읽어보면 그러한 대목들을 눈여겨보기 바란다.

아울러 제갈량이 마속이라는 사람을 잘못썼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장완이라는 사람은 마속을 “지략과 계략이 뛰어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마속은 이론적인 토대는 강하였으나, 실전적 경험의 부족했다. 책을 다섯 수레를 읽었다고 하여도 실전 경험이 부족함이 곧 실패로 이어지고, 마음속에 전공을 세우고자 하는 공명심과 욕심이 컸기에 자신의 능력과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경험부족의 사람에게 가정을 맡겼으니,
패배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할 수 있지만 제갈공명의 말을 제대로 이행했다면 그는 아마도 전쟁 승리의 경험을 갖게 되고, 제갈량과 더불어서 북벌에 성공할 수 있는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이론은 뛰어나지만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은 반드시 많은 경험을 한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다. 그래야 나중에 더 큰 리더가 되고, 큰 조직을 이끌고, 사람들을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읍참마속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리더쉽은 그냥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큰 희생을 통해서 얻는 것이다. 마속이라는 사람의 큰 희생이 곧 하나로 단결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또한 [사람을 쓸 때는 직책에 맞는 사람을 뽑아 써야지 절대로 사람을 직책에 맞추어서는 안된다]라는 경영의 진실도 배운다.

  • 다음 출처 이미지 중국 대하드리마 - 삼국지


마속은 제갈량의 최측근중에 하나이다.
리더에게 가장 난처한 일은 자신의 최측근이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다.
우리 정치사에도 [측근정치]가 많다. 이러한 측근중에도 항시 비리자가 생기고,
배교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항시 충성스러운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정사를 그르치고 나라를 망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의 마속은 충성스러운 인물이며, 제갈량을 도와서 촉한의 정통성을 세우려던 인물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가 죽었다. 그것도 자신의 스승인 제갈량에 의해 죽었다.


나관중의 [삼국연의]에는
마속이 죽기 전에 북벌의 주요 요충지였던 가정에서 대패하자,
마속은 자신의 부장 왕평과 함께 제갈량에게 돌아간다.
제갈량은 그를 때리거나 욕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책망한다.

“幼常아, 유상아(마속의 자), 네가 어디가 유상이냐, 너는 유치(幼稚)다.너에게 산을 의지하며 물이 있는 길에 주둔하라고 했거늘 왜 내 말을 듣지 않았느냐?“

그리고 군령장에 써 있는 대로, “싸움에 지면 목을 바치겠다” 고 했으니 “여봐라 끌고 가서 목을 쳐라!”그런데 이때 급한 마속은 말한다.

“승상, 살려주십시오. 저희 집안에는 위로는 어른이 계시고 아래로는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공을 세워 죄를 대신하도록 저에게 기회를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러자 제갈량은 눈물을 흘리며 마속에게 말한다.
“유상아, 너를 죽이는 것은 내 마음을 도려내는 것과 같다. 그러나 군령장이 여기 있으니 내가 너를 죽이려 하는 것이 아니라, 군법이 너를 죽이는것이다. 군법에 정을 둘 수는 없다. 뒷일은 너무 걱정마라. 너의 고령의 노모는 내가 보살피마, 너의 처와 자식들도 내가 보살피마 너는 마음을 놓아라”

참으로 비정하고 무정한 순간이다.

그런데 사마광의 [자치통감]에도 이렇게 기록한다.

“마속이 돌아오자 하옥시키고 죽였다. 제갈량이 친히 제사를 지내며 눈물을 흘렸다. 그의 남은 가족을 돌보고 평생 동안 은혜를 베풀었다.”

지금까지는 연의나 자치통감에 나온 글을 토대로 말해 보았다.



다시 마속에 대한 진실을 알아보자.
진수의 삼국지에는 [마속전]이 없다.
다만 [제갈량전]에는 제갈량이 한중으로 군대를 이끌고 돌아온 다음 바로
“마속을 참해 대중에 사죄했다” 라고 말한다.

또 촉의 신하였던 [왕평전]에도 “승상 제갈량이 이미 마속을 죽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마량전]에 보면 “제갈량이 공격했으나 근거지가 없어 한중으로 후퇴했다. 마속은 감옥에서 갇혀 죽었다. 제갈량은 이에 눈물을 흘렸다” 라고 전한다.
또한 리중텐의 책에 보면, 기주싸움의 패배를 안고 마속은 도망하였고, 나중에 잡혀서 관직을 잃었다라고 한다.(상량전)

삼국지에는 마속의 죽음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마속은 도망을 간 것인가? 아니면 제갈량에 의해 참수를 당했는가?
일단 참수라는 쪽으로 가는 것이 맞다. 그 이유는 나중에 나관중도 전쟁에는 반드시 승과 패가 일어나는데 패배의 원인이 군사인 자신의 지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과 권위나 리더쉽에 대한 일종의 도전에 따라서 참수가 불가피했다고 본 것이다.

연의에서는 선제 유비의 말이 있다.
"마속은 말이 행동보다 앞서니 크게 써서는 안된다"
이 말이 이미 제갈량의 의중에 있어서 마속의 죽음을 앞당겼다는 말도 있다.

그렇지만 다른 삼국지의 부분을 보면, 마속의 마지막 제갈량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있다. 그 내용을 보자.

명공(제갈무후)은 저 마속을 친아들처럼 대했습니다.
저 마속 역시 명공을 마치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만약 명공께서 치수에 힘을 쓰지 않은 곤(鯤)을 대순(大舜 요순시대의 순임금)이 처벌한 것처럼 저를 벌하신다면 저는 부자지간과도 같은 깊은 은혜의 정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저 마속은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이 편지를 보면 아마도 마속은 도망중에 잡혀서 감옥에 갇히고, 거기서 아마도 참형을 받았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지금껏 어느 누구도 읍참마속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고민해 본적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마속이 죽은 다음에 장완이라는 신하가 한중에 도착해 제갈량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지금 천하는 아직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귀히 여기고 써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럴 때 이런 걸출한 인재를 죽였으니 너무나 애석합니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은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죽이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삼국지 [제갈량전]에 보아도 단순히 머리와 꼬리를 잘라서, “마속을 죽이고 눈물을 흐렸다”라는 식의 대목만 존재한다.



마씨집안에 대해서 잠시 말해보자.
마속은 마량의 동생이다. 마량과 마속 형제는 다섯 명이 있었고, 모두 인재들이었다. 그중에 가장 걸출한 인물이 마량이다. 그래서 항간에 “마씨 5ㅎ형제중에 백미(白眉)가 가장 우수하다” 라는 말이 나온다. 바로 백미가 마량이다. 그러나 마량은 이릉전투에서 애석하게도 사망한다. 마량은 제갈량이 강유와 더불어서 다음의 후사(후일의 군사)로 생각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그런데 마량이 죽자 그의 동생 마속을 극진히 대우한다.

삼국지 [마량전]에 의하면 제갈량은 마량이 죽고 마속을 친아들처럼 신임하고 접견을 하면 낮부터 밤까지 이야기가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마량 못지 않게 마속도 걸출한 인재였다는 것이다.

혹시 [칠종칠금(七縱七擒)]이 이야기를 아는가? 삼국지에 아주 재미있는 부분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도 삼국지가 인기가 많은지 모른다.

나는 스토리 텔러다. 그러다보니 이야기를 서로 맞추는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나다. 이렇게 말해놓고서 책임을 져야한다. 칠종칠금은 남만(지금의 베트남)의 추장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풀어줘서 마침내 굴복시킨다는 고사이다.

이 남만(남중)을 정복할 때 마속은 제갈량을 전송한다. 헤어질 때 마속에서 전략을 주문한다. 평소에는 자신이 전략을 짜고 움직였지만, 마량처럼 아낀 마속에게서 좋은 전략을 제시받는다. 이름하여 [16자 방침] 이라는 전략이다.

그게 바로 “마음을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고 군대로 싸우는 것은 하책이다.” 라는 것이다. 그 전략에 맞추어서 칠종칠금의 전략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마속을 참했다는 것은 사실 촉이라는 나라를 세우면서, 법도도 같이 세우게 된다. 다른 기록들을 보면 가정전투에서 참패를 하자, 그 책임을 물어 여러 장수가 죽는다. 그 중에 장휴와 이성이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장군 황습은 병권을 박탈당하고, 심지어 천하의 조운 장군도 진동장군에서 진군장군으로 강등한다. 오히려 마속의 부장이었던 왕평이라는 장수만 도리어 진급한다.(왕평은 제갈공명의 전술을 그대로 따랐기에 싸움에 졌음에도 불구하고 특진하였다.) 물론 제갈량도 자신의 지위를 3등급 강등을 한다.


춘추대의를 보면, “전쟁에서 패전하면 반드시 최고 책임자를 문책한다” 라는 말이 있다. 제갈량도 자신을 3등으로 강등시키면서, 가정 전투의 가장 큰 패배의 원인을 제공한 마속을 눈물을 머금고 참했다고 보면 맞다. 그것은 바로 제갈량의 [가정자폄소]라는 반성의 글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는 그의 상소는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마속을 참할 이유가 적다.

여기에는 전쟁에 패배에 대한 책임을 묻는 춘추대의도 있지만,
제갈량에는 다른 정치적인 뜻이 있다고 본다. 당시 촉한 정권은 세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첫째는 형주 그룹으로 유비와 유비의 형제들 그리고 제갈량을 중심으로 그룹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동주 그룹으로서 바로 촉한에 있었던 정통파 이엄과 오일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익주 그룹으로서 팽양과 두경, 초주와 낭중 등이 주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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