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의 인생을 바꾼 책
[비글호 항해기] 그리고 [종의 기원]
- 독서와 여행으로 인생내공을 크게 높여라.
어떤 막역한 선배 생물학박사가 있었는데, 어느 날 자신의 종교인 기독교를 버리고, 유신론적 현세주의자나 범신론자로 변모하였다. 바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서 그 동안의 신앙이 허구라는 것을 발견한 모양이다. 그래서 궁금하여 물어 보았다.
“왜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범신론자가 되었는가요?”
“그 이유는 기독교 신앙을 가졌지만 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나 사도들처럼 살지 못하는 것에 회의적이 되었다네”
그 말을 듣고서 기독교 신앙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라 편재한 신앙관인 범신론을 가질 만도 하다는 인정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진실한 신앙은 무척 중요하다.
신앙이 중요한 것은 바로 그 가르침을 따라 살기만해도 위대한 실천이 되기 때문이다. 간디가 말한대로 "그리스도가 얼굴에 보이지 않는다면 신앙인이 아니다" 라는 것에 근거해보면,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껍데기로만 무장되어 있지는 않으가 생각된다.
과연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The origin of species]가 얼마나 대단한지 아는 이들은 별로 없다. 워낙 대단한 책이며 고전이라서 사람들은 그 책을 일단 꺼려한다. 나도 물론 그런 사람이었다. 일단 어려서부터 교회와 선교단체를 다녀서 다윈의 책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책과 더불어 [금서목록]에 있었다. 그래서 난 오랫동안 읽지 못했다. 나중에 대학을 졸업한 후에 [종의 기원]을 읽게 되었다. [몰래 독서]를 한 것이다. 생물학에 대한 나름의 기초는 어느 정도 있었기에 [종의 기원]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 자신이 신앙과 신념이 마구 바뀌는 순간은 없었다. 다만 문제는 내가 알 고 있던 성경의 이야기들을 전적으로 믿으려고 했던 것이 문제였다. 성경의 이야기를 믿어야 한다면 다른 민족의 이야기들도 믿어야 하는 것이다. 찰스 다윈의 책이든, 반기독교적인 책이든 어느 책이든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들도 들었다. 나름의 논리와 이론으로 탄탄하게 갖추어진 책들을 보면 도리어 경외감이 든다.
기독교적인 독선주의는 사실 올바른 지식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틀린 지식이나 잘못된 신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바른 기독교의 모습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된다. 과학과 종교는 서로 양립되어지기 힘들다하더라도 적어도 종교는 과학을, 과학은 종교를 서로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21세기에 들어서 사람들은 종교가 과학에 많이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과학은 그래도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라는 입장이어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한 때 종교는 과학에 기대기보다는 철학에 상당수 기대었다. 물론 철학도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의 형태이다. 그래서 종교가 철학이나 과학을 통한 나름의 합리화나 정당화를 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찰스 다윈의 라이프 스토리를 다시 살펴본다.
1825년은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증기기관차가 철로를 달린 해이다. 지금으로부터 200년전이다. 그해 가을 15세 소년은 마차를 타고서 고향을 떠나 500킬로미터 떨어진 고장에 도착한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대학의 의학부에 입학한 소년은 34년뒤에 세상을 바꾼 한권의 책을 쓰게 된다.
바로 1859년 11월 24일 존 머리 출판사에서 초판 1250부를 인쇄한다. 바로 그의 [종의 기원]이다. 다윈의 조부와 아버지가 모두 의사인 집안에서 2남 3녀중에 막내로 태어났다. 19세기에 농상업자본이 산업자본으로 이동하던 시기에 다윈 집안은 의술과 지적 자산을 기반으로 큰 재산을 모았다. 조부는 의사이면서 시를 짓고 식물학 연구를 한 학자였다.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을 지지하던 진보사사상이면서 무신론자로 진화 사상을 담은 책을 썼다.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배경은 바로 조부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당시에 [기독교]는 마치 생활종교로까지 자리잡을 정도로 ‘당연한 종교’였다.
소년 시절 기숙사 학교에서 그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웠다. 8세에 어머니를 잃은 소년은 공부는 뒷전이고 곤충. 식물.조개류. 광물 수집에 더 열광을 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에 대해서보다 관찰하며 자연을 살펴보는 것에서 큰 흥미를 가진 것이다.
학교의 교장선생님은 전교생 앞에서 그를 지목해서 ‘한눈만 파는 녀석’ 이라고 야단을 쳤다. 의과대학에서 2년을 보냈지만 의술보다는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다윈 평전>을 보면 그는 의과대학생활에 적응을 제대로 못하였다고 한다. 의학이라는 하나만 하여도 힘들고 어려운데,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서 그렇다고 보여진다. 그는 아마도 신의 존재에 대해서, 자연의 존재에 대해서 나름의 경외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1931년 그는 케임브리지 크라이스트 칼리지에서 신학학위를 얻었다. 당시 신학학위를 얻었다는 것은 [목사안수]를 받은 격으로 보아도 좋다.
그해 12월 3일 탐사선 비글호에 올라 남반구 대륙과 섬들을 방문하게 된다. 1836년 10월 2일 파머스항으로 돌아온 다윈은 과학사에 남을 역작 ‘비글호 항해기’를 썼다. 이 책은 상당히 두껍게 기술된 책인데, 나의 이 글을 읽고 주문하여 읽어보아도 되는 명작이다.
찰스 다윈은 나중에 “비글호는 내 최초의 문학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딱딱한 과학서가 아니라 탐사 도중 벌어지는 다양한 모험담이 읽을 거리를 제공한다. 이 책이 다윈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바로 자신의 인생의 전부를 걸 정도의 전환을 이룬 것이다.
극지연구소의 정책자문위원인 장순근(67) 번역자의 노력으로 최근에 원문을 살린 [비글호 항해기]가 나왔다. 1993년도에 출판했다가 다시 재출판 한 것이다. 번역본이 상당히 부드럽고 힘이 있다.
그런데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가 나오기전에 그의 인생의 발판과 전기(轉機)를 마련해준 책들이 있다.
훔볼트의 [남미여행기], 존 밀턴의 [실낙원.복락원], 멜서스의 [인구론]은 청년 다윈의 가슴에 지성과 열정의 불꽃을 부친 책이 되었다.
그 당시 승마와 카드놀이, 술과 담배를 달고 살던 청년 다윈은 이 책들을 읽은 뒤에 멀고 먼 대탐사 여행을 나선 것이다. 여러 책들이 그의 삶을 [여행 Journey Voyage]으로 이끈 것이다.
“책은 곧 여행이다”
한 번은 책속으로 여행하는 것이고,
한 번은 책밖으로 여행하는 것이다.
무슨 말이, 한비야의 [지도밖으로 행군하라] 라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한다. 그것도 어려서부터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거북이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진화 사상을 키웠으며, 진화론의 기초인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과 생물종의 변이(Variation)에 대한 착상을 얻었다.
위대한 책들은 그냥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오랜 동안의 수련과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영감(靈感,inspiration) 이나 유전(遺傳)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명작은 후천적인 [지식 축적]의 상당한 산물이다. 그러므로 청소년 시절, 청년시절 틈틈이 책을 읽는 [독서 습관]을 기르고, 틈틈이 독서에 기반한 [글쓰기 습관]도 같이 배양해야 한다. 사고력이 없는 글쓰기는 있을 수 없다.
찰스 다윈의 라이프 스토리를 살짝 건들면서
영국 사람들의 [다윈 사상과 다윈 지능]에 대한 생각이 대단한 것임을 본다. 영국은 대표적인 기독교 국가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독교 국가에서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진화론]등이 크게 융성했다는 것을 보면 영국인들의 [개방성]이나 [포용성]이 [로마제국]을 닮았다고 보여 진다.
오늘은 [삶을 바꾼 만남]이라는 책을 읽어보련다.
이 책은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의 운명적인 만남을 그린 책이다. 조선시대 전방위 지식인인 다산 정약용과 그의 가르침을 따라서 평생을 산 단 한 사람, 황상의 이야기이다.
찰스 다윈의 위대한 진보와 발전도 자신을 가르쳐준 스승들 덕분이다. 우리는 그래서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한다. 그것이 복이라면 제일 큰 복이 아닌가.... 삶을 바꾸는 만남이 곧 큰 복이 아닌가... 그런 복을 누리기를 소망하며 나의 글을 여기서 갈필한다.
- <2021년 03월 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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