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플라톤주의를 세운 필론 Philo과 플로티노스 Plotinos
몇 해 전에 [한국의 움베르토 에코]라고 불리우는 [김용규 박사]의 강연과 책들을 만나면서 그동안 베일에 쌓인 듯한 서양문명과 서양철학에 대한 눈을 크게 뜨는 계기가 되었다.김용규 박사는 독일에서 신학박사와 철학박사를 받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아마 한국에서는 그가 최초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책중에 [신 The God] 라는 책이 있는데, 그 때 그리스 철학이 어떻게 기독교 세계에 유입되어서 발전되고, 꽃피우게 되었는지를 배우게 되었다.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는 바로 [신 The God]에 대한 이해에서 온다는 것을 보았다. 그리스에서는 이를 철학적으로 규명해보려면 노력했고, 이스라엘이나 다른 기독교 권에서는 신학적이거나 종교적으로 규명해 보려고 노력했다. 이 두가지의 노력을 융합해 보려는 인물이 바로 ‘필로 혹은 필론 Philo' 라는 유대인 철학자였다. 그는 하이브리드형 석학으로서, 융합과 복합을 제대로 시도한 걸출한 학자였다.
필론은 전형적인 유대인으로서 그 사상의 근간은 구약성서에 근거한 것이었고, 그의 학문은 그리스 철학에 방향성을 두었다. 김용규 박사가 기독교 신학자이면서 그리스 철학을 기반하여 자신의 학문적 토대를 구축한 것도 아마 ‘필론’의 영향을 받았을 확률이 높다.
나 자신도 20대에 들어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신학도 같이 공부를 하였다. 물론 상당히 낮은? 번역수준의 책을 가지고서 공부를 하였던 것이었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서양사상이 주는 문화충격 Culture shock based on The western thought’을 크게 받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당시부터 아마도 나의 책과의 전쟁은 시작된 것 같았다. 책 먹는 여우처럼, 물 만나 물고기처럼 ‘개인적인 탐독의 시대’를 열었던 것 같다.
필론은 그리스 문화를 접하면서 그리스 철학자들이 마치 그구약성서를 알고 있다는 착오를 알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신학(Theology)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이 바로 ‘플라톤’이어서 그렇다. 그래서 [플라톤은 그리스의 모세다]라고 불렀다.
필론은 철학의 영역에 '창조(Genesis)'라는 개념을 끌어온다. 여기에 대해서는 기술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잠시 유학시절에 철학과에서 자유수강으로 필론의 사상과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을 한 학기 공부하였다. 한학기 공부였지만 [유태철학]의 흐름과 더불어서, [자연주의 신학]도 조금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필론에 대해서는 [철학수업]에서 거의 다루지 않지만 유대철학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다.
<네이버 문화의 안과 밖> 어느 여성학자의 플로티노스 강좌를 듣고
그 수업중에서 배운 것은 필론은 구약속의 창조개념을 피타고라스의 사상(참고로, 육체는 영혼의 무덤이다)과 교묘히 엮는데 나름 성공한다.
여기서부터는 복잡하다. 피타고라스도 끌어들이고, 플라톤도 끌어들이고, 유대의 창세기신학도 끌어들여서 연결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필론은 유대사회에서는 아직도 르네상스 이전의 사디아 가온, 예후다 할레비와 더불어서 3대 철학자로 꼽힌다.
사람들이 제일 크게 인정하는 철인인 플라톤의 사상을 면밀하게 분석해보면 피타고라스 사상과 소크라테스 사상이 유기적으로 잘 융합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신비주의의 경향이 절제되어 있지만 종교적이고 공동체적인 형태는 피타고라스에게서 왔고, 합리적이고 인본적인 경향은 소크라테스에게서 온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신비한 경향과 합리적이고 인본적인 경향을 합치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필론인 것이다. 필론은 두 철학의 거장을 연구하면서 주로 플라톤의 책들을 읽으며 결론적으로
“플라톤은 그리스의 모세다” 라고 주장하게 된다.
필론은 알렉산드리아 출신이지만 그리스어를 사용한 유대 철학자로 널리 알려지는데 공교롭게도 필론은 예수와 사도 바울의 동시대 사람이다. 그도 이집트에서 예수와 바울의 행적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서로 지척이어서 수많은 문명과 문화교류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신약성경 연구와 교부들의 작품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필론은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플라톤은 그리스어로 말하는 모세 같은 사람이며, 실제로 역사적인 모세의 사상에 따라서 자신의 사상을 세워 나갔다. 필론에게 플라톤은 최고의 철학스승이었다.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과 더불어서 창조의 개념을 결합하면서 나중에 로고스(logos)라는 개념을 끌어들인다. 그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창조된 인간은 불완전하고 악에서 헤어날 수 없는 육체와 신적인 영역에 속한 영혼으로 양분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은 이분화되어 이해될 수 밖에 없고, 그리고 결코 인간은 완전한 신의 영역에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결국 이데아 + 창조개념 + 로고스가 결합된 자신만의 종교철학적 체계를 세운 것이다. 나중에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인간의 육체는 악하고, 영혼은 선하다고 보아 이분법적 인간학을 구축하여서 금욕이나 절제의 개념이 앞세우고, 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은 나중에 사제결혼이 금지된 원인이 되기도 한다.
로고스란 필론에게 있어서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교량역할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신은 로고스를 통해 인간에게 접근하고 인간 역시 신에게 접근하게 있게 한 것이다. 물론 요한복음 1장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 ‘말씀’이 바로 ‘호 로고스’ 라고 하였다. 다른 말로 신의 이성을 로고스라고 부른 것이다. 인간의 이성과 신의 이성을 달리하여 개념을 밝힌 것은 사도 요한이었다.
로고스가 앞에서 중개자적인 성향을 띤 것으로서 인간이 쓰는 말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쓰는 말은 소리라고 이해하면 감각적인 것이고 이념으로 이해했을 때는 정신적인 것이다. 사람은 말과 말로서 서로를 이어간다. 따라서 말은 순수하게 감각적인 것이기도 하고 순수하게 정신적인 것만도 아니다. 도리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영역이 결합한 채로 나타나는 것이다.(*이해가 안되는 것은 질문을 하시기 바란다)
필론의 이런 견해는 이집트의 리코폴리스 출신의 철인인 플로티노스에 수용되면서 더욱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플로티노스는 암모니오스 삭카스라는 ‘플라톤주의자’에게서 플라톤 철학을 교육받았다. 플라톤이 원래 세웠다고 하는 아카데미아는 약 800년간 그 기관이 이어졌다고 한다. 다른 철학자들이나 소프스트들에 대한 기록과 저작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플라톤의 저작들은 대부분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살아남았다.
플로티노스는 스스로를 [플라톤의 해석자] 라고 부르면서, 플라톤 연구에 매진한다. 플로티노스는 페르시아와 인도의 진리를 배우기 위해서 고르디아누스 황제의 페르시아 원정에 따라가기도 하였다. 그는 페르시아 원정에서 돌아와서 로마에서 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그는 엄격하고 금욕적이며 고고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채식주의자요, 혼인도 하지 않고, 고아들을 양육하고 키웠다고 한다. 로마 사람들은 그의 인격과 인품에 대단히 높게 평가했다.
무엇보다 나중에 갈리에누스 황제와 그의 부인 솔로니나의 신임을 받아, 로마에 [플라톤 왕국]의 건설이라는 제안도 받는다.
플로티노스의 사상적 모체도 역시 플라톤이었다. 그는 50세가 넘어서 저술을 하기 시작했고, 총 6권의 책을 저술하여서 당대에 큰 학술적 영향력을 미쳤다. 그가 쓴 책은 항시 이름이 붙었는데, [엔네아데스] 이다. 엔은 그리스어로 9라는 완전수이다. 그러면서 이 엔은 완전한 [유일자]를 가르키는 말이다. 그의 저작은 오리게네스의 [삼위일체론]과도 관련이 깊다. 그런데 그의 [일자론이나 유일자론]은 플라톤이 저술한 [티마이오스]에서 연유하였다. "어찌 하나에서 다수가 흘러나왔는지"라는 대목이 있다.
그는 플라톤 사상에 ‘유일한 존재’ 라는 기독교적인 신을 도입하여 이른바 ‘플로티노스주의’를 탄생시킨다. ‘유일자’라는 개념은 일종의 ‘일신교 사상 monotheism’이라고 볼 수 있다.
플로티노스는 다양한 논증을 활용해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의 물질주의를 논박했다. 그는 물질주의는 생각을 설명할 수 없고 지식의 주체가 누구인지 밝힐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플라톤이 말한 대로 가장 현실적인 것은 인간의 영혼을 비롯한 비물질적인 존재들이라고 생각했다.
앞서 플로티누스가 최상의 존재를 [유일자]라고 명명하고, 사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으며, 그는 가장 꼭대기에 있는 ‘유일자’롭터 정신(누스), 영혼(프시케), 물질세계가 차례로 유출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위계질서의 최상단에는 유일자부터 시작되는데,이 유일자는 인간의 언어로 정의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지식은 이성적 추론이 아닌, 신비주의 곧 유일자와의 고귀한 연합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보았다.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의 초상화를 보면 보통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에는 플로티노스의 [엔네아데스]를 들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신의 유일성에 대한 개념을 플로티노스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나는 신학의 왕관이라고 불리우는 [삼위일체]에 대한 분명한 정립이 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믿을 뿐이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이 플로티노스주의는 나중에 중세 철학의 거장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전수되어 기독교에 완전히 흡수하기에 이른다. 신플라톤주의는 [모든 존재의 궁극적 근거와 목표를 근원적으로 물으며, 철학적 사유 안에서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서울대, 송유례 교수의 <플로티노스 철학 입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우리는 어거스틴 이전의 플라톤 연구자인 플로티누스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근대에 와서 필론과 플로티노스를 연구한 사람들은 이들을 묶어서 ‘신플라톤주의자’ 라고 명명하고, 이들의 연구 덕분에 중세에 교부철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용은 중세 기독교시대에 엄청나고 획기적인 일이었다.
“플라톤은 그리스의 모세다”
라는 이 말 속에 신플라톤주의가 있다.
하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다. 완벽한 철학은 없다. 그렇게 보일 뿐이다. 플로티노스를 중심으로 한 신플라톤주의는 철저히 [합리주의의 배격 사상]이다. 이러한 불합리주의가 그들의 합리주의를 훼손하는 결과를 만들어서 중세를 ‘암흑의 시대’로 명명해지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다. 육체보다 정신과 영혼에 대한 가치의 불균형을 만든 것은 순전히 그리스철학과 기독교 신학의 만남과 결합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지금 전 세계는 [유일신 사상]이 지배적인 종교철학이 되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유일신 사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혼합되고 다양한 중요사상이 결합된 형태의 저들 나름의 [유일신 사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앞으로 [삼위일체론]에 대한 것도 살펴볼 계기가 있을 것이다. 신구약성서 어디에도 나오지 않지만 성서에는 다분히 삼위일체에 대한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하나가 셋이고, 셋이 하나인 사상’은 우리 인간의 이성 ㅡ 로고스로는 신의 이성ㅡ로고스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여전히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 있어 고대와 중세의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동안 상당히 철학과 신학에 대해서는 걸핧기 수준이었는데 몇 껍질을 벗기고 나서야 비로소 알맹이를 조금씩 취하게 되니 재미도 있고 흥미도 생긴다. 이제야 책이 읽혀지니 공부가 된다.
플로티누스가 제자가 쓴 자신의 저서 [엔네아데스}에 남긴 말로 마무리를 짓는다.
"저편의 세계영혼은 시간을 쫓아 벌어지는 온갖 쾌락에 대해 갖는 유쾌함을 느끼지 않는다. 정작 인생의 걸어야 할 길은 그와 같다"
이는 가시적 세계(현세상)의 개별 영혼이 육체에서 벗어나 완전한 불멸의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저 너머 정신세계에 있는 영원한 세계영혼과 합일을 이룰 수 있도록 정신을 고양시켜 나가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는 '정신적인 행복'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고행이든지...
#참고문헌
1. 서울대학교 송유례 <플로티노스 철학입문>
2. 존 프레인, <서양철학과 신학의 역사>
3. 박영규, <생각 박물관>
4. 캐렌 암스트롱, <신을 위한 변론>
5. 김용규,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6. 아테네움, <Three Jewish Philosophers>
7. 조규홍, <엔네아데스>, 지식을 만드는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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