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리버만의
[나에게 분명 문제가 있다]
사소하지 않을 일을 사소하지 않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고 박완서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복을 받는 다는 성서 구절과 비슷한 말입니다.
1999년도에 읽어본 적이 있는 데이비드 리버만 심리학자의 [나에게 분명 문제가 있다]라는 책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소크라테스식 해결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즉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하여, 자신의 무지를 타파하고, 자아를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지를 타파하고, 자아를 발견하라는 것에 저는 숨이 턱턱 막힙니다.
먼저, 무지를 타파하라고 하는데, 그럼 지식인이 되라는 것인지,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많이 아는 사람도 무지할 때가 많습니다. 소위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도 무지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탈무드는 "내일 죽을 것처럼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라"라고 합니다.
두번째로, 자아를 발견하라 라고 하는데, 이 말도 참으로 어렵습니다. 종교를 가져야 하는 것인지, 철학이나 도를 깊이 연마하라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늘 방황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그냥 모르는게 약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구체적인 무지타파와 자아발견의 지름길을 77가지로 제시합니다. 그 중에 가장 인상깊은 쳅터를 나름대로 풀어서 올립니다. 솔직히 이 대목은 저의 마음상태를 너무 잘 드러내서 놀랬습니다.
원래 장문의 포스팅을 하는 사람이지만, 오늘은 그 전에 작성한 포스팅의 분량을 대폭 줄여서 올립니다. 그 이유는 몇번 읽고 읽어서 곱씹었으면 하는 바램이 담겨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실패를 은근히 즐거워한다. >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에 대해 질투나 부러움을 느낍니다. 심지어 기형도 시인의 말처럼 ㅡ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른 사람의 실패를 통해 만족이나 위안을 얻는 경우를 말합니다.
우리 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는데, 반대로 [사촌이나 친구가 무슨 일에 실패하면 도리어 불행이 닥쳐왔다는 것에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 삶에 만족을 느끼기 위하여 자신보다 뒤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곤 합니다. 그런 사람을 찾아서 일종의 과시욕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주변의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신이 더 낫다면 성공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모든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는 하나의 거대한 경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정 단계마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게 되고 모두가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실패하면 내가 성공할 확률이 그만큼 높다고 여깁니다. 이는 팩트입니다.
누군가에서 어려움이 닥치면 마음으로 아파하기보다는 자신이 그 불행에 걸려들지 않았다는 사실에 무의식적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떤 사회학자는 [괜찮아 병]이라고 불렀습니다.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삼는 것을 '샘통심리'라고 합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질투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인생에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노력의 결실을 거두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새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는 적극성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인생이란 적과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전쟁터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실패가 곧 자신의 행운으로 이어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대착각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통해서 위안을 얻으려 것은 너무나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생각입니다.
성서는 ㅡ 어리석은 사람은 그 어리석은 생각에서 난다 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난다고 해서 자신이 실제로 한 걸음 나아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란 한순간의 안도감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내 딛는 한 걸음입니다.
오히려 한 사람의 승리가 모두의 승리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내 집안의 경우 나이 사촌이 D & K .대기업의 부사장이 한 명 나오면서, 상당히 많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일구어낸 결과가 모두에게 돌파구가 되기도 합니다.
김연아나 박세리 또는 박찬호나 박태환 등의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고, 골프여제가 되고, 메이저리그에 입성하고 수영으로 성공하자 다른 사람들이 자극을 받아서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가난해도 부자의 줄에 서라]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실패를 딛고 일어선 부자의 줄에 서다보면 자연히 자신도 부자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설사 부자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다른 사람의 성공을 배아파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실패를 안도감으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를 보면 사람들은 왜 권력자들을 좋아하는가요? 그 사람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권력이 좋아서입니다. 그 사람의 권력이 떠나면 그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들도 떠납니다. 현대 정치사가 이를 증명했습니다.
이런 경우 성공했다고 해서 실패한 것이며,
실패했다고 해서 불행한 건 아닙니다.
문제는 모든 상황이 각자의 판단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시인 존 던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라는 시를 남깁니다.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하나의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구라파(유럽)는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모래톱이 그렇게 되어도 마찬가지며,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領地)가
그렇게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린다.
인생이란
두 사람의 득실의 합계가 항상 제로 상태가 되는
제로 섬 게임이 아닙니다.
인생이란 다른 사람의 불행에 의지하지 않고서
자신의 행복을 찾아나서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지 말고,
자신을 위해서 종을 울려야 합니다.
우린 혼자가 아닙니다.
남의 불행을 아파하고, 남의 행복을 축복하면
나의 슬픔도 반으로 줄고, 나의 행복은 배가 됩니다.
우리가 적어도 대륙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하면 말입니다.
살면서 인생에서 결코 변치 않는 한가지 법칙은
자신이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아무것
도 변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 변화의 시발점은 바로 행동 -액션에 있다는 것을 더욱 새깁니다. 움직여야 역사도 일어나고 심지어 기적도 일어납니다. 자기변화가 곧 행복이고 기쁨입니다.
애벌레같은 내 자신이 나비로 변화될 때 꽃들에게 희망을 줍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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