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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처럼 강렬한 책이다.
또한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수필과도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을 접하고 나에게도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앙드레 지드는 나의 평생의 문인이 되었다.
그가 쓴 [좁은 문]을 몇번이나 읽고 읽었다.
나중에는 그의 책의 내용만 아니라, 표현도 암송하게 되었다.
그의 책은 [정신적 사랑] 이면서 ,
[순수하면서도 무엇인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격정적 사랑]이기도 하다.
사랑은 참으로 [좁은 문]같다. 성경 마태복음에 보면 '좁은 길, 좁은 문'이 나온다.
그런데 사람들은 좁은 길, 좁은 문으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좁은 문은 사람이 들어가기도 힘들고, 좁은 길은 협착하여 한 사람씩만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은 좁은 문, 좁은 길에 구원이 있다고 말한다. 넓은 문, 넓은 길에는 구원의 환상만 있다고 본다. 인생의 오솔길, 좁은 길을 걷다 보면 소수의 사람만 만나게 되고, 어찌보면 사랑도 좁아질 수 있
다. 그런데 그 좁은 문과 좁은 길에서 만난 사람은 평생의 사람이 되고, 평생에 그리움을 두고 만나고 헤어진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이별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인연이라는 것은 참으로 묘해서 가까이 있어도 만나지 못하고, 멀리 있어도 만나게 되는 묘한 관계의 끈이다. 살면서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하지만 소수의 몇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진정 행복하리라. 행복은 좁은 문과 좁은 길을 통과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은 넓은 길로, 넓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쓴다. 다니기도 쉽고, 만나기도 쉽고, 얻을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사랑은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사랑의 감정은 불과 같아서 어느 순간 타오르기도 하고, 어느 순간 차가운 물에 사그러들기도 한다. 사람은 열정적인 존재이면서도 냉정한 존재이다.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오가는 존재인 것이다. 사람의 온도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온도에 달려 있다. 나의 사랑의 온도는 과연 몇 도일까?
정신적 사랑은 육체적 사랑보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 좋아하는 연애감정은 평생의 잔잔한 여운과 그리움을 남긴다.
문학가인 신달자 선생님은 [연애론]이라는 책을 썼다. 그 책에 보면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에 대한 단상이 담겨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그 선생님이 [좁은 문]에 대한 글을 그대로 지면에 옮겼다는 것이다. "왜 그 선생님은 [좁은 문]이라는 작품에 비평 한 마디도 남기지 않았을가?" 그것은 그 소설이 가지는 정신적 사랑의 미묘한 감정을 너무나 잘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앙드레 지드는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노벨문학상'은 한국인의 감정과는 전혀 반대의 상이다. 한국에서 그 문학상을 읽는 사람들은 사실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노벨문학상에서 길을 찾으려고 평생을 노력했던 나 자신' 하지만 그 속에서는 '길'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 길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내가 걸어갈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자마다 '마이 웨이'가 필요하다. 인생은 함께 그러나 혼자 가는 것이다.
사랑보다 오래가는 것은 좋아하는 감정이다. 어느 것이 더 행복할까?
좋아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 그 이유는 좋아하는 것은 상처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때로 상처를 남긴다.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도 남긴다. 그래서 나는 때로 사랑이 두렵다. 젊어서는 에로스적 사랑에 격정을 느꼈지만, 지금의 나이에 들어서 아가페적 사랑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저 사랑을 줌으로써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톨스토이는 말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노력, 열심, 정렬, 분발은 그저 허무한 거품에 불과하다.
좋아하는 것으로도 희미한 사랑의 그림자를 오래 오래 지닐 수 있다. 좋아하는 것도 어찌보면 사랑이다. 그리움도 사랑이다. 아아, 사람의 사랑이라는 것이 이다지도 허무해지는 것일까? 그러나 그리움만 가득한 사랑으로도 우리는 평생을 지낼 수 있다니... 사랑은 신비의 묘약이다.
잠시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을 이 지면을 빌려서 차근 차근 적어 본다.
제롬은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애슈버튼과 함께 파리에서 살고 있다.
그는 해마다 여름이면 뷰콜랭 외삼촌 집에서 지내곤 하였다.
외삼촌에게는 알리사와 줄리엣이라는 두 딸과 로베트라라는 아들이 있었다.
제롬보다 2살 위인 알리사와 1살 아래인 줄리엣은 대조적 인상과 성격을 지니고 있다.
알리사는 내성적이면서 항상 조용하고 명상적인 반면, 줄리엣은 명랑하고 활동적이다. 제롬은 알리사를 좋아하게 되니다. 제롬이 알리사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은, 제롬이 알리사의 눈물을 본 장면에서부터이다. 알리사는 자기 어머니의 부정을 알고, 땅거미가 질 무렵 석양빛을 뒤로 받으며 무릎을 꿇고 앉아서 괴로움에 울고 있었다.
이러한 알리사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제롬의 그녀에 대한 사랑은 결정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나의 전생에는 그 순간 결정되었다. 오늘날까지도 그때를 상기할 때마다 아련한 슬픔을 금할 수 없다' 고 그는 적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그들은 사랑의 역사를 펼쳐 가기 시작한다. 알리사 또한 제롬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 전부를 제롬을 위해서 바치기로 다짐하게 된다.
며칠 후 제롬과 알리사는 보티에 목사를 통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라는 성경 말씀을 들으면서, 각자 사랑의 길을 정하게 된다.
제롬은 이 말씀을 통하여 사랑이란 관능적 쾌락에 빠지지 않아야 하다고 받아들였고, 알리사는 숭고한 정신적 사랑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제롬의 어머니가 죽음 후, 외삼촌 집에는 제롬의 이모 펠리시가 거의 한달 동안 와 있었다. 제롬은 이모의 수다스러운 속에서 어머니의 조용함을 그리워했고, 알리사를 통하여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래서 제롬은 알리사에게 약혼을 제의한다. 적어도 제롬의 생각에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알리사는 "우리는 지금 이대로도 행복하잖아?" 라고 거절한다. 제롬은 파리에 공부하러 온 후 알리사로부터 "나는 나이가 많아서 제롬에게 부적당하고, 결혼 후에도 제롬에게 행복을 줄 수 없을 것 같다" 라는 내용의 편지를 받는다.
제롬은 고민 끝에 그의 학교 친구와 상의한 결과, 알리사와 대화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롬은 알리사를 직접 만나 보기 위하여 풍그스마르로 간다. 그러나 얻은 것은, 알리사의 변함은 없지만 조금은 서글픈 듯한 마음과 줄리엣이 약혼한다는 소식이었다.
신년 후에는 제롬은 알리사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는 알리사의 괴롭고 긴장된 표정을 보게 된다. 게다가 병석에 누워 있는 줄리엣을 만나게 된다.
줄리엣은 제롬에게 "언니 알리사는 저와 제롬 오빠가 결혼했으면 해요" 라고 말한다. 제롬은 이 말에 깊은 혼란에 빠져들어간다.
알리사 또한 줄리엣이 전혀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억지로 결혼하려고 한다면서 괴로운 표정을 한다. "하지만 제롬, 이럴 수는 없잖아, 줄리엣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지도 않아. 오늘 아침에도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어, 말려 줘, 제롬, 오오 !! 저 애가 어떻게 되려구..."
이러한 알리사의 비탄에 제롬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후 줄리엣은 언니의 충고에서 아랑곳없이 포도원을 경영하는 에드아르 터시에르와 결혼하고 말았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제롬은 로베르틀 통해서 알리사와 줄리엣이 소식을 듣는다. 알리사 또한 제롬에게 줄리엣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편지를 보내 주었다.
제롬은 알리사가 줄리엣을 위해서, 줄리엣이 진정 행복해지는 것을 보고 나서 결혼하기 위해 그들의 결혼을 연기하고 있다고 믿었다.
제롬이 군대 복무를 하는 동안에도 두 사람은 사랑의 편지를 계속 교환하였다. 그런데 막상 제롬이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알리사와 만나게 됐을 때, 두 사람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거리감을 느낀다. 그리고 여러 손님들 때문에 알리사가 고의적으로 피함으로써 충분히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다.
또한 제롬 어머니의 친구이며 가정 교사인 미스 에스버튼이 죽었을 때 제롬은 알리사를 만났으나, 이때에도 둘은 침묵만 지키다가 부활절에 만나기로 하고 작별 인사도 없이 헤어지고 말았다.
부활절에 제롬은 알리사를 만났다. 그리고 어느 날 제롬은 알리사에게 자신과 결혼할 것을 제의했다. 그러나 거절당하고, 그녀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그 뒤 이 두 사람이 또다시 만날 기회를 가졌을 때, 제롬은 알리사의 태도가 냉정하게 돌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이로 인하여 제롬은 크게 실망하고 탈출구를 찾아 아테네 학원의 추천을 받고 떠났다.
3 년 후 알리사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제롬과 알리사는 만나게 되었다. 제롬은 알리사가 병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제롬은 줄리엣으로부터 알리사가 죽었다는 편지를 받게 된다. 제롬을 만나 후, 알리사는 주변을 정리하고 아무도 모르게 집에 나가 요양원에서 죽은 것이다. 그녀는 제롬에게 일기를 남긴다. 알리사가 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후, 제롬은 줄리엣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두고 있었다. 줄이엣은 제롬에게 물었다.
"언제 결혼하실 거예요?"
제롬은 대답한다. "많은 추억들이 잊혀질 때......, 그런데 언제까지고 잊혀질 것 같지 않군."
나 자신도 감히 비평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인연이라는 것이 이다지도 사람을 얽어매는 도구인가,
거기서 자유하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과 그 나약함이 주는 슬픔이 참으로 오래가는 시간의 모래밭이다. 어두운 내면에 한 줄기 빛으로 희미하게 드리워지는 '그리움'은 이다지도 사람을 애절하게 만든다.
제롬은 과연 알리사를 사랑한 것일까, 알리사는 과연 제롬을 사랑한 것일까?
그런데 알리사는 제롬을 위해서 일기를 남긴다.
그 일기에는 제롬에 대한 사랑의 노래가 적혀있을 것이다. 알리사가 죽기까지 사랑한 한 남자를 위한 일기이기 때문이다. 제롬도 알리사의 사랑을 확인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것보다 가슴 절이는 것은 좋아하는 감정이다. 그 좋아함에도 드러나지는 않지만 여전히 나타났다 숨어버리는 숨바꼭질이 담겨 있는 것이다. 아니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있기도 하다. 인생은 짧다. 그래서 더욱 심미적이고 정신적인 추억과 기억이 남아서 괴롭게 하는 것이다. 괴로움은 사랑해서 얻는 병이다. 고2 시절부터 몇 번이고 읽었던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제롬과 알리사는 그 좁은 문을 결국 통과하지 못한 것일까? 나도 과연 통과할 수 있을까? 다만 사랑하고 좋아했던 감정만은 천국에까지 가져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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