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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과 고전 이야기

명길묻 7, 레오 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 1877] 인문학적 읽기

by 코리안랍비 202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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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나 카레리나 - 톨스토이의 작품의 - 표지
    구글출처

레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1877]

[복수는 나에게 맡겨라, 내가 이를 갚으리라]
레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첫구절

얼마전에는 평소 독서락가셨던 아버지가 남긴 책들중에서
톨스토이의 책을 잠시 잡게 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문고판으로 읽어 본 적이 있고,
영국과 러시아 그리고 나중에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로도 시청했던 명작이다. 바로 [안나 카레리나]이다.
안나역에는 비비안 리도 있었고, 소피 마르소도 있었다.
최근에는 키이나 나이틀리라는 여배우도 있다.

브론스키역에는 누가 나왔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원래 남자들은 한없이 예쁘고 아름다운 여배우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소피 마르소는 마치 호수같은 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라붐이후로, 소피 마르소의 영화란 영화는 다 보는 편이다.

워낙 방대한 대작이어서 어느 누구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다.
전체적으로 무겁고 우울한 색채로 되어 있는 작품이다.
19세기에 나온 어느 소설보다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한 명작이다.
나는 이 글을 쓰려고, 한국에서 가장 저명한 노어노문학 교수인
석영중 고려대 교수의 강연을 몇편 보았다. 그분의 강의는 해학과 위트가 넘친다.
안나 카레리라라는 방대한 대작을 이해하려면, 그분의 강의는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한다. 러시아 문학은 워낙 높은 산맥을 보는 것 같아서, 함부로 제단하고, 함부로 평가하기 어렵다.

이 작품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부활과 함께 3대 걸작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소설은 예술적이고 완전무결하여 현대 유럽 문학 중 이 소설에 견줄만한 소설은 없다"고 극찬을 하였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사실상 톨스토이의 문학적 라이벌이지만, 톨스토이를 자신보다 더 높인다.

토마스 만은 [조금의 낭비도 없는, 한마디도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라고 극찬을 했다.

이 작품에 대해서 나만의 독서평설을 펼쳐본다.

그 작품의 첫구절은 참으로 유명하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다 서로 비슷한 것이고,
불행한 가정은 어느 것이나 그 불행의 상태가 다른 법이다"
그런데 원래 첫구절은 이게 아니다.
[복수는 나에게 맡겨라, 내가 이를 갚으리라]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구절을 톨스토이는 인용한다.

이 말속에서 톨스토이의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고민이 들어 있다
신앙적으로 위기와 아픔을 극복하려는 선한 의지가 담겨 있다.

위의 말을 하고서, 행복에 대한 첫구절로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모든 문학서중에서 가장 멋진 첫구절로 이 구절을 선택하고 싶다.

그런데 말이다. 이 책을 쓴 톨스토이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평생 후회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려고 고민했던 사람이다. 그분의 [인생독본]이라는 책을 보면 그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데 말이다. 왜 톨스토이는 이 작품에서 불륜을 크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급 궁금해졌다. 톨스토이는 독실한 러시아 정교회주의자이며, 성경을 깊이있게 성서학자 수준 이상으로 읽고 연구한 신실한 사람이다.
그런데 왜, 그가 [불륜]을 이렇게 말할까?

줄거리를 잠시 논하면,

19세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안나 카레리나는 고위 관료와 작은 아들과 함께 살아간다.

어느날 안나는 오빠 스티바의 부부간의 갈등과 싸움을 말리기 위하여 모스크바행을 하게 된다. 그 오빠 스티바는 집안의 가정교사와 불륜이 일어났고, 이로 인하여 부인과 심각한 갈등을 겪는다. 그런데 모스크바로 가는 플레폼에서 그녀는 우연히 젊고 잘생긴 장교 브론스키를 만나게 된다.

아름다운 유부녀인 안나, 그리고 멋지고 늠늠한 장교청년
그들은 첫눈에 반하게 된다. 일종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안나는 브론스키를 피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지만,
브론스키는 안나를 찾아 거기까지 따라온다. 몇번의 밀회가 오고 간 후 안나는 자남편과 자식, 그리고 사회적인 명성을 모두 버리고 그를 선택한다.
세상에 이럴수가...

오랜 시간을 망설이던 안나는 결국 그의 열정에 이끌려 차마 하지 말아야 할 불륜을 저지르고 임신까지 하게 된다.

안나는 남편에게 결국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고백하고 이혼을 요구하지만 남편은 이를 거부한다.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낳게 되고 출산 후 사경을 헤매게 된다.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동정심을 느낀 남편 카레닌은 그녀를 용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안나와 브론스키는 다시 사랑의 정념에 불꽃을 태우고, 함께 유럽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는다.

오랜 여행끝에 러시아로 돌아온 두 사람,
안나는 브론스키의 영지 안에서 고립되고, 시간이 갈수록 안나는 브론스키에 집착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게 거부감을 느낀 브론스키는 그녀를 거부하게 된다.

자신의 사랑이 저물어 가는 것을 느낀 그녀는 다음과 같은 명대사를 말한다.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떤 것을 보아도 소름이 끼치게 된다면 촛불을 꺼버려도 되지 않을까?"

결국 안나는 질투에 눈이 멀고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브론스키를 처음 만났던 모스크바행 기차역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왜 톨스토이는 이 불륜을 적극적으로 다루었을까?
나의 궁금증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다른 각도에서 읽어보면, 톨스토이(1828~1910)의 '안나 카레니나'를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가 되어 다시 읽으니, '불륜'으로 기억되었던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이 사실상 그들의 '첫사랑'이었다는 점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너무나 많은 비약인지 모르지만, 당시의 결혼을 보면 일방적으로 배우자를 정해주고, 사랑이 없는 결혼을 앞세웠던 시기이다.

그런데 단지 첫사랑의 상대를 너무 늦게, 심지어 결혼 후에 만났다면
그들의 사랑은 불륜일까 아니면 첫사랑일까.
중년의 위기가 더 심각한 것일까 아니면 첫사랑의 맹목이 더 위험한 것일까.
첫사랑의 반대말은 마지막 사랑일까 아니면 잊힌 사랑일까. 이런 질문들 속에서 안나의 사랑은 풍자의 화신도 되고 아이러니의 희생양도 된다. (이화여대 김미현 문학평론가)

나는 톨스토이의 삶의 일대기를 보면, 안나 카레리나가 제대로 읽힐 수 있다고 본다. 톨스토이는 불우한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을 보냈다. 귀족이면서 부호의 자제로 자랐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잇따른 죽음앞에 그는 짐승처럼 고뇌하는 사람이 되어 갔다.
그는 이러한 어려움을 문학으로 극복했으며, 글쓰기를 통해서 치유해 나갔다.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인간문제를 극복해 보려고 철학과 신학을 문학에 담아 보려고 애쓴 인물이다. 그는 생의 길고 긴 성장통을 겪은 사람이다.

톨스토이는 이 행복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고민한 사람이다.
행복과 불행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안나 카레리나]라는 대작을 지은 것이다.

사람들은 안나와 브론스키라는 두 사람의 불륜에 너무나도 집중을 한다. 그 불륜이라는 소재 때문에, 15편이나 되는 영화가 탄생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레빈이다. 레빈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톨스토이는 삶의 가치를 투영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불륜이라는 강렬한 빛에 가려서, 레빈이 추구하는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놓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레빈은 톨스토이의 분신으로서 등장한다.
이 작품을 보려면, 주인공 [레빈]에 더욱 집중해서 보아야 한다.

레빈과 키티는 여러가지로 우여곡절을 겪지만, 결국 행복도 과정임을 보여준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시작은 비슷하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다. 그 이유는 그 과정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구절을 이것으로 쓴 것 이라고 보아야 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다 서로 비슷한 것이고,
불행한 가정은 어느 것이나 그 불행의 상태가 다른 법이다"
결국 행복이라는 것은 성장이나 성숙의 과정으로 본다면 이해하기 쉽다.
반대로 불륜은 이러한 성장과 발전이 없는 사랑이다. 안나와 브론스키이 사랑은
이러한 욕구충족에서 출발하여서 사랑했기에 결국 불행해졌다.
불륜은 잠시의 행복의 그림자이다. 행복한 가정은 그 과정이 서로 비슷하다.
그 속에 성장과 성숙을 두고 있어서 그렇다. 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그 불행의 상태가 서로의 욕구충족을 하려는데서 오기에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당신을 좋아해요가 더 오랜 지속된다"고 하였다.

더 깊이 들어간다면 우리는 이 작품의 테두리를 벗어나게 된다.
톨스토이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그의 작품들을 잘 이해할 것이다.
어느 철학자는 "누구든지 행복해지려거든 불행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행복이전에 행복을 방해하는 불행들이 존재한다. 그러한 불행속에서 피어난 행복만이 진짜 행복일 것이다. 행복을 위하여는 방황도 하고 갈등도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행복을 향한 고뇌와 성장통이 있어야만 행복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톨스토이는 이 고뇌와 성장통을 겪은 인물이다.
왜 이 소설이 위대하고 대단한지는, 톨스토이의 삶을 이해하면 쉽게 받아들여진다. 이것은 사실 톨스토이의 성장소설이다.

결론을 짓는다.

안나 카레리나,
그녀는 사랑을 찾아 모스크바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그녀는 사랑을 잃고 다시 모스크바행 기차역에서 생을 마감한다.
결국 사랑을 찾아 불륜을 저지렀지만, 완벽한 사랑을 추구했지만, 그 사랑의 마지막엔 허무한 죽음만 남는다.

그녀의 사랑은 제자리 걸음이었던 것이다. (석영중 교수의 강의중에서)

성장이 없는 사랑은 결국 허무하다.
성숙이 없는 사랑은 결국 불행하다.


오늘 불행감이나 우울감을 떨쳐 버리기 힘든 사람들은 톨스토이의 작품으로 위안을 삼기를 바란다. 러시아 작가라고 해서 거리감을 두지 말고 읽기를 바란다.
그를 한국작가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뭐가 다른 뉘앙스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노어노문학을 전공한 교수나 전공자외 [안나 카레리나]를 읽어본 적이 있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올해가 가기 전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 다 읽고서 스스로를 칭찬했으면 한다.
톨스토이이 작품의 매력이 이렇게 큰 줄은 나도 처음 알았다. 나의 서재에 고스란히 먼지와 함께 쌓여있는 그의 작품들을 올해가 가기전에 다 읽어 보겠다.
인생독본, 참회록, 전쟁과 평화(원서로도 보관), 안나 카레리나 등의 작품을 읽으면서 혼자 웃고, 울고, 참회하고, 기뻐하리라.

프랑스의 알랭드 보통 이라는 작가겸 방송인이 말하기를,

"톨스토이의 저작을 끝까지 읽을 정도면 한 나라의 수상보다 위대하다"
라고 하였다.

수상보다 위대해 지는 일이라면 기꺼이 읽으리라.


<<원래는 긴 글인데, 포스팅을 하면서 많이 줄였어요. >>

 

  • 안나역의 - 소피 마르소 - 눈이 호수 같아요
    구글출처
  • 안나 카레이나의 명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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