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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과 고전 이야기

명길묻 6, 몽테뉴 [수상록 ESSE] 인문학적 읽기

by 코리안랍비 202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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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테뉴-수상록- 책표지
    구글참고


Michel de Montaigne
<<몽테뉴 ‘수상록 ESSE’1533 ~ 1592>>


1. 책구입과 읽기
두달전에 나는 오래된 옛 서점에 가서 몽테뉴가 쓴 [수상록] 세권의 번역본을 샀다. 지금은 고인이 된 서울대학교 불문과 교수인 孫宇聲 손우성님이 번역한 것으로서, 을유문화사가 출판한 것이었다.(2018년 글)

예전 내가 살던 집에는 아버지가 사놓으셨던 몽테뉴의 저작이 기익이 난다. 공주사범학교를 나와서, 늘 책을 놓지 않으신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의 덕분으로 나도 책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제목만 읽거나 부분적으로만 읽어서 그런지 전체적인 내용에는 완전 까막눈(?)이다. 원래 노벨문학상이나 거장들의 작품은 잘 안읽히게 되기 마련이다. 이제야 읽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수상록은 어디를 펼쳐도 좋은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400년이 넘은 시간이니 우리나라 역사로보면 조선왕조초기에 나온 저작이다.
(이 발제문은 2년전에 인문학 포럼에서 발표한 것입니다.)


2. 프랑스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치
프랑스 문학에서 세 사람의 대가를 이야기하려면 흔히 마르셀 프루스트, 빅토르 위고와 함께 몽테뉴를 언급한다. 그의 저서 [수상록 - 에세]는 서양인들이 머리맡에 두고 읽는 책 1순위에 든다고 전해진다. 어디를 펴도 좋고, 우리 삶에 밀착된 편안한 이야기라서 부담스럽지 않다. 에세는 원래 ‘시도하다’,‘휘젓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문학이라는 것은 읽기만 해서는 안되고,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추사 김정희 선생도 진정한 “인문학자는 읽기만 하지 않고, 써야만 진정한 인문인의 길이다” 이라고 말을 했다.

예전 프랑스 당수로서 대통령을 지넨 미테랑의 집무실에 몽테뉴의 초상이 걸려있었고, 자주 몽테뉴의 저작을 탐독했던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런 사람이 있어 삶이 견딜만한 것이 된다”라고 한 것을 보면,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작가의 글이 가진 호소력과 생명력은 현대인들에게도 큰 울림이 된다. 실제적으로 본문을 읽어보면 400년이 넘은 글인데도, 지극히 현대적으로 다가온다.

몽테뉴는 1533년 보르도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보르도 시장이었으며, 이 보르도 지역은 지금도 세계적인 포도주 집산지도 유명하다. 그는 툴루즈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법관이 되었으며, 1565년 결혼해서 6명의 딸을 낳았지만, 성인이 된 자녀는 단 한 명이었다. 1568년 아버지를 이어서 몽테뉴 성의 성주가 된다. 1570년 37살의 나이로 법관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 마침내 대표작인 [수상록]을 집필한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3권 1백 7장으로 된 수필집이다. 1,2권은 1580년 보르도에서, 제 3권은 1588년 파리에서 간행이 되었다.

  • 몽테뉴-수상록-고전표지-입니다.
    구글출처



몽테뉴 수상록의 서문에서는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은 내 자신이다. 내 자신이 이 책의 재료다]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에게 자선에 대해서 알도록 권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인간성의 모든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3. 수상록의 구성
제 1편에는 57장의 수상이 수록되어 있다. 최초의 각 장은 인간의 미묘한 행위나 풍습에 대한 일화나 군사적인 면, 정치적인 면을 고찰하였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의 맛은 우리의 사고에 의한 것이다’ 라든가 ‘철학을 한다는 것은 어떻게 죽느냐를 것을 배우는 것이다’ 라는 등 우리 일상에 유용한 수상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그러나 1장에서 제일 중요한 장은 어린이의 교육에 대한 것이다. 루소가 [에밀]에서 어린이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였듯이, 몽테뉴도 어린이에게 판단력을 길러주는 것이 참된 교육의 목적임을 강조한다. 약간의 설명을 깃들이면, 몽테뉴는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여행과 대화 그리고 일상생활과 책들을 통한 사람들과의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가르쳐야 하는 유일한 것으로서는 윤리도덕과 사는 법을 터득해 주는 철학을 내세우고 있다. 요컨대 그는 아이들을 ‘책을 잔뜩 짊어진 당나귀로 만들지 말라’라고 하였다. 몽테뉴는 기억력보다는 판단력을 더 높은 가치로 두었다. 한국교육의 특징은 잘 기억하여 좋은 점수를 맞는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오늘날 몽테뉴의 교육사상을 받아들여 판단력을 신장하고 늘리는 교육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당나라의 교육제도도 ‘신언서판’이라고 하여, 관리가 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판단력’의 우수성에 있다고 하였다.

제 2권은 32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1,2장의 레이몽.소봉의 변호가 약 반을 차지하며 몽테뉴 본래의 회의사상이 여기에 나타나있다.

제 3권은 13장으로 되어 있고, 몽테뉴 자신의 의견이 잘 나타나 있다. 4장 오락에 대해서는 파스칼 이후에 명상록에서 전개한 인간에 대한 심오한 정신분석이며, 5장의 비르기르스의 시구에 대해서는 문학과 도덕적 문제에 대한 성찰만 아니라, 대담한 연애론이나 성욕론까지 전개된다. 그 밖에 몽테유의 정치관이 담겨져 있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실로 불문학의 전통이 되는 인간연구의 가장 탁월한 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책은 일관된 주장이나 논리전개는 볼 수 없지만, 인간정신의 숭고함이 깃들여 있다. 지극히 고양된 인문정신의 발호를 그의 작품을 통하여 볼 수 있다. 그리스의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의 작품에서처럼 신화의 세계속에서도 인간진보의 위대성을 보여주듯이, 몽테뉴의 수상록도 인간의 인간다움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이 깃들여 있다. ‘나는 존재에 대해서 쓰지 않는다. 나는 변화를 쓴다. 각 순간마다 모든 것은 변한다’(3-2)라든가, ‘인간은 언제 죽을는지 모른다. 어디서나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 죽음에의 준비는 자유에의 준비이다. 죽음을 터득한 자는 종속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자각은 모든 예속과 구속으로부터 우리의 해방이다.(1-20)’

4. 수상록의 기초
16세기 프랑스어로 된 몽테뉴의 작품은 지금부터 400년전이라고해도 믿기지 않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스토리 전개를 한다.

이 책에서 지리상의 발견시대에 식민지에서 자행되는 흑인들이나 노예들에 대한 살상과 탄압에 대해서 몽테뉴는 ‘야만적인 유럽인’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의 독특한 매력은 세상에서 물러나서 사색하는 사람이면서도 세상으로 나아가 실천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식의 나이로 40세에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에서 그는 오랜 법관직을 버리고, 집단의 광기에 거리를 두는 ‘홀로 가는 자 MY WAY'로서, 나중에 보르도라는 지역의 시장으로서 2번이나 선출되는 공명정대하고 바른 정치인이기도 하였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가들이나 지식인과 다른 길을 걷는다. 그는 국왕 앙리 4세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지만 다 사양하고 자기의 성에 머물러 살았다. 그리고 시장시절에는 ‘잠시 세상이 자기를 빌려준 것일 뿐, 자기를 양도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으니, 동서고금의 출세주의자들이 보기에는 불가사의한 말일 것이다.

그는 권력을 가졌으면서도, 권력을 어두운 사리사욕에 쓰지 않으려 애썼다. 그는 부와 명예를 지녔으면서도, 오히려 서민적인 삶이나 자연적인 삶에 참작하고 살았다.

프랑스 소르본 대학의 입구에는 몽테뉴 동상이 서 있다. 이 동상은 시험을 보러 들어가는 학생들이 부적인양 한번씩 만지는 바람에 오른발이 닳아 있다고 한다. 지혜를 찾는 자들에게는 마치 효력이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몽테뉴는 인간이 어리석고 오만함으로 인간의 연약성. 오류, 부정확성을 강조하여 인간이 절대적인 진리를 잡을 수 없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자기가 무엇을 발견했다, 또는 발견을 못하였다 라는 면을 부인하고 자기는 꾸준히 무엇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 유명한 [나는 의심한다. 내가 무엇을 아는가?]라는 회의적인 말을 남기고 그것이 오늘날 문고판 백과사전의 명칭이 되었다.
결국 몽테뉴는 인생체험에 입각한 자연철학에 다다른다. 인간은 관찰하는 자는 인간을 그 일상성에서 보아야 한다.

[인간은 인간인 것을 부정하려 한다. 결국 천사가 되지 못하고 짐승이 된다. 3-13] 이러한 말은 파스칼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의 사상은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사조에 영향을 주었다. 거기에 기계문명과 인간집단화에 허덕이는 현대에서 많은 영향을 주었다.(민희식 성균관대학교 불문학 교수)


5. 수상록의 위대성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지금 가는 길이 맞는 걸까?”몸의 고통을 고치는 것은 의사가 하지만, 마음의 고통을 고치는 것은 철학자이다. 그러나 철학의 길은 멀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그 속에는 굉장히 쉽고 명쾌한 해답이 담겨 있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지?”
잘못을 자책하는 당신을 위해 몽테뉴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리석은 짓을 했거나 어리석은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보다 넉넉하고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우리 인간은 한갓 멍청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나는 사람이다. 인간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것치고 나에게 낯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몽테뉴는 인간의 온전한 모습이 무엇인가를 밝히는데 관심이 있었다. 지극히 인간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본질을 밝히는데 노력을 하였다. 그의 수상록은 이성적인 인간의 이미지를 깨뜨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몽테뉴 덕분에 우리는 자연적인 존재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프랑스어로 [에세예 essayer]는 원래 ‘시도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에세이’한다는 말은 어떤 것을 시험하거나 맛보다 또는 어떤 것을 휘저어본다는 의미이다.
글쓰기는 곧 시도이고, 써봐야 하는 경험적인 것이다. 읽기만 해서는 절대 느낌과 감동을 알길이 없다.

그래서 산문형식의 에세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1676년 가톨릭교회의 금서목록에 오른다. 무려 200년동안 금서로 판정되었고, 1854년 5월 27일이 되어서야 발간금지가 해제되었다. 그이후 많은 사상가들과 문호들은 이 [에세 수상록]을 “책이라기 보다는 인생의 동반자”, “최상의 친구”, “평생을 두고 읽을 만한 책”이라고 추천하기를 주저 하지 않는다.

몽테뉴를 일컬어서 니체는 ‘가장 자유롭고 가장 위대한 영혼’이라고 칭송했다. 그리고 세익스피어에겐 햄릿의 영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 현대에 들어서 모더니스트들은 “자신의 체험에 몰두한 최초의 에고이스트이자 최초의 자유주의자‘라고 추앙하기도 한다. ([에세로 본 몽테뉴의 철학] 중에서)

5. 발제자의 단상
몽테뉴는 당대의 저명한 지식인이었다. 개인적으로 난 지식인을 3부류로 나눈다. 첫째는, 이 세상에 대하여 저항하고 철저히 싸우는 지식인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함석헌 선생이나 도올 김용옥 선생이 해당된다. 다음으로는, 이 세상이나 세속을 멀리하고 자연속으로 들어가 은둔하는 노자나 장자같은 사람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현실에 참여하였다가 현실을 도피하면서도 살아가는 ‘경계인’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몽테뉴는 어디에 속하는가? 바로 경계인이라고 할 수 있다.
법률가나 정치가로서 활동을 하였다가, 과감히 떨쳐버리고 자신의 성에 가서 문예활동을 하면서, 주변의 이웃들을 돕고 봉사하는 일을 했던 사람이 몽테뉴이다. 그는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면서 오랫동안 에세창작에 몰두한다. 에세는 총 세권이지만, 글을 쓴 기간은 무려 16년이나 된다.

몽테뉴의 인생관은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처음에는 스토아학파(Stoicism)의 금욕주의를 따랐다. 나중에는 회의주의자(skepticism)가 되어간다. 그는 “나는 무엇을 아는가? Que Sais Je ”라는 삶의 원칙을 세워서 학문수련을 열심을 한다. 그리스어로 회의주의는 ‘탐구, 연구’라는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는 약간 부정적이고 질이 떨어지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데 이는 지식인들의 큰잘못이다.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도 마찬가지이다. 기본적으로 사물이나 사건들에 대한 의심을 품고, 그것이 확신으로 가기까지 파고들어가는 일련의 지적 활동이 바로 회의주의이다. 다음으로 그는 에피쿠로스적인 삶(Epicurism)에 빠져든다.

철학사조중에 유일하게 쾌락을 주장한 것은 에피쿠로스 학파이다. 쾌락을 마치 죄악시 하던 고전시대나 중세의 분위기에서는 파격적이기도 한 사조이다. 그렇지만 절제가 있는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행복과 밀접하다. ‘절제가 있는 쾌락추구’를 몽테뉴는 즐겨했다.

몽테뉴 수상록이 기여한 것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프랑스인의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 ‘톨레랑스’ 즉 관용이다. 이 관용의 미덕에 대해서 몽테뉴는 무척 강조하였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다른 이의 삶에 대해서는 관용했던 냉정과 열정의 사람이 몽테뉴이다. 그는 자신의 [여행일기]라는 책에서 “관용은 연민이 아니라 생기발랄한 관심이다”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그는 ‘나의 나됨 추구’를 강조하였다. 인생의 제일가는 목적이 행복이라고 말을 하지만, 실상은 ‘나의 나됨 추구’가 제일가는 목적이라고 그는 설파하였다. ‘나의 나됨 추구’는 신약성서의 바울에게서 볼 수 있다. ‘나의 나된 것은 주님의 은혜다’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다양한 생각의 흐름을 인정하고, 폭넓은 독서활동을 통한 다양성의 추구였다. 획일성이 시대에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산다는 것은 전형적인 자유인의 모습이다. 그래서 몽테뉴는 교육사상가로서도 높은 반열에 있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형이상학적인 고담준론이라기보다는 생활과 밀착해 있는 것으로서, 그의 작품의 목차를 일별하면 그와 같은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발견하는 그의 새로운 사상은 난삽한 것이 아니라 그의 관찰과 탐구는 우리 주변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경험되어지고 지각되어지는 것들이다.

몽테뉴는 자기 시대를 관류하는 정신에 등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동시대인의 사는 방식대로 고대인의 지혜와 슬기를 발견하고 자기 시대를 살아가면서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를 끊임 없이 탐구를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사상의 제시자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는 죽었으나 살아있는 현대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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