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흔들릴 때는 고전으로 가라]
어떤 고기집의 광고문구를 본 적이 있다.
"저기압일 때는 고기앞으로 가라"
그래서 어느 날은 마음이 정말 저기압이고 우울한 기분이 들었는데
소고기집에 들리게 되니 신기하게도 기분이 업되고, 풀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셰프 박찬일은 자신의 책에서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라고 하였다.
먹을 것이 풍부한 현대생활이지만, 그러나 여전히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고기를 먹고 와인을 곁들이면 어느새 떨어진 기분의 감도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한다. 거기에 절친한 친구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보면 더욱 그 감도는 높아진다. 그러면서 무거운 마음도 해소가 되고, 새로운 기운을 얻는다.
육신을 위해서는 육의 양식이 필요하다. 영혼을 위해서는 영혼의 양식이 필요하다. 지식이나 지성을 위해서는 지성의 양식이 필요하다. 다 먹을 것과 관련이 있다.
[책먹는 여우]라는 책이 있다. 바우어라는 작가의 책이다. 성인들이 읽어도 좋은 행복한 책읽기를 위한 좋은 책이다. 지극히도 책을 좋아하는 여우 아저씨는 책을 다 읽은 후엔 소금과 후추를 뿌려 먹어치움으로써 교양에 대한 욕구뿐만 아니라 식욕도 해결한다.
우리가 사는 것은 결국 간단한 일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다. 잘 먹어야 잘 산다는 이야기이다. 잘 먹지 못하면 영양도 안좋고, 기운도 떨어지고, 병도 쉽게 온다. 그러기에 잘 먹어야 하는 것은 진리이다. 그렇지만 육과 영과 혼으로 구성된 우리 인간이 비단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먹을 거리만 먹는다면 짐승과 다름없게 된다.
인간은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존재이다. 또한 교육적이고 철학적인 존재이다. 신학적인 존재이기도 하고 종교적인 존재이기도하다. 그러기에 지성과 영혼의 양식을 골고루 받아들여야 한다. 거기에 수많은 문제들이 따라 다닌다.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하고, 합리적이고 현명한 판단도
따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의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나는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인류의 고전으로 향한다. 혼자 고민하지 않는다. 혼자 불안해하지 않는다. 고전으로 가다보면 인생의 귀한 선배들의 귀한 가르침과 교훈을 얻는다. 고전에는 성서가 있고, 논어가 있고, 문학이 있고, 음악과 미술이 있다. 법도 있고 철학도 있다. 신화학도 있고, 역사학도 있다.
고전은 현대로 흐르는 지혜의 강이다.
고전은 끝나지 않는 울림이다.
고전은 문제해결의 단초와 열쇠를 제공한다.
고전은 인간의 얼굴을 한 아름다운 문장이다.
고전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남을 생각하게 한다.
고전은 고전하는 사람들에게 생의 질서와 길을 제공한다.
이왕 글이 길어졌으니, 고전에 대한 좋은 글을 하나 남긴다. 며칠전 신문에 올라온 토막 고전이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더라고 혹여 남에게 해로우면
비록 산더미처럼 얻을 수 있더라도 하지 않는다.
- 이유태의 [초려집]
사람이 어떤 일을 접하였을 때 일반적으로 먼저 생각하는 것은
이 일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의 여부이다.
손해보기 싫어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본성이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상당수는 이해관계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이익이 되더러도 남에게 손해를 끼치게 되면
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아무래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최고 권력은 '돈'이다.
현대인들은 남보다 더 많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롭지 않다.
현대사회는 어디를 가나 갑을구조가 존재한다.
갑을구조가 바로 이해관계를 전제로 한다.
갑은 돈을 쥐고 있고, 을은 물건이나 노동력을 제공한다.
이러한 구조가 정당한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이루어지면 그 사회가 순환이 잘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꼴불견이 우리는 많이 목도한다.
위의 글은 조선 중기의 학자 이유태의 글이다.
그는 늘 온유하고 온화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나에게 아무리 이득이 되더러도 나의 이익이 다른 사람의 해로움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큰 이득이 주어지더라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갑이 자신의 더 큰 이익을 위해서 을의 수고를 외면하거나 도리어 큰 해악을 저지른다면 바른 경제정의가 아니다. 반대로 을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사람은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하고, 염치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이유태의 글을 통해서, 고전의 한 토막일지라도 이렇게 귀한 양식이 된다.
생의 정신적 먹거리를 주고, 양분을 주고, 이타주의와 공리주의의 의식을 갖게 한다. 고전의 힘은 엄청나다고 하지는 않지만, 하루 하루 파도처럼 다가와 흔들리고 있는 우리 영혼을 깨운다.
흔들릴 때마다 고전으로 달려가라.
나는 흔들릴 때마다 고전음악을 듣기도 한다.
그리고 성서를 다시 들어서 읽기도 한다.
각 나라의 고전문학을 다시 읽어보기도 한다.
고전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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