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란 거인들의 어깨에 기대는 것
독서라는 것은 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실은 동적이다.
전신운동이며, 신체의 상당수 감각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움직이는 정중동의 예술이다.
몇해전에 교보문고를 방문하여 책을 몇권 사려고 했는데,
그 서점의 벽면에 위대한 과학자 뉴턴의 말이 쓰여 있었다.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던 이유는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문장은 실은 뉴턴의 명언이 아니다.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 말이 뉴톤이 한 말이라고 여기는 풍월을 읋고 있거나, 마케팅이나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실은 독서의 힘이다.
과학사상가인 로버트 머튼에 따르면, 이 문장은 아이작 뉴턴이 창작해 낸 것이 아니고 그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라고 한다.(Robert K. Merton, On the shoulders of Giants, 196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의 출처가 뉴톤이라고 여기는 것은 그 위대한 인물의 아우라(후광효과) 때문이다. 뉴톤은 겸손하게 자신의 성공이 거인들의 어깨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그 자신도 거인이지만, 그 자신의 시대에 앞에서 이전에 수많은 거인들을 만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라는 기가막힌 책을 읽기를 권한다.
그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 문화적 유산이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한다. 그 문화적, 역사적, 행동적 양식을 우리는 유산(HERITAGE) 로 받고 있는 것이다.
다시 성공을 말하련다.
시대를 막론하고 성공했던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인물들을 보면 반드시 교육과 더불어서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공자는 "성공에는 무엇보다 치밀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준비가 없이는 실패만 있을 뿐이다" 라고 논어에서 밝혔다.
프랭클린은 "성공하기 위해 준비하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를 준비한다." 고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혔다.
우리는 앞서간 시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를 잘 알 필요가 있다. 지금 시대 오래된 고전들을 보라. 이 고전을 어떤 시인은 [오래된 미래] 라고 하였다. 그 고전들은 아직도 살아서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 고전의 거장들을 그리스에서는 클라시쿠스라고 하였다.
[클라시쿠스]라는 말은 원래 클라스에서 나왔다. 지금은 교실이나 계급 정도로만 해석하지만, '클라스가 달라' 라는 표현으로 바꾸면 의미심장해진다.
[클라시쿠스]는 원래 '클래식에 정통한 고귀한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법률, 철학, 시, 음악, 미술, 수학, 의학, 수사학, 문법에 능한 사람을 말한다.
플라톤은 자신의 [아카데미아]에서 , 클라시쿠스 Classicus 의 양성을 최고의 교육방침으로 삼았다. 그래서 나온 제자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 이다.
그 아리스토텔레스도 자신의 학교를 지었다. "교육의 뿌리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라고 하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의 우리도 교육을 잘 받고, 고전을 꾸준히 익히다 보면 반드시 [21세기 클라시쿠스]가 될 수 있다.
물론 그 당시에는 헤브라이즘의 영향력도 배제할 수 없다. 탈무드에도 "교육은 사과에 꿀을 발라 놓은 것처럼 달콤하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가장 문자에 먼저 눈을 뜬 민족이다. 이들은 성서와 탈무드를 읽고 쓸 줄 알았으니, 얼마나 대단한 민족인가... 유대인들은 문맹자가 거의 없었다. 그리스 민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바로 앞선 현명하고 지혜로운 선배 세대들의 산물이 많다. 이들에게 엄청난 빚을 후세대들은 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식인의 책임]을 말하고 싶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하루에도 수 차례 나는 나의 내적. 외적 삶이 내 동료들의 노력에 의해 얼마나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깨닫는다. 살아 있는 동료와 죽은 동료 모두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려면 얼마나 많이 노력해야 할지... 그래서 나는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 고 고백했다.
우리가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반드시 교육을 잘 받고, 늘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배운 것을 후배 세대나, 다음 세대에 잘 전수하고 넘겨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책임을 느끼고 잘 감당하는 사람이 어른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 주려 하는가?
그것을 알려면 고전으로 돌아가보아야 한다. 고전의 거장들을 만나보아야 한다.
그들은 무엇을 물려줄지를 바로 가르쳐 준다.
소로우는 "나는 숲을 거닐면서 거인이 되었다" 라고 [월든]에서 표현하였다.
거인들의 숲을 걸으면 나도 어느새 거인이 된다.
우리는 늘 부족하기 때문에 누구가에게
도움과 지도를 청하는 일을 우리는 자주 해야 한다.
남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된다.
그러려면 거인들의 어깨에 기대는 연습을 자주 해야 한다.
옛날 한 소년이 뒷마당에서 끙끙거리면 무서운 돌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소년은 있는 힘을 다해서 돌을 들어올렸지만 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년의 아버지가 물었다.
"아들아, 그 돌을 들어올리기 위해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느냐?"
소년은 풀이 죽은 듯이 말한다.
"그럼요, 다했어요. 그런데 안돼요."
"정말 다했다고 생각하느냐?"
아버지가 소매를 걷어 붙이면서 말했다.
"너는 나한테 도움을 청하지 않았잖느냐."
그런데 인생의 4-50대가 되면, 이런 현명한 아버지도 세상을 많이 떠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책을 통해서 의지할 위인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같이하는 동료나 선후배들에게 의지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낙원상실, 낙원회복]을 쓴 존 밀턴은
"책은 훌륭한 정신을 키우는 소중한 양식이다" 라고 했다.
몇시간의 독서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만남에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진리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또 삶의 영역에서 두려움과 실망을 뛰어 넘어 앞으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영감이나 자양분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꿈을 추구하면서 힘든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을 본보기로 삼고 힘을 얻어 우리도 그들처럼 나아갈 수 있다.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책이란 많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생각하지 않는 독서는 솔직히 시간낭비이기도 하고, 잘못된 습관이다.
독서의 목적은 그 책의 내용을 이해하느냐에 있기보다는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데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다.
이렇게 좋은 인류의 스승들, 선배들이 쓰고 남긴 위대한 책들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불행한 세대들이 너무 많다.
그것은 책(books)임 회피이다. 책읽기는 솔직히 책임감이 요구된다.
키케로가 말한대로,
아무리 비옥한 들판도 경작하지 않으면 열매를 전혀 맺지 못한다.
배우지 않는 지성도 마찬가지이다.
올해는 [책의 해]이다. 거인들의 어깨위에 오르고, 거인들의 어깨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은 가장 우아한 삶의 발자취이다. 우리는 그런 기댈 수 있는 위인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헬리 워드 비처의 말을 좋아한다.
"긴 하루 끝에 좋은 책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그날은 더 행복해진다."
그리고 그런 위인들이 만들어 놓은 클라식들을 열심히 정성을 다해 익히는 일은
얼마나 우아하고 고상한지 모른다. 나는 21세기 클라시쿠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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