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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동식물의 문학사 & 탐험사&세계사

동식물의 세계사 26, 백조(고니)의 세계사

by 코리안랍비 2022.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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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고니)의 세계사


“백조(고니)는 수백 년에 걸쳐 사계절의 순환 속을 떠다닌다”
- 러시아의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

동물들에게서 나는 놀라운 자연법칙과 인생법칙을 배운다. 동물들은 나의 스승이며, 애인이며, 동반자다. 오늘은 가장 우아한 새인 [백조]를 만난다.

백조는 숫자 10의 14제곱이 아니다. 고니의 한자음이 바로 백조이다. 백조는 몸이 크고 온몸은 순백색이며, 눈 앞에는 노란 피부가 드러나 있고 다리는 검다. 새의 이름중에서 가장 우아한 이름이 바로 백조(白鳥)라고 보여진다.

지금껏 동식물의 세계사를 쓰면서, 왜 저 필자가 다른 동물들도 많은데 백조(고니)를 하려는가 의문점이 있을 것 같지만 나는 심사숙고하여 선정한 동물이 바로 [백조]이다. 그리고 그 백조가 우리 나라의 [주남저수지]에 주로 날라와서 겨울을 난다고 한다. 그전에는 을숙도라는 낙동강 하구의 섬에서 겨울을 보내기도 하였는데, [주남저수지]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백조를 구경하는 것도 평생에 좋은 구경거리가 될 수 있다.

백조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차에서 코푸는 러시아 사람’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이다. 가끔씩 주남 저수지에 백조 무리가 왔다는 뉴스를 접한다. 유유히 헤엄치는 백조무리들을 보면 그 ‘여유로움’과 ‘평화로움’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안데르센의 [미운오리새끼]가 생각이 난다.

보통 오리들은 하얀 솜털이 나오는데, 가끔 칙칙한 색깔의 오리가 나오기도 한다. 오리무리에서 나온 ‘미오(미운오리) 덕클링’은 나중에 자신이 아름답고 우아한 백조라는 것을 발견한다. 가끔 아이들이 많은 집에 꼭 [미운오리새끼]는 존재하는 것을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백조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마도 차이코프스키의 덕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백조는 한문식 표현이고 원래 우리나라 순한글은 [고니]이다. 고니는 ‘곤곤곤’하고 운다고 하여 고니가 되었다. 그리고 한자중에 ‘곡(鵠)’을 한다고 하는데 ‘곡곡’한다고 해서 고니가 되었다고 한다.

백조보다는 고니라고 하는 것이 더 좋다. 그런데 [고니의 호수]라고 하면 웬지 어감이 떨어진다. 고니는 영어로 swan이다. 호수에는 고니나 큰고니를 자주 목격하는데 이들은 모두 천연기념물이며 멸종위기종들이라고 한다. 오늘은 백조라는 이름보다는 고니라는 이름의 세계사를 알아본다.



<고니의 분포>
원래 고니는 툰드라 지역에서 번식하는 종이다. 번식하는 지역이 좁아서 아마도 개체수가 많지 않다. 그러나 큰고니는 분포 범위도 넓고 개체수가 많은 종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 서식하는 고니들은 상당수가 큰고니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낙동강 하구에서 큰고니떼를 본적이 있는데, 여러 시민단체에서 큰고니떼들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도 자주 목격된다. 백조떼가 그래도 한반도를 찾는 것은 아마도 천적이 별로 없거나, 산란하기 좋은 기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먹이부족현상이 아직도 높은 편이여서 사람들이 고니에게 식량을 공급하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이다.


<백조(고니)의 일생>
백조하면 우아하게 물에 떠 있기 위해 물속에서는 쉬지 않고 발을 젓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 영화 한석규가 출현했던 [넘버 3]의 대사중에 하나이다. “야, 백조가 저렇게 여유있게 떠있는 것 같지. 떠 있으려면 물속에서는 발을 조신하게 움직여야 해” 그런데 실제로 백조(고니)가 수영하는 것을 보면 발을 많이 움직이지 않는다. 백조(고니)는 발을 젖지 않아도 물위에 떠 있을 수 있다.

백조의 평균 수명은 10년 이상으로, 태어난지 4년 정도되면 성숙한 새가 된다. 백조는 아직 교미를 하기 이른 20개월 정도부터 이미 파트너를 정하여 첫사랑에 빠진다고 한다. 간혹 저들도 헤어지는(이혼) 커플도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 한번 정한 짝과 평생 함께 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우리 인간은 너무나 쉽게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데 백조(고니)에게서 첫사랑이 끝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을 배우자.

그리고 대부분의 물새들이 암컷 혼자 개고생하면서 둥지를 짓는 것과는 별도로 백조는 암수가 함께 둥지를 짓고 새끼는 키우는 단란한 새가족이다.

그런데 백조(고니)는 상당히 공격적인 새라고 한다.
위협을 감지한 백조의 공격성은 상당하다고 한다. 백조가 날개로 상대방을 치거나 부리로 공격을 하는데, 백조의 날개는 크고 강하며 부리에는 뾰족한 이빨이 나 있어서 굉장히 파괴력이 있다고 한다. 백조(고니)가 아름답다고 함부로 하면 안된다.



<백조의 호수에 풍덩 빠져들다.>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백조의 호수(Swan Lake)는 19세기 러시아의 로멘틱 발레로 만들어졌다. 원래 백조의 호수는 러시아에 전해 내려오는 동화(童話)인데, 초자연주의적인 인간의 추구를 열망하는 로멘티시즘(낭만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끈 주제였다.

마법에 걸려 반백조요 반소년인 ‘오데트’를 중심으로 하여 일어나는 환상적인 이야기이다. 이 백조의 호수 발레공연은 처음부터 대단한 반응을 보이며 지금도 가장 사랑받는 불후의 명작이 되었다.


저주에 걸린 오데트 공주와 함께 춤을 추는 지그프리드 왕자와의 모습은 그저 아름답다고 밖에 설명이 불가능하다.

원래 이야기를 보면 지그프리드 왕자는 호수에서 백조의 무리를 향해 석궁을 겨눈다. 그런데 마법에 걸려 아름다운 아가씨로 변하는 오데트를 발견하고 그만 숨이 멎을 정도로 얼어붙는다. 오데트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녀는 자신이 [백조의 여왕 오데트]라고 말한다. 오데트와 다른 백조들은 부엉이 같이 생긴 사악한 마법사 로트바르트의 저주의 희생자들이었다. 낮동안에는 백조로 변하고, 밤에만 오데트의 어머니의 눈물로 만들어진 호수에서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온다.

저주는 오직 사랑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 오데트를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할 때만 깨질 수 있다. 로트바르크가 갑자기 나타나자 왕자는 그를 죽이겠다고 하지만 로트바르트는 저주가 깨지기 전에 죽으면 저주는 돌아올 수 없다고 호소한다. 결국 로트바르트가 사라지자 백조들은 빈터를 매운다. 지그프리드는 석궁을 부수고 오데트의 신뢰를 얻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전히 사악한 저주는 다시 아침이면 백조들로 변해야 한다. <중간생략> 하고

어느 무도회가 있는 날. 나중 사악한 마법사 로트바르트는 인간으로 변장하고 오데트와 똑같이 변신한 오딜과 함께 나타난다. 이 오딜을 오데트로 착각한 지그프리드는 오직 오딜에게 빠져든다. 심지어 그는 오딜을 아내로 삼겠다고 맹세하고 만다. 로트바르트는 지그프리드에게 오데트이 환영을 보여주고 왕자는 실수를 깨닫는다.

제 4막으로 가면, 지그프리드는 오데트를 만나러 다시 백조의 호수로 가고, 거기서 왕자는 오데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오데트는 그를 용서한다. 그러나 로트바르트가 나타나 지그프리드는 오딜과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오데트는 영원히 백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왕자는 차라리 오데트 옆에서 죽기를 택하고, 둘은 호수로 뛰어든다. 그러나 이로 인해 로트바르트의 저주는 풀리고, 로트바르트는 힘을 잃고 결국 죽는다. 백조 아가씨들은 지그프리드와 오데트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함께 천국에 올라가는 모습을 본다.

이 [백조의 호수]는 나중에 피겨스케이팅이나 리듬체조 등이 프로그램 음악이 되기도 하였다. 몇해전인가 김연아가 피겨 싱글을 하는데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로 나와서 열연하는 장면은 정말 고혹적이었다. 또한 [지젤]로 나온 무대도 있었다. 그 당시 하얀 피겨의상을 입은 김연아는 피겨의 여왕이면서 백조의 여왕이었다.

트리플 악셀(토루)을 하는 장면에서 한 마리 우아하고 멋진 백조가 날개짓하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 같았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김연아의 그 피겨 장면]을 동영상으로 재시청하였는데 감동 그 자체요, 전율 그 자체이다.



<남자는 백수, 여자는 백조>

예전에 청년실업자들을 부르는 말이 남자는 백수요, 여자는 백조라고 불렀다.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 백수는 한자말로 흰 백자에 손 수자를 써서 백수(白手)이다. 가진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인데 아마도 백수건달(白手乾達)이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빈손의 백수가 짐승 백수(百獸)로 의미가 바뀌어 남자는 백수 여자는 백조이다.

여자가 백조가 된 것은 일종의 남녀역차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안데르센 동화의 [미운오리새끼]를 대입해보면 이해가 된다. 비록 새끼때는 그렇게 못생겨 보였지만 털을 갈고 희고 고운 어른 고니가 되어 나는 모습은 지금은 비록 놀고 있지만, 언젠가는 좋은 직장에 좋은 대우를 받으며 좋은 배우자를 만나겠다는 뜻도 있을 것이다. 참으로 ‘꿈보다 해몽이 좋다’.


<검은 백조 black-swan은 정말 있을까?>
예전에 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열연한 <블랙 스완>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녀는 이 발레영화에 출연해서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가 블랙 스완 연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는데 그녀가 피나는 연습을 하여 [프리마돈나] 역을 했다는 것에서 눈물겨운 연기의 세계를 보게 한다. 나탈리 포트만은 참고로 내가 유학한 학교인 히브리대학 출신자이며, 하버드를 나온 수재이기도 하다. 공부면 공부, 연기면 연기를 잘하는 그녀는 ‘백조의 호수’에도 나올만한 프리마돈나임에 틀림없다.



흑고니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백조는 하얀 색을 띠는데, 17세기 검은 백조가 호주에서 발견되면서 백조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어졌다. 그런데 지구 남쪽 호주에 가면 온몸이 까만 흑고니가 야생에서 살고 있다. 흑고니가 호수에 있으면 [흑조의 호수]가 된다. 아마 서양 사람들은 상당수가 백인들이고, 아마 고니가 하얀 색만 있다는 고정관념이었는데, 블랙 스완이 나타나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 삶에도 블랙 스완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이 블랙 스완에 대한 것은 금융권에서도 다루는 경제용어가 되었다.



<경제를 알자. 블랙 스완 흑고니>

세계경제에 ‘흑고니’가 나타난다는 말은 원래 레바논 출신의 미국 투자 전문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2001년 처음 사용한 말이다. 기존의 경험을 깨는 예기치 못한 극단적인 상황이 나타나 경제와 사회 등에 큰 파장을 불러오는 사건을 말한다. 아마도 2020년 발생한 [코라로 19]가 엄청난 블랙 스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로벌 경제 쇼크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지만 우리 인간은 현명하게 대처하며 이겨내었다.

17세기 말까지 유럽인들은 모든 백조가 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697년 네덜란드 탐험가가 호주의 남부에서 흑고니를 발견하면서 통념이 깨진다. 탈레브는 이 같은 흑고니의 존재처럼 전혀 예기치 않은 일이 터질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고, 개인과 기업의 운명을 지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근느 2007년 월가의 허상을 통렬히 파헤친, [블랙 스완]을 통해 증시 대폭락과 국제 금융위기를 예측하면서 유명해졌다.

그의 예측대로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인한 국제금융대란이 왔고, 지금 2020년 코로나 19로 인한 세계공항이 다시 왔다. 블랙 스완이라는 말이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중요 용어가 되었다. 이 글을 읽고 나심 탈레브의 [블랙 스완]을 구입하여 읽어보기를 바란다. 또한 추가로 방탄소년단은 <블랙 스완>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심 탈레브의 책을 읽어도 좋다.

나의 글을 읽으면 그저 유식해지고, 행복해진다. 즐거운 공부가 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캐시 뉴먼의 백조의 노래>
나는 고니에 대한 이보다 더 아름다운 글은 못보았다.

큰고니는 사촌 격인 고니나 울음고니와 함께 우아한 가족을 이루고 있다. 혹고니, 뷰익고니, 흑고니, 검은목고니도 이 부류에 속한다. 1758년, 칼 린네가 처음으로 ‘시그너스 시그너스’라는 학명을 붙인 큰고니는 고니 중의 고니이자 기준종(생물 분류의 기준이 되는 종)으로, 고니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또한 녀석의 서식지가 쉽게 유실됨에도 불구하고 개체수는 18만 마리에 달할 정도로 고니들 가운데 그 수가 가장 많은 편에 속하며, 서식지 분포 범위도 다른 모든 고니 종들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

잔잔하고 고요한 호수 위를 가뿐하게 미끄러지는 모습과 아름답게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르는 녀석의 모습은 옛사람들에게 세월의 덧없음을 일깨워주었으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플라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세상과 작별을 고하던 날 고니의 노랫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고니의 모습으로 변장한 발키리들이 전쟁터에서 죽은 영웅들을 신의 전당인 발할라로 안내했다고 한다. 피타고라스는 시인들의 영혼이 고니로 현현한다고 믿었다.

러시아의 시인인 안나 아흐마토바는 고니가 ‘수백 년에 걸쳐’ 사계절의 순환 속을 떠다닌다고 표현했다. 가을철에 녀석들이 이동 비행을 하는 모습은 시적인 우수를 자아낸다. 녀석들은 천상의 날갯짓을 하며 마치 한 무더기의 은빛 화살처럼 하늘을 가른다. 그림자는 길어지고 해는 짧아진다. 또 한해가 저물고 있다.

그러나 한스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오리 새끼>에서처럼 고니는 여전히 보잘것없는 존재가 고귀한 존재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새삼 확인시켜준다.

달콤하면서 씁쓸하구나, 아름다운 고니들이여. 그러나 그들의 사랑스러운 모습 뒤에는 커다란 몸을 공중으로 띄워 올릴 때 들이는 힘겨운 수고와 날마다 벌이는 생존의 몸부림이 숨겨져 있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전, 물갈퀴 달린 발을 미친 듯이 휘젓고 무거운 날개를 퍼덕이며 힘겹게 날아오르는 고니의 모습과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다른 고니들과 물새들에게 보이는 공격적인 성향이 악의적으로 변해 때로는 죽음에까지 이르는 모습은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바라는 것처럼 쉽게 혹은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 문학속의 백조(고니)>
난 이 한편으로 고니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우리가 좋아하는 [연어] [연탄재] 의 작가시인의 시다.

안도현의 시 『고니의 시작』

고니떼가 강을 거슬러오르고 있다
그 꽁무니에 물결이 여럿 올올이
고니떼를 따라가고 있다
가만, 물결이 따라가고 있는 게 아니다
강 위쪽에서 아래쪽까지 팽팽하게 당겨진
수면의 검은 화선지 위에
고니떼가 붓으로 뭔가를 쓰고 있는 것,
붓을 들어 뭔가를 쓰고 있지만
웬일인지 썼다가 고요히 지워버리고
또 몇 문장 썼다가는 지우고 있는 것이다
저 문장은 구차한 형식도 뭣도 없으니
대저 만필(漫筆)이라 해야 할 듯,
애써 무릎 꿇고 먹을 갈지 않고
손가락 끝에 먹물 한점 묻히지 않는
평생을 쓰고 또 써도 죽을 때까지
얇은 서책 한 권 내지 않는 저 고니떼,
이 먼 남쪽 만경강 하구까지 날아와서
물 위에 뜻모를 글자를 적는 심사를
나는 사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쓰고 또 쓰는 힘으로
고니떼가 과아니, 과아니, 하며
한꺼번에 붓대를 들고 날아오르고 있다
허공에도 울음을 적는 저 넘치는 필력을
나는 어찌 좀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사, 2008)


안도현 시인은 ‘고니떼’가 헤엄치며 발짓으로 강물에 일으키는 ‘물결’을 바라보며 “붓으로 뭔가를 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고니떼의 발동작이 ‘붓질’에 해당되는 셈이다. 그런 생각도 재미있지만, 정말 중요한 생각은 “웬일인지 썼다가 고요히 지워버리고/또 몇 문장 썼다가 지우고 있는” 동작의 이치를 찾아낸 점에 있다.
고니떼의 ‘붓질’은 지상에 삶의 흔적을 남기려는 욕망의 부질없음을 일깨우고 소멸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는 몸짓으로서의 상징성을 갖는다. “죽을 때까지/얇은 서책 한 권 내지 않”고 “허공에도 울음을 적는” 고니떼의 허허로운 몸짓을 시인이 배우려는 까닭도 바로 그 점에 있다. 고니떼를 보면서 시인은 자신이 시가 마치 고니의 헤엄치는 것과 같고, 그것은 마치 붓질하는 것 같지만 뒤를 돌아보면 유유히 사라지는 물결을 본다.우리 사는 것도 이렇듯 헛헛하다. 고니에게서 그것을 배운다.

열심히 살아가지만 뒤를 돌아보면 무엇이 남는지도 모르고 고니처럼 그저 헤엄치고 헤엄칠뿐이다. 그러나 그 헤엄침이 곧 다른 이에게 흔적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발을 움직여 앞으로 앞으로 헤엄쳐 나가야 한다. 그리고 날아올라야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뒤에 오는 이들을 위하여...

고니처럼 헤엄치고 날아오르며, 고니처럼 글쓰고 싶은 안도현 시인이다.

<<문학의 현기증, 이경호의 글중에서>>



오늘은 한마리 여왕 백조 [피겨 퀸 김연아]의 무대로 본고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백조 김연아의 혼신의 연기를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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