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만나는 토끼와 거북이의 세계사
THE TORTOISE AND THE HARE WORLD HISTORY
오늘의 [동식물의 세계사]는 재미있는 주제이다.
토끼와 거북이 또는 거북이와 토끼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우화이다.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의 글의 서문에서 잠시 줄거리를 소개한다.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
“옛날 옛적에 토끼와 거북이가 살고 있었다.
토끼는 매우 빨랐고, 거북이는 매우 느렸다.
어느 날 토끼가 거북이를 느림보라고 놀려대자,
거북이는 자극을 받고 토끼에게 달리기 경주를 제안했다.
경주를 시작한 토끼는 거북이가 한참 뒤진 것을 보고
안심을 하고 중간에 낮잠을 잤다.
그런데 토끼가 잠을 자는 것을 보고 거북이는 토끼를 지나친다.
잠에서 문득 깬 토기는 거북이가 자신을 추월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빨리 달려가 보지만 결과는 거북이의 승리였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꾸준히 노력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아, 그러면 우리도 노력하면 반드시 승리할거야” 하고 다짐을 한다. 그 다짐이 작심삼일이지만... 거북이는 서양에서는 승리(victory)의 상징이 되었다.
예전 그리스의 소피스트들(궤변론자들)이 나오는 대목이 생각이 난다. 그리스에서 제일 빠른 사람이 아킬레스이고 그리스에서 제일 느린 동물이 바로 거북이였다.
그런데 “둘이 달리기를 하면 누가 이길까?” 라는 질문이 있었다. 다들 “아킬레스가 당연히 이긴다”고 하였는데, 소피스트중에 하나는 “거북이가 이긴다” 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거북이가 오래 오래 살며, 계속 가다보면 결국 아킬레스를 이기게 된다.“는 궤변이다. 그때에는 그 궤변(詭辯)이 전혀 안맞느 것 같은데 궤변론자의 그 말이 이제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 보면 빨리 달리는 사람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런데 느리더러도 오래 걷는 사람은 빨리 달리는 사람을 이긴다. 이것이 등산의 세계이다. 아니면 궤변의 세계이거나...
그런데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보면 토끼는 게으른 인간, 거북이는 성실한 인간을 상징한다. 어린이들의 초등교실에는 이 우화가 재미있는 토론거리가 된다. 그 두 동물의 경주는 아직도 아이들에게 즐거운 이야기 소재이다.
어떤 강연에서 실제로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토끼가 양보했다는 아이, 거북이가 토끼도 안깨우고 먼저 갔다는 아이, 어떤 아이는 토끼보다 거북이를 더 비난하기도 한다. 어떤 아이는 경주하다가 자는 것을 보면 잠을 자도 거북이는 가볍게 이긴다는 자만이 있다고 하였다. 아이들의 잠시의 재치있는 말들은 고정관념이 전혀 없다. 그래서 T.S 엘리어트 말대로 ‘아이들은 어른의 스승’이 될 수 있다.
<별주부전>
우리 나라에도 이솝우화에 버금가는 [별주부전]이 있다.
거기서는 거북이 대신에 자라가 나온다. 여기서 자라는 용왕에게 병이 걸려 토끼의 간을 구하러 육지까지 올라왔으나 나중에는 토끼를 데려오는 충성심을 나타낸다. 물론 나중에는 토끼의 꾀에 넘어갔지만 여기서도 토끼는 용왕도 속이고 자라에게도 화풀이를 하는 존재로 나온다.
<태국에서 열린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정말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여 태국에서는 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거북이는 엉금엉금 짧은 다리로 처음부터 토끼를 앞질러 갔다. 그런데 토끼는 오들오들 떨기만 하다가 결국 경기장을 이탈했다. 승리는 거북이에게 돌아갔다. 현장은 토끼를 잡느라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한다. 인터넷에 그 영상이 있으니 시청해보시라.
토끼는 경계심이 많고 360도를 다 볼 수 있는 넓은 시야를가지고 있고, 한곳만 보지 않고 여기 저기 살핀다. 호기심도 많아 훈련이 안되면 주인 말도 안듣고 제멋대로 한다. 한눈팔기 대장이 바로 토끼이다. 토끼는 경주보다 주변상황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한다. 반면에 거북이는 오로지 한길, 오로지 마이 웨이를 걷는다. 거북이는 달리지 않는다. 거북이는 걷는다. 그것도 아주 아주 느리게... 다만 목표의식이 강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토끼 - 영국의 루이스 캐럴>
이 이야기는 엘리스라는 소녀가 정장 차림의 이상한 시계를 들고 있는 토끼를 따라서 굴 속으로 뛰어들어가면서 생긴 일을 그린 모험기이다. 그렇다면 토끼도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할까? 토끼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들은 토끼가 옷입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토끼가 그리 게으르거나 꾀많은 동물이라는 것은 착각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동화가 사람을 버린다”라고 웃으면서 말하기도 한다. 동화가 과학보다 더 강한 매력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거꾸로 읽는 토끼와 거북이 그리고 다른 우화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
앞서 가려면 혼자 가야 한다. 그러나 멀리가지는 못한다. 함께 가면 멀리 간다. 아프리카 속담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 속담인지도 모른다. 동행이 아름답고 좋지만 경쟁없는 동행은 허용하지 않는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는 반드시 누군가는 지고, 누군가는 이겨야 한다. 둘이 같이 들어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다만 함께 가야 할 길이 있과, 앞서가야 할 길이 있는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말고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봐도 그렇다. 김태환이라는 작가가 쓴 [우화의 서사학]을 보면 사람들이 가진 통념이 ‘근면과 성실’이 바로 ‘생존(SURVIVAL)'을 보장하는 의미로 많이 인용되지만, 꼭 그렇지 않다. 이 우화가 여름에서 시작하여 겨울로 마친다. 그러나 겨울에서 시작하여 여름으로 마친다면 아마 베짱이에게 더 우호적인 입장을 보일 것이다. 개미처럼 일을 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는 게 아니라 베짱이처럼 음악이나 노래를 해서 엄청난 성공을 하는 경우도 있음도 알아야 한다.
거기다가 해와 바람에 대한 우화도 있다.
이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교훈과 함께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다.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 벗기기 시합을 하는 설정이 맞지 않는 것이다. 다른 것으로 했다면 바람이 이겼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햇빛 정책]이라는 것이 있는데, [바람 정책]도 있어야 한다.
또한 시골쥐와 서울쥐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시골쥐가 서울쥐의 부유함에 부러워 서울로 놀라 갔다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두려움과 의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시골로 돌아갔다는 우화이다. 이는 시골쥐의 승리이고 서울쥐의 패배로 본다. 하지만 현실은 서울쥐의 ‘풍요롭게 사는 곳’이 선택적으로 앞선다.
<토끼의 구분과 특징>
전세계에는 약 7,80종의 토끼가 있는데, 굴을 파는 종류의 집토끼(RABBIT)와 굴을 파지 않는 산토끼(HARE)로 나눈다
고 한다. 토끼는 ‘귀가 길고 앞발은 짧고 뒷발은 길어 깡충깡충 뛰는 동물’이다.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토끼를 [오사함]이라고 불렀다. 일본어로도 토끼는 [우사기]라고 하는데, 토끼의 ‘토’자와 한자의 ‘오’자가 서로 비슷하게 보인다.
토끼는 12지신중에 4번째이다. 호랑이와 용 사이에 존재한다. 아마도 12동물들이 달리기 경주를 하였는데 ‘빨리 가다’라는 어원에서 유래해서 그런지 재치있고 재빠르다.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라는 노래가 있는데, 달 속의 계수나무는 죽지 않는 나무로 토끼와 계수 나무 모두 장수를 의미한다. 가끔씩 맑은 밤 달을 보면 계수나무 아래서 절구질을 하는 토끼를 볼 수 있다.
빨갛게 충혈된 눈을 일컬어 ‘토끼눈’이라고 한다.
나도 이렇게 토끼눈이 될 정도로 글들을 준비하는 버릇이 있다. 토끼는 포식자들에 의한 사냥감의 대상이기에 늘 항상 주위 살피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 눈이 금새 피곤해질 수 있는게 아니라 눈에 자주 알비뇨 증이 생겨서 그렇다.
토끼는 우화만 아니라 속담에도 많이 등장한다.
[토끼잠]이란 토끼처럼 깊이 잠들지 못하고, 아무데서나 잠시 눈을 붙이는 것을 말한다.
[토사구팽]은 워낙 유명한 말로 토끼를 다 잡으면 주인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중국의 고사이다. 토사구팽은 이미 많이 다루었던 사자성어이다.
[교토삼굴]은 토끼가 위기상황이 올까봐 굴을 세개를 판다는 것인데 아주 영리한 토끼의 모습을 보여준다.
<판소리 수궁가>
구토설화의 근원이 된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을 보면, 친구인 김춘추가 백제에 복수하려고 고구려로 청병하러 갔다가 오히려 고구려 옛 땅을 반환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붙잡히는 일이 생겼다. 그때 김춘추는 고구려를 탈출하기 위해 고구려 신하인 선도해에게 술대접을 해주었다. 구토설화는 그때 술취한 선도해가 김추추에게 들려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이다.
김춘추는 거기서 토끼의 지혜를 얻어서 고구려를 탈출해 나왔다. ‘구토지설’은 그 후 토끼전이나 별주부전 등의 제목으로 퍼지고, 후세에 판소리 ‘수궁가’로 널리 불리게 되었다.
<거북이의 구분과 특징>
거북이는 일단 ‘거북’해서 거북이가 아니다. 거북이는 파충류에 속하는 동물이다. 일단 거북이는 파충류 중에서도 가장 오래 사는 동물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십장생에 포함되는 동물인데, 작게는 몇십년에서 오래 살면 몇백년도 산다고 하니 [장수거북]이라는 말이 붙을만도 하다.
예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라는 진화론책을 읽어보았는데, 그가 갈라파고스에서 3마리의 거북이를 영국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그 거북이 중에 하나가 바로 헤리엇이었다. 그 거북이는 2006년에 사망했다고 하는데 사망 당시에 176살이었다고 한다. 찰스 다윈보다 더 오래살았다. 그런데 과연 그 사이에 진화했을까? 반대로 노화만 했을까?
<혼성그룹 거북이>
오늘의 글에서 혼성그룹 거북이를 말하고 싶다.
다소 잊혀진 그룹인데 리더 터틀맨이 생각이 나고, 추모하는 의미에서 잠시 다루어보기로 한다. 2000년도에 [왜이래, 빙고, 비행기, 싱랄라, COME ON] 등의 곡으로 대중의 인기를 끌다가 갑작스런 터틀맨의 죽음으로 대중들을 떠나게 된 그룹이다. 그 터틀맨의 이름이 [임성훈]인데 2008년 4월 2일 심근경색으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나중에 이강이라는 새로운 맴버를 영입해서 재결성했다가 5개월만인 2011년에 다시 해체되는 불운을 겪었다. 작년도에 거북이의 맴버중에 하나인 [금비씨]가 다시 솔로로 활동한다고 한다. 그 노래의 제목이 ‘시간이 기억해’이다.
“불후의 명곡(명작)은 불우한 시절에 만들어진다” 고 한다.
불우한 시절을 이기고 불후의 명곡을 남겨준 그룹 거북이에게 감사를 다시 보낸다. 거북이의 노래는 지금도 들어보면 신나고 즐겁다. 이 글을 읽고 거북이의 노래를 다 들어도 좋다.
<닌자 터틀>
1987년 애니메이션을 베이스로 하여 2014년 8월 8일에 개봉한 영화이다. 트랜스포머를 연출한 마이클 베이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영화이다.
악당 슈레더와 그의 조직 풋 클렌이 장악해버린 범죄와 폭력이 난무하는 뉴욕시를 배경으로 하여, 하수구에 살던 닌자 터틀 레오나르도, 도나텔로, 라페엘,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맨들이 암흑으로 변해가는 도시를 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오는 설정이다. 이들은 바로 닌자 거북이들로서 어둠의 히어로로 등장하였다. 망한 영화라는 혹평을 받았지만 2억 4천만 달라를 벌었으면 성공한 거 아닐까... 그런데 나는 아주 어여쁜 배우 메간 폭스라는 여배우만을 기억하는 것은 왜일까... 메간 폭스는 나중에 트랜스포머에도 등장하는 리즈다.
<토끼와 거북이에 대한 시>
토끼와 거북이에 관한 시로 유명한 사람은 [이원규] 시인이다. 그는 토끼를 유달리 좋아해서 이 동물에 대한 시를 많이 남겼다. 그 중에서 [속도]라는 제목의 시를 읽어보자.
속 도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는
인간들의 동화책에만 나온다
만일 그들이 바다에서 경주를 한다면?
미안하지만 이마저 인간의 생각일 뿐
그들은 서로 마주친 적도 없다.
비닐하우스 출신의 딸기를 먹으며
생각한다 왜 백미터를 늦게 달리기는 없을까
만약 느티나무가 출전한다면
출발선에 슬슬 뿌리를 내리고 있다가
한 오백년 뒤 저의 푸른 그림자로
아예 골인 지점을 지워버릴 것이다.
마침내 비닐하우스 속에
온 지구를 구겨 넣고 계시는
스스로 속성재배 되는지도 모르시는
인간은 그리하여 살아도 백년을 넘지 못한다.
<이원규 시인, 1962 ~)
아름다운 시어를 만들기로 유명한 정연복 시인의 시도 참 좋다.
토끼와 거북이
시간은 하루하루
토끼같이 바람같이 빠르다
자연의 변화는
거북이같이 느릿느릿하다
시간과 자연은
빠르기가 비교가 안 될 듯 싶은데
놀랍게도 최후의 승자는
느려 터진 듯 보이는 자연이다.
매일 바라보아도
늘 푸르기만 했던 저 잎들이
어느 결에 붉게
물들어 있는 것 좀 보라니까.
인생은 짧고, 세월은 빠르다. 그런데 자연은 느리다.
셰익스피어는 “가장 느린 것이 가장 빠른 것이다” 라고 하였다. 아마 그 시인도 자연의 느린 속도가 가장 빨리 도달하는 속도임을 시에서 보여주고 있다.
딸부잣집인 우리 집의 막내 딸이 생각이 난다.
아주 어렸을 때 행동이 마치 거북이처럼 너무 굼떠서 굼뱅이라고는 못하고 ‘거북이’라고 불렀다. 무엇이든 차근 차근 조바심 내지 않고 하는 모습이 도리어 보기가 좋았다. ‘느리더라도 할 것은 다 해요’ 라고 하는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이제는 토끼처럼 움직인다. 여기 저기 발빠르게 가야 하는 곳들이 생겼다. 영락없는 한국인으로 자라고 있는 것이다. 빨리 빨리의 [토끼문화] 느릿 느릿 [거북이문화] 이 문화사이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무엇이든 잘하는지도 모른다.
빠를 때는 토끼처럼 빠르게, 느릴 때는 거북이처럼 느리게 하는 것이 현명하고 지혜롭다. 한국인들은 빠름과 느림을 사이에 두고서 달리기를 한다. 지금도 자연의 시계는 느린 것이 빠른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느리게 돌아가고, 우리는 ‘빠른 것이 좋다’며 바쁘게 바쁘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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