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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동식물의 문학사 & 탐험사&세계사

동식물의 세계사25, 신비로운 영초 인삼의 세계사

by 코리안랍비 2022.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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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영초(靈草) 인삼(人蔘)의 세계사

지금까지 쓴 글중에 가장 난감한 주제가 바로 ‘인삼’에 대한 것이다. 예로부터 인삼은 ‘신령스러운 영초(靈草)’로 불리웠다. 이를 다룰려면 쉽지 않지만 시도해본다. 필자는 ‘인삼전문가’도 아니고, ‘심마니’도 아니다. 다만 人蔘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다. ‘신토불이의 대명사’가 바로 인삼이다. 또한 사람을 닮은 모양을 갖추어서 人蔘이다

학창시절에 체력보강을 위해서 2-3일에 한 뿌리씩 생삼(生蔘)을 먹은 적이 있다. 어머니가 꿀에다가 칼로 썰은 인삼을 재워서 주셨는데 그것만 먹으면 하루 밤을 세어도 무리 없이 시험대비를 한 적도 있다. 금산에서 인삼밭을 운영하는 부모를 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모든 음식이 거의 인삼이었다. 인삼김치부터 시작하여, 인삼무침, 삼계탕, 인삼튀김, 인삼젤리, 인삼이 들어간 갈비탕 등을 주로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면역력짱’이라고 불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걸리지 않을 정도의 면연력을 갖추었을 것이다. 감기 한번 걸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 친구가 닭과 궁합이 잘맞는 삼계탕을 자주 먹었다.

나도 물론 삼계탕을 먹었지만, 가난한 자취생이라 우스개소리로 삼양라면과 계란을 풀고 탕에 넣고 끓인 삼계탕을 많이 먹었다. 인삼은 고가의 식품이기에 자주 먹는 것이 어려다는 표현이다.

인삼.홍삼.산삼은 모두 사포닌이 풍부한 삼(蔘) 트리오다. 셋다 독담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높여주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蔘종류를 먹어서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건강제일이다.


인삼의 개요
인삼은 영어로는 Jinseng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또다른 영어표현은 Panax Jinseng이다. 여기서 파낙스는 바로 ‘만병통치’라는 것인데, 만병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다는 것인만큼 대단한 신비의 약초로 정평이 난 것이다. 중국어로는 인삼(人蔘 런셩)이라고 하고, 일본어로는 고라이닌진, 혹은 조센닌진 이라고 부른다. 중국의 삼(蔘)을 전칠삼(또는 삼칠삼)이라고 부르고, 일본의 삼을 대나무처럼 가늘고 길게 자란다하여 죽절삼(竹節蔘)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삼은 화기삼(花旗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유독 한국 삼만 사람(人)을 닮았다고 해서 최고의 인삼은 한국인삼이다.

기록에 의하면 1392년 고려시대에 인공재배에 성공한 이래 지금은 인공재배로 거의 기른다. 자연삼 산삼의 경우 재배 인삼에 비해 가격이 많게는 수백배 이상이 차이가 나서 전국의 명산을 돌아다니며 오래 묵은 산삼을 캐러 다니는 약초채집꾼인 ‘심마니’라는 직업이 있다. 그들이 산삼을 발견하면, “심봤다”라고 외친다. 아직도 이산 저산 심마니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 글을 더 전개한다. 미국에도 심마니들이 많다고 한다. 산에 뿌려 놓은 산양산삼이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인삼의 역사

요즘은 세계 곳곳에서 자라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자라는 토종인삼으로 약효가 뛰어난 ‘고려인삼’이 유명하다. 한국산 인삼은 이미 삼국시대에도 당나라에 널리 알려질 정도로 좋았다. 진시황은 이 찾은 불로장생(不老長生)이 찾아 헤멘 약초가 바로 고려인삼이나 영지버섯이라고 한다. 신라의 문인인 최치원은 생일에 신라의 약재인 인삼을 상관에게 바치는 현생일물장(獻生日物壯)을 썼다고 저서 계원필경에 기록했다.

인삼의 역사를 다 쓰려면 한도 끝도 없어서 1.2개 에피소드만 간추린다.

추사 김정희가 스승을 삼은 금석학의 대가중에 청나라 ‘옹방강’이 있었다.
그는 제자 김정희에게 편지를 보내어서 “제자여, 고려인삼을 잘 받았네. 수도(북경)에서 고려인삼이라는 것이 가짜가 많으니 보낼 때 수십 뿌리 챙겨 보내주시게” 라고 썼다고 한다.

당시 고려인삼은 시가로 너무 비싸서 가격을 속이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이미 [인삼짝퉁]이 중국에서는 돌았다고 한다.
심지어 아주 먼 나라인 베트남에서도 고려인삼을 황제가 정력제와 신하들 하사품으로 애용을 했다고 전해진다. 거기서도 고려인삼이라고 불리우는 가짜들이 판을 쳤다고 전해진다.

고려인삼은 그 당시로는 최고의 ‘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조선 자체내에서 생산되는 물품으로는 가히 조선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물이었다. 그래서 중국을 차이나라고 하지만 한국은 코리아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바로 개성상인들이 고려인삼을 해외 각지에 수출?하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당시 인삼은 바로 오늘날의 ‘산업의 쌀’이라 불리우는 반도체에 해당하는 정도의 가치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인삼은 1-3등급을 천(天), 지(地), 양(良)으로 부르는데, 최고 품질인 정관장을 천(15)의 경우 한 근에 중국에서 약 18000위안으로서 우리 돈으로 310만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양(30)의 경우도 약 4천 위안으로서 약 70만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중국의 삼은 이름이 전칠삼인데 겨우 200위안에 팔린다고 하니 거의 가격이 100배정도 차이가 난다. 그래서 가격이 ‘차이나’... 하여간 고려 인삼은 명품이다.


정관장의 유래

글을 준비하면서 정관(政官)장이란 용어에 대해서 궁금하였다. 정관장이란 1940년대초에 사제 홍삼과 위조 고려삼이 범람하자 조선총독부 전매국이 만든 홍삼과 사제 홍삼을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단어는 ‘정부과 관할하는 공장에서 제조.포장된 진짜 관제품’이라는 뜻이다. 가끔 차를 몰고 지나가다보면 ‘정관장’이라는 인삼판매가게를 볼 수 있다. 나는 그 가게에 들어가면 “김관장도 아니고, 오관장도 아니고, 정관장은 누구입니까?” 아재개그를 날리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서 한국인삼공사는 1986년 10월에 정관(政官)장을 등록상표로 출현하였다.


<면역력 강화성분 사포닌>
인삼은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건강식품중 하나이다.
조선시대의 왕들은 인삼을 즐겨 먹었다. 인삼은 권태감과 피로를 완화해주고, 식욕부진이나 구토, 설사 등을 호전시켜 주고, 당뇨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
그래서 80세 이상 가장 오래 살았다는 영조대왕은 늘 인삼을 끼고 살았다고 한다. 매년 20근 정도의 인삼을 섭취하였던 ‘인삼광’이었다. 그가 먹은 인삼만 평생 500근이 넘는다고 하니 장수의 비결이 인삼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장수의 비결이 면역력에 있다는 것도 증명이 된 것이다.

인삼에는 좋은 성분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사포닌이 풍부해 몸의 면역력을 높여준다. 사포닌은 식물의 뿌리, 줄기, 잎, 껍질 등에 분포하는 성분으로 항암과 항산화, 그리고 콜레스테롤 저하 효과가 밝혀지고 있어 주목을 받는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보면 “인삼은 정신을 안정시키고 신경을 가라앉히며 놀란 가슴을 뛰는 것을 진정케 해주고 두뇌 활동을 활발하게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본초학서(本草學書)’인 [신농본초경]에 의하면, 365종의 약물을 상중하의 3품으로 구별하여 상품 약 120종, 중품 약 120종, 하품 약 125종으로 구별하였다. 이중에서 인삼은 상품약에 들어 있으며, 인삼의 약효에 대하여 “인삼은 오장을 보호하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눈을 밝게 하고,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오래 살 수 있다”는 표현을 하고 있어 오늘날의 과학으로 입증된 인삼의 효능과 잘 부합된다고 하겠다.


<하멜표류기에도 기록된 인삼>
1666년 우리나라에 체재한 네덜란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인 하멜(Hamel. H.)이 기록한 <하멜표류기>가 운데 조선특산품으로 인삼이 기록되어 있다. 또 그들이 조선을 떠나서 1667년 일본에 나가사키에 들렸을 때, 그곳 관헌과 회견하여 인삼에 대한 문답을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하멜일행은 아마 조선을 떠날 때 건조한 인삼을 가져갔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인삼의 이름들>
인삼은 명태가 생태나 동태로도 황태로도 북어로도 불리듯이 이름이 많다. 인삼밭에서 4년내지 6년을 재배한 후 수확한 것을 수삼(水蔘)이라고 부른다. 이 수삼을 다듬어서 햇볕에 건조시킨 것을 백삼(白蔘)이나 건삼(乾蔘)으로 부른다. 수삼을 짜서 말리면 색깔이 붉은 색을 띠게 되는 데 이를 홍삼(紅蔘)이라고 한다.
19세기 개성상인(송상)들이 상품화한 것은 인삼밭에서 수확한 수삼이 아니고 그것을 쪄서 말린 홍삼이었다. 그 이유는 중국 사람들이 홍삼을 선호하였기 때문이다. 개성상인은 수삼을 수확하고 이를 홍삼으로 제조한 후 중국으로 수출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이다.

옆길로 새면, 개성은 송도삼절로 불리우는 유명한 명기가 있는데 바로 황진이이다. 이 황진이는 인삼애호가로 알려져 있었다. 아마 개경상인중에 황진이에게 인삼을 납품했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황진이는 인삼 잎을 말려서 사시사철 차로 마시고, 인삼 잎 달인 물로 목욕을 해 건강은 물론 고운 피부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아마 그녀가 시나 시조를 잘 지은 것도 인삼의 힘이 아닐지... 모른다. 인삼에는 탁독합창(托毒合瘡) 이라 하여,“체내의 독을 제거해 피부를 곱게 만들고 종기를 삭히는 것”이라고 하니 황진이도 애용한 고급건강식품이었던 것이다.


<개성상인들, 임상옥 거상>

인삼 이야기를 하다가 개성상인들도 잠시 소개를 해야 할 것 같다. 개성상인들이 마케팅 상술은 당시 최고였다. 내 전공이 MBA여서 잠시 이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들이 인삼을 팔아 먹은 것을 볼 때 이들이 상술이 인삼의 수요 증가를 불러 일으킨 측면이 있다. 그들은 근대적인 언론 매체의 광고와 직접 만든 전단지 등을 적극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백삼을 선전하였고, 동시에 통신판매라는 새로운 판매방법도 도입하여 판로를 확대하고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국내에 국한하지 않고 중국과 일본 등 해외시장까지 판로를 개척하였다. 다른 한편 수요자 층의 확대로 인한 백삼 수요의 증가를 들 수 있는데, 인삼은 동양에서 언제나 애용되었으며, 다만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어 그 활용이 제한되었는데, 상대적으로 백삼 유통의 등장이 홍삼이나 산삼보다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여 많이 애용하게 된 것도 큰 경제효과였다.

개성상인들의 [통신판매]기술이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들은 교통.통신의 발달이 부족한 시대에서도, 당시의 쿠팡 ‘로켓배송’정도의 속도는 아니지만 지방의 재산가들에게 백삼을 빠른 속도로 납품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개성상인들을 통해서 백삼=건삼이 많이 유통되게 된 것은 위와 같은 배경이 있는 것이다.

고 최인호 작가의 [상도]를 보면 개성상인중에 인삼으로 최고의 상종가를 울린 분이 바로 ‘임상옥 거상’이다. 그는 “이문을 남기는 것은 작은 장사요, 사람을 남기는 것은 큰 장사” 라는 명언을 실천한 경제인이다. 그는 추사 김정희로부터 나중에 ‘商業之道’라는 그림을 받는다. 이 그림을 줄이면 ‘상도’가 된다. 그로부터 얼마후 임상옥 거상은 “재물은 평등하기기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라는 경상철학을 실천하며 삶을 마감한다. <우찬제의 문학속의 돈 이야기 中>

인삼 글을 쓰다가 이런 귀중한 위인 ‘임상옥 거상’도 만난다.



<인삼의 세계사>
고려인삼이 유럽에 첫발을 내 딛은 시점은 1617년이다.
그 당시의 한류로 인삼이 인기를 얻은게 아니라 인삼이 먼저 한국을 알린 ‘원조 한류’이다.

이 주장을 하는 사학자가 있는데 바로 연세대 설혜심 교수이다. 그분의 저작이 바로 <<인삼의 세계사>>이다. 이 글을 쓰려고 당연히 서점에 주문을 하여 스킵하면서 스캔을 하였다. 설교수는 이 책에서 대항해 시대를 거쳐 17세기초 인삼은 커피, 향료, 사탕수수, 면화 등과 함께 세계교역상품의 중심이었다고 주장한다. 설교수는 ‘대항해시대에 예수회가 인삼에 대한 핵심 정보를 유럽사회에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1617년 일본 주재 동인도회사의 상관원이 런던 본사에 보낸 통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한국에서 온 좋은 뿌리를 보낸다. 여기서 이 뿌리는 은과 맞먹는 가치를 가지는데, 너무 귀해서 보통 사람의 손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쓰시마섬의 번주에 의해 무조건 일본 천황에게 보내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약으로 간주하며 죽은 사람도 살려내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인삼에 대한 극찬일색이었지만 정작 서양사회는 인삼에 대한 것을 은폐하였다. 인삼의 효능에 대해서 놀라워하면서도 동양에서 온 약초에 대하여 큰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과도 관련이 있다.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이 동양위에 있다는 우월주의이며, 백인이 다른 인종들보다 우수하다는 우생학과 관련이 깊다. 그래서 저자는 서양사회의 지식인들이 인삼을 미신과 설화의 약초처럼 보는 시각을 지적하였다. 저자는 “이 연구가 시작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나의 모토는 그런 자료들로 하여금 서양 역사 속 인삼의 존재를 스스로 말하게 하라‘라는 것의 저자의 집필목적이다. 저자의 책을 읽는 것이 그 자체로 <인삼의 세계사>를 망라할 정도의 볼륨감이 있는 책이다.

  • 다음 출처 이미지 - 재미있게 읽은 책


<문학속의 인삼 - 박완서와 현진건 선생>

국민작가인 고 박완서의 작품 <미망>을 알고 있는 분들은 적을 것이다. 그 <미망>에는 인삼의 고장 개성과 인삼과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분의 고향이 개성이어서 그런지 인삼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 책을 서재에서 찾아 읽어보니 개성상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 개성상인들은 인삼을 많이 팔아서 모은 돈을 독립자금으로도 지원했다는 사실을 밝혀서 그 책 자체가 역사적 가치가 있다. 그리고 개성에 뿌리를 둔 5대의 일대기를 통해 시대적 격변을 잘 볼 수 있는 대하소설이다.
한 대목을 소개한다.

“온천보다 더 좋은 목욕물을 만들어보자고 인삼탕을 개발하였고,위치로 보아 더할나위없이 좋은 데 자리 잡은 개인의 별장을 매입하기 이르렀다. 영빈관은 내부를 인류호텔 못지않게 꾸미고는 목욕물을 비롯해 음료수, 비누, 화장품, 과자에 이르기까지 온통 개성 특산의 인삼 일색으로 하였기 때문에 인삼장이라고 불렀다. 북쪽에 있는 너른 바위를 뚫어 용출하는 천연수를 끌어들여 자가 상수도와 목욕물로 썼는데 삼엽과 삼피를 넣고 끓였기 때문에 인삼탕이라고 했고, 세안용 비누도 인삼을 넣고 만든 독특한 거였다. 다실에서는 홍삼 엑기스차를 인삼 웨하스나 인삼정과에 곁들여 마실 수가 있었으니... <중략>

또한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에도 인삼이 등장한다.
이 사실을 아는 분들도 거의 없을 것이다. 현진건은 ‘B사감과 러브레터’로도 유명하지만 <운수좋은 날>을 통해서 해학을 많이 느끼게 해준다. 인삼이 나온 대목을 소개한다.

“약 한 첩 들어가 보지 못한 위장에는 인삼과 녹용이
그야말로 선약 같은 효험을 드러냈었다.
최주부는 하루바삐 이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이해타산도 모조리 잊어버렸다.“ <운수좋은 날 中>

앞서 인삼의 세계화는 이미 17세기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지금도 세계인들의 인삼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고 한다.

암투병으로 3개월밖에 못산다는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에게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이 인삼을 특별히 선물로 보냈다고 한다. 그 미테랑 대통령이 신초인 인삼을 꾸준히 복용하면서 3개월도 못산다는 사람이 6개월 이상을 지냈다고 한다. 그가 죽기 전에 프랑스 사람들에게 ‘건강을 위해서 인삼을 챙겨 드십시오”라는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문학속의 인삼에 대한 맑고 고운 이야기를 담아준 최인호, 박완서, 현진건 작가분들게 감사한 마음이 된다.

건강을 위하여 이제라도 [정관장]을 많이 드십시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홍삼차를 마시고 자야겠어요 !!

  • 다음 출처 이미지 - 산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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