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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동식물의 문학사 & 탐험사&세계사

동식물의 세계사23, '사막의 배' 낙타의 세계사

by 코리안랍비 2022.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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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배' 낙타의 세계사

“낙타가 사막을 건널 수 있는 건 천천히 걷기 때문이다”
- 어느 중동의 詩句


낙타에 대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 과연 몇몇이 될까? 동식물의 세계사를 쓰면서 낙타에 대한 글까지 쓰게 된 것은 필경 행운이라고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낙타하면 메르스가 창궐하던 때가 생각난다. 낙타가 중동발 호흡기 증후군의 주원인이라고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감염병 전문가들이 낙타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들은 감염병은 전문가인지 몰라도 낙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보인다. 낙타가 감기나 독감에 전혀 걸리지 않는 동물이다. 그래서 낙타가 전염원이라고 하는 것은 억지이다. 그리고 중동에서 낙타고기는 부자들과 왕족들의 식사이다. 서민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식사이다. 그 가격이 아마 1인분에 1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낙타가 메르스의 주범이라는 것은 억지이다. 그런데 쥐가 페스트를 옮기고, 박쥐가 코로나를 옮긴다는 것은 믿을만하다.

낙타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이 사막 여행자들이다. 그 사막을 횡단하고 여행하는 상인의 무리를 중동에서는 캐러번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낙타를 ‘신의 가장 위대한 움직이는 선물’이라고 부른다. 낙타는 사막에서 모래에 파묻히지지도 않고 더위에도 무척 강하며, 지구력이 가장 강한 동물들중에 하나이다. 물을 한달간 먹지 않아도 버티며 사막을 넘나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어린 시절에 성경에서 등장하는 많은 신기한 동물중에 고래와 더불어서 가장 신기한 동물이 낙타였다. 양이나 염소는 한국에서도 서식을 하는 동물이기에 평범한 동물처럼 여겨졌으나 낙타는 만나 본적도 없고, 그저 사진과 그림으로만 만나 보았으니 그랬던 것 같다. 그 낙타라는 동물은 나중에 대형동물원에 가서 구경을 하였고, 그리고 이스라엘에 유학을 가서 주변 중동국가를 여행하면서 수시로 만나게 되었다. 물론 내가 6,7년간 머물렀던 예루살렘에서도 낙타는 손쉽게 구경할 수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성서의 이 대목은 기억한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것보다 어렵다” 라고 하자 이에 “누가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 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는 하나님이 하신다면 모두 가능하다며 훈훈하게 말씀하신 대목이 나온다. 당시에 예루살렘 성에 문이 하나 있는데, 이 문은 통금시간이 되면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들어올 수 있었지만, 문이 낮고 좁아서 낙타는 전혀 들어올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문밖에 낙타를 묶어두고 주인은 들어와야 했다. 그 문의 이름이 아마도 [바늘귀문]이라고 불렀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광야에서 세례를 주었던 세례 요한이 있다.
그는 몸에 낙타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이라는 꿀을 먹고 지냈다고 한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오심을 예비한 인물인데, 당시 낙타 털옷을 입을 정도면 지금의 무스탕을 입었다고 보아야 하고, 자연식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낙타의 여러 이름
성서에서 보여지는 낙타의 순우리말로 약대라고 한다.
한자어로는 ‘탁타槖駝’ 라고 불리운다. 낙타는 아마도 흉노족의 어휘인 DADA라는 한나라 시대의 음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영어로는 CAMEL인데 이 말은 히브리어 ‘가말 Gamal’ 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그렇다면 히브리 성서가 유럽에 보급되면서 유럽 사람들이 케멜이라고 불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나는 한국에 몇 안되는 히브리어 강사이다. 그래서 히브리어만 아니라, 그리스어나 라틴어로도 학습한 사람이다. 아랍어도 약 1년간 공부를 하였다. 아랍어로는 낙타를 ‘자말’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고대 영어에서는 이 낙타를 ‘올펜드Olfend' 라고 불렀는데, 이 뜻이 공교롭게도 코끼리였었다. 코끼리는 라틴어로, ‘엘레판투스’인데, 황당하게도 이 코끼리와 낙타를 헷갈린게 아니라, 낙타를 그저 소문으로만 들었던 고대인들의 실수이다.<위키백과>



낙타의 진화
낙타는 원래 4천만년전 북아메리카에서 기원한다고 한다. 북아메리카의 낙타가 남아메리카로가서 라마, 과나코, 비쿠냐 등으로 진화하였다고 한다. 또한 빙하기를 넘어서 낙타가 유라시아로 건너가게 되었고, 그런 사이에 추위에 적응하기 위하여 지방을 저장하는 혹이나 넓직한 발등이 생겨서 사막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단봉낙타나 쌍봉낙타나 추위에도 강하게 되었다고 본다. 사막에 가보면 낮에는 불타는 듯이 뜨겁지만 저녁에는 무척이나 춥다. 일교차가 큰데도 낙타는 밖에서 잘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지금 북아메리카에는 낙타가 서식하지 않는다. 낙타는 사막에서 살아남아서 지금은 사막의 맹주이다.


인간과의 공존
낙타는 기원전 4천년전부터 사람들과 공존해왔다.
사막이란 극한의 환경에서 적응한 낙타는 수천년간 생존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였다. 낙타는 사막에서 적합한 구조로 진화하고 발달했으며, 오랫동안 생존력을 길러왔다. 낙타의 등에 있는 혹은 물이 들어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지방으로 가득차있다. 극한 환경속에서 고통을 이겨내면 삶의 자세가 진중해진다. 낙타를 보면 모진 고통과 풍파를 견디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고 이겨낸 위대성이 보인다.


사막의 베두인
이집트나 이스라엘 그리고 요르단과 레바논 지역을 여행해보면 사막에서 생활하는 베두인족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사막지대에서 양과 염소를 키우고, 말이나 당나귀들을 타고서 이동한다. 그러면서 종종 낙타를 여럿 거느린 베두인들을 볼 수 있다. 베두인들 내에서 낙타는 매우 귀중한 자원이다. 낙타가 한 마리만 있어도 그 베두인은 고급 리무진 차를 거느린 부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낙타를 타는 경우는 한때는 무역을 위하여 탔으나, 나중에는 관광객들을 태우거나, 낙타타고 사막이나 광야른 건너는 투어를 위해서이다. 인디아나 존스나 알라딘의 요술렘프의 무대였던 요르단 페트라에 가보면 낙타타기 코스가 있는데 상당히 비싸지만 리무진을 탄다고 생각하고 타보면 각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낙타의 특성

낙타는 초식성인데 어떤 식물이든 닥치는대로 먹을 정도로 대단하다. 지붕을 이루는 짚 정도는 예사고, 사막의 가시나무나 선인장도 거뜬히 먹을 수 있다. 가시를 발라 먹어야 하는데, 입안은 특수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가시가 많은 선인장이라도 찔리거나 긁히는 일이 없이 자연스럽게 목넘김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독성있는 식물은 구별하여 먹는 속성이 있어서, 옛날의 고대인들은 낙타가 무엇을 먹는지를 확인하고 식물을 먹기도 하였다. 한번은 낙타가 얼마의 물을 먹는지 보았는데, 한번에 50리터의 물을 마실 수 있다고 한다. 1.5리터 페트병으로 약 25개를 마신다고 하니 놀랍기만하다. 그런데 그렇게 물을 저장하고서 약 한달간을 사막을 건너갈 정도로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가 낙타이다.


또한 모래폭풍과 돌개바람에도 자신의 눈을 보호하기 위해 긴 쌍꺼풀과 속눈썹이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 낙타를 보면 아주 눈이 매력적인 동물이다. 가까이서 보면 눈이 예쁜데 가끔 낙타가 침을 밷는 경우가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낙타는 ‘사막의 배’라고도 불리운다. 그래서 쌍봉낙타 위에다 앉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여 타고 다닌다. 낙타에는 약 2명 정도까지 타도 다닐 수 있는데, 낙타는 천천히 오래 오래 보행을 한다. 그리고 낙타를 이용하여 전투도 이루어졌다. 낙타위에서 활을 쏘기도 하고, 군마처럼 길들이기도 하였다. 예전 중동에는 ‘낙타부대’가 있었다. 낙타가 말보다는 느리지만, 일단 타보면 그렇게 느리지 않다. 더위에 약한 말은 사막에 적합하지 않으나, 더위에 강한 낙타는 사막에서 오래 오래 걷기도 하지만 낙타가 달리면 시속 45킬로로 달릴 정도로 빠르다고 한다.

UAE(두바이)에 가보면 ‘낙타경주대회’가 있는데, 대사관에 근무하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경마장같은 곳을 데려가 주었다. 알고보니 경마장은 아니고, ‘경낙타장’이라고 불러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여기 경주낙타는 시속 65킬로까지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거의 말과 대등할 정도의 속력이다. 이 낙타경주가 거기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신기하게도 호주(오스트레일리야)에서도 열린다고 한다.


한국에도 낙타가?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군마를 기르는 목장에서 말과 함께 낙타를 사육했다고 전해진다. 그 증거로 고려사에 전국의 목장에 가을과 겨울에 낙타에게 먹이로 줄 사료의 양과 봄과 여름에 먹여야 할 사료의 양을 정해 주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 쌍봉인지, 단봉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봉’이 있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고려시대에 왕건이 나라를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서 거란이 선물로 낙타 50마리를 보냈다고 한다. 왕건은 거란이 형제국인 발해를 멸망시킨 나라라 하여 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사신은 섬으로 귀양을 보낸다. 낙타들은 모두 개경의 만부교라는 다리 밑에 묶어 두고 굶겨 죽였다고 한다. 그때 낙타들을 살려두고 길렀다면 아마 우리나라에 낙타 구경하러 많은 중동의 부자들이 관광을 왔을 것이다. 왕건 나빠요 !!


낙타부대
기마부대는 들어보았어도 낙타부대는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헤로도투스의 [히스토리아 역사]를 보면 아케메네스 제국의 창건자인 키루스 2세가 나온다. 그 키루스 2세는 정복왕이었지만 강력한 리디아 제국과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적군의 기병부대가 자신의 기병부대보다 훨씬 수도 많아서 걱정하자, 부장들 중 한사람이 낙타부대를 앞세우고 싸우자고 제안을 한다. 그 이유는 말이 낙타의 냄새에 질겁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제안을 받아들여서 낙타부대와 기마부대가 서로 전투를 했는데, 리디아의 기마들이 낙타들과 싸울 의지가 없어서 결국 패배하게 되었고, 낙타들 덕분에 리디아의 왕 크로아소스를 포로로 잡는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를 보면 낙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호주가 가장 많은 낙타 보유국?

세계인들이 호주를 가장 이국적인 국가로 여기는 이유는 다른 대륙에는 없는 코알라, 캥거라, 웜벳 등의 토종야생동물들이 많아서다. 그런데 이런 토종 동물들의 위기에 큰 몫을 담당하는 동물이 있으니 바로 낙타이다. 최근 캥거루의 개체수는 확연히 줄었으나 낙타의 개체수는 상당히 늘어나 지금 호주는 100만 마리 이상의 낙타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낙타들의 상당수가 원래는 인도에서 왔는데 몇 년간 2만 마리의 낙타가 들어왔다가, 지금 100만 마리 이상으로 불어난 것이다. 놀라운 번식력이다.

“낙타는 호주대륙의 정복자입니다. 포식동물인 데다가 천적도 없고 웬만한 풍토병에도 끄떡없어요. 또 물이 부족한 사막에서 생존하는 능력이 뛰어나 호주 내륙에서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지요” - 호주 동물학자 글렌 에드워즈


결국 호주는 토종야생동물의 보호와 목초지 파괴로 인한 사막화 방지를 위해 낙타를 총으로 사살하는 작전을 선포하기도 하였다. 호주나 전세계의 동물보호기관의 반대는 거셌다. 호주 사람들은 낙타를 ‘일하는 말(WorkHorse)’라고 부른다.
그런데 호주정부가 대안으로 삼은 것이 바로 ‘낙타의 역수출’이다. 무슬림들이 낙타고기를 먹는 것을 착안해 이들 국가로 낙타고기를 수출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낙타를 잡아서 수출하고 그것으로 외화도 벌고 호주는 1석2조인 것이다.


식용 낙타 고기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는 낙타야말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매우 귀중한 동물이었다. 타고 다니는 수송용만 아니라 양과 염소처럼 젖을 제공하기도 하고, 고기도 제공한다. 낙타의 털과 가죽, 뼈는 옷과 카페트, 가방, 장신구 등 다양한 것을 만드는데 사용되며, 어떤 것은 낙타 뼈로 만든 피리도 보았다. 낙타의 오줌을 가지고 샴프로 대용하기도 한다.

돼지고기를 금한 이슬람도 낙타고기는 허용하였다. 사막 여행자들이 조난을 당하면 사막한복판에서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때 비상식량으로 낙타를 잡아서 먹기도 하였다고 한다. 나는 요르단에 가서 낙타 고기를 파는 정육점을 몇군데 보았고, 거기서 낙타 머리를 구경하고 질겁하기도 하였다. 낙타 고기로 만든 꼬치나 햄버거, 그리고 스테이크도 있는데 소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처럼 육질이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질긴 게 특징이다. 그런데 낙타고기는 일단 비싸다. 소고기 꽃등심보다 몇배는 비싸지만 체험을 한번 해보는 것도 좋다.


문학속의 낙타
역사와 문학이 같이 가야 인문학의 꽃이 핀다.
낙타의 세계사를 다루면서 문학도 같이 보아야 한다.
평소 시집을 즐겨보는 나로서는 약 300여권의 시집이 있다. 그 시집을 다 본 것은 아니지만 금새 기억해낸다.


제일 유명한 것은 아마도 [신경림 시인의 낙타]라는 시가 있다.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 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앞에서 설명했듯이 낙타는 사막이라는 척박하고 극한의 땅을 누비며 오직 앞만 보고 걷는 충직한 성품의 소유자이다. 그 낙타처럼 평생을 가난과 청렴함 속에서 뚜벅뚜벅 걸어온 시인이 바로 신경림 시인이다. 그는 죽어서 다시 태어나도 자신같은 사람을 태우고 가는 낙타로 태어나겠다고 말한다. 그의 시에서 인생의 달관과 격조를 느낀다.


자동차와 낙타
작년에 최승자 시인의 시를 본 적이 있다.

어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오늘도 그치지 않고
비 맞는 한 무리의 낙타들이
젖은 산 하나를 끌고 나아가고 있다
빵이 넘치면 삶이 무의미해지고
그래서 빵 없는 집에 빵이나 갖다 주자고
비 맞는 한 무리의 낙타들이
젖은 산 하나를 끌고 나아가고 있다
- 최승자 作

비가 오는 날 자동차를 보면 마치 비에 젖은 낙타와 같다. 저 바퀴달린 낙타들은 어디로 가는 중일까, 집으로 가는 중일까, 아니면 돈을 벌러 가는 중일까, 아니면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가는 중일까, 사람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간직한 채 각기 자신들의 길을 가거나, 자신들의 목적지를 향하여 간다. 그것은 마치 낙타의 행렬과 비슷한가보다. 그런 비오는 날의 자동차가 낙타처럼 보인 것은 시인의 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은 광야와 같다. 그 광야에서 우리는 낙타가 아닌 자동차를 끌지만, 그 자동차는 낙타의 대용이고, 사회철학적인 이동수단의 연장이다. 우리는 이 광야같은 세상을 낙타처럼 통과하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김진경 시인의 詩 ‘낙타’를 읽어보자.
이 시가 이상하게 길다. 그렇지만 쉽게 잘 익힌다.
지금 낙타를 몰고 사막을 건너는 기분으로 읽어보자.
뭔가 가슴속에 뭉클하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1.
새벽이 가까이 오고 있다거나
그런 상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겠네
오히려 우리 앞에 펼쳐진
끝없는 사막을 묵묵히 가리키겠네.
섣부른 위로의 말은 하지 않겠네.
오히려 옛 문명의 폐허처럼
모래 구릉의 여기저기에
앙상히 남은 짐승의 유골을 보여주겠네.
때때로 만나는 오아시스를 얘기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사막 건너의 푸른 들판을
이야기하진 않으리.
자네가 마지막 절망의 벼랑에서
스스로 등에 거대한 육봉을 만들어 일어설 때까지
묵묵히 자네가 절망하는 사막을 가리키겠네
낙타는 사막을 떠나지 않는다네.
사막이 푸른 벌판으로 바뀔 때 까지는
거대한 육봉 안에 푸른 벌판을 감추고
건조한 표정으로 사막을 걷는다네.
사막 근처의 들판을 성급히 찾는 자들은
사막을 사막으로 버리고 떠나는 자.
이제 자네 속의 사막을 거두어 내고
거대한 육봉을 만들어 일어서게나
자네가 고개 숙인 낙타의 겸손을 배운다면
비로소 들릴걸세
여기저기 자네의 곁을 걷고 있는 낙타의 방울소리.
자네가 꿈도 꿀 줄 모른다고 단념한
낙타의 육봉 깊숙이 푸른 벌판으로부터 울려나와
모래에 뒤섞이는 낙타의 방울소리
- 김 진경, '낙타'
2.
앙가주망.
이 말은 사람들을 둘로 찢어 놓았다.
검찰이 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꼬리를 흔들던 것들은 침대 밖으로 나가라고 하자 이빨을 드러낸다.
- 원래 개들이 지내야 할 곳은 마당이다.
그의 앞에는 건너가야 할 사막이 있다.
울부짖는 가족을 뒤로 하고 그는 길을 나서야한다.
유목민은 이렇게 읊었다.
'국경 근처 황야까지 물을 찾아왔다 / 고향은 강물이 바닥나고 초목이 시들어 모래가 밀려온다 / 가축에게 먹일 풀은 사라졌다 / 우리는 완전히 변해버린 고향을 뒤로 할 수 밖에 없었다 / 동쪽 하늘이 밝아온다 / 뒤돌아보면 산기슭에 고향이 보인다 / 안녕 고향이여 우리는 이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 사막에는
방황하는 민머리 늙은 남자의 유령과
최악최악하고 조잘거리는 산발한 여자의 괴성까지
방울소리에 섞여 들린다.
옛 유행가처럼 저 푸른 초원위에 그가 도달할 수 있을지,
유골더미위에 자신의 흔적을 더할지
나 또한 나서야 할 길이기에 궁금할 뿐이다.
- 개들은 곧 꼬리를 말게 될 것이다

3.
하나 지금 우리에게
낙타를 다독이며 사막을 건너갈
밝은 눈은 있는 것일까.
그냥 설명이 필요없는 시이다.
(실크로드 문명의 흥망성쇄에 나온 시)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삭막하듯이
초원에 말이 없으면 삭막하듯이
사막에 낙타가 없으면 이 또한 삭막하다.
낙타만큼 사막을 잘 상징할 수 있는 동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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