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광도 읽지 않는 책을 읽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마르셀 프루스트
예전에 어떤 사람이 내게 질문을 했습니다.
“만약에 원장님이 감방에 간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멀쩡한 사람들도 어느 날 무엇인가에 휘말리면 원치 않게 감방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감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미리 고민해 둔 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나는 고민을 잠시 하다가 “오랫동안 두고 두고 책을 읽겠습니다. 감방에서 글을 쓰는 것은 너무나 치열한 것이어서 너무 힘들고 그저 책을 읽겠습니다. 각 나라별로 10권의 위대한 책들을 골라서 읽겠습니다.”
그런데 두고 두고 읽을 책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의 사랑하는 책 - 바로 바이블’이었습니다. 아니면 ‘탈무드’를 읽는 것입니다. 위대한 그리스 고전들도 읽고, 중국의 논어와 도덕경, 삼국지와 초한지, 러시아의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책들, 독일의 괴테의 책 파우스트, 하이네의 시집들, 헤르만 헤세의 소설들, 영국의 토마스 하디의 ‘테스’ 그리고 프랑스의 루소의 책 에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러블, 그리고 로버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입니다.
그 외에 읽어야 할 책들은 많겠지요. 그런데 로버트 프루스트의 책을 읽겠다는 생각이 들은 것은 그의 책이 시간을 떼우기 쉬워서가 아닙니다. 그의 책은 7권 분량의 저명한 소설입니다. 그의 7편의 책은 무려 14년간 쓴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책을 읽겠다는 것은 더 이상 ‘무너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아직 감방이라는 것의 언저리도 가 본적이 없습니다. 감방이라는 것은 그저 갈 곳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 자신이 이 세상의 거대한 감방에 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은 사람들을 속박하고 그리고 ‘잘 살게’보다는 ‘못 살게’ 만들려고 합니다.
살면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책을 읽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나도 그의 저작의 한 권만을 읽어본 사람입니다. 대신에 그의 책들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책을 드디어 오늘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평전이나 평론집이 2-3권이 마침 제 서재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의 책을 읽는 것을 ‘시간 낭비’로 여기고, ‘비생산적’으로 여길 것입니다. 그렇다고 나는 그들의 생각에 절대 동조하지 않습니다.
위대한 사람의 책을 위대하지 않은 사람이 읽을 리가 없습니다. ‘위대한 사람은 위대한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법’입니다.
제 2차 대전에 소련군에게 잡힌 폴란드 장교들은 독일에 협조하였다고 죽음의 수용소에서 온갖 고초들을 당하여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두껍고 장엄한 [잃어버린 시간들]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포로 중에 프루스트의 비평가인 [차프스키]는 그 책을 비평하고 강의하였습니다. 처음에 4000여명이었던 전쟁포로가 나중에는 400명 그리고 나중에는 79명까지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수중에는 여전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있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전쟁을 마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나중에 책을 냈습니다. 그 책의 이름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 책을 반드시 권합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아도 좋은데, 출판문화진흥을 위해서도 반드시 구비하여야 합니다. 구비하여야 읽을 수 있습니다. 빌려온 책으로 그저 무엇인가 '읽었구나' 시늉을 내보아야 별 것 없습니다.
2차 대전 종전후에 차프스키는 프랑스에 정착하여 폴란드 이민자들을 위한 예술 비평가로 활동합니다. 그는 죽음의 포로수용서에서 있던 시간이 “내 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라고 하였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은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안중근 의사가 생각납니다.
사형을 앞두고 사형집행관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가?” 라고 하였을 때 “집행관님, 내게 5분만 주십시오.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집행관은 안중근 의사에서 최후의 5분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독서를 마지막 소원으로 삼았던 안의사는 정말 나에게 가장 훌륭한 독서의 의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책을 읽고, 문학을 해야 합니다.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은 사실 불행과 같이 오는 법입니다. 불행한 순간에도 행복의 한 줄을 읽었던 사람들,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지냈던 사람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습니다.
나도 죽기 전까지 책 읽다가 죽고 싶습니다.
나도 숨이 멈추는 그 시간까지 책 읽다가 가고 싶습니다.
[마음] [도련님]을 쓴 일본의 문호 [나쓰메 소세키]는
"나는 죽을 때까지 진보하고 싶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말을 그대로 실천하며 진보하다가 떠났습니다.
도쿄에 긴자 거리 근처에는 [나쓰메 소세키] 거리가 있습니다.
이 거리를 들리면서 일본인들이 얼마나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나 좋은 황금의 시간과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책 안 읽고 그저 돈벌이나 향락에 취해 있다가 떠나 버릴 인생을 살아서 무엇에 쓰겠습니까?
요즘처럼 책읽고 공부하기 좋은 시절은 없습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다소 치열해져야 합니다. 치열하지 않으면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지금 [무너져 버리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지금 대오각성하고 다시 공부하고, 학습하고, 읽고, 토론하고, 글쓰고, 노력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몇해전 시리아 전쟁시 에 [다라야의 폐허 지하 도서관]이 생각납니다. 많은 시리아의 청년들이 도서관에 모여서 버려진 책들을 모아 읽고 토론하고 서로 지적인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상당수가 대학을 다니거나 다녔던 사람들입니다. 폴란드의 장교들도 모두 ‘지성인 계층’이었습니다. 대학생들이 책을 읽는 나라, 청년들이 책을 가까이 하는 나라는 필경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청년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정권 탓이기도 하고, 시대 탓이기도 하고, 부모 탓이거나 기성세대의 탓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탓만 하다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지적으로 저항하는 청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청년의 정신은 불평(不平)이 아니라 저항(抵抗)입니다.
독서의 정신은 불의(不義)가 아니라 정의(正義)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언제 작심(作心)하고 읽으십시오. 아직도 내 주변에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위대한 이 소설집을 읽는 이들을 못보았습니다. 그들은 원망하기보다 그저 내가 읽고, 내 스스로 위안을 삼고, 내 스스로 지성을 경작하겠습니다. 벌써 지천명을 넘긴 사람이지만 아직도 내 속에는 [문학청년]의 기상이 남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클라식을 읽는 사람을 그리스어로 [클라시쿠스]라고 합니다.
평생 [클라시쿠스 Classicus]로 남고 싶은 일인 중에 하나입니다.
내일은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라는 책을 사보렵니다.
미리 주문을 하고 받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삼삼합니다.
심심하면 책을 읽으십시오.
나는 심심하면 공부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유학시절 참 심심했습니다. 그런데 책들이 있었고,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심심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늘 기도해야 살아갈 수 있는 곳 이스라엘은
정말로 나에게 평생의 좋은 기회였고, 지금도 이스라엘로 인하여서 감사가 됩니다. 미국이나 일본으로 가지 않고 이상한 나라?로 가서 공부하고 지냈던 시절은 그저 감사한 추억만이 남습니다. 책을 읽는 것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게 된 것이 그저 감사할 일입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내일도 달립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해서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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