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토목, 90년대 전자, 지금은 의대… 시대별 쏠림 현상의 원인은
[방현철의 경제로 세상 읽기]
경제학자 이수형 교수 “교육 정책도 통계 기반해야”
이수형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경제 데이터를 통계적 방법으로 분석해, 경제와 사회의 갖가지 움직임 사이의 인과관계를 찾는 ‘응용 계량 경제학자’다. 원인과 결과가 얼마나 얽혀 있는지 밝혀내 각종 경제·사회 문제에 대한 효과적 해법도 찾는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자녀 교육이나 교육 정책과 관련된 여러 문제도 데이터 분석으로 효율적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증거에 기반한 정책 결정(EBPM, Evidence-based Policy Making)’ 모델이 이 교수가 생각하는 유력한 방법 중 하나다. 이 교수는 2021년 구글이 운영하는 세계 최대 인공지능(AI) 경진 대회인 ‘캐글’ 데이터 분석 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기도 했는데, 당시 대회 주제가 코로나 때 미국의 AI 교육 서비스 이용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지난 14일 이 교수를 만나 경제학자가 바라보는 교육에 대해 들어봤다.
- 경제학자가 교육에 관심인 이유는.
“교육은 경제 활동과 분리되지 않는다. 교육의 질은 개인과 가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소득, 부의 대물림뿐 아니라 결혼, 건강, 수명에도 굉장히 많이 관련돼 있다. 기업은 교육 수준에 따라 직원이 얼마나 생산적이고 생산 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지가 관심이다. 크게 보면 국가 경제에도 영향을 준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어떤 교육 정책이 학생들의 성적, 취업 등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등을 심도 있게 연구해 왔다. 경제학자들은 데이터 기반으로 교육이 임금, 부, 건강 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연구하다 보니, 점차 교육이 인과관계 측면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인과관계에 도움이 된다면 교육 수준을 어떤 식으로 바꿀 수 있는지 이런 방면에서 주로 보고 있다.”
◇ 美 교육부엔 최고 데이터 책임자
- 교육에서 데이터 분석은 얼마나 중요해졌나.
“미국 사례를 들어 보겠다. 미국 교육부는 작년 6월 수석 이코노미스트 자리를 신설하고 경제학 박사인 콜롬비아대 교육대학원 조던 마쓰다이라 교수를 뽑았다. 그런데 수석 이코노미스트일뿐 아니라 최고 데이터 책임자(Chief Data Officer)도 겸임하고 있다. 미국이 이런 자리를 신설한 건 의회에서 ‘증거에 기반한 정책 결정(EBPM)’을 해야 한다는 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법은 트럼프 행정부 때 의회를 통과했다. 객관적 통계에 기초해 정책을 만들고 평가하고, 좋은 정책은 확대 개선하고 효과 없는 정책은 폐지하거나 보완한다는 개념이다.”
- 증거 기반 정책은 어떤 식인지.
“예컨대 ‘교사 연수를 하면 학생들에게 좋다’는 정책 가설을 세웠다 하자. 그런데 가설만 갖고 논의하는 건 아무런 현실적 의미가 없다. 좋은 내용으로 교사 연수를 해도 학교 현장에서 이용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내용으로 연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가설에 기반해 무작정 정책을 펼 게 아니라 시범 사업으로 교사 연수와 학생 성적 등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비슷한 상황에서 사전 연구한 내용을 찾고 해서 증거를 모아서 판단하자는 것이다. 거대 담론이나 가설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해서 정책을 결정하자는 것이다.”
- 한국 교육 정책은 데이터에 기반했나.
“19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도입할 때 학력고사보다 사고력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런데 이후 학생들의 사고력이 증진됐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없다. 또 2002년부터 수시 입시를 확대하면서 입시 전형 다양화를 했는데, 당시 정책 목표 중 하나가 불필요한 재수나 삼수 등을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후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재수나 삼수 등의 비율이 오히려 늘었다. 정책을 도입했을 때 원했던 목표가 달성됐는지, 반드시 데이터를 갖고 평가해야 한다.”
◇ 의대 쏠림은 인센티브 문제
- 최근 ‘의대 쏠림’ 현상이 강한데.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어느 시대던 경제적 보상이 나오는 학과에 높은 성적을 얻은 사람들이 진학해 왔다. 1960~1970년대엔 화학공학, 토목, 1980~1990년대에는 전기전자, 기계 등의 입시 성적이 높았다. 지금은 의대인 것이다. 의대 쏠림 현상 자체는 개인으로선 문제가 아니다. 다만, 특정한 사람이 의사가 되는 것보다 프로그래머 등 다른 직종에서 일하는 게 한국에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는데도 의대 쏠림 때문에 의대를 선택했다면 한국 사회 전체로는 큰 문제다. 우리 사회의 인센티브 구조가 잘못됐는지 심각하게 논의해봐야 한다.”
- 인센티브를 바꾸는 방법은.
“경제 이론에서 제시할 수 있는 쏠림에 대한 해법은 다음과 같은 게 있겠다. 첫째, 의사가 한국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에 비해 보수가 적절한지 냉철하게 평가해야 한다. 의대 안에서도 생명과 직결되는 소아과, 산부인과, 응급실 등의 보수가 상대적으로 미용, 성형 등보다 적기 때문에 기피 현상이 심각하다고 들었다. 기여하는 가치대로 보수가 제대로 책정되지 않은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전공에 따른 보수에 대한 정보 전달이 잘 안 돼서 쏠림이 생겼다면 정보를 잘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에서 보면 자수성가한 사람은 대부분 의사가 아니다. 의사는 고소득 임금 노동자가 되는 게 대부분이고, 백만장자는 결국 사업하는 사람들이다. 셋째, 대학도 고인 물처럼 박혀 있는 데서 벗어나 스스로 전공 간 인력 조정을 해야 한다. 국가 경제적으로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해내고 학생들이 선호하는 전공은 확대해야 한다.”
- 해외에선 전공별 보수를 어떻게 공개하나.
“미국은 뉴욕연방준비은행이 미국 대학에 개설된 총 73학부 전공별로 실업률, 초임, 경력직 임금 등 상세한 정보를 수집해서 공개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미국에서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 학부 전공 열 가지 중 거의 모든 학과가 공학이다. 다만 의대는 학부 전공이 없다. 영국은 교육부가 학부 전공을 29가지로 분류하고, 특정 학부 전공을 선택하면 평생 얼마만큼 순수익을 얻을 수 있는 지 공개한다. 순수익이란 해당 학부를 졸업하고 은퇴할 때까지 얻을 수 있는 임금 총액에서 대학 비용과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받을 수 있는 예상 임금 총액을 뺀 금액이다. 남성은 경제학 전공자가 순수익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의학, 법학, 수학, 경영학 순이었다. 여성은 의학이 많았다.”
◇입시가 아닌 자녀 직업이 목표
- 교육을 투자 수익 극대화로 접근해도 되나.
“교육은 투입 후 산출까지 시간 간격이 워낙 길어 투자 수익률을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공포 마케팅이 팽배한 사교육 시장을 고려할 때 자녀 교육도 냉철하게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비용과 편익을 분석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다만, 단순히 입시 비용과 대입 결과만 보면 안 된다. 자녀들이 다 커서 사회인으로 얼마나 수월하게 직장을 잡을 수 있을지, 사회 활동을 할 수 있을지,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지를 가늠해보면 자녀 교육에 쏟아 붓는 돈의 효과를 따질 수 있을 것이다.”
- 사교육 대신 AI로 맞춤형으로 하는 공교육 가능할까.
“10여 년 전 학생들에게 컴퓨터와 태블릿을 주며 교육하는 게 유행이었다. 그런데 당시를 다룬 연구를 보면, 컴퓨터 기자재를 주거나 소프트웨어를 줬다고 해서 학생들의 성과가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교사들이 학생들을 어떻게 모니터하는지에 따라 성과가 다르게 나왔다. AI를 활용한 공교육이란 아이디어는 참신하지만, 성과가 있다는 증거가 아직은 없는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인적 자본엔 건강한 몸도 기여
- 교육과 경제성장의 관계는.
“데이터로 보면, 교육 때문에 한국이 성장했다고 보기는 좀 어렵다. 물론 교육과 성장 사이에 상관관계는 존재한다. 그런데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관계가 있느냐는 다른 얘기다. 최근 경제학 논문들은 교육이 성장에 중요한 정도가 알려진 것보다 높지 않다는 게 일반적 결론이다. 그래서 성장을 위해 교육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 인적 자본은 성장과 관계가 있지 않은가.
“인적 자본을 늘리면 생산은 늘어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학교 교육으로 인적 자본이 반드시 좋아지는 건 아니란 것이다. 예컨대 인적 자본의 질이 높아진다는 건 사람들이 건강하고, 꼼꼼하게 일 처리를 잘하고, 근면 성실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학에 간다고 반드시 몸이 튼튼해지고, 근면 성실해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 경제학자로서 한국 교육은 어떻게 가야 한다고 보나.
“이론이나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서 철저하게 증거에 기반해서 교육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이미 얽힐 대로 얽힌 복잡한 이해관계를 인정하고, 작더라도 현실적으로 도입할 수 있고 추진할 수 있는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 단순히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게 아니라 건강, 책임감, 의사 소통, 리더십 등 아이들이 사회인으로 갖춰야 할 기본 능력과 경제 활동 능력을 갖춰 인적 자본력을 높이는 데 교육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에게나 기업에, 또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수형 교수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42회)에 합격해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후 경제학자로 변신했다. 2008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후 메릴랜드주립대 교수를 지냈다. 2016년 귀국해 서강대 교수를 지내다, 2020년 서울대 국제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교육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최근 대중 교육서인 ‘대한민국의 학부모님께’란 책을 내기도 했다.
▲계량 경제학
통계학적인 방법을 이용해 경제 현상을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경제학의 한 분야이다.
▲인적자본(human capital)
사람이 일자리에서 얼마만큼 능력을 발휘하는지 측정하는 개념으로 인간의 지식, 기술, 경험, 창의성 등의 능력을 경제적 가치로 따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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