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인문학의 종말을 맞이한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세계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대학이 지성의 대격변을 맞이한 것인지 놀랐다.
인문학하면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을 중심으로 한 학문이다. 줄여서 문사철이라고 한다. 여기에 법학이나 음악 미술학등이 포함된다. 새롭게 종교가 인문학과 융합하여 종교인문학, 기독교인문학, 유교인문학등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인문학 열풍이 불어 온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열풍이 금새 시들줄 알았다.
사실상 금새 유행처럼 시들어 버렸다.
나이든 5-60대 층들이 선호하는 분야로 전락했다.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이 생기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문화나 교양(liberal arts)로 관점이 넓어진다. 그런데 막상 인문학을 하려니 그리 쉽지 않다.
기본 독서도 안하는 사람들에게 인문학은 정말 사치다. 자신의 클라스를 높이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그리 쉽게 접근하고, 얻어지는 것이 인문학이 아니다.
그렇게 얻어질 것 같으면 영화관에 가서 팝콘을 사 먹는 것이 더 낫다.
젊은이들은 어렵고 고리타분한 인문학 서적에 관심조차도 기울이지 않는다.
다같이 넓고 편한 길을 가려는 군중심리에 젖어 있다. 인문학은 좁고 거친 길을 가는 분야이다. 젊은이들에게 고전이라는 것, 특히 노벨상을 받은 문학고전들은 엄두도차 내지를 못한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그러한 것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한국인에게 공부는 입시공부와 입사공부가 거의 주종을 차지한다.
인문학 공부는 아예 기대도 할 수 없다. 이를 기대하는 것은 어찌보면 이상론이다.
하버드 생들도 읽지 않는 인문학 서적인데? 한국 학생들은 물어보나 마나다.
한국학생들이 인문학공부를 외면하게 되면 그것은 마치 영혼이 없는 육신만 남는 사람처럼 전락할 것이다. 내 생각이 [지나친 일반화 rash generalization] 일수도 있다.
자카리아 교수는,
"인문학공부를 하면 뭐가 좋죠?" 라고 질문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그게 우리에게 직업을 얻고, 돈을 벌고, 인생을 즐기는데 무슨 도움이 되죠"
라고 반문을 거는 하버드생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질문들이 참 현실적인 질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질문에는 고급직장에 들어가서 편하게 호의호식하며 살고 싶은 욕망에 기초한 바램이다. 이러한 질문에는 큰성공을 바라기보다는 작은 성공에 치우치고 싶어하는 소시민적인 욕망도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제목에 속을 뻔하였다.
책을 다시 보니, 그게 아니었다. 하버드 생들은 인문학을 않하는게 아니었다.
인문학과 다른 학문을 융합하고 연계하는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바로 [효과적인 글쓰기]이다. 그리고 [탁월한 말하기]이다.
미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최고의 자본주의 국가이다.
이 나라에서는 기술과 예술의 융합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다.
한국도 미국의 자본주의를 따라간다.
그런데 기술은 기술대로 예술은 예술대로 따로 노는 나라이다.
이런 나라에서 인문학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인문학을 그 자체로 공부하는 것은 사실상 지속가능성이 별로 없다.
한국의 경우 인문학이 너무 학술적으로 치우쳐져 있다.
인문학 강사들의 특징은, 거의다가 박사이며, 이들은 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오랫동안 인문학서적을 파고들어간 드릴러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반적으로 인문학에 접근하려는 사람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난감해 한다. 듣는이로 하여금 학자가 되라는 것인지, 아니면 죽도록 인문학서를 읽으라는 것인지... 그렇게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인문학은 사실상 인물에 접근해야 한다. 인문학은 인물학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제시하는 인문학 부흥은
실학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실학자들은 한국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과의 융합을 시도한 인물들이다.
그중에 나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말을 인용하여 갈무리하고자 한다.
[진정한 인문인이라면 반드시 책을 읽기만 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글을 써야 한다.]
지금껏 나도 수없는 많은 책들을 읽었다. 취미독서로든, 생존독서로든 여러가지 형태로 독서에 집중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독서는 어찌보면 망한 독서가 된다.
반드시 글을 쓰고, 말로 표현함으로서 살려내야 한다. 읽기만 하면 쓰지 않거나, 표현하지 않는다면 사장되어 버린다.
요즘은 여러 군데에 글을 쓰면서, 지금껏 읽어왔던 책들의 도움을 현저히 받고 있다. 그리고 틈틈히 모아온 신문스크랩의 도움을 크게 받고 있다. 그동안 읽은 책들이 그냥 쌓여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서재의 이름은 [무이재]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서재라는 뜻이다. 요즘에는 sns의 발달로 인하여, 더 많은 좋은 책들을 읽을 기회가 많아서 너무 좋다. 부정적으로 보면 책을 안읽고, 그저 휴대폰에만 빠져 있을 것 같은데, 나의 경우 반대로 가고 있다.
"이래서 책을 읽으라고 했구나" 라는 생각이 크게 된다.
앞으로 나는 더 많은 책들을 읽으며, 평생도록 진보하고자 한다.
나는 죽기까지 진보하고 싶다.
글쓰기와 강연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지식과 지혜를 잘 전달하고 싶다.
오늘 자카리아의 책은 두가지 방향에서 역설을 하고 있다.
인문학을 읽지 않는 학생들과 인문학을 더욱 빠져드는 학생들
자카리아는 이전보다는 덜 하지만 그래도 하버드생들은 더욱 인문학에 열중한다고 한다.
지식은 이제 서서히 클릭지식으로 가겠지만
지성은 여전히 지식을 이용할 줄 아는 힘이기에
틈틈히 지식을 함양하고, 이를 잘 이용하는 지혜를 강구해야 하겠다.
요즘처럼 공부하고, 책보기 좋은 시대는 없다.
다만 쉽게 얻으려는 얄팍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절대 얄팍한 생각이나 관념은 인문고전을 얻고 향유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문고전들의 특징은 코드가 숨어 있고, 풍부한 기반독서가 없으면 절대 얻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꾸준히 읽으면서, 공부하고 공유해야 한다.
한마디 : <<SKY 대학들도 더 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