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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와 코칭 & 멘토링

하버드대학교 도서관에 쓰인 두 글귀

by 코리안랍비 2022.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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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학교 도서관에 쓰인 두 글귀

 
  • 구글출처 이미지 - 하버드 엔칭 도서관


하버드대학교 도서관에 쓰인 두 글귀

오늘은 어떤 글을 쓸까 하다가 ‘도서관’이 궁금해졌습니다. 독서클럽의 여성대표가 쓴 글을 보다가 도서관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리해서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하버드대학교 도서관에 쓰인 두 글귀’라고 하였습니다. 제목과 어울리게 작성해야 하는데 워낙 ‘신변잡기’에 무능한 사람이어서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요리사의 솜씨로 글을 써봅니다.

도서관은 [모든 사람에게 늘 열려 있는 지식의 숲]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 도서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도서관이 과연 국가발전의 산실이고, 국민의 의식수준을 높여서 선진국으로 나아가게 하는 토대일까요? 도서관은 무조건 지식의 숲이어서 무조건 많이 짓고 보자는 식으로 짓는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여러 고민들과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도서관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을 글로 나타내봅니다.


2년 전에 내가 사는 지역에도 ‘중앙도서관’이 들어섰습니다. 메머드급의 도서관인데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은 갈 정도로 애정이 생겼습니다. 거기에서 ‘동양학’ 강좌를 하시는 분이 있어서 가는데, 책은 한권도 빌려 본적이 없습니다. 일단은 내 집이 거의 ‘도서관급’으로 해 놓은 이유도 있지만, 신생 도서관이라서 필요한 책이 아직은 없어서 그렇습니다. 도서관에는 많은 사람들이 출입을 합니다. 출입하는 사람들을 보면 학생들이 많은데 대부분 시험공부하러 온 것 같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도 많습니다. 아니면 피서-바캉스의 의미로 오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저건 도서관의 본래의 목적은 아니지만 그래도 도서관을 찾는 이들은 이런 훌륭한 공간이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모습은 보입니다. 다만 사색과 연구의 의미로서, 학술과 토론의 장으로서의 도서관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실망하지 않습니다. 대학도서관이나 국립도서관이 아닌 [동네 도서관]이 가지는 장점은 강합니다. 사람들이 적어도 도서관에 모여서 지낸다는 것은 그래도 ‘의식’이 있다는 반증입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습니다.

 


어느 철학자가 그랬습니다. "그 나라를 보려면 그 나라의 대학을 가보라" 대학을 가보면 그 나라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명문대학을 가보면 "왜 그 대학이 명문인지 알 것 같다" 라는 고백을 합니다. 그 명문대학의 산실은 바로 강의실이 아닌 도서관에 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 투자'에 열과 성을 다합니다.

예전에 북경대학교 도서관에 가 본적이 있습니다.
책이 얼마나 많은 지에 대해서는 그리 놀라지 않았는데, 중국의 모든 책은 거에 다 담아 놓은 것 같은 그 노력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말그대로 책을 잡아 먹을 것 같은 자세로 '탐독'하는 북경대 학생들의 모습에 이상한 '전투력'이 생겼습니다. 사실 북경대학은 미국의 지원하에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빚진 대학입니다. 도서관 시스템도 미국에서 왔습니다.

물론 유학시절에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도서관에도 장서를 보유한 곳입니다.
이곳에는 그 당시에 650만권이 있었는데, 지금은 800만권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 가보면 학생들이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읽습니다. 그런데 혼자 읽지 않습니다. 여럿이 모여서 책을 보면서 무엇인가 보물찾기 하는 모습으로 책을 봅니다.그리고 바닥에 앉아서 읽는 학생들도 있고, 엎드려서 책을 보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 도서관 - 시프리아 - 늘 독서하는 유대인들 -내가 유학한 학교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 구글출처 이미지

<필자가 머물렀던 히브리대학 도서관>

한국에서는 아마 그렇게 하면 쫓겨날 것입니다. 아니면 ‘이상한 사람’이라는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한국이 책읽는 문화가 제대로 자리를 잡히지 않은 것은 바로 ‘책을 읽을 자유’를 주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도서관의 중요성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는 그저 도서관을 ‘문화거점’이나 아니면 그저 ‘책만 빌려다가 읽는 곳’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도서관을 너무 얕잡아 보면 안됩니다. 도서관은 ‘역사를 창조하는 곳’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곳에서는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세상을 바꾸어 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깨어서 미래를 향하여 눈을 뜬 사람들이 있습니다. 책을 통해서 인생의 길을 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도서관들이 있습니다.
library라는 단어로 도서관을 묘사하지만, 유럽에 가보면 Bibliotheque, Bibliothek, Biblioteca, Biblotheek와 같은 어원을 가진답니다. 라이브러리는 라틴어고, 비블리오테크는 그리스어입니다. 서점 브랜드 중에 하나인 리브로/Libro가 바로 도서관이라는 어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비블리오테크는 원래 프랑스에서는 [책을 담는 상자] 라는 말입니다.

책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는 원래 이집트어 파피루스라는 갈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갈대를 레바논에서 수입을 했습니다. Papyrus는 당시 페니키아(현재의 레바논)이라는 도시 ‘비블로스 Byblos'라는 지역의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어원인 바이블 BIBLE이 여기서 온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성경이라는 것은 사실 그냥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이 보통 책이 아닙니다. 그래서 무식한 사람도 성경만 읽어도 유식해지고, 지혜로와집니다. 고대의 지혜가 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며, 인간의 길인 도덕과 윤리, 정의와 실천이 담겨 있기 때문이며, 훌륭하고 아름다운 문체가 담겨 있어서 감성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키우는 원동력이 됩니다. 성경읽기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자발적으로 읽으십시오. 교양으로 읽어도 좋고, 변화의 능력을 따라서 읽어도 좋습니다.

상자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는 ‘테크’라고 합니다. 현재 이것은 어떤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의 개념입니다. 은행에는 돈을 보관합니다. 사물함에는 개인의 물품을 보관합니다. 도서관에는 책을 보관합니다. 책은 돈도 되고, 귀중한 물품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도서관들이 존재했습니다.
고려의 수서원(修書院), 보문각(補文閣), 조선의 집현전(集賢殿), 홍문관(弘文館), 규장각(奎章閣)등이 있습니다. 한국은 자고로 문자의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궁을 중심으로 하여서 많은 서고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책 읽고 책을 쓰기를 즐겨하는 문인들과 문사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서울대학교 도서관이 약 600만권을 갖춘 도서관이라고 합니다. 아마 책이 제일 많겠죠. 그 뒤로 경북대학교, 고려대, 연세대, 경희대 순으로 알고 있습니다. 책이 많은 대학들이 그래도 명문대학이라는 간판을 걸 정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도서관 이야기를 하다가 재미있는 사실도 발견합니다.
인문학을 오래 오래 하다보면 결국 ‘책의 집’을 우리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고대 그리스나 여러 문명에서는 ‘책의 집’을 짓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집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히브리 민족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베이트 세페르’라고 합니다. 이것이 현대적으로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학교는 책의 집입니다. 물론 고대 이집트 테베에도 ‘책의 집’이 있었습니다. 그리스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도 ‘개인 라이브러리’가 있었습니다. [개인서재]를 갖추었다는 것은 상당한 부도 필요하고, 장서를 모으려면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도서관하면 알렉산더 3세가 세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죠. 당대 각종 학문의 학자들을 모아 연구하던 일종의 학문의 전당이었습니다. 이 도서관이 지어진 것은 바로 알렉산더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유가 있었습니다. 이 도서관은 그 당시로서는 최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책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70만권의 도서가 존재했습니다. 이 도서관이 제대로 활용되고 살아있었다면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갔을 것입니다. 이집트는 이 도서관을 다시 재건하였습니다.

중세에 많은 기독교 재단의 도서관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바로 서양이 세계를 주도하는 역할을 하게 한 곳입니다. 책의 집이 세계를 지배하는 곳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미국에서는 벤자민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이 [도서관법]까지 만들어서 책 읽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프랭클린은 피뢰침만 만든게 아니라,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가난하지만 책읽기를 즐겨하고, 학력이 부족하지만 책으로 지성을 쌓아 올린 프랭클린은 미국 건국의 3대 인물이 됩니다. 책 읽기는 사람을 위대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자신을 모범으로 하여 도서관 운동을 한 것입니다. [책을 읽는 민족은 위대해지고 강성해진다]라는 것이 프랭클린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생각을 실천에 옮긴 사람이 하버드 대학을 세운 하버드 목사였습니다.

이제 하버드로 돌아왔습니다. 농담이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새는 ‘하버드’입니다.이 글을 쓰는 필자도 하버드 대학에 가고 싶었습니다. 물론 합격은 하지 못했지만...하버드 대학의 도서관에 쓰인 두 경구를 쓸려고 했는데 여기까지 돌아왔습니다.약 30개 정도의 문구가 있는데, 필자가 단 2개 정도만 골랐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깊은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눈이 감기는가, 그럼 미래를 향한 눈도 감긴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거나 현실에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찌보면 비겁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릅니다. 남의 잘못을 보고도 눈을 감는 것은 비겁한 행위입니다. 정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장래의 희망도 말살하는 행위입니다. 잠긴 눈을 떠야 합니다. 그리고 깨어 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민주주의도 바로 이런 눈을 뜨고 깨어 있는 시민들이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도서관은 바로 민주주의와 관련이 깊습니다.

하버드 도서관에 왜 저런 문구가 있을까요? 도서관은 으레 [책 읽기만을 강조하는 곳]인데 말입니다. 도서관은 당연히 [책 읽기가 강조되고 강요되어야 할 곳]입니다. 그래서 저런 문구가 나온지 모릅니다. 아니면 책을 읽다가 눈이 감기는 일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책만 보면 잠을 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제 책을 보면 잠이 잘 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책을 보다가 잠이 오면 미래를 향한 눈도 감긴다 라는 것을 유추할 수도 있습니다. 명언은 다각도로 해석이 되니까요.
우리가 현실을 외면하면 미래를 향한 희망도 외면됩니다.

미래를 향한 희망을 필자는 [책]에서 찾습니다.
고대인들도 그러하였는데 현대인들은 더욱 [책]에서 미래를 향한 희망을 찾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선정한 명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입니다.
중국 도연명(陶淵明)의 글을 보면 [한창 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하루가 지나면 그 새벽은 다시 오지 않는다] 라고 합니다. 지금 이 시간, 이 순간은 다시없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정현종 시인의 시를 보다가 감탄한 구절이 있습니다.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 꽃봉오리인 것을...”

이와 비슷한 경구가 바로 하버드 대학의 도서관에 있습니다.
무시무시한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는데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여기서 적은 누구일까요? 적을 상대하면서 책보는 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을 보면 ‘적을 앞에 두고 책을 읽고 글을 쓴 위인’입니다. 그는 한산섬 달 밝은 밤에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을 하면서 서책을 가까이 한 분입니다. 이를 보면 그가 얼마나 긴장과 스트레스가 많았는지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서책’이나 ‘병법서’를 보면서 시름을 달랬으니 명장은 명장입니다.

나는 독서예찬론자입니다.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선진국 백성들이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물론 이것도 문화의 산물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독서하는 국민은 무섭습니다. 우리는 이를 가볍게 보고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책보면 떡이 나오니, 밥이 나오니” 하면서 으름장을 놓습니다.그러나 겨우 ‘떡이나 밥’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독서는 사실 가장 강력한 무기이며, 전쟁준비이며, 나라의 운명과 미래가 거기에 달린 일’입니다.

예전에 작고하신 앙드레 김이 있습니다. 그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면 학력이 좋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학력이 별로 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나는 독서를 통해 시대정신을 잃고, 그 통찰력을 바탕으로 옷을 디자인 한다” 고 말했습니다. 옷을 만드는 분이 시대정신을 말한다는 것을 보면 앙드레 김 이라는 분은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독서의 힘’을 보여준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시대정신(Geit-zeist)을 말한 헤겔이 보입니다. 독서는 화려한 대학간판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라는 것이 보입니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인생의 기본을 다져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그 기본을 다진 아이는 장차 위대한 사람이 될 기틀을 갖추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 기본을 갖춘 사람은 적어도 그 자녀들과 손자들에게 위대성의 씨앗을 뿌려줍니다. 독서는 기본입니다. 그 기본에서 사업가가 되든, 시대의 리더요 정치가가 되든, 의사가 되고 혁명가가 되든 알아서 해야 합니다. 그것은 순전히 본인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책 읽기를 많이 하여도 실패할 수 있고, 책 읽기를 적게 하여도 성공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책 읽기를 많이 한 사람은 실패도 성공으로 보는 인문학적인 ‘여유’와 ‘품위’를 갖춥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와 여러분의 경쟁상대인 세계인들의 책장은 무섭게 무섭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버스안에서, 지하철안에서, 교실에서, 강의실에서, 서점에서, 각자의 집에서, 공원에서, 심지어 피서지에서도 적들의 책장은 무섭게 무섭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 넘어가는 소리는 이렇습니다. ‘획~획~획~’

하버드가 지금도 부동의 1위인 것은 바로 [도서관]에 있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이 참에 [동네 도서관]도 부지런히 다녀야 하겠어요. 그러다보면 [하버드 도서관]도 가보겠지요. 진보하고 싶으면 죽을 때까지 책을 보면 됩니다. 저와 당신은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런데 얼만큼 살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다만 누구보다 가치있게 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 서울대 -하버드 - 서로 따라갈 수 있나- 비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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