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 프로이트 그리고 정신분석 1부
20세기 사상사에서 커다란 획을 그은 혁명적 사건은 다름아닌 정신분석의 탄생일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 인류의 사고방식을 뿌리 채 흔들어 놓은 3대 사건은 러시아 혁명, 정신분석, 그리고 상대성 원리를 들 수 있다. 이 3대 사건의 핵심에는 바로 유태인들의 머리에서 비롯되었다. 칼 마르크스, 지크문트 프로이트,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그들이다.
마르크스주의는 한 때 지구를 양분할 정도로 막강한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프로이트는 철학, 사상, 예술, 교육, 의학, 종교분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가장 뛰어난 제자는 칼 융과 알프레드 아들러가 있다. 이들 3이 심리학의 3대 인물이다. 다음으로 아인슈타인은 절대주의 인식론을 타파하고 일거에 상대주의 인식론을 전파하였다. 아인슈타인은 단순한 물리학자가 아니었다. 나중 이스라엘에 히브리대와 텔아비브 대학을 세우는데 가장 크게 일조한 사람이 되었다.
오늘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대하여 논하면서 탈무드의 영향력에 대해서 거론하고 싶다. 물론 프로이트에 영향을 크게 주었던 인물로는 찰스 다윈, 괴테, 스피노자, 프리드리히 니이체, 헤겔, 세익스피어 등을 거론할 수 있지만 탈무드의 영향을 거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인슈타인 평전을 보면, 그가 어려서부터 탈무드 학습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이디시어와 더불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도 체계적으로 공부한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프로이트도 5살부터 탈무드를 학습하였던 인물이다. 유대인들의 현세적 삶을 성경에 기반하여 작성한 지혜의 책이 바로 탈무드이다. 성서가 내세를 강조하지만 탈무드는 현세를 강조한다.
그렇지만 필자가 여기서 거론하고 싶은 것은, 탈무드가 이렇게 훌륭하고 좋은 학습서요 인생 안내서요, 신앙의 지침이지만 전세계 각지로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곤혹스럽고 괴로운 책이 되었다. 탈무드는 많은 핍박을 받았으며, 유대인들은 반기독교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하여 어디를 가나 박해와 핍박을 많이 받았다. 그러면서 흩어진 나라에서 자신들의 정체성도 지켜야 하고, 그 나라의 문화와 풍습에도 적응해야 했다. 그런 가운데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도 강해지고, 생존을 기술이나 능력을 두루두루 갖추게 되었다. 이들을 통해서 생겨난 은행산업이나 금융산업을 필두로 하여, 회계와 재무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민족이 되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 - 아이덴티티에 대한 갈등이 가장 강한 민족이기도 하였다.
이 정체성 문제에 대해서는 ‘에릭 에릭슨’을 들 수 있다. 그는 유대인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유대인이 겪은 정체성 문제에 대해서 분석하고 집대성한 인물이 되었다. 유대인의 정체성에 대한 연구를 하려면 ‘에릭 에릭슨’의 저작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인물은 ‘프로이트’이다. 필자는 대학교 1학년 시절부터 [심리학개론]을 필두로 하여,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모세]. [정신분석입문]을 읽어 왔다. 지금도 나의 서재에는 프로이트에 대한 저작이 여러권이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뭐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고 헤매였던 기억만 난다.
프로이트는 결코 자신이 유대인임을 숨기거나 은폐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유대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무척이나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활동한 의사였지만, 스스로 유대인이라는 것을 크게 밝히지 않고 도리어 부끄러워했던 인물이다. 그는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천명하고 다녔다. 그는 기독교에도 속할 수 없었고, 유대교를 인정하기도 별로 달갑지 않은 이율배반적 상황에서 살았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해결책은 바로 ‘무신론자’로 사는 것이었다.
그의 지성수준은 다른 유대인들보다 몇 갑절이었지만 스스로 유대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지냈던 인물이었다.
그런 점에서 칼 마르크스가 기존의 사회질서와 기독교 문명을 거부하고 새로운 이상사회인 공산주의 communism을 주창한 것도 이런 정체성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프로이트는 창세기 1장 27절의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라는 대목을 거꾸로 뒤집어서 “인간은 자신의 형상대로 하나님을 창조했다” (프로이드, 1927)라고 선언할 정도로 무신론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물론 이 말은 철학자인 마르크스의 스승인 ‘포이에르바하’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이러한 선언은 당시로서는 충격을 안겨 준 말이었다.
그래서 도리어 다른 유대인 학술가들이나 예술가, 종교가들보다는 자신이 정체성 문제로 방황을 크게 겪지 않은 것 같다.
그는 다른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민족의식이나 동질성회복 등과 같은 사회운동이나 시오니즘에 빠져 있을 때 도리어 리비도나 자아의 기능에만 관심을 집중시켰다.
유대인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자.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느 집단에도 제대로 소속될 수 없는 동시에 이웃으로부터 환대를 받거나 도움을 크게 받고 살지를 못했다. 그래서 자신들의 생명을 담보로 할 정도의 돈과 보석을 늘 지니고 다녀야만 했다. 또한 온갖 학대와 모멸속에서 자존감의 심각한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야 했다.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어려서부터 반유대주의나 반셈족주의(anti-semitism)을 겪으면서 그들은 건강한 인격의 형성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중에 프로이드의 제자격인 인도주의 심리학자인 마슬로우(Maslow)는 욕구단계 5단계설을 주장하였는데, 그는 신체의 안전에 대한 욕구, 소속감과 사랑에 대한 욕구, 자존감에 대한 욕구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높은 수준의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밝히면서 미국인다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안목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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