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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소사이어티 나짐 히크메트의 시의 위로

by 코리안랍비 2022.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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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글출처 이미지 - 찬란한 태양



포스트 코로나 소사이어티
나짐 히크메트의 시의
위로

앞으로 사회를 나는 '포스트 코로나 소사이어티'
라고 부르고 싶다.
[코로나 후기 사회]라고 부르는데,
이 말을 만들고 나서 보니
내가 만들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 루트를 통하여서 이 말이 자주 사용되었으면 한다.

뉴욕타임즈의 세계적인 칼럼니스트인 프리드만은

BC BEFORE CORONA
AC ANNO CORONA로 세상이 양분 될 것이라고 했다.
세계가 기원전과 기원후로 달력이 나왔지만,
2020년부터는 코로나전과 코로나후로 나올 것이라는 말이다.
세계화와 인공지능의 발달, 개인주의와 풍요의 가속화를 강조했던 사람중에 하나였는데, 그러한 말들은 줄이고, 그저 코로나에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를 거론하였다. 사람들이 이제 '인문학적인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나는 일찍부터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위기를 다루는 위기 인문학의 필요성]을 주장한 사람이다. 위기인문학은 평온하고 좋은 시절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렵고 우울하고 험난한 시대상을 다루는 인문학이다.
위기 인문학은 이제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마치 죽음이 없는 것 같은 진지함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잠시 총선 이야기로 간다. 이것도 코로나로 인하여서 뒤바껴진 풍속도를 보여주었다. 고향에서 투표를 하면서, 2미터 이상 거리를 유지하고, 그리고 48센티가 넘는 비례투표지를 받아야 하고, 그리고 손에는 엄마손을 끼고 해야 했다. 투표시간이 족히 5분 이상은 걸린 듯하다. 마스크를 쓰고, 투표장에서 신성한 한표를 행사하고서 마음속에 이제 [정치]에 대한 생각을 줄이고, [경제]에 대한 생각을 늘리는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그리고 가족의 미래와 앞날을 위해서 가장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고민하는 시간을 더욱 갖기로 하였다.


이번 4.15총선도 코로나 주연에 코로나 연출로 끝난 것 같다.
코로나가 만든 투표현장은 세계의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 사회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효과적으로 하면서 코로나 정국을 맞이하였다.

국민들은 이번 선거에 [국정안정]을 택했다.
압승한 기존의 여당이나, 완패한 기존의 야당이나, 아니면 단순히 정치적인 과욕을 앞세운 군소정당들이나 모두 코로나 대왕님의 독재를 받은 느낌이다.

한국 사회는 이제 포스트 코로나 소사이어티를 맞이한다.
선거가 코로나에 대한 우려나 공포심도 사그러들게 하였다.
사람들은 집에서 쏟아져 나와 잔인한 달 4월을 맞이하였다.
다른 나라들은 이 한국이 마냥 부러운 듯 하다.
외신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도 선거를 치루는 한국을 부러워하는 눈치이다.

그러나 한국은 산적된 과제를 안고 있다.
바로 '민생'을 풀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민생에는 여와 야가 없다. 동과 서가 없다. 보수와 진보도 없다.
코로나후기사회는 먹고 사는 문제에는 모든 사람들이 힘과 지혜를 짜야 할 것이다.

지금껏 민생은 민초들의 힘으로 사는 것이라고 여겼다.
나는 평소 민주적인 생각인지 우리가 먹고 사는 것은 민초들의 힘으로 사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들이 싹 바뀌었다. 우리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재차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위기나 곧 남의 위기로 이어지는 사회에
우리는 와 있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하여서 자연과 대기환경이
무척 깨끗해졌다는 것과 더불어서
사람들도 자기편익주의로 일관하다가
이제는 대 사회를 생각하는 것으로 선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우리가 그저 잘먹고 잘사는 것에만 신경쓰는 것은 이제 소용이 없다. 내가 잘먹고 잘살려면 반드시 남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반드시 사람을 통해서 생기는 문제는 사람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피터 드럭커가 말한 ,
[새로운 현실]이고 [뉴 노멀]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정부와 정치, 경제와 비지니스, 사회와 세계에 지금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잘 파악해야 한다.

이번 세기는 이미 돌아와서
우리의 삶의 깊숙이 발을 들여놓고 있다.
이번 세기에 코로나는 이전의 전염병과 다른 양상을 보이며,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데 해결책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 문제가 무엇인지는 안다. 그것이 문제이다.
우리는 이제 나름대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움직여야 한다.

정말 아주 힘든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
여전히 희망을 말하고, 노래하고,
기도하고 응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 아주 절망적인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
절망은 희망으로 가는 도상에 있는 것이다.

때론 심리학자 아들러 말대로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용기가 된다"

살아갈 용기가 있다면, 우리는 살아진다.
내일 일은 잘 모르지만, 하루 하루 살지만
오늘 주어진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이
나의 목표처럼 다가오는 요즈음이다.

코로나후기사회속에서
혼자의식을 버리고, 우리의식을 크게 가져야 한다.
'나'라는 수많은 '나'들이 존재하는한
우리는 이웃사랑의 정신으로
계속해서 오랫동안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이겨나가야 한다.
그저 숨쉬고 살아가는 것으로 감사하고
여기서 용기를 가지자.




터키의 위대한 시인이 생각난다.
나짐 히크메트의 <아직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하여>

1.
살아 있다는 것은 농담이 아니다.
진심을 다해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한 마리 다람쥐처럼 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을 만큼산다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될 만큼
살아 있다는 것은 농담이 아니다
진심을 다해 삶에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두 손이 뒤로 묶이고
등은 벽에 밀쳐진 것처럼 절실하게,
혹은 어느 실험실 같은 곳에서
흰 옷과 보안경을 걸치고
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얼굴도 모르는그 누군가를 위해 죽어야 하는 것처럼 절실하게,
비록 살아 있는 일이 가장 사실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일임을 잘 안다 해도 진심을 다해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일흔 살이 되었어도 올리브 나무를 심을 만큼,
후손을 위해서가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긴 하지만 죽음을 믿지 않기 때문에
살아 있다는 것이 죽음보다 훨씬 소중한 일이기 때문에

2
가령 심각한 병에 걸려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해도
그 흰 침대에서 다시 못 일어나게 될지 모른다 해도
다소 이른 떠남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해도
우리는 농담을 들으면 여전히 웃을 것이고
비가 내리는지 창 밖을 볼 것이고
가장 최근의 뉴스를 궁금해하지 않겠는가

가령 우리가 지금 싸울 가치가 있는
무엇인가를 위해최전선에 있다고 해도
전투의 바로 첫날,
그 첫 번째 공격에서얼굴을 바닥에 파묻고 죽는다 해도
분노 어린 감각이 그런 불길한 미래를 알려 준다 해도
우리는 무척 염려하지 않겠는가

몇 년 동안 끌어질 그 전쟁의 결말이
가령 쉰 살 가까이 되어 감옥에 갇혔다 해도
철문이 열려 자유롭게 될 때까지
18년을 더 갇혀 있어야 한다고 해도
그렇다 해도 우리는 바깥 세상과 함께 숨을 쉬지 않겠는가
세상 속의 사람들, 동물들, 문제들, 그리고 바람과 함께
다시 말해, 감옥 벽 너머에 펼쳐진 세계와 함께
다시 말해,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어디에 있다 해도
마치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 나짐 히크메트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2020년 작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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