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로 내려간 예수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 가톨릭에서는 그 사흘 동안 예수가 저승의 문을 부숴 ‘림보’로 내려갔다고 한다. 라틴어로 ‘경계’를 뜻하는 ‘림보’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영계(靈界)로서 아담과 이브, 다윗과 솔로몬으로부터 세례 요한에 이르는 구약의 백성들, 즉 예수의 구원을 받을 기회가 없었던 까닭에 천국으로 가지 못한 이들의 영혼이 머무는 곳이다. 예수가 사탄을 물리치고 이들의 손목을 굳게 잡아끄는 이 장면은 동방 정교회에서 특히 중요한 성화의 주제로서 ‘부활’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나스타시스’라고도 한다.
이 그림은 15세기 중반 시에나의 오세르반차에서 활동했다고 해서 ‘오세르반차의 대가(Osservanza Master)’라고 불리는 수수께끼의 화가가 그렸다. 당시 시에나에는 이름난 대가가 여럿 있었지만, 멀리서 다가오는 푸르스름한 여명, 깊고도 깊은 지하의 어둠, 차가운 듯 눈부시게 빛나는 예수의 형광색 후광과 보석처럼 광택이 영롱한 표면 처리는 다른 어떤 화가의 작품과도 뚜렷이 다르고, 이전에도 이후로도 본 적 없는 전무후무한 특색이었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러한 일군의 작품을 묶어서 ‘오세르반차의 대가’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이 장면은 여러 패널이 연결된 큰 제단화의 제일 아래 단을 띠 모양으로 장식하는 프레델라의 일부인데 이 마저도 낱낱이 분해되어 세계 각지의 미술관으로 흩어진 상태고 중앙의 패널들은 소실되어 전체 제단화의 면모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다만 누구든 이 제단화 앞에 무릎을 꿇으면 거대한 성화를 올려다보기 전, 바로 눈앞에서 어떤 영혼도 헛되이 포기하지 않고 어디든 내려가는 구세주를 마주했을 것이다.
서양에서는 예수의 복음서 보다도 도리어 아담과 하와의 스토리가 더 유명하다고 한다.
왜 그럴까? 처음 인간이라는 이미지, 아담의 원죄, 아담의 자손으로 이어지는 스토리의 힘이 무척 강하기 때문이다. 우정아 교수의 글이 많은 영감과 도움을 준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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