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저명한 심리학 교수의 강의를 듣다가 배운 말이 있습니다.
"비교하지 말고 비유하라."
이 말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비교를 하면서 살아가고,
비교를 당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비교를 멈추어라" 하여도 사람들은 비교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은 비교에 길들여진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탈무드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비교를 그칠 수는 없지만
"과거의 자신과 오늘의 자신과 비교하는 연습을 많이 하라"고 주문합니다.
그러한 비교는 주관적인 비교입니다.
남과 비교해서 자신이 위에 있으면 기뻐하고
자신이 아래에 있으면 슬퍼하는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어떤 정신의학자는 "비교도 병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병이라는 것은 성격이 '아프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교도 아픈 모양입니다.
오늘은 앵무새와 독수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침에 든 생각은 [우리는 독수리에 대해서는 너무나 소심하며
앵무새 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앵무새 스타일의 사람들
잠시 앵무새를 떠올려봅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독수리 스타일의 사람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일단 똑같은 새장에서 지내기를 좋아합니다. 똑같은 먹이로 배를 가득 채우기를 즐기며,
자신이 쉽게 그말을 할 수 있기까지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동료들과 또한 같이 하는 것도 즐깁니다. 많은 관심을 받아야 하고, 여기서는 상처를 주고, 저기서는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도 합니다. 똑같은 횃대 위에서 몇 해씩 살아가는 것을 보통으로 생각합니다.(찰스 스윈돌의 책
앵무새가 나는 것을 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앵무새들은 서로를 존중하는 무리들 틈 사이에서 안락하고 예측가능한 자극을 좋아합니다.
앵무새는 밝은 깃털, 부드러운 배와 커다란 부리와 조그마한 머리를 가진 새입니다.
그러므로 안정지향성을 갖춘 새입니다. (찰스 스윈돌)
독수리 스타일의 사람들
그런데 독수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날개짓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머리로 생각을 합니다.
그들은 사고를 즐겨합니다.
그들은 피어오르는 질문력과 탐구력으로 무엇을 찾아내고 배우기 위해 움직입니다.
오랫동안 유대인 강의를 하면서 배운 것은 이들은 '독수리 스타일'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들에게서 배우는 것은 바로 '독수리 스피릿 - 후츠파 정신'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독수리 스타일의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무시해 버리기도 합니다.
어려운 것을 부탁할 만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독수리 스타일은 모험지향성을 갖춘 새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합니다. 양무새나 독수리나 자신들만의 고유의 특질을 갖추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고유의 특질보다는 변화의 특질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앵무새 같은 몸에 독수리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약한 질그릇 같은 인간이 속에 빛나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잠재능력과 차원높은 품격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독수리같은 눈을 갖는 것입니다. 같은 날개가 있는 동물이지만 중요한 것은 '눈'에 있습니다. '내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내가 나아갈 길은 어디인지'를 보는 눈입니다.
고전을 탐독하고, 역사서를 읽으보면 많지는 않지만 독수리처럼 비상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고전과 역사속에서 빛나는 이 인물들의 전기나 영웅담을 보면 흥분됩니다.
그러면 우리 시대에서도 이런 스타일의 사람들이 많을까요?
적지는 않다고 봅니다. 생활속의 영웅들을 가끔씩 만납니다.
독수리와 같은 사업가들을 만납니다.
독수리와 같은 정치인들을 만납니다.
독수리와 같은 목회자들을 만납니다.
독수리와 같은 작가들을 만납니다.
독수리와 같은 전문인들을 만납니다.
독수리와 같은 모험가들을 만납니다.
독수리와 같은 젊은이들을 만납니다.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눈을 가진 사람
독수리처럼 타고난 투시력과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비상할 준비를 언제든지 합니다.
요즘 시대를 보면서 우리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터널 안에서는 헤드 라이트(전조등)가 가장 핵심적인 조명 구실을 합니다.
이 불빛이 없이는 위험하게 터널 벽에 부딪칠 수도 있습니다.
시력이 낮은 사람들은 긴 터널이 매우 위험합니다.
그러나 터널의 끝부분에 이르게 되면 조금씩 밝은 줄기의 빛이 나타나 헤드 라이트의 빛은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됩니다. 터널을 완전히 빠져 나왔을 때는 '헤드 라이트가 꺼져 있는지 확인하시요'
라는 팻말을 보면 내가 아직도 불을 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밝은 햇빛에 비하면 헤드 라이트의 불빛은 너무 미약하여 자신은 그것이 켜져있다는 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앵무새같이 되기를 원한다면 가만히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마음 속에 독수리의 뜻을 품기를 바란다면
그 횃대에서 내려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날개짓을 하면서 새장 안이 자신이 머물러서는 안 될 곳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터널을 통과하면서도 여전히 터널의 그림자 속에 갇혀 살아가지는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횃대에 걸터 앉은 독수리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울 것입니다.
지금 내 모습을 과거의 내 모습과 비교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저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앵무새와도 비유해보고, 독수리와도 비유해 보십시오. 그리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탐구해 보십시오. 그러다보면 미학적인 순간, 철학적인 순간 심지어 영적이고 신학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자신을 많이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번은 독수리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적어도 생활속의 영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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