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의 눈물(2020년 가을날)
오늘은 신경림 시인의 [갈대 Reed]라는 시를 소리내어 읽어봅니다. 1957년도 시인데 지금 읽어도 깨달음을 줍니다.
언제부터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키가 제법 큰 갈대가 서로 몸을 부대끼면서 웁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밤은 외롭고 적막합니다. 갈대는 그 무엇인가에 의해
온 몸이 흔들립니다. 흔들리지 않는 갈대는 없는 듯 계속 흔들립니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그 무엇도 아니라 자신의 울음이
온 몸을 흔들고 있다는 것을 여직껏 몰랐습니다.
그 어느날 밤 갈대는 깨달아지는 순간이 왔습니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갈대는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고 조용히 울어만 댑니다.
자신의 눈물이 누구에게 보일까봐 스스로에게 최면이 아닌 체면을 겁니다.
지금 껏 지내온 세월을 끌어 안고 살다가 북받쳐서 서럽게 웁니다.
자신이 끌고 온 세월이 너무나 무정하고 억울한 듯이
그저 근원적인 슬픔을 안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 눈물은 오랫동안 삭히고 묻어 둔 눈물입니다.
여자의 눈물은 상처받고 속이 상하여 금새 우는 눈물이요
남자의 눈물은 상처를 참고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갔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회한의 눈물입니다.
무엇인가 귀중한 인생의 가치를 깨닫기 전
우리는 삶이 고단하고 힘들면 상황 탓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달빛과 바람의 탓인줄 알았습니다.
탓을 하다가 하다가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 뿐이었습니다.
내 안에 [성인아이 adult child]의 존재를 깨달으면서
여전에 내 속에 예전부터 다 자라지 않은 성인아이의 존재가
어느 날 외롭고 고독한 날 눈물을 터뜨리게 한 것입니다.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울음으로서 슬픔을 삼킵니다.
그래서 그 슬픔이 도리어 나의 어리석음을 어른다움으로 바꾸어 줍니다.
공자의 애이불상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슬퍼하되 상하지 않는 슬픔' 이 방식을 터득하는 순간이 옵니다.
우리는 슬픔이나 아픔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고통스런 현실과 여러 작고 큰 눈물나는 순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럴 때 잠시 참다가 터뜨리는 '어른의 눈물'은 약이 됩니다.
천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하는데,
오래 오래 참아야 어른이 된다고 하는데,
눈물을 흘려서 온 몸이 흔들리고
신음소리를 내면서 고독을 견뎌야만 하는 우리 인생입니다.
티벳의 [사자의 서]에 나오는 대목이 생각납니다.
태어날 때는 내가 울고 모두가 웃고
죽을 때는 내가 웃고 모두가 울게
그런 삶을 살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웃으려면 많이 울어야 합니다.
신경림 시인은
파스칼같이 인간을 갈대에 잘도 비유했습니다.
이제 나와 당신의 귀에 갈대의 울음소리가 어떻게 들리는가요?
우리의 눈물이 슬퍼서 외로워서 나오는 낭만적 울음으로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눈물이 치유가 되고, 성숙해지고, 어른이 되는 적극적 울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나의 불행의 원인이 타인과 환경의 탓으로 돌리며 삶을 허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주어진 삶에 대한 그저 감사와 평강입니다.
그리고 탓이 아닌 사랑입니다. 그것도 오래 참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걷는 길이 이제는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이 이제는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려고 우리가 사니까요...
왜 사냐구요?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기 위해서지요
겨울에 내린 눈이 물이 되면 봄이 옵니다.
우리가 눈가에 맺힌 물이 흘러 내리면 마음에 봄 꽃이 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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