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론 Pyrrhon 또는 피론주의 Pyrrhonism
세스크투스 엠피리쿠스 <<피론주의 개요>>
현대 문명의 모든 씨앗은 고대 헬라제국 그리스에 있었다. 물론 헤브라이즘으로서의 이스라엘도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지만 그리스 문명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는 서양 문명의 원천이자, 문명의 자궁이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카데미아 학파의 전통이 이성주의와 합리주의 철학의 근간이라면, 반아카데미 학파의 피론주의 역시 르네상스 이후 주목받고 데카르트, 데이비드 흄, 헤겔에 영향을 미쳤다.심지어 포스트 모더니즘의 상대주의적 관점까지 맥이 이어진다.
회의주의의 원조가 누구인지 아는가? 모르면 그리스의 철학자를 뒤지면 나오게 되어 있다. 바로 피론(Pyrrhon)이다.
오늘은 피론과 피론주의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물론 피론주의는 [세스크투스 엠피리쿠스]가 저술한
[피론주의 개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원래 화가였다고 한다. 그런데 데모크리토스의 이론을 공부하던중 회의론의 기초를 만든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두었던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원정에도 같이 참여했던 인물로서, 인도에서 금욕이나 현자의 도(道)를 배운 사람이었다. 나중에 엘리스에 학교를 세우고 여러 제자들을 가르쳤다.
피론의 [회의론]을 따르는 사람은 세계 지성사의 획을 그은 인물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방법적 회의]를 주장한 ‘데카르트’가 있다. 데카르트가 도달한 의심할 수 없는 명제가 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이 된 것이다.
그 후에 18세기에 [데이비드 흄] 이 있다. 그는 “불완전한 인간의 감각 때문에 객관적인 인식이란 성립할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인간은 인과관계를 믿고, 지속하는 존재라고 믿는다. <지식-회의주의에 대하여, 한상기 참고>
회의론이라는 것은 확실하지 않은 명제에 대하여 어떠한 동의도 유보하고 영원한 탐구의 상태에 머무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확실에 다다르는 것을 [마음의 평온 - 아타락시아]이라고 불렀다.
현대의 회의론자(Skeptics)하면 대표적으로 ‘만들어진 신’ , ‘이기적 유전자’ 라는 책을 쓴 저명한 [리차드 도킨스]가 있고, [총, 균, 쇠]라는 걸출한 책을 쓴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있다. 물론 농담삼아서 회의론자는 필요 이상으로 회의를 소집하는 상사나 대표를 이르는 신조어로도 쓰인다.
하지만 초창기 회의주의자는 [모든 것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탐구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회의주의자]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확신하고 경험된 것만 믿으려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면에서 [회의론자]같은 모습이 보이기는 하다. 나는 크리스찬이다. 그런데 그냥 믿으라고 해서 믿은 것이 아니다. 나에게는 믿음이 와서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믿음은 나에게 오는 것이다. 억지로 믿으려했다면 그것은 아직 믿음에 다다르지 않은 것이다.
인간이 회의적 입장을 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이 오류(errors)를 수시로 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확고하다고 믿었던 과학적 지식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 과학적 지식을 뒤집거나 폐기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진정한 지식에 도달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과거 성공적이었던 과학 이론 대부분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다. ” - 레리 라우든 과학사가
물론 회의주의는 지성의 발전을 저해하는 악마의 시험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사람이 왜 이리 회의적이야” 라는 것은 바로 모든 것을 비관적으로 보고, 발전이나 진보를 하려는 것을 거부하거나 유보하는 사람을 가르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더 큰 도약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회의론자는 긍정과 부정이라는 두가지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회의론자는 무엇인가 확신에 가득찰 때 그것을 비로소 [마음의 평화 - 아타락시아]에 도달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맹자가 말한 [평상심(平常心)]과도 관련이 있다. 이들은 치열한 탐구 끝에 내리는 ‘판단정지 Epoche 에포크’를 감행하게 되는데, 이 판단중지의 상태가 바로 [마음의 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원점으로 가서 피론이라는 철학자에게 있어서 삶을 대하는 자세는 판단을 중지한 채 모든 것에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는 자칫 노자가 말하는 [무위자연]과는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노자는 [과학적 탐구]에 대한 노력은 회의적이었다. 피론은 어떤 철학적 명제나 논리에도 함부로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그것에 대한 반대 명제나 반대 논리를 제시함으로서 판단을 유보하였다.
물론 이들에게도 허점이 많다. 그들이 옳다고 여기는 [판단유보나 판단중지]도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회의는 또다른 회의를 낳는 것이다. 자칫 독단적 믿음에 기반하는 점에서 이들도 비판을 벗어나기는 힘들다.
다만 합리적 이성주의가 인류 문명사에서 인간의 인식을 이끌어 온 주류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회의주의가 영원한 대립각처럼 존재하여서 서로 사회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 쉽다. 하지만 치우치는 것은 균형감각을 잃은 것이다. 철학은 곧 균형감각의 학문이다. 하여간 이 세상에 모오류는 없다. 오류는 있기 때문에 인간은 계속해서 철학함이 가능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미국의 시인겸 철학자인 [제니퍼 마이클 헥트]가 지은 [의심이 역사 Doubt ; A History]를 권하고 싶다. 이 책에서는 소크라테스, 예수, 토마스 제퍼슨, 스티븐 호킹이 모두 혁신의 시대를 이끈 위대한 회의주의자라는 주장을 한다.
우리 나라 속담을 들어서 [스켑틱스 - 회의론자]들의 주장을 말해주고 싶다.
인식론에서는 ‘오르지도 못하는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 라고 하면서도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라며 위의 주장을 바꾸어 생각하게 한다.
또 로크가 ‘아는 것이 힘이다’ 라고 했지만, 다른 어떤 이는 ‘모르는게 약이다. 모르는게 복이다’ 라는 주장도 한다.
피론주의를 주창한 세스크투스 엠피리쿠스는
자연.습관.관습을 회의주의의 대안으로 삼았다.
다시 말하면, 보이는 그대로, 느낌과 감정 그대로, 체험하는 바에 따라 살라는 것이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면 된다. 또 자신이 속한 상황과 관습이나 법에 자신을 맡기면 된다고 보았다. 그는 신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경건함은 좋고, 불경함은 나쁘다고 보았다. 그의 회의주의는 관습을 중시한 점에서 강한 보수주의도 가지고 있었다. 피론주의에 대해서 공부하고, 정리하고, 연구하여 이렇게 밝히게 되어서 감사하다.
하여간 철학은 어렵지만 재미있는 학문이다.
손에 철학이라는 거울을 가지고 다니면 세상을 보는 재미와 즐거움이 클 것이다.
#부록 - 본 포스팅을 이해하기 위한 일화
티몬이라는 제자가 스승 피론에게 따지듯이 말한다.
"스승님, 오늘로 제가 스승님 곁을 지킨지 10년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스승님은 제게 아무런 가르침도 주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제게 아무 것도 주지 않으려고 할 작정입니까?"
피론은 껄껄 웃으면서.
"이놈아, 그동안 그렇게 반복해서 가르쳤는데 아직도 또 무엇을 더 가르쳐 달라는 것이냐?"
이 말에 티몬은,
"예, 저를 계속 가르쳐 오셨다구요?"
"선생님은 그저 제가 뭘 묻기만 하면 그저 웃기나 하시고 아무 말씀도 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 외에 또 무슨 가르침이 필요하냐?"
피론은 침묵을 지킬 줄 아는 것만큼 값진 것이 없다고 가르쳐온 것이다.
침묵은 금이며, 침묵은 최고의 지혜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티몬은 여전히 알지를 못했다.
그래서 피론은 "좋다. 도대체 무엇을 알고 싶은지 물어보아라"
"선생님께서는 신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신?"
"예, 우주를 지배하는 절대자 말입니다."
피론은 잠시 생각에 잠기면서...
"만일 신이 있다면 형체가 있거나 없겠지?"
"예, 유형적이거나 무형적이거나 둘중에 하나겠지요"
"만일 신이 형체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물질과 마찬가지로 소멸하거나 사멸되겠지?"
"그렇지요"
"그러면 변하거나 사멸된다면 그것을 절대자로 할 수 있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은 형체가 없는 것이어야 하네.
하지만 만약 신이 형체가 없다면 인간이 어떻게 신을 찾을 수 있을까?인간은 감각을 통해서 무엇이든 찾아내곤 하는데, 형체가 없는 것을 감각으로 찾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티몬은 이 말을 듣고,
"찾아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찾아낼 수 엇는 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 더 물어보자. 신은 전지전능하거나 또는 능력에 한계가 있거나 둘 중에 하나겠지?"
"그렇겠지요"
"그러면 신이 전지전능하다고 가정해보자. 신이 전지전능한데도 이 세상에는 여전히악과 무지와 폭력이 그대로 난무하고 있으니, 비록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완전히 선한 존재라고 할 수는 없겠지?"
"예"
"선하지 못한 존재를 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없습니다."
"또 신의 능력이 한계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그것이 능력에 한계가 있는 존재라면 반드시 보다 월등한 힘을 가진 어떤 존재에 의해서 지배를 받겠지?"
"예"
"따라서 능력에 한계가 있는 존재를 신, 즉 절대자라고 할 수 있을까?"
"없습니다."
그 말에 웬지 속은 것 같은 '티몬'이 말한다.
"그럼 스승님은 신이 없다고 믿으십니까?"
그 말에 "아니지, 신은 존재할 수 있지,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아낼 수는 없어. 그러니 뭐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일이야. 그래서 침묵하려는 것이지. 모든 일에 자신의 판단을 중지하고 침묵을 지킬 줄 아는 것이 현명한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침묵이 최선책이라는 뜻이야"
피론주의도 근본적으로는 소크라테스의 사고에 근거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그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고 이다."
회의론자들은 그래서 더욱 자신이 논리를 펼치기 위하여
탐독하고 탐구하고 탐험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회의론자는 좋아하여도 게으른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회의론자 같은 기독교인은 좋아하여도
사색하지 않는 기독교인은 상대하지 않는다.
사색이 없는데 무엇을 그 사람에게서 배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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