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힘이 있는 부모와 자녀의 슬기로운 언어생활
어떤 문화인류학자가 말했습니다. “문화는 언어다 Culture is linguistics"
문화는 기본적으로 ‘공유가치’를 기반으로 하여 형성됩니다. 서로 전통과 가치관, 역사와 관습을 서로 공유하면 문화가 됩니다. 그런데 이 문화의 근간도 알고 보면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말과 글로 이루어집니다.
말과 글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문화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과 글을 천박하게 하는 곳은 저속한 문화를 만듭니다.
슬기로운 언어생활은 곧 고상한 문화를 만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유대인들은 몇 천년전부터 언어와
그 언어사용을 중시 여겼습니다.
기본적으로 중근동에서 가장 언어에 대한 이해와 문해율이 높은 민족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언어라는 것도 품격이 있습니다.
이들은 신성한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의 언어로 삼았습니다.
성서 히브리어의 언어를 이들의 생활의 언어로 삼았습니다.
‘샬롬’ 하면 ‘안녕이나 평강’입니다.
‘할렐루야’ 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라’ 아니면 ‘정말 기쁩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아멘’하면 ‘동의합니다. 믿습니다.’입니다.
이런 언어를 사용하다보니 언어사용에 있어서 신중하게 되고,
함부로 다른 이의 삶과 인생을 비난하지 않게 됩니다.
가정에서도 슬기로운 언어생활이 이어지게 됩니다.
이들에게 성서와 탈무드에 나오는 내용만 학습해도
이들의 언어만 아니라 삶의 전반적인 것에서
‘변화와 성숙’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성서와 탈무드의 언어나 랍비들의 사용한 언어를 이용하여 생활속에서 '하브루타'를 하기도 하고, 학습하고, 토론하고, 대화합니다.
한국 교회에서도 사용하는 언어가 성경의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가정들을 보면상당히 문화적으로나 교육적으로 높은 수준의 가정을 만듭니다. 부모의 언어가 곧 자녀들의 언어를 형성합니다. 축복과 긍정의 언어를 많이 사용하는 집은 대체로 잘되고 번영하는 것을 봅니다. 반대로 욕설과 무시의 언어를 자주 사용하는 집을 보면 역기능 가정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실제 어느 비 기독교 연구소가 이를 연구한 자료가 있는데, '언어생활이 가정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합니다. 언어는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고 하는데, 잘못된 말 한마디가 일생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 가정은 부모와 자녀간에 사용하는 언어가 이들의 가정교육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쉐마 교육(신명기 6장에 근거한 교육방식)’을 오래 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쉐마 교육이 있기 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라는 조상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십계명 교육(출애굽기 20장에 근거한 교육방식)’에서 그렇다고 하는데, 십계명 이전에 조상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중시 여겼습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교육’을 중시여겼는데, 사실 하나님은 교회를 짓기 전에 먼저 가정을 세웠습니다. 창세기 2장에 등장하는 아담과 하와의 가정이 성서상의 첫 가정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쓰는 언어는 바로 ‘조상들의 스토리’로 구전되어 나왔습니다. 부모들은 ‘BED-TIME STORY'를 성서이야기로 들려주었고, 랍비들의 이야기로 들려 주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이런 믿음의 조상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부심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나의 영적 은사였던 요셉 슐람 박사님도 느헤미야의 직계 후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서에 나오는 믿음의 총독 니헤미야라는 분의 후손이기에 그 자부심이 무척 강하고 대단했습니다.
유대인 교육의 핵심은 사실 ‘자부심 교육이며, 신성한 언어사용을 기반으로 한 바른 언어교육’입니다. 이를 발견하는데 무려 유대인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오래 걸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워낙 뛰어난 조상들이 많아서 그런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이 무척 강합니다. 열등감을 가진 사람을 보기가 힘듭니다.
이러한 내용의 글을 쓰면 마치 다른 유대인 전문가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의 반발이 있습니다. 저들도 전문가지만 나도 전문가입니다. 교육학이라는 것이 어찌보면 교육학자의 독점권이라고 되는 것처럼 미화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서와 탈무드만 잘 읽고 공부하여도 우리도 능히 교육학자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전문성이라는 것은 그저 책 한두권 더 읽는 정도라는 것을 알면 됩니다. 그렇다면 최고의 책인 성서와 탈무드를 읽으면 우리도 능히 전문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습니다. 슬기로운 언어생활을 통해서 나와 가정, 그리고 사회와 민족에 영향을 심을 수 있습니다. [성서와 탈무드 독서]는 사람을 지혜롭게 하고, 언어선택에서도 신중하게 하고, 사람을 감동시키고 감화시키는 언어사용을 가능케 합니다.
실례로, 어느 랍비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부모와 자녀간에 존중의 언어를 쓰면 화가 나도 반말을 하지만, 서로 반말의 언어를 쓰면 화가 나면 욕을 하게 된다. 그런데 서로 욕설의 언어를 쓰면 화가 나면 폭력을 일삼게 되고, 폭력을 일삼는 집은 이스라엘 중에서 가정이라고 할 수 없다’
'유대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스라엘의 독립과 초대 총리, 벤 구리온 (0) | 2022.09.10 |
---|---|
아인슈타인과 유대인들의 대학선택 (0) | 2022.09.10 |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저력, 밥상머리 교육 (1) | 2022.09.09 |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유대인들에 대한 대(大) 착각 (0) | 2022.09.09 |
토론 잘하는 유대인, 토론은 찬반이 아니라 자유로운 의견제시 (1) | 2022.09.08 |